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NEXTDOOR, MEOVV, 스카이민혁, Kali Uchis 외
르망 : 평소의 보이넥스트도어(이하 보넥도)는 팀 이름처럼 '옆집 소년들'이 느껴지는 친근하고 청량한 음악들을 주로 해왔다. ep 4집 [No Genre]의 타이틀곡 ‘I Feel Good’은 보넥도의 최근 컨셉과는 다르게 강렬하다. 강렬한 게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강렬함에 'Zico 향 첨가'가 너무 과했다는 것이다. 이전 보넥도의 친근한 모습과는 괴리감이 있는 강렬하며 리드미컬한 로큰롤 사운드. ‘I Feel Good’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코러스 파트의 목소리를 까뒤집는 톤. 이런 요소들이 10년 전 블락비의 ‘Her’와 유사한 느낌을 내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Zico의 프로듀싱이 오히려 보넥도를 블락비 하위 호환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오히려 타이틀을 제외한 수록곡들은 나쁘지 않다. 60년대 팝소울을 풀어낸 ‘123-78’이라든지, 시티팝 한 스푼 넣은 ‘Step By Step’ 등 수록곡들은 기존 보넥도의 색깔인 '옆집 소년의 친근함'과 '이지리스닝'을 잘 녹여내고 있다. 1번 트랙 ‘123-78’은 몇 음원 사이트에서 타이틀곡보다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이 현상은 많은 리스너들이 타이틀 ‘I Feel Good’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6번 트랙이자 디지털 싱글이었던 ‘오늘만 I LOVE YOU’가 보넥도의 기존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충분한 대중성을 가진 타이틀 감이었다.
데뷔서부터 "총괄 프로듀서가 Zico래~"를 통해 꽤 주목받았던 보넥도. 하지만 유명 아티스트가 프로듀싱을 한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블락비에서도 'Zico의 그룹'이라는 꼬리표가 그들의 문제가 되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를 Zico 본인도 인식하고 있는 듯, 최근 보넥도에게서는 Zico의 느낌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보넥도만의 정체성을 구축해 가고 있었고 충분히 성공적이었으나, 그런 결에서 이번 ep [No Genre]에서 타이틀곡 선정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No Genre'라는 말을 쓴 건 알겠지만, 그 점이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버렸다. 성적이야 당연히 잘 나오겠지만은, 앞으로의 보넥도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Zico'의 향이 적은 음악들이 필요하다.
JEN : 선공개 곡 ‘HANDS UP’은 브라질리언 펑크 특유의 현란한 리듬과 탄력적인 비트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블랙핑크나 베이비몬스터 등 YG 계열 댄스곡에 자주 나오는 전형적 프리코러스-댄스브레이크 구성에 기대며, 미야오만의 음악적 색깔을 구축하지는 못한다. 이어지는 타이틀 ‘DROP TOP’은 익숙한 테디식 신스 사운드를 바탕으로 불안함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내세우지만, '신비주의'를 고수해 오며 뚜렷한 서사를 쌓지 못한 그들이 부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도시적이고 무게감 있던 기존 브랜딩과도 결이 어긋나며, 메시지와 아이덴티티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앨범 구성 방식에서도 기시감은 이어진다. 파워풀한 곡과 잔잔한 곡을 번갈아 발매하는 구성 또한 오랜 기간 YG 소속 아티스트들의 앨범에서 반복되어 온 전개 방식이며, 지난 11월 공개된 ‘TOXIC’와 ‘BODY’,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 ‘HANDS UP’과 ‘DROP TOP’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유일한 수록곡인 ‘LIT RIGHT NOW’마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채 흐릿하게 지나간다. 결국 이번 앨범은 미야오의 정체성과 아티스트로서의 방향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각 곡이 분절된 채 흩어지는 인상을 남겼다.
다만 과거에 비해 곡의 짜임새가 정교해지고 보컬적 역량을 부각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음색과 후킹함을 강조하던 초기와 달리, 다양해진 보컬 테크닉 및 표현력을 통해 성장한 기량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미야오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정의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향후 절실해 보인다. 그 중심에는 미야오만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이를 음악과 앨범 구성에 반영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획력이 요구될 것이다.
유진 : 열등감은 최고의 동력이 맞다. 스카이민혁은 열등감을 인정하고 정면으로 돌파해 가며 성장을 이루어 왔다. '악마이민혁' 시절 장난기 어린 반항과 앳된 분노를 표출했던 시기를 지나 자기 파괴적 검열과 끊임없이 문제를 고치며 마침내 성공적인 '해방'을 포효했다. 이번 [MAD]는 해방으로 증명한 성장 그 이후의 기대가 몰린 챕터다. 해방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하는 부담감과 괴로움을 억지 극복하려는 태도가 아닌, 그 답게 부담감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풀어냈다. 그리고 그 결과, 성장 그 이상의 성숙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 완성되었다.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진득한 브라스, 차가운 피아노, 차분히 균형감을 잡아주는 베이스의 세련된 비트는 격양된 트랩을 활용했던 이전과 달라졌음이 느껴진다. 샤우팅이 중심이었던 이전보다 잘 정돈된 톤과 절제된 랩핑 또한 그렇다. '내 입을 꼬매 he had he had gone mad' 훅은 중독성을 주되 오버스럽지 않았고, 체념과 미쳐버림 그 어딘가를 잘 중용하여 확실한 킥을 완성했다. 이후 이어지는 트랙들은 시선을 자신에게서 주변과 타인으로 옮기는 점진적인 구성으로 완전함을 만들었다. 회의적인 랩이 싫다는 아티스트의 생각과는 다르게, '서울은 가르쳐줬지'는 리스너들을 크게 움직인 대목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기타 리프 위로, 부조리한 현실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모든 사회부적응자들을 고찰한 가사는 단순 관조가 아닌 다정함으로 읽힌다.
날 것의 목소리와 가사만으로 큰 호소력을 만들어내는 스카이민혁의 강점으로 정점을 찍어냈다. 트렌디하다고 일컬어지는 장르 나열과 겉만 화려한 사운드, 파티나 여자 얘기 따위로 허세를 부리는 건 그에게 없다. 솔직하게 내면을 다 까발리는 처절한 가사로 진정성을 증명해 왔고, 차곡차곡 커리어를 밟아오며 손수 경험한 인더스트리 속 기형적 문화에서도 그만의 줏대를 지키며 리스너들의 신뢰를 얻었다. 실력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성숙을 이뤘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리스너들을 납득시킨 진성 앨범이었다.
르망 : 래퍼 Don Toliver와 Kali Uchis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그녀의 인생에서 새로운 지점이 찾아왔듯, 이번 앨범 [Sincerely,]도 그녀의 커리어에서 새로운 지점이 되었다. [Sincerely,]는 기존 Kali의 주요 장르였던 R&B에서 살짝 벗어난 싸이키델릭한 팝 소울 음반이다. 보컬적인 부분에서는 Kali가 주로 사용하던 그루비하고 얇게 뽑는 톤이 유지된다. 그 보컬과 사운드가 함께 만들어낸 싸이키델릭 하고 드리미 한 분위기는 Cocteau Twins, Beach House 등의 드림 팝 아티스트들도 떠오르게 만든다.
이 음반의 킥은 타악기의 정체성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이다. R&B. 리듬 앤 블루스라는 장르는 기본적으로 '리듬'이 중요하다. 그래서 타악기가 만들어내는 그루브는 필수적인데, 이번 [Sincerely,]는 타악기의 색채들이 매우 옅어 음반에 몽환적인 느낌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공간계 이펙터들이 만들어내는 잔향과 딜레이로 만들어진 반복된 파형들이 타악기를 대신하여 느긋한 그루브를 만들어낸다. 또, 드림 팝의 전형적인 요소인 과한 리버브가 악기들과 뒤섞이면서 만들어낸 텍스쳐. 그 드리미 한 텍스쳐가 소울스러운 Kali의 멜로디를 감싸 안으며 '꿈속을 부유하는 듯한' 사운드를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너무 완벽한 음반이지 않은가? Kali Uchis의 커리어 내에서도 새롭고 특이한 지점이 된 [Sincerely,]에도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50분이 되는 러닝타임동안 비슷한 드림 팝 형태의 음악들이 가득해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이런 지루함은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의 영향 때문인데, '옅은 타악기의 색채'와 '과한 공간계 이펙터 활용'은 곡 내에서 다이나믹을 죽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때 다이나믹을 좀 살려 지루하지 않은 음악을 만들려면 잦은 변주 혹은 보컬의 화려한 활용 등이 필요한데, 이번 Kali Uchis의 탑라인은 조금 성스럽고, 정돈된 탓에 곡 내 다이나믹을 부여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앨범을 통째로 듣지 않고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둔 채 밤을 사유하며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는 너무 좋은 음악들이다.
유진 : 퓨전요리나 혼혈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듯,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인물과 콘텐츠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Miso Extra의 [Earcandy]는 홍콩에서 태어나 일본을 거쳐 영국에 정착한 그녀가 체득한 다문화적 정체성이 다양한 장르와 예측 불가능한 사운드로 표출된 앨범이다. ‘Love train’을 통해 장난스러운 전자음에 둔탁한 아프로 리듬이라는 기묘한 조화를 감상하며 미소버스(Misoverse)라고 부르는 그녀만의 음악적 탐구 세계로 향하면, 사운드적인 재미를 집요하게 추구하며 일관된 주제 없이 그녀가 마음대로 펼쳐 놓은 트랙들을 감상하게 된다.
첫 번째 타이틀 트랙 ‘POP’은 K팝, 그중에서도 뉴진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트랙으로, 친숙함을 먼저 자극한다. 조밀하고 빠른 비트 위로 나긋하게 불러지는 산뜻한 탑라인과 귀여운 어감의 일어 가사는 K팝 같기도, 옛날에 듣던 시부야계 같기도 하다. ‘Good Kisses’는 마치 TR-808을 장난감 삼아 재미있게 만들어낸 듯한 유쾌한 비트와 FX로 감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나 ‘Done.’의 경우, 큰 외양은 90s-00s R&B를 따르고 있지만 뎀보우 리듬 위로 피치를 건드린 보컬과 필터나 리버브를 조작하는 디제잉 이펙트를 곳곳에 심는 등, 실험적인 사운드를 보이며 결국 청각적 자극과 캐치함이 이 앨범의 감상 포인트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일본어와 영어가 뒤엉킨 가사 또한 그녀가 영감으로 떠올린 감각적 이미지와 컨셉을 이어나갈 뿐, 큰 의미를 담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확해진다.
R&B, 일렉트로니카, K팝, UK 개러지 등 정해진 장르 없이 재미를 추구하며 샘플의 질감과 리듬, 이펙터와 신스 테크닉에 집중한 앨범이기에 곡 하나하나에 의미를 찾거나 앨범에 큰 애착을 가지기는 힘들다. 그래서 이 앨범, UK 개러지야, J팝이야? 흥미를 느낀 리스너는 이 앨범을 정의하기 위해 그 정체성을 묻지만 그녀는 그냥 misoverse로 초대했을 뿐. 사운드는 재밌지만 깊이까지는 제공하지 않는 음악, 즉 앨범명 그대로 Earcandy였다. 형형색색의 줄줄이 멘토스를 먹는 듯이, 영양가 없이 바삭하고 달콤한 랜덤의 사탕을 리듬 타며 재밌게 받아들이면 족한 앨범이다.
JEN : PinkPantheress가 건네는 매력적인 파티로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과거 장르나 샘플링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던 전 앨범 [Heaven knows]에 이어, 이번 앨범 역시 여러 음악적 영향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다. 이전에 유행했던 콜라주식 앨범 커버에서도 이러한 태도가 엿보인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섹슈얼한 주제와 다양한 감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UK garage를 비롯한 클럽 친화적인 사운드가 어우러져 청자를 매력적인 파티의 현장으로 끌어들인다.
정박 리듬과 중독적인 탑라인, 센스 있는 보컬 챠핑이 돋보이는 선공개 곡 ‘Tonight’은 이러한 방향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고전적인 코스튬을 입고 제멋대로의 애티튜드를 연출한 프로덕션 역시 인상적이다. 2000년대 도발적인 댄스팝을 재해석한 ‘Stateside’는 신선한 시도로,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하지만 몽환적인 비트 위에 얹힌 가벼운 멜로디와 허전한 가사, 컴팩트한 곡 구성과 반복되는 코드 진행은 앨범 단위로 감상했을 때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지루함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Intermission’ 이후 DnB 중심으로 전개되는 ‘Noises’ 트랙에서 이러한 한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녀의 음악은 트랙 단위에서는 즉각적인 인상을 주지만, 앨범 전체를 이끌어갈 때는 흐름이 다소 단편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Z세대 특유의 장난기와 솔직함, 그리고 최근 스트리밍 환경에 최적화된 표현 방식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어쩌면 그녀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찰나의 인상, 순간에 머무르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PinkPantheress는 현세대의 감각을 가장 생생히 구현해 내는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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