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EZE, DAY6, FRankly, Mei Semones 외
샤베트 : 구름과 함께했던 2015년 이후 10년 만에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지만, 치즈(CHEEZE)라는 아티스트의 매력도, 그간의 세월에 대한 깊이감도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부드러운 무드에 대충 어울릴만한 뻔한 멜로디 조합과 방금 막 붙인 것 같은 평범한 가사에서 아티스트로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라든가, 내면의 고통 속으로 끝없이 파고든 고행이 담긴 주제 의식이라든가 하는 고뇌의 흔적 따위는 찾기 어려웠다. 마치 '여름이었다'만 붙이면 그럴싸한 감성 문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그냥 그렇게 됐다'는 애매모호한 문구를 무기 삼아 시기상 때맞춰 정규 앨범으로 끼워 넣은 것이 아닐까 심히 의심스럽다.
앨범의 형식이 지닌 무게와 달리 타이틀곡 ‘그렇게 됐어’는 데이식스 영케이라는 체급에 기댄, 그것만이 전부인 듀엣이었다. 적당히 로파이한 보사노바를 그저 차용한 듯한 사운드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BGM이나 예능 프로그램 장면에 삽입되는 배경음악으로 들을 법한, 지나치게 무난한 소극적인 트랙이다. 더구나 ‘작전명 하이볼!’, ‘눈으로만 보세요’와 같은 트랙은 이미 10년도 훨씬 지난 악뮤의 ‘후라이의 꿈’이나 이 분야 대표 주자인 제이레빗의 답습 수준에 머무르며, 깜찍하고 재치 넘치는 키치함보다는 철 지난 오글거림만 느껴졌다.
가장 아쉬운 점은 치즈의 최대 매력이자 정체성인 간질거리는 보컬마저 가려졌다는 점이다. 기본 샘플을 단순히 이어 붙인 것처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사운드 위에서 치즈 특유의 싱그럽고 통통 튀는 보컬의 풍미는 납작해졌다. 잔잔한 일렉 기타에 웅웅 울리는 보컬과 허밍으로 채운 ‘Breeze’, 장난감 소리 같은 신스 패턴으로 때운 느낌이 강했던 마지막 트랙 ‘RingRing’까지, 아무런 감흥도 자아내지 못했다. 소박한 감성이라고 포장하기에는 '정규'라는 이름과 '1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너무나 무색한 앨범이었다.
아인 : DAY6(데이식스)는 또다시 위로를 노래한다. 차분한 미드템포, 예측 가능한 코드 진행, 익숙한 보컬 하모니는 밴드 특유의 안정된 감성을 만들어낸다. 통통 튀는 기타 리프, 공간감을 살린 신스 패드, 정돈된 드럼 비트까지 모든 요소가 '잘 만든 밴드 팝'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런데 왜 그만큼의 감정적 진폭은 없는 걸까. 감성은 살아 있지만, 노래는 여전히 과거 DAY6(데이식스)가 반복해 온 이야기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그 연장선이 이제는 너무 길어졌다는 점이다.
한때 ‘예뻤어’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같은 곡에서 보여준 날것의 감정과 예측 불가능한 감성의 반짝임은 더 이상 감지되지 않는다. ‘Maybe Tomorrow’는 잘 정제된 문장을 조심스럽게 다시 읊는 듯하다. 물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야"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 말이 더는 가슴 깊이 와닿지 않는다면, 문제는 문장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는 방식일 것이다. 멜로디는 낭만적이고 편곡은 견고하지만, 감정의 깊이나 서사의 흐름은 안전한 범위를 넘지 못해 결국 밋밋하게 들린다. DAY6(데이식스)는 어느새 정제된 어법과 익숙한 구성에 안착해 버렸고, 그 결과는 새로운 울림이 없는 노래만 남았다.
지금의 밴드 신은 장르의 틀을 허물고, 감정을 해체하며, 새로운 언어로 감각을 재조립하는 흐름에 있다. 그런 가운데 역주행이라는 극적인 서사를 다시 쓴 DAY6(데이식스)가 이제 보여줘야 할 것은 단순한 진정성의 반복이 아니다. 감정을 전하는 방식의 혁신이 필요하다. ‘Maybe Tomorrow’는 변화와 일관성 사이에서 맴도는, 그 어느 쪽도 과감히 딛지 못한 곡이다.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방식의 위로는 마음 깊이 침투하지 못한다. 이제 DAY6(데이식스)에게 중요한 건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떻게 낯설고 새롭게 들려줄 것인가이다. 감정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을 다시 꺼내는 방식에 대한 상상력과 용기다.
Noey : '아침'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분주함과는 달리, FRankly(이하 프랭클리)의 ‘Morning’은 나른한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한다. 중음역대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기타 리프와 은은히 얹힌 스트링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배경에 자리 잡아 단단하게 받쳐주는 역할에 가깝다. 이처럼 어떤 기교나 화려한 편곡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구성, 그리고 그 위에 놓인 순수한 문장들은 이들이 왜 'Frankly(솔직히)'라는 이름을 택했는지 짐작케 함과 동시에 이 '솔직함'이 얼마나 희소한 무기가 될지 의문을 남긴다.
현재 국내 음악 시장에서 밴드의 파이가 과거보다 커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소년, 잔나비, wave to earth와 같이 각자의 색으로 진입장벽을 낮춘 팀들이 메인스트림과 인디의 경계를 허물고 있지만, 그 속에서 프랭클리가 내세우는 솔직함과 담백함은 오히려 너무 많은 이들이 앞서 선택한 전략이 되어버렸다. ‘Morning’은 잘 정리된 결과물일지 몰라도, 앞으로 어떤 색을 입혀갈지, 어떻게 자신만의 감도를 쌓아갈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이들의 정체성과도 같은 솔직함을 내세우면서도 그걸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하느냐가 프랭클리의 다음을 결정짓게 되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 곡 역시 많은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를 스쳐 지나가는 그저 '좋은 노래 하나'로 남게 될지도 모르겠다.
샤베트 : 지금까지의 모든 싱글과 EP와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직접 작업한 앨범 아트워크, 그리고 삶, 가족, 기타에 대한 애정 어린 이야기를 담아낸 Mei Semones(이하 '세모네스')의 첫 정규 앨범은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동시에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은 박자의 파괴에서 비롯되는 쾌감과 자유로움이다. 전형적인 보사노바는 어쿠스틱 기타가 일정하게 4박을 짚어 잔잔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든다면, 세모네스의 보사노바는 삼바, 인디 록, 챔버 팝 등의 장르를 섞어, 박자를 쪼개고 합치며 곡의 에너지를 다이내믹하게 밀고 당긴다. 보사노바이지만 록적인 에너지와 재즈의 아날로그 감성을 넘나드는 전개는 곡에 독특한 여백을 만들어내어, 리스너들에게 좀 더 집요하고 섬세한 몰입의 여지를 제공한다.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를 통해 트랙을 거듭할수록 섬세하게 깊어지지만, 앨범 전체는 유기적으로 얽힌다. 예를 들어, ‘Dumb Feeling’과 ‘Dangomushi’처럼 초반부 트랙의 가벼운 보사노바, 챔버 팝에서 중반부로 갈수록 악기 톤은 점점 깊어지는데, 그 가운데서도 진한 결감이 생생하게 들리는 스트링과 어쿠스틱 기타의 아날로그한 텍스쳐가 고르게 묻어 있다. 모험하듯 사운드가 역동적으로 휘몰아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나른함으로 귀결되며 어딘가 항상 한 발짝 물러서는 듯한 절제된 정서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렇게 복잡한 구성 속에서도 탑라인은 가장 또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오히려 미니멀한 인상을 준다. 세모네스의 차분하고 부드러운 보컬은 불규칙하고 극적인 사운드의 향연 속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힘을 발휘하고, 멜로디와 반주의 적절한 파트 분배 속에서 탑라인은 더욱 부각된다. 다양한 트랜지션의 연속에도 과하지 않은 깔끔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보사노바의 여유로움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사랑을 노래한 그녀의 첫 정규 앨범은 너무 경쾌하지도, 슬픔에 갇혀 늘어지기만 하지도 않은, 한낮의 햇살을 즐기는 나른한 고양이 같다.
Noey : 프랑스 향수 브랜드 세르주루텐의 동명 향수에서 차용한 앨범명은 실제 향수처럼 트랙 곳곳에 형태 없는 잔향을 남긴다. Jenny Hval은 조향사가 되어 기억을 엮어내, 이를 낯설고 새로운 사운드로 풀어낸다. 타이틀곡 ‘To be a rose’는 불안정한 브라스, 드럼 비트, 신스가 단순하고도 강렬한 조화를 이루는가 하면, ‘The artist is absent’에서는 펑크(funk) 브레이크와 댄서블한 사운드로 그녀만의 새로운 문법이 펼쳐진다. 그 사이사이 흘러드는 ‘Spirit mist’의 숨소리와 자갈길, 오래된 TV쇼의 효과음, ‘You died’에 삽입된 게임 소리와 지퍼, 새소리 등은 기이하고, 약간은 음산한 분위기를 남긴다.
그녀의 전작들은 '아트 팝'이라는 이름 아래 인더스트리얼, 노이즈, 트랜스 등 다양한 사운드를 풀어냈으며, 그 속엔 주로 신체성, 여성성, 종교적 기호, 혹은 정체성과 같은 사변적이고도 무거운 주제를 담았다. 흔히 실험적인 음악은 아티스트 본인 스타일을 반복하다 자기 복제에 빠지기 쉬운데, Jenny Hval은 그 틀을 끊임없이 벗어나며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한다. 이번 앨범에서는 그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Innocence Is Kinky]의 성적 유희, [Blood Bitch]의 뱀파이어 혈처럼 육체적이고 촉각적인 소재가 중심이던 과거와는 달리, '향'이라는 감각이 또 다른 언어가 되어 서사를 이끌고, 악기보다는 분위기 위주로 곡을 구성해 한층 더 느슨하고 유기적으로 흐르게 한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나 명확한 테마를 기대한다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몰입해 듣다 보면 그만큼의 보상을 돌려주는 [Iris Silver Mist]는 마냥 독특하거나 난해한 음악으로만 소비되기를 거부한다. 주류 음악에 스스로의 자리를 차지해 가면서도, 자신만의 방식과 감각은 조금도 훼손하지 않았다. '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기억을 건드리는 감각이듯, 해당 앨범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쉽게 풍화되지 않을 음악이다.
아인 : Vaundy는 늘 먼저 묻는 아티스트였다. "왜 이 사운드를 택했는가", "왜 이 리듬과 이 말투여야 했는가" 그의 음악은 청자보다 앞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태도에서 출발해 왔다. ‘napori’의 집요한 반복, ‘Fukakouryoku’의 되묻는 서사처럼, 그의 물음표는 언제나 우리에게 느낌표로 다가왔다. 신곡 ‘How do I know’는 록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채, 넓은 스케일과 철학적인 메시지로 Vaundy 특유의 색을 펼치려 한다. 하지만 곡이 내뿜는 추진력은 이미 익숙하다. 질주하는 기타 리프, 다층적인 코러스, 신시사이저가 만들어내는 공간감은 정교하지만, 더는 낯설지 않다. 새로움보다는 완성도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곡이다. 익숙하게 잘 만든 것, 그러나 그것이 Vaundy가 가장 잘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번 곡이 짚어낸 정조는 이전과 결이 다르다. ‘Tokyo Flash’가 도시의 밤을 스냅샷처럼 포착했고, ‘Odoriko’가 실연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꿰뚫었다면, ‘How do I know’는 질문을 던지는 대신 보편성에 머문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가사 위로 스트링이 켜켜이 쌓이며 고조되는 구성은 의도는 분명하되 감흥은 평이하다. 그 안에서 Vaundy 특유의 감각적 전환, 예측 불가능한 전개, 낯선 언어의 파편들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다. 울림은 익숙하고, 여운은 짧다.
결과적으로 이번 신보는 느낌표로 남지 않는다. Vaundy의 음악적 확장 가능성에 물음표가 붙는 트랙이다. 특히 드라마의 주제곡이라는 맥락은 곡의 실험성을 일정 부분 제한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스케일이 큰 드라마였던 만큼, 아티스트에게도 그만큼 더 넓은 표현의 자유가 주어졌다면 Vaundy의 돌파력이 발휘됐을지도 모른다. 매번 새로운 감각으로 J-pop을 넘나들던 그가, 이번에는 스스로를 가두고 무난함에 머물렀다. 묻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그가 다음엔 다시 한번 답을 비틀어 던지는 곡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 'Noey', '샤베트', '아인'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