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12 @앤스카페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작년 7월에 정규 1집 [코인런드리 밴드연습]을 발매한 싱어송라이터 ‘기쿠하시’다. [코인런드리 밴드연습]은 발매된 직후부터 뜨거운 여름 날씨에 잘 어울리는 특유의 음악적 분위기와 함께 통통 튀면서도 묵직한 일본의 인디 락 색이 짙게 느껴지는 앨범으로 김밥레코즈에서 초반 500장 완판을 달성하고, 제비다방, 아이다호 등의 주요 공연장에서 단독 공연을 올리는 등 많은 리스너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었다. 그 후로 8개월이 지난 2025년 3월, 사당의 한 카페에서 기쿠하시를 만나 이제는 밝힐 수 있는 앨범 작업 비하인드와 좋았던 순간, 아쉬운 순간들을 함께 되짚어 보았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기쿠하시의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미완의 스케치북’이라 말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어떤 뮤지션인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를 반복되는 시행착오와 고민 속에서 열성적으로 찾아 나가는 과정 속에 있었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다소 들뜬 모습으로 음악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조곤조곤 말하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에 그가 어떤 뮤지션으로 성장해 있을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이제 막 한 발을 내디딘 후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아티스트’로의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고 있는 기쿠하시의 이야기가 많은 청자들에게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작년에 정규 1집 [코인런드리 밴드연습]을 발매하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기쿠하시라고 합니다.
Q. 많이 대답하신 질문이겠지만 그래도 다들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기쿠하시라는 이름에 대해서 가볍게 설명해 준다면요?
A. “기쿠하시”는 원래 기타 치면서 혼자서 노래하는 영상들을 모아서 올리는 아카이브 채널명이었어요. 만들 때 이름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하다 그 당시에 읽었던 책 중에 인상 깊었던 책의 주인공 이름 ‘기쿠’와 ‘하시’를 따와서 이름을 짓게 됐어요. 언젠가 바꿔야지 했는데 아직도 쓰고 있네요.
Q. 사인에 해주시는 한자 旬의 의미도 궁금해요.
A. 일본어로 ‘슌’이라는 글자인데요. ‘가장 좋은 시기’라는 뜻이에요. 그 단어를 좋아하기도 하고 제 이름이 ‘한철’이거든요. 제 이름이랑 의미가 이어지는 것 같아서 싸인으로 쓰고 있어요.
Q. 왑띠 레이블 ‘6v6 Recordings’에도 소속돼 있으신데요. 합류 과정과,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A. 공연 ‘디지털 던(Digital Dawn)’이 끝나고, 원래 친분이 있던 Della Zyr (델라 지르)의 초대로 함께 애프터 파티에 참여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왑띠를 처음 봤죠. 진짜 아무것도 아닌 그냥 학생이었던 때라 본인은 기억 못 하겠지만. (웃음) 그때 정말 강렬하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몇 년 지나고 나중에 지인들끼리 모여서 밥 먹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자리에 있던 왑띠가 “레이블 놀이 하실래요?”하며 권유했어요. 레이블이라고 일단 이름은 지어놨지만 집에서 그냥 혼자 음악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음악을 추천하거나, 안부를 묻거나 하는 단톡방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렇게 들어가게 됐는데, 사실 ‘6v6 Recordings’ 소속 아티스트와 같이 작업을 하거나 자주 만날 정도로 뭔가를 하지는 않지만, 이 단톡방으로 이어져 있다는 은은한 친근감이 생기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Q. 최근 즐겨 듣고 있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A. 최근에 일본 밴드 중에 khaki라는 팀을 발견했는데, ‘Kajiura’라는 노래를 좋게 들었어요. 또, 원래도 YOGEE NEW WAVES를 엄청 좋아했는데 ‘아시안 팝 페스티벌’을 통해 내한한다고 들어서 최근에 다시 많이 듣고 있어요. 이 팀의 음악을 들으면 “나도 누군가에게 꿈을 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Q. 그러면 한국 음악 중에 요즘 듣고 있는 곡도 있을까요?
A. 조심스럽지만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어요. [Postrockgallery Compilation Vol. 2]에 ‘열대야’라는 곡으로 참여했을 때, 같은 ‘열대야’라는 곡명으로 참여한 분이 계세요. summer cold warning이라는 분인데, 현재는 음악을 안 하고 회사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블로그에 그분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음악 접고 살았는데 이렇게 알아주시는 분이 계시네요”라고 댓글을 달아주셔서 너무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이 분의 감성이 참 좋아요. 그래서 추천하고 싶습니다.
Q. 최근에 자주 보시는 라이브 영상 같은 거 하나 추천해 주세요.
A. Ohzora Kimishima라는 아티스트가 작년에 tiny desk concert JAPAN에 나왔거든요. 그 라이브 중 tsugou라는 노래의 라이브를 엄청나게 돌려보고 있어요. 특히 마지막 기타 솔로가 진짜 상쾌해요. 제가 아는 일본 인디 밴드 중에서 가장 연주력도 뛰어나고 재밌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나온 신보도 너무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Q. 앨범 얘기를 해볼까요? [코인런드리 밴드연습] 앨범이 다양한 시기에 작업한 트랙들을 모은 앨범이라고 다른 인터뷰에서 말하신 적이 있는데, ‘밴드연습’이라는 제목처럼 여러 가지 스타일들을 그냥 모아놓은 그런 앨범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A. ‘밴드연습’이라는 제목을 먼저 짓고 그에 맞춰 정리했다기보다는,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을 하나의 테마로 엮어서 스토리를 풀어나가고자 ‘밴드 연습’이라고 지었어요. 어딘가 서툴게 느껴지는 요소를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의도했던 것 같아요.
앨범에는 메시지가 추상적이고 감상위주의 노래부터, 내러티브를 따르는 노래도 있고, 라이브에서 즐기면서 뛰면서 들을 수 있는 더 빠른 템포의 노래도 있어요. 앨범을 위해서 다양한 모습을 연출했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가다 보니까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Q.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A. ‘푸른섬광’의 후주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장황한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거든요. 악기 소리가 엄청 많이 쌓이는 가운데 원이 팽창하다가 조금씩 찢어져서, 빛이 퍼져 나가는 이미지를 의도했었는데, 제 의도에 꽤나 부합하게 만들어진 것 같아서 만족스럽습니다.
Q. 음악을 만드실 때 정해진 순서가 있는지, 아니면 그때그때 좀 다른 지도 궁금해요.
A.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은 기타를 잡고 코드를 친 후 흥얼거리면서 멜로디를 올리고, 그 후에 가사를 쓴 뒤 편곡을 하는 이 순서인데, 가끔 순서가 뒤바뀌기도 해요. 왠지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는 좀 더 수월하게 작업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Q. 본 앨범에도 그렇게 만들어진 트랙이 있을까요?
A. ‘눈꺼풀’ 트랙이 그랬던 것 같아요.
Q. 1번 트랙 ‘코인런드리’와 2번 트랙 ‘물고기’는 하나로 이어지는 트랙이에요. 이 두 트랙에 대한 비하인드도 궁금해요.
A. 작년 킹 누 (King Gnu)의 내한 공연 때 통역 스태프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라이브를 보고 완전히 반하게 돼서 그 당시 최신 앨범이었던 4집에 푹 빠져 있었었는데, 그 앨범이 21 트랙이나 되는데 그중 곡과 곡을 이어주는 SE 곡들이 존재하거든요.. 곡과 곡 사이를 몰입을 해치지 않고 앨범을 쭉 이어가는 게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서 “나도 앨범 낸다고 하면 이런 걸 꼭 넣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도입된 트랙이 1번 트랙이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과감하고 멋있게 이어보고 싶었는데, ‘물고기’라는 원래 만들어져 있던 트랙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잇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 조건에서는 최선이었던 것 같고, 다음에도 이런 연출을 쓸 부분이 있으면 또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또, ‘푸른 섬광’과 ‘열대야’ 전후로 앨범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앞에서는 락스럽다가 ‘열대야’ 후에는 조금 더 차분해진 느낌이 드는데, 이런 부분도 앨범을 묶을 때 흐름을 생각해서 배치하신 걸까요?
A. 의도한 것이 맞아요. 첫 곡부터 천천히 고조가 되고, 그 후 한 여름의 무더운 더위를 나타내는 것처럼 ‘tremolo’, ‘POPEYE’, ‘푸른 섬광’으로 계속 고조되다가, 모든 걸 불태우고 나서 남아버린 재 같은 느낌으로 ‘열대야’가 나오고, 그다음 트랙부터는 쌀쌀하고 어두워진 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양한 분위기, 템포를 가진 트랙들을 어떻게 듣기 좋게 배치할까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 같아요.
Q. 앨범 전체적으로, 특히 전반부에 강한 슈게이즈 사운드가 인상적이었어요. 기쿠하시만의 레시피가 있을까요?
A. 레시피라고 하기는 민망하긴 한데, 곡을 만들 때 규칙 같은 게 있기는 했어요. “곡 만들 때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부분을 한 부분은 꼭 넣고 싶다.” 요즘 말로는 ‘킥’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곡마다 그런 부분들을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그런 부분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곡을 듣는 이유가 되는 것 같아요. ‘POPEYE’의 슈게이즈스러운 사운드는 신스의 LFO를 마구잡이로 변형하기도 했고, 잔향까지 완전히 뮤트 했다가 한 번에 노이즈를 빵 터뜨리는 식으로 놀라게 하고 싶은 의도를 담았어요.
Q. 가사에 대한 부분도 궁금해요. 가사나 제목 같은 것도 그때그때 다르게 정해질까요?
A. 맞아요. 앞서 말했듯이 제목을 가제로 대충 지어두고 곡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 싶을 때 가사를 쓰고, 마지막에 좀 더 가사에 어울리는 제목을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제목을 쓰는 경우도 있어요. ‘tremolo’는 그냥 ‘소금’이었고, 아직 습작 중인 어떤 곡은 ‘화난 키린지’에요. (웃음)
Q. ‘tremolo’는 소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A. 원래는 엄청나게 더운 어느 날 귀가를 했는데 검은 셔츠에 서려있던 소금을 보고 노래로 만들고 싶었는데요. 좀 비위생적으로 느껴지나 하는 걱정도 있었고, 제목이 곡 자체랑 잘 안 붙는 것 같아서 다른 이름을 고민했어요. ‘tremolo’라는 키워드는 기타 이펙터 소리에서 가져온 건데, 트레몰로를 걸면 소리가 나왔다가 끊겼다가 하면서 소리의 위상이 빠르게 반복돼요. 살아가면서 성장하고 싶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구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으며 도전하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 그런 양면적인 마음이 충돌하는 걸 표현한 제목이었어요.
Q. 말씀해 주신 ‘tremolo’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비유가 많이 들어간다고 느꼈거든요. 가사를 추상적이고 시적으로 쓰려고 의도를 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원래 스타일이 그러신 편인지도 궁금해요.
A. 가사를 적을 때는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쓰려고 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기 이야기를 집어넣을 공간이 부족해질 거라고 생각을 해서 의도해서 추상적으로 쓰는 편 같아요. 각자만의 해석이 들어갈 여지를 좀 주려고요.
Q. ‘POPEYE’라는 제목도 궁금해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더라고요.
A. ‘POPEYE’라는 잡지가 있어요. 원래는 그 잡지에 나오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저한테는 영웅 같은 사람들인데요, 그런 영웅 같은 사람도 어느 순간 빛이 바래 보이는 순간이 있잖아요? 문득 그런 영웅들이 사람들한테 사랑스럽게 건네는 말들이 진심이 아닌 그저 불량 식품으로 느껴질 때. 또, 그런 사람을 꿰뚫어 보는 양 그냥 구석에서 투덜대고 있는 못난 나... “결국 가장 바보 같은 건 진짜라는 것에 집착하는 내가 아닐까”라는 메시지가 있어요. 이런 자세한 해석은 처음 들려드리는 것 같네요.
Q. 그런 영감들은 그때그때 떠오르시나요? 어디서 받는지도 궁금합니다.
A. 평소에 메모를 자주 하는 편인데 가사로 정리할 때 그중 한 줄 툭 마음에 들게 써놓고 이야기를 확장시켜 가요. 또 제가 불만이 많은 편인데, 특히 음악 같은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기면 혼자서 엄청나게 투덜대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가사에서 밝은 이야기가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사실 하소연을 아름답게 표현하기 위해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POPEYE’처럼 존경하는 사람을 비꼬는 마음도 좋은 마음은 아닌 것 같아요.
Q. Fishmans와 Kinoko Teikoku와 같은 일본 밴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실제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히시기도 했는데, 어떤 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Fishmans는 스카 (ska) 리듬이라고 하는, 레게 리듬에 영향을 받았어요. 원래는 레게라는 장르가 되게 낙천적이고 마초적이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Fishmans의 음악에서는 이렇게 레게 리듬이 지속되고 있는데 아련하고 애틋하면서 또 연약하기도 한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레게가 이런 식으로 쓰일 수 있구나” 싶어서, 저도 시도해봤던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사용된 음악이 있는데 우효의 ‘울고있을레게’라는 노래예요. 이 곡도 레게인데 아련하고 슬퍼요. 제가 참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Kinoko Teikoku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얼터너티브 락을 너무 잘 달려온 밴드이기도 하고, 그 밴드 덕분에 저도 슈게이즈라는 장르에 입문할 수 있었어요.
Q. 스카 리듬은 열대야 같은 트랙을 생각하면 될까요?
A. 군데군데 많아요. ‘열대야’가 대표적이고, ‘밤의 피크닉’에도 있고요.
Q. 영향을 준 다른 아티스트도 있을까요?
A. 앨범 작업 후반부에는 Number Girl과 Hitsujibungaku, Cornelius, King Gnu, Sunset Rollercoaster 를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1인 밴드로서 모든 작업을 직접 해내야 하는 만큼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아요. 혼자서 음악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순간이나 특히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A. 작업을 할 때 제일 처음에 통기타를 그냥 딩가딩가 치면서 시작하는데, 솔직하게 그때 이후로는 다 힘들어요. (웃음) 전체적으로 곡에 대한 퀄리티, 방향성 같은 것도 혼자 생각을 해야 하고, 모든 악기들에 대한 디렉팅이나 믹싱, 마스터링, 또 라이브 때 멤버들 구하는 것도 또 고민해야 되고, 공연 멤버들끼리의 소통도 완벽하게 해야 되는데 그런 부분이 참 쉽지 않습니다.
음원을 내기 전까지는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이 없었거든요. 활동을 하기 시작하니까 이제 혼자로서는 좀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 같고, 그래서 음악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거나 힘을 줄 수 있는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요즘의 제 가장 큰 소망인 것 같아요.
Q. 그러면 다른 악기들도 다 직접 녹음하시는 건가요?
A. 네. 현악기의 경우는 직접 녹음하고, 그 외엔 미디프로그래밍으로 찍기도 하고, 악기로 구현하기 힘든 FX 같은 경우는 샘플 사운드를 이리저리 비틀어 사용하기도 합니다.
Q. 반대로, 그렇게 혼자서 해봤기에 느낄 수 있는 그런 뿌듯한 순간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첫 앨범이니 만큼 혼자서 결심을 했던 게 있어요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고 싶다.”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동원해서 만든 앨범이었고, 그럼에도 지금 들으면 아쉬운 부분이 많긴 하지만, 혼자서 해냈다는 뿌듯함 덕분에 좀 상쇄가 된 것 같아요.
Q. 어떤 부분이 아쉬웠을까요?
A. [코인런드리 밴드연습] 안의 음악들이 너무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보니까, 다소 난잡한 느낌도 있고, 지금도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혹은 새로운 곡을 만들 때마다 초기에 만들었던 곡의 퀄리티나 가사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앨범의 마스터링에는 khc가 참여했더라고요. 어떻게 연이 닿았는지 궁금해요
A. 믹싱까지 혼자 다 끝낸 상태에서, 갑자기 “내가 거의 다 만들어 놓은 음반의 마지막 포장은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khc님을 발견했는데, khc님도 곡 제작부터 엔지니어링까지 혼자 다 하시더라고요. 평소 khc님의 음악을 너무 재밌게 듣기도 했고, 그 당시 왠지 모를 신뢰감이 솟아올라서 조심스레 의뢰를 드렸는데 너무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지금도 정말 감사합니다.
또 새로 만들고 있는 음악 중에 통기타 사운드가 주가 되는 음악이 있는데, 그런 곡 같은 경우 프로듀싱을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직 khc님의 의사를 안 묻긴 했지만요 (웃음)
Q. 데뷔 앨범을 내고 8개월 정도가 지났는데요. 그때와 비교해서 개인적으로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A. 가끔 제가 공연 이외에 음반 매장이나 합주실 같은 음악적인 장소를 가면 알아보시는 분들이 조금이지만 생긴 것 같고, 공연장에서 혹은 메시지로 응원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감사드립니다. 그런 부분 이외에 생활적인 부분이나 작업 방식 같은 경우는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Q. 앨범 발매와 공연을 비롯해 작년에 꽤 많은 활동을 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A. 앨범을 발매하고 한 달 동안 공연을 준비해서 제비다방에서 음반을 팔고 공연을 했는데, 제비다방이 꽉 찬 거예요. 제비다방은 1층이랑 지하가 있는데 그 모든 공간이 빈 공간이 없었어요. 가져간 음반도 다 팔렸었고.. 너무 놀랐어요. 왜냐하면 발매 전에 제비다방에서 했을 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제 음악을 들으려고 이렇게까지 오는 게 말이 되나 싶은 의심이 들기도 했었어요.
공연 끝나고 팬분들과 만남이 있었는데, 그때도 밖에서 줄을 길게 서계셔서 1시간에서 1시간 반 동안 사인을 해드리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발매를 하고 좋게 들어주신 분들이 많이 늘었구나”라고 느꼈어요. 요즘에는 장소를 조금씩 넓혀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예정된 공연은 비교적 큰 규모에서, 티켓팅을 할 수 있는 공연일 것 같아요.
Q. 작년에 피지컬 앨범을 따로 판매하기도 하셨는데요.
A. 처음에 CD 500장을 찍으면서 “올해 (2024년) 안에 다 파는 게 꿈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보다 더 빨리 2달에서 3달 사이에 팔려나갔네요. 다시 찍어야 되는데 계속 찍을 타이밍을 보고 있어요. 찾아주시는 분들이 조금씩 늘고 있어서. 2025년 여름쯤에 재발매를 하거나 단독 공연을 열 때 앨범을 판매해서 많이들 방문해 주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활동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일까요?
A. 활동하면서 동료 아티스트들과 친분을 쌓는 기회가 너무 없었어요. 제가 말주변이 부족해서 회식자리 같은 것도 제의는 물론 참여한 적이 정말 적어요. 다른 팀들을 보면 합동 공연도 하고 콜라보 무대도 만들어 나가는 게 너무 멋있고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활동하면서 오고 가면서 아티스트분들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Q. 김반월키의 ‘단상’ 뮤직비디오 (이하 MV)에 출연하셨었어요. 저번에 김반월키님 인터뷰 때도 질문했었는데, 김반월키님은 “친분이 있던 건 아니고, 단순한 지인의 동생이라 출연하게 됐다”라고 하셔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기쿠하시님한테도 당시 비하인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A. 감독님이 원래 사진을 찍는 분이세요.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MV를 찍는데 혹시 출연해 주실 수 있냐”라고 연락이 오길래 사는 지역도 가깝고, 저한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너무 좋죠”라고 흔쾌히 응했어요. 그때는 사실 김반월키님의 음악인지도 몰랐어요.
비하인드라면 촬영이 굉장히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준비해 갈 게 있냐고 여쭤보니, 그냥 나와서 걸으면 된다고 하셔서… 꽤 추운 날에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던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제 집에 캠코더가 있는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가지고 그거 들고 가서 “이걸로도 찍어볼까요” 했는데 또 즉흥적으로 수락해 주시고, MV에도 그 장면을 써주셔서 뿌듯했습니다. 나중에 뮤비가 완성된 것을 보고 아름다운 음악에 너무 잘 어울리는 MV가 만들어진 것 같아서 영광이라고 느꼈어요.
Q. 인기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꽤나 인정받는 것 같아요. 포스트락 갤러리 (이하 포락갤)에서도 2024 올해의 앨범 결산에서 8위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A. 처음에 앨범을 준비할 때 이건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자만심 같은 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다”라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냐면 제가 어필할 수 있는 타겟이 넓을 수 있겠다 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공연장에 오시는 분들도 음악을 깊고 다양하게 듣는 분들부터 일상적으로 가볍게 음악을 즐겨 들으시는 분들까지 관객층들이 되게 다양하다고 느껴요.
Q. 처음부터 그 포지셔닝을 그런 쪽으로 생각하신 걸까요?
A. 지금의 저로서는 아방가르드 하고 전위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를 긁어대면서 기타를 부수는 거친 락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힙합이나 케이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하면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게 어떻게 보면 각자의 역할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요.
고민이 있다면 음악을 깊게 파면서 감상하시는 분들한테는 아무래도 제 음악이 가볍게 들릴 수는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점에서 그런 분들까지 설득해 볼 수 있는 더 깊이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Q. [Postrockgallery Compilation Vol. 2]에 ‘열대야’를 기고한 것이 음악 활동의 시작이셨어요. 음악 커뮤니티를 통해 데뷔한 만큼, 음악 커뮤니티에 대한 생각도 남다를 것 같은데, 현재 인디 씬에서 음악 커뮤니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A. 컴필레이션 앨범은 내가 만든 음악을 한 사람이라도 더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실제로 왑띠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이 앨범을 통해 음악을 들어주셨고 저의 존재를 알아주시기도 했었죠.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몇몇 아티스트를 제외하면 국내보단 해외 아티스트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아요. 현재 국내 인디밴드를 중점적으로 얘기하는 커뮤니티는 딱히 없는 것 같네요. 인스타그램 매거진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커뮤니티는 모두가 평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개념이 조금 다르니까요. 제가 학생 때는 싸이월드 클럽이나 인디밴드 갤러리 같은 곳에서 소통을 나누기도 했었는데 왜 다들 사라진 걸까요? 국내 인디 씬을 전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건전한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Q.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올까요? 살짝 스포일러가 가능할까요?
A. 올해는 싱글을 몇 곡 발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 앨범의 이른 길잡이 같은 느낌이랄까요. 마침 유통사에서도 봄에 한 곡 내보는 거 어떠냐고 제안을 주셔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쉽지가 않은 것이,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은데, 이전과 작업방식이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아서...(웃음) 여러 고민이 있지만 일단 올해는 데모를 쌓아두고, 싱글을 꾸준히 발매해서 내년에는 정규앨범까지 내는 방향으로 진행해보려 해요
Q. 현재 작업 중인 음악들은 어떤 부분에서 이전과 차이점을 만들고자 하시나요?
A. 좀 더 텁텁하고 씁쓸한 느낌을 주고 싶어요. 지금까지 낸 곡들을 듣다 보면 달콤하고 단정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다음에는 마냥 예쁘지 않은 모습도 보여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1집에서의 색깔을 보존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Q. 그렇다면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A. 이전과 다르게 최근에 작업하는 곡들은 대부분 밴드 공연을 염두에 두고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이 곡들을 라이브에서 더 신나게 편곡을 한다거나, 야외무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같이 뛰놀고 호흡을 주고받을 수 있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는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상황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Q. 그렇게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도 남아 있을 기쿠하시 음악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제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기쿠하시 음악의 핵심은… 투덜거림? 정하기가 너무 힘든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Q. 가사가 구체적이거나 친절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데, 오히려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잔상이 여운을 남기는 느낌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A. ‘친근한 불친절함’인 걸까요?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그 의도를 완전히 파악하기 쉽지 않은, 그런 모습은 계속 유지하지 않을까 싶어요.
Q. 그렇다면 스스로 “이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A. 지금 상황에서는 2집이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습니다.(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A. 일단 4,5월에 클럽 공연이 예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밴드 합주도 다시 하고 있고, 아까 말씀드린 싱글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될 것 같아요. 또, 단독 공연도 앞두고 있어요. 아마 6월이랑 8월에 할 것 같은데 많이 찾아와 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 드려요.
A.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항상 큰 감사드리고 날이 따뜻해지면 공연도 열심히 하고, 조금씩 새로운 모습 계속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By 베실베실
by. 루영
by. 르망
by. 미온
by. 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