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RAGON, KIRARA, 김수영, AJ Tracey 외
635 : G-DRAGON이라는 아티스트가 한 문화의 그리고 시대의 아이콘이 되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동안 무차별적인 마녀사냥 속 인간 '권지용'은 방치되고 망가지고 있었나? 우리의 '기다림'은 그의 입장에선 '쉼'이었고 그 7년은 아티스트 지드래곤과 인간 권지용을 융화시키며 다시 무대로 오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길고 어두운 동굴에서 나와 그가 본인을 세기의 완성품이고 나는 나다워서 아름답다고 말하며 헤이터들을 비웃듯 풍자한 ‘PO₩ER’. 그리고 3명이 되었지만 여전히 옛 빅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HOME SWEET HOME’은 그리웠던 팬들에게 자신이 돌아왔다고 말함과 동시에 그가 가장 빛났고 어쩌면 그리웠을 무대로의 귀환을 표했다.
[Übermensch]의 음악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타이틀 ‘TOO BAD’는 드럼 진행이나 곡 구성은 좋았지만 Anderson .Paak의 강한 존재감에 본인이 가려진 게 아쉬웠다. 그다음 G-DRAGON 식 발라드인 ‘DRAMA’는 난해한 보컬 이펙터와 중간중간 중국어, 일본어가 감정선 이입을 흐린다. 이 외에도 무려 12년 전 [쿠데타(COUP D'ETAT)]에서 함께 했던 Boys Noize를 다시 끌어와 프로듀싱 받은 ‘IBELONGIIU’와 ‘TAKE ME’ 그리고 ‘GYRO-DROP’은 "익숙하다", "아는 맛이다"라는 말 뒤에 숨겨진 올드하다는 치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G-DRAGON은 선공개된 두 곡을 모두 차트 상단에 꽃아 버렸으며, G-DRAGON의 새로운 시도, 타이틀 ‘TOO BAD’ 또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GD라는 네임밸류와 향수에서 나오는 힘이 분명히 클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세 곡 모두 대중성을 갖추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으며, 특히 ‘TOO BAD’ 같은 경우에는 국내에서 쉽게 듣지 못했던 트렌디한 사운드를 이지리스닝 팝으로 풀어낸 것도 한몫할 것이다.
[Übermensch], 7년 만에 돌아온 그의 포부라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고 고통을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자가 되려 한다. 음악뿐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하더라도 항상 헤이터가 존재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니 결국 '하고 싶은' 음악만이 남았다. 이번 [Übermensch]에서는 앞서 말한 난해한 보컬 이펙터 범벅인 ‘DRAMA’가 대표적이다. 음악만으로 판단했을 때 의문이 든 사운드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내용이 너무 직설적인 나머지 가사를 외국어로 회유하고 듣기엔 난해하지만 이펙터까지 써가며 온전한 감정을 표했다. 이런 게 GD가 새롭게 만들 가치이지 않을까. 이렇게 [Übermensch]라는 포부를 던진 GD는 상업성에 치중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두 번째 챕터의 G-DRAGON을 보이지 않을까. 이것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그가 음악을 지속할 방법이라면 불평하지 않겠다.
쑴 : 음악은 정돈된 형태로만 존재해야 할까? 키라라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키라라]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그는 '산만한 사람이 음악을 하며 느끼는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트랙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보통 하나의 앨범이 흐름을 유지하려 한다면, [키라라]는 오히려 트랙 간의 온도 차를 극대화하며 의도적으로 혼란을 연출한다. 강렬한 신스와 묵직한 베이스가 중심을 이루지만, 재즈, 메탈, 트랩 등 다양한 요소를 흡수하며 다채롭게 전개된다. ‘음악’처럼 스캣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트랙이 있는가 하면, ‘조각’에서는 래퍼 스월비의 유려한 라임이 전자음악과 결합해 예상치 못한 리듬을 만든다. 사운드는 때때로 직선적으로 질주하고, 때때로 예측 불가능하게 흐트러지며, 때때로 긴장감을 극대화하다가 갑자기 풀어버리는 식으로 흘러간다. 장르적 일관성을 벗어던지고 오히려 산만함을 마음껏 드러낸 앨범, 이것이 이번 앨범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이 산만함은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라, 음악의 본질적 즐거움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키라라]는 더욱 특별한 작품이 된다. 예측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도 트랙마다 확고한 개성이 살아 있다. ‘격추’에서는 리드 신스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내고, ‘조각’에서는 리듬을 해체해 벌스만으로 진행되며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조감도’는 공간감을 강조하는 리버브와 서정적인 신스 패드가 어우러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증발’은 거친 디스토션을 활용해 감정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이렇게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트랙들이 하나의 앨범 안에서 공존하면서도, 제각기 독립적인 존재감을 갖는다. 이런 다양한 스타일은 키라라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음악을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뷰에서 "의식을 배제한 '멍청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앨범은 음악이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언인 듯하다.
단순한 사운드의 확장이 아닌, 키라라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기존의 전자음악적 접근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직관적인 멜로디와 구조를 사용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균형 있게 맞추려 한다. ‘조각’과 ‘조감도’를 상업적인 트랙으로 평가한 키라라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이번 앨범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방식은 단순한 대중성의 확보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풀어내면서도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않을까. 전자음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 그리고 음악을 특정한 형식에 가두지 않으려는 시도는 [키라라]를 더욱 유연하고 개방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키라라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음악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다시금 증명하며,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다졌다.
Noey : 김수영은 언제나 담담한 아티스트다. 과한 기교보다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전하는 그녀는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을 지향해 왔고, 이번 열한 번째 싱글 ‘미워했던 날도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억지로 감정을 돋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고, 그것을 노래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흔히 외면하려 하는 '미움'이라는 감정 또한 솔직하게 끌어안으며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는 곡의 사운드 구성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과하지 않은 풀 밴드 사운드가 중심을 잡아주며, 김수영 특유의 서정적인 보컬이 슬며시 감정선을 이끈다. 데뷔 후 처음 시도한다는 록 장르를 빌려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만 꾸밈없는 표현과 담담한 전달 방식은 그대로다. 감정의 파고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등장하는 등장하는 일렉 기타와 신시사이저의 솔로는 한층 더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 순간은 마치 우리가 각자의 상처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것만 같다.
함께 공개된 뮤직비디오 속 감성을 자극하는 시골 풍경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장면을 연상케 한다. 사계절이 담긴 소담한 배경은 언뜻 보면 소박해 보이지만,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을 맞이하는 순간처럼 따뜻한 위로와 그 단단함이 전해진다. <리틀 포레스트>가 직접 땀 흘리고 스스로 일상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위안을 찾는 이야기를 그렸듯, 해당 뮤직비디오도 결국은 따뜻하게 기억될 새로운 장면으로 이끈다. 김수영의 음악 역시 그렇다. 미움마저도 인정하며 품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그녀의 성숙한 음악적 태도가 엿보인다. 감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운드와 구성 면에서도 한층 정교해진 이번 싱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635 : 국내에서는 2022년 NSW yoon ‘Flip Flap’의 피처링으로도 모습을 보인 AJ Tracey는 영국 본토에서 UK 드릴, 개러지 그리고 그라임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특히 ‘Ladbroke Grove’와 Aitch와의 합작인 ‘Rain’으로 UK 싱글 차트 상단에 이름을 올리며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최근 발매한 ‘Crush’는 R&B 싱어송라이터 Jorja Smith와 함께하며 정 반대인 두 색깔의 조화에 도전을 보였다.
도전의 중심에는 너무나도 다른 두 색을 섞기 위한 타협안 중 '샘플 드릴'이라는 선택이 있었다. 빠른 BPM의 드릴과 그라임에 R&B를 녹이기 위해 비트에 멜로디컬함을 첨가하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샘플링 곡으로 가져온 Brandy의 ‘Love Wouldn't Count Me Out’은 2002년에 발매된 올드 IP의 R&B 곡이다. 원곡은 루즈한 템포의 정통 R&B 곡이지만 그 과정에서 칩멍크 스타일의 하이 피치 보컬 샘플링을 활용했다. 이로써 그라임의 속도감과 분위기 그리고 R&B의 멜로디컬을 모두 잡으며 두 색의 화합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냈다.
그라임, 드릴이라는 강한 사운드의 장르. 감미로운 보컬과 그루비함의 R&B였다. 이 둘의 조화가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못 한 터에 AJ Tracey와 Jorja Smith의 목소리로 이런 신선한 기획을 보여주었다. 2020년대에 들어서서 UK 드릴이라는 장르가 유행하고 국내 힙합 씬에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UK 드릴 씬이 급부상하고 필요 이상의 공격적인 사운드와 아티스트들의 태도가 이어지자 그 공격성을 회유하고자 하며 파생된 게 샘플 드릴이다. AJ Tracey도 기존의 UK 드릴과 그라임을 고수하던 아티스트이지만 이번 ‘Crush’로써 씬에서 UK 드릴과의 비중이 비슷하거나 혹은 더 커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더하여 이번 AJ Tracey와 Jorja Smith의 합작은 국내 씬에서도 R&B가 아닌 타 장르와의 시너지도 생각해 보게 할 만한 시작점이 될 것이다.
쑴 : Bren Joy의 [SUNSET BLACK]은 R&B를 중심으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 앨범이다. 컨트리풍의 색채, 네오소울 특유의 세련된 분위기, 트랩의 리듬감, 그리고 재즈적 요소까지. 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점에서는 흥미롭지만, 모든 요소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곡들은 각자의 색깔을 잘 살리고 있지만, 몇몇 트랙은 앨범 전체의 흐름에서 다소 따로 노는 느낌을 준다. 트랙별로 살펴보면 ‘COUTURE’는 리드미컬한 진행과 그루비한 멜로디, 세련된 프로덕션이 조화를 이루며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다. ‘WANDERING’은 가장 클래식한 매력을 가진 트랙 중 하나다. 과거 90~00년대 네오소울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부드러운 보컬과 재즈적인 전개가 떠오르지만, 동시에 현대적인 믹싱과 사운드 디자인으로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느낌을 유지한다. 반면, ‘BLUEJAY’, ‘NEVER WANNA LET YOU GO’와 같이 컨트리 스타일이 활용된 트랙은 전체적인 흐름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해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트랙 간의 완성도 편차도 아쉬움을 남긴다. ‘POLICEMAN’은 상대적으로 힘이 빠진 느낌을 주며, ‘SKIN’이나 ‘EL DORADO’ 같은 곡들도 각각의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앨범 전체적인 흐름에서 두드러지는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결국,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한 점은 신선하지만, 앨범 단위로 보면 균형이 아쉬운 것이다.
만약 이 앨범에서 몇몇 덜 인상적인 곡들을 덜어냈다면 어땠을까? 전체적인 응집력이 더 단단해지고, 좋은 곡들의 개성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지 않았을까. ‘COUTURE’, ‘BLOODONTHETIMBS’, ‘SHIVER’ 같은 곡들은 앨범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그렇지 않은 곡들은 다소 평범하게 흘러가며 전체적인 무게감을 떨어뜨린다. Bren Joy가 다양한 장르를 섞어가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음악을 시도한 점은 인상적이지만, 그 모든 요소가 하나로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다는 점에서 [SUNSET BLACK]은 풍성하면서도 동시에 방황하는 듯한 느낌을 남긴다. 조금 더 정제된 트랙 리스트로 구성했다면, 훨씬 더 강한 인상을 남기는 앨범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Noey : Nao 하면 대개는 독특한 보컬 톤과 가볍고도 몽환적인 R&B 스타일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디스코그래피 전반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둘러싼 감정과 삶의 변화를 음악 안에서 치열하게 풀어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데뷔작 [For All We Know]가 친구, 연인, 그리고 과거의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앨범이었다면, 2018년 [Saturn]에서는 육아와 건강문제 등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며 한층 무거운 감정을 담았다. 이후 오랜 휴식기를 거쳐, [Saturn]의 자매 앨범 격인 이번 [Jupiter]에 이르러서는 그 과정을 지나온 후에 얻은 긍정적 에너지를 드러낸다. 혹독했던 시간을 지나 마침내 빛을 마주한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이다.
총 11곡, 33분으로 구성된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성장', '희망'과 같은 핵심 메시지에 집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는 ‘Elevate’, ‘Happy People’, ‘We All Win’, ‘Better Days’, 등 트랙 제목만 봐도 앨범 전반에 흐르는 기쁨과 희망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데뷔 시절부터 구사해 온 이른바 '웡키 펑크(전자음악 기반의 몽환적인 사운드에 펑크, R&B를 혼합한 장르)'는 이제 사운드의 중심이 아닌, 과거 장치처럼 드문드문 스쳐갈 뿐이다. 대신 [Saturn]에서 드러난 묵직한 전자음악과 다소 어둡고 우울한 사운드를 덜어내고, 컨트리와 누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의 따뜻한 질감을 적극 수용하면서 훨씬 가볍고 편안해졌다. [Saturn]이 아픔을 마주하는 과정을 기록했다면 [Jupiter]는 그 과정을 극복한 뒤 맞이한 해방감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전의 어두움과 혼란스러움을 덜어내고 감정과 사운드 모두를 더욱 정제된 형태로 완성한 것이다.
결국 [Jupiter]는 힘든 시기를 딛고 성장한 예술가가 스스로를 가장 편안한 상태로 표현해 낸 정점임과 동시에 Nao가 걸어온 모든 음악적 여정의 결실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그동안의 궤적을 자연스레 이어가면서도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내면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선보인다. 음악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때로는 '그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던 그녀는 이제 빛을 향해 나아가는 듯하다.
※ '쑴', '635'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