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2월 4주)

비비, 수지, 알레프, Emotional Oranges 외

by 고멘트

"나쁜X의 개과천선."


1. 비비 (BIBI) - ‘행복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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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 : 비비의 2024년은 "어둠의 아이유"에 멈춰 있던 이미지를 확장한 한 해였다. 작년 이맘때 나온 사랑스러운 ‘밤양갱’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본인을 새롭게 대중들에게 인식시킨 비비지만, ‘밤양갱’은 잠깐의 일탈이라는 듯 뒤를 이은 활동들은 여전히 매콤했다. 행사 무대 위 비비는 여전히 자유로웠고, 이어 나온 싱글 ‘데레’는 뮤비에서의 퀴어 코드 활용 등 잃지 않은 비비의 도발적인 초심을 볼 수 있다. 본인과 잘 맞는 배역을 만나 배우로도 호평을 받으며 비비 위에 씌워지는 모습을 다채롭게 하기도 했다. 이제 비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거침없고 외설적이던 데뷔 초보다 풍부해졌다.


이번 앨범은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연장선에서 그동안의 이미지를 종합했다. 레트로한 질감을 구현하기 위한 자잘한 디튠과 LP 노이즈가 얹어진 단순한 포크 스타일 기타가 이끄는 소박한 분위기는 마치 ‘밤양갱’처럼 폭신한 겨울이 떠오른다.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행복한 날이 오길 바란다는 주제를 비유적으로 풀어낸 시적인 가사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표면적으로 ‘행복에게’는 대중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어찌 보면 ‘밤양갱’을 벤치마킹한 곡이다. 그러나 창법과 어투에서 원래의 비비가 배어 나와 마냥 밝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복잡해진 감상을 남긴다. 희망을 바라는 주제와 대비되는 냉담한 문체, 담배 연기, 고독과 같은 단어들에 병약한 보컬 프라이와 불분명해진 발음 처리가 만나 밝음 뒤에 차갑고 아린 잔향을 남긴다. 그렇기에 후렴에서의 허밍이 행복한 콧노래로 들리지만은 않는다.


이 외에도 시니컬한 앨범 소개와 같이 앨범 곳곳에 녹아 있는 비비의 마음속 이야기는 노래를 듣는 동안 드는 심상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어두운 삶 속에서 밝게 희망을 노래하는 페르소나는 마치 작년 비비가 "강남 비-사이드"에서 연기했던 독하지만 정의로운 "김재희"가 떠오른다. 그녀가 말하는 달콤 씁쓸한 행복은 달디단 밤양갱보다 깊은 몰입감을 선사하여 한동안을 곱씹어보게 했다. 본연의 비비를 지우는 대신 입체적으로 녹여낸 비비는 더더욱 매력적인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듯 보인다.





"포근한 스웨터 감성으로 컴백"


2. 수지 (Suzy) - ‘Com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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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 2년 만에 싱글 앨범으로 돌아온 수지는 감성적이고 쓸쓸함이 묻어 나오는 달콤 쌉싸름한 보컬로 리스너를 사로잡는다. ‘Come back’은 잔잔한 피아노와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가 잘 어우러지는 곡이다. 어쿠스틱한 음악 위로 들리는 수지의 기교 없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담백하게 느껴지며 과장 없이도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겨울에 포근한 스웨터를 입고 한껏 웅크리며 들어야 할 것만 같은 따뜻한 분위기가 한층 성숙해진 수지의 목소리와 따뜻하게 스며든다.


다만, 이전 앨범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이번 싱글에서는 익숙한 겨울 감성과 안정적인 흐름에 초점을 둔 것 같다. 수지는 지난 싱글 ‘Cape’에서 매력적인 중저음을 선보이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새로운 음색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Satellite’에서는 락 발라드와 슈게이징 사운드가 짙은 밴드 음악을 시도하며 보컬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번 싱글에서는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탑라인 진행 등 변수 없는 보컬 스타일을 택한 듯하다. 매번 솔로 앨범으로 자신의 보컬적인 잠재성을 보여주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무난한 흐름을 택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곡의 전반적인 흐름이 잔잔하게 진행되고, 감성을 확실하게 터뜨리는 요소가 부족해 임팩트가 부족하고 평이하게 느껴지는 점이 다소 아쉬운 점이었다. 후반부에서 조금 더 강렬한 보컬로 여운을 남겼다면, 대중에게 더 진한 여운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가루로 사라져버릴 음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3. 알레프 (ALEPH) – ‘사탕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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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베트 : 무릇 음악가는 시대를 노래하고 그래서 유행가라 하지만, 알레프(ALEPH)의 음악은 더욱 이 시대와 맞닿아 있다. 곡을 내고 싶은 열망으로 매달 싱글 앨범을 발매하던 때에 얻게 된 '월간 알레프'라는 별명답게 사소한 일상과 미묘한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낸다. 또한 여느 가수들처럼 사랑과 행복을 노래하지만 동시에 그것의 사라짐과 끝을 이야기하는 그의 음악은 늘 어딘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어릴 적부터 이민 생활을 거치며 이방인이 익숙한 삶을 살았다던 그의 외로움과 고독함이 음악 속에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예 '21 Archive'라는 아카이빙 앨범을 발매할 정도로 영감의 순간을 곧바로 창작으로 보여주는 알레프의 스타일은 아카이빙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해석하기엔 일기장처럼 사소하고 가벼운 순간에 갇혀 있다.


이번 싱글 ‘사탕가루’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가수답게 달달한 사랑의 순간을 섬세한 묘사로 늘어놓으며 역시나 특유의 멜랑콜리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EP 사운드에 맞춰 부드럽게 늘어지는 목소리는 입가에 묻은 달콤한 사탕가루를 사랑의 구체적인 현현으로 물들인다. 프리 코러스에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전자음이 등장하여 몽글몽글한 감성이 고조되지만, 후렴구는 한층 서정적인 멜로디로 전개되며 이번에도 어딘가 아련하고 뭉클한 분위기로 차분히 가라앉힌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음악이라는 인상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차분하고 먹먹한 보컬 때문인지, 어김없이 등장한 몽환적이고 느슨한 신스 사운드와 함께 두드러지는 그늘진 정서는 하나의 패턴으로 눌어붙었고, 그 위에서 소재만 바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보다 가사와 주제로 변화를 주는 알레프의 행보는 과연 그가 추구하는 것이 뮤지션인지 시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지난 EP 앨범에서 언뜻 보였던 음악적 시도는 이어지지 않았다.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자가복제를 반복하다 결국 고여버렸던 수많은 한국 인디 가수들의 전철을 밟게 될지 우려된다.





"물 탄 스크류 드라이버."


4. Emotional Oranges – ‘Candy G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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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 : 긴장감 있는 둘만의 "진대"와 여유롭고 즐거운 수다 사이에서 짜릿한 줄타기를 하는 묘한 분위기. 딥한 코드와 은근한 보컬, 느릿하지만 그루비한 리듬감이 형성하는 이 분위기는 Emotional Oranges 음악의 매력이다. Chill 함과 유혹이 절묘하게 블렌드된 이 느낌을 EDM과 K팝 등 활동 반경을 바꿔가면서도 다양하게 녹여내던 작년에 이어, NCT 재현의 솔로 앨범 수록곡 ‘Flamin' Hot Lemon’에 참여하여 본인들의 색을 덧씌웠던 것처럼 이번에는 라틴과 팝에서 앙칼진 목소리를 들려줬던 두 보컬과 함께하며 새로운 조합을 시도했다.


분명히 처음부터 꽂히는 Nu-Disco 질감의 베이스와 느긋한 템포는 알고 있던 오렌지의 맛이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이게 오렌지 맛인지 헷갈린다. 이미 본인의 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는 Becky G이며, Sam Smith와 함께할 때도 밀리지 않았던 Jessie Reyez였다. 그러나 은근하게 속삭이는 대신 분명하게 얹어진 보컬은 트랙과 오히려 미스매치가 되어 버린다. 프라이빗한 상황을 그려내던 긴장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곡의 구성과 탑 라인의 기승전결 또한 단순하게 다려져 기존의 섬세한 조절이 사라졌다. 이에 따라 매혹적인 은근함은 단순함이 되었고, 탑 라인을 따라 여유롭던 BPM은 지루하게 느껴진다. 긴장감과 여유로움이 절묘하게 조절되던 이전과 달리 전체적으로 가벼워진 이번 곡은 밸런스가 깨져 그 어느 분위기도 자아내지 못한다. 그렇게 이들의 조합은 특색 없고 단면적인, 파티에서 들릴 법한 R&B가 되어버렸다.


매력 있는 아티스트들이 모였지만 아쉽게도 이들의 합류는 Emotional Oranges의 밸런스를 무너트렸다. 그렇다고 귀책사유가 두 보컬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Emotional Oranges 또한 방만했다. 때론 파티의 구석에서 여유롭게 홀짝이는 블루 하와이 같던, 한편으로는 조용한 곳에서 단둘이 즐기는 매혹적인 코스모폴리탄 같던 묘한 Emotional Oranges가 이번에 낸 칵테일은 아쉽게도 가볍고 평범한, 대충 섞인 물 탄 스크류 드라이버였다. 오렌지 향이 나긴 하지만 옅고, 그렇다고 다른 매력이 있지도 않은, 서로의 장점과 특색을 담지 못한 조합이었다. 높아진 인지도만큼 신선한 조합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은 환영하지만, 기존의 특색을 유지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페더,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5. Peder Elias - ‘If I Got a D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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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 ‘If I Got a Dollar’는 심플한 코드진행과 부드러운 멜로디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이지리스닝 곡이다. 이번 싱글에서 보여준 페더 특유의 감미로운 미성은 여전히 마음을 간지럽힌다. 벌스 부분부터 페더의 부드러운 보컬과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가 조화롭게 곡 전체에 포근하고 따뜻한 무드를 더한다.


다만, 페더의 스타일이 점점 정형화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곡 전반적으로 반복되는 쉬운 코드 진행, 따라 부르기 쉬운 캐치한 멜로디, 후렴구에 중독적인 멜로디는 페더의 공식이 되었다. ‘Loving You Girl’, ‘Paper plane’과 같은 이전 곡들과 비교해 보면, 당시 곡들은 후렴에서 터지는 부분이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반면, 이번 곡은 그런 부분이 다소 약하게 느껴져 음악 진행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언제쯤 터지는 구간이 나올지 기다리다가 김새듯이 갑자기 끝나버리는 흐름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무난하게 흘러가는 이지리스닝의 흐름에서 벗어나 색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풀어냈으면 어땠을까. 후렴구에서 갑자기 부각되는 팡파레 같은 사운드보다는 전조나 색다른 코드 진행을 더하거나, 공간감을 활용한 신스 사운드와 보컬 레이어링으로 곡을 더욱 세련되게 다듬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제는 페더가 자신의 공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통해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할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백의 미와 함께 생략된 실험 정신"


6. Yukimi, Little Dragon - ‘Stream of consci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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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베트 : 어떤 음악은 소소한 일상과 사랑, 심지어는 인간을 초월한 것들을 노래한다. 스웨덴 일렉트로닉 밴드 Little dragon은 몽환적이고 느슨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특징으로, 평온하지만 서늘한 북유럽 감성을 보여준다. 생동감 있는 리듬과 자연스럽고 차분한 스타일의 사운드에서 묘하게 대자연의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자연주의 음악이라고 평가되는 것이 아닐까.


앨범은 의식의 흐름이라는 제목답게 북유럽 겨울의 풍경화를 유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번 싱글 ‘Stream of consciousness’는 이전 발매작에서 동명의 타이틀 곡이 추가되었는데, 미니멀한 구성과 건조하고 깔끔한 사운드에서 스웨덴의 춥고 서늘한 계절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트랙 ‘Sad Makeup’은 첫 번째 트랙보다 농익은 사운드로 무르익은 해질녘의 풍경을 나른하게 칠한다. 그 후 해가 어둠에 완전히 잠식되어 서늘하고 고요한 설국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Winter Is Not Dead’의 인상적인 절제미, 서늘하고 어두운 정서가 절정에 이른 마지막 트랙 ‘Break Me Down’으로 막을 내린다. 트랙을 거듭할수록 점점 진해지는 사운드는 의식의 흐름 속으로 빠져드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을 능가하지 못한 실험의 폭은 아쉬웠다. 얇고 가벼운 Yukimi의 보컬톤과 대비되는 묵직하고 깊은 신스 사운드와 독특한 박자감이 인상적인 그룹인데, 이번 앨범에서는 후반부 트랙에 가서야 맛볼 수 있었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앨범 이름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기엔, 구성의 절제미 이외에 사운드에서 주제 의식은 선명하지 못했다. 기존 앨범에서 보였던 다채로운 층위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갑자기 일렬로 맞춘 듯 입체감이 없이 색채를 잃었다. 다채로운 신스 사운드의 시도가 이루어졌던 기존 스타일과 새로운 방향 사이, 그 어디쯤에서 애매하게 숨죽여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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