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ITE, 카이, Ken Carson, Zara Larsson
르망 : pop은 시대를 막론하고 장르 음악과의 연관성이 필수적이다. 최근 K-pop도 고전적인 장르를 가져와 현대적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단, 이런 고전적인 장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장르적 문법을 지킴과 동시에 대체할 수 있는 요소의 현대화가 필요한 점이다. 고전적 장르가 가지고 있는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오면 그냥 옛날 음악일 뿐이고, 그렇다고 문법을 무시하면 사실 그 장르에서 오는 이점이 사라진다. 리듬, 사운드 샘플 등 특정 장르에서 필수적인 요소를 지키되 현대적인 악기를 도입함으로써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트렌드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YOUNITE(이하 유나이트)의 ep [YOUNI-T]의 타이틀곡 ‘Rock Steady’에서 재해석한 뉴잭스윙은 장르의 문법을 애매하게 지킨 것이 문제였다. 뉴잭스윙에서 필수적인 요소에는 90년대 특유의 드럼 샘플, Orchestra Hit 등이 있다. 이 둘을 활용하여 뉴잭스윙의 현대적 재해석에 성공한 곡은 뉴진스의 ‘Supernatural’이 대표적이다. 이 곡에서는 두 요소가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Orchestra Hit을 여타 뉴잭스윙과는 다르게 드럼 필인처럼 활용하여 그 곡만의 재미를 챙겼다. 이런 방식으로 '과거의 음악'을 복각하면서 마냥 올드하지 않고 세련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만, 유나이트의 ‘Rock Steady’에서는 레트로한 드럼 샘플만을 활용하고, Orchestra Hit은 사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드럼 샘플이 다른 사운드들의 질감이 너무 현대적으로 표현되어 부조화를 이루면서 애매한 뉴잭스윙이 되어버렸다.
앨범 소개에는 이번 ep [YOUNI-T]는 유나이트의 미래를 향한 도약 지점이라고 한다. 분명, 앨범 소개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그런데 타이틀곡은 또 유나이트가 일전에 누디스코나 올드스쿨 음악을 재해석했던 것처럼 '뉴트로' 그 자체이다. 그나마 수록곡들이 뉴트로에서 벗어난 장르들이긴 하다. 1, 3번 트랙들은 딥 하우스와 트랩소울을 활용했고 유닛으로 나온 트랙 중 4번 트랙은 레이지를 활용하며 미래를 향한 도약을 노리는 유나이트에겐 너무나 좋은 시도였다. 그런데 타이틀곡이 뉴트로면 무슨 소용인가. 앨범 소개에 적혀있던 대로 새로운 컨셉으로 도약하고 싶었다면, 최소한 '뉴잭스윙'이라는 옛 장르를 배제하거나 현대적 해석에 성공해야 했으나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시도가 되어버렸다.
유진 : 제대 후 처음 선보이는 카이의 미니앨범은 아프로비츠를 내세웠다. 나른하고 섹시한 바이브가 개성인 카이에게 아프로비츠는 잘 어울리는 장르 선택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작 ‘Rover’가 카이의 퍼포먼스 능력은 강조하고 보컬적 약점은 완화시키며 컨셉추얼한 모습으로 임팩트를 준 것을 생각했을 때, [Wait On Me]는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한 결과물을 남겼다.
타이틀곡 ‘Wait On Me’는 잘 골라진 타악기 소스와 몽환적인 신스 사운드로 아프로비츠 특유의 무드를 살렸다. 특히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신스 스트링이 곡에 한층 깊이 있게 빠져들게 한다. "서두를 필요 없다"는 가사와 나른한 카이의 보컬이 이국적인 리듬 위로 잘 매칭되어 몰입감이 좋았다. 풍성한 트랙 구성과 일렁이는 리듬, 그리고 타이트하게 짜여진 탑라인 덕분에, 댄서 포지션의 카이에게 종종 따라붙던 보컬적 우려는 눈에 띄지 않았다. ‘Walls Don't Talk’까지는 빠른 템포와 생동감이 느껴지는 레게톤으로 이어지며 흐름을 자연스럽게 끌고 갔다. 하지만 이후 ‘Pressure’부터 ‘Off and Away’에 이르기까지, 템포가 늦춰지고 몽글한 질감이 지속되면서 카이의 보컬적 한계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선공개곡 ‘Adult Swim’에서는 그 맹숭한 느낌이 지속되며 앨범의 에너지를 뚝 떨어뜨린다. 마지막 트랙 ‘Flight to Paris’는 저지 클럽 비트로 변주를 시도했지만, 휴지가 많은 탑라인과 몽환적인 사운드를 지속시켜 대미를 장식하는 힘을 잃고 말았다. 카이의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미니멀한 구성과 느릿한 템포 대신 풍성한 사운드, 리드미컬한 비트 위주의 곡을 배치했어야 했다.
물론 아프로비츠, 아마피아노, 레게톤 등 아프리칸과 라틴 리듬을 자유롭게 오가며 일관된 무드로 앨범을 구성한 점은 좋았다. 그리고 이러한 이국적인 장르들은 카이 특유의 나른한 섹시미와도 잘 어우러졌다. 다만, 아티스트의 역량과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를 내기 위한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점이 아쉽다. 결국 [Wait On Me]는 공허한 트랙과 힘 빠진 탑라인 사이에서 카이의 약점을 감추거나 강점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댄서로서도 확실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한 앨범이 되어버렸다.
르망 : Playboi Carti가 설립한 레이블 Opium의 대표 아티스트 Ken Carson은 전작 [A Great Chaos]에서 큰 성공을 일구었다. 다만, 그 아성을 잇기엔 이번 앨범 [More Chaos]는 졸작이었다. 절크라는 장르를 레이지와 합치는 방법론이 전작보다 더 두드러졌다. 레이지는 리드 신디사이저를 메인으로 활용하지만 절크는 과하게 디스토션된 베이스를 메인으로 활용한다. 베이스를 과도하게 뭉개고 키우는 절크의 특성상 마스터링 문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트랙 간의 볼륨 차이가 들쑥날쑥하다. 9번 트랙을 기준으로 후반부의 음량이 전반부에 비해 작다. 또 22곡, 61분의 러닝타임동안 똑같은 플로우와 가사 내용이 반복되면서 듣기 지루한 것도 또한 문제점이었다.
같은 Opium 사단에서 한 달 전에 나온 Playboi Carti의 [MUSIC]과도 비교를 해보자. 분명 두 앨범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MUSIC]은 과거 아틀란타 사운드로의 회귀를 향했고 [More Chaos]는 레이지를 뛰어넘어 언더 힙합씬에 유행하는 절크를 시도했다. 가사의 밀도는 Carti보다 Carson이 더 높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성이 부족했다. 적어도 Carti의 가사는 의미 없을지언정 독특한 추임새와 요상한 플로우로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A Great Chaos]는 사운드의 과도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MUSIC]이 만들어낸 대중적인 성공과는 너무 멀었다.
Opium 사단의 잇따른 두 앨범 [MUSIC]과 [More Chaos]는 레이지라는 장르의 한계를 보인 음반들이다. [MUSIC]은 레이지가 수록되어 있으나 메인인 앨범은 아니었고, [More Chaos]는 레이지가 더욱 딥해진 앨범이었다. 즉, 레이지라는 장르를 위해서는 [More Chaos]의 성공이 필수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More Chaos]는 빌보드 차트인도 못했고 대중적인 평도 좋지 못하다. 레이지 씬의 몰락이 정말 눈앞으로 다가온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극도로 자극적인 음악이다 보니 오랜 시간 유행을 하기 어려운 장르였다. Ken Carson이 레이지 씬을 위해서, 그리고 본인을 위해서 전작과 같은 혁명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유진 : 00년대를 연상시키는 댄스 사운드와 함께 진흙밭에서 치어리딩을 펼치는 자라 라슨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보컬리스트로서의 강점과 무난한 대중성을 앞세운 팝으로 인기를 끌었던 과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신선하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번 싱글에서 그녀는 여성들에게 내면화되어 온 '착한 여자' 규범을 깨부수고 반항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과거의 자신을 파헤치고, 스스로에게 부여된 틀을 무너뜨리기 위한 일종의 해방 선언이자 변신 시도이다.
음악 또한 이 메시지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치어리더의 구호를 연상시키는 챈팅으로 포문을 열고, 거칠고 날것의 신스 사운드를 덧입혀 00년대 초반 댄스 팝을 복각했다. 프리코러스에서는 90년대 하우스 스타일의 피아노 리프가 비트를 전환하며 빌드업을 이끈다. EDM과 친숙한 그녀의 음악적 색깔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반적으로 공간감이 큰 킥과 지저분한 신스가 충돌하며, 쿵쾅대는 리듬과 지속적인 챈팅으로 사운드 임팩트 하나는 크게 남겼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진흙탕 댄스로 정점을 찍으며, 00년대식 더티하고 섹시한 팝스타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소환한 점은 의도적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러한 변신이 자라 라슨 본연의 매력과는 어딘가 어긋난 듯한 불편함도 남긴다. 풍성한 성량과 파워풀한 가창력이라는 그녀의 강점을 부각하기보다는, 계속해서 남발하는 외설적인 가사로 센 척을 한다는 감상밖에 남지 않아 오히려 진정성을 희석시켰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반항적이고 거친 이미지를 강조하려 한 의도는 이해하지만, 절제 없는 연출과 표현은 세련미를 떨어뜨렸다. 무엇보다 '착한 여자'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그녀의 엄중한 메시지도, 과연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방식 외에는 풀어낼 길이 없었을까 싶다. 보다 고상하면서도 반전적이거나 날카롭게 풍자하는 방법은 없었을까란 의문과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말 그대로 제목 ‘Pretty Ugly’에 너무 충실한 싱글이었다.
※ '르망', '유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