권은비, 신해남과 환자들, 이찬혁, Alvvays 외
동봄 : 권은비라는 아티스트가 가진 역량 역시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밀리지 않는 수준이지만, 음반을 대충 채우지 않고 꽤 괜찮은 곡들을 들고 오는 울림의 능력이 눈에 띈다. 울림의 이러한 강점은 이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으니 새삼스러운 감도 있다.
지난 음반 [Colors]에 이어 이번 앨범 [Lethality]도 상당히 들을 만했다. [Colors]의 타이틀 ‘Glitch’가 이름에 걸맞게 다소 난해했다면, 이번 [Lethality]의 타이틀 ‘Underwater’는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듯한 느낌이 아닐까. 아프로 리듬이나 라틴 리듬을 바탕으로 곡을 끌고 나가다가도 브릿지에서는 딥 하우스 리듬으로 변주하는 등 강렬과 세련을 오가는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더해서 앨범의 주요한 트랙인 ‘Underwater’, ‘Croquis’, ‘Simulation’ 모두 깊고 강렬한 베이스와 얇고 힘 있는 권은비의 보컬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역시 주목할 만했다.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는 가늠할 수 없겠으나, 적어도 대충 만들지는 않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frank : 신해남과 환자들은 페스티벌이 재개된 올해부터 다시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느낌이다. 나도 올해 잔다리페스타에서 그들의 공연을 봤고, 클럽FF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그 어떤 팀보다 어울리는 밴드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전통의 홍대 스피릿을 잘 대변하는 밴드지만, 아쉽게도 이번 싱글은 그저 공연용 곡이 또 하나 나왔구나 정도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걸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공연용 곡 간의 차이점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측면은 밴드로서 분명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느껴진다. 음원은 밴드의 에너지와 다이내믹을 구현하기엔 그 한계가 뚜렷하지만, 반대로 밴드의 음악성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1년 8개월 만에 디스코그라피에 등장한 이번 싱글은 선명한 아쉬움을 남긴 채 1페이지를 메웠다.
동봄 : 처음 앨범을 정주행하고 난 후 발매 이전에 기대했던 만큼의 퀄리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죽음을 임의로 설정한 후 유기적으로 앨범을 구성한 것이 흥미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목격담’, ‘Siren’, ‘파노라마’, ‘Time! Stop!’, ‘장례희망’ 이외의 곡들은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전반적으로 레트로한 느낌의 신시사이저들이 인상적이었으나 중반부 곡들의 트랙 존재감이 꽤 떨어지는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 번쯤 감상할 만한 필요가 있는 앨범인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앨범의 발매 전후로 이찬혁이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기행”에 가깝다. 특정 장소에 특정한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인터뷰를 거부하고 무대에서 뒤돌아 노래를 부르며 삭발을 하는 등의 행동은 대중에게 꽤나 바이럴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찬혁의 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 화제성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마케팅이나 브랜딩 차원에서 신선한 시도였지만, 그에 따른 열매는 아쉬운 수준이다.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듯한 음반이 아닐까.
frank : 한창 새로운 밴드를 디깅하던 2014년, 칠링한 소리의 기타와 시니컬한 톤의 보컬이 어우러진 밴드가 있었다. 그렇게 ‘Adult Diversion’이라는 나의 인생곡 중 하나를 만났지만, 애석하게도 그로부터 8년간 신보를 만나볼 수 없었다. 그러니 이번 앨범이 내게 얼마나 큰 배신감과 반가움을 동시에 안겨 주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돌아온 그들의 음악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띈 것은 보컬이다. 예전에는 상큼한 톤에 한껏 무감정한(?) 태도가 더해진 것이 매력이었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나, 8년 동안 깨달은 것이 있어요’라는 듯 훨씬 감정을 더 해 열심히 부른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8년 동안 그들이 얼마나 이 재회를 기다렸을지 조금 납득해버렸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8년간 고르고 또 고르다 보니 감정적이지 않을 수 없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보컬만 주구장창 얘기하기는 했지만 완성도 높은 사운드와 구석구석 흥미로운 시도로 가득 찬 14 트랙의 혜자 앨범이다. 이번 앨범은 아침 출근길에 문 밖을 나서기가 고달픈 직장인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추천 트랙은 ‘After The Earthquake’
동봄 : 최근 Clean Bandit의 음악들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찰나, 그나마 괜찮은 곡을 하나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릇을 채우기엔 한참 부족하다. 더해서 다른 아티스트들의 곡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도 그들의 음악을 구분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Clean Bandit만의 특징은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번 싱글에서 그나마 인상적이었던 베이스와 보이스 샘플로 점철된 드랍도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들었는데, 천천히 되새겨보니 저스틴 비버가 피처링을 했던 Jack U의 ‘Where Are U Now’와 비슷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묻어 있는 이들만의 특징이라고는 마지막 드랍 이후 곡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의 구슬픈 스트링 사운드가 전부가 아닐까. 전반적으로 아쉬운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해 보이는 시점이다.
frank : 한 줄로 말하겠다. 제목과는 상반되게 지금 당장 춤추고 싶게 만드는 곡. 먼저 밴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2010년 결성된 호주 출신의 6인조 밴드로 정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하는 밴드다. 어떤 음악을 들고 오더라도 ‘그치 얘네라면 할 수도 있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밴드랄까. 다만 밴드명의 Lizard를 Doors의 프론트맨 Jim Morrison의 별명에서 따왔다는 점은 음악적 뿌리가 어디쯤 일지 가늠해볼 수 있게 해 주지만.
어쨌거나 이 밴드는 음악을 잘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포인트는 곡마다 촘촘히 쌓여있는 소리의 레이어와 그 가운데 어느 하나 튀지 않도록 세밀하게 조율된 밸런싱이다. 그렇기에 언뜻 들으면 굉장히 단순한 음악을 하는 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싱글도 누구나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스타일의 곡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소스가 조금 크게, 조금 작게 위치하고 기능하며 곡을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유기성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곡 자체의 무드에 집중하는 듯한 태도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마지막 한 줄은 이렇게 정리하겠다. 음악에 계산한 티가 나버리면 그 밴드는 끝이다.
※ '동봄', 'frank'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