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yci yucca, Mega Mongoliad, 이세계아이돌 외
635 : 아티스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정규앨범, Jayci yucca(이하 제이씨 유카)가 정규앨범으로써 보여야 하는 건 무엇일까. 그의 음악관을 보여주는 것도 맞겠지만 1, 2집에 거쳐 그가 가지게 된 '양산형 자가복제 감성 힙합'이라는 프레임을 지워내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를 위함인지 이번 [The Last Boy In The Class 3]는 사운드적인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구성을 보였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 ‘Door’는 짧은 플레이 타임이지만 진한 컨트리향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로 이전 제이씨 유카에게서 본 적 없는 스타일을 구사했다. 이런 스타일은 한 트랙에서 그치지 않고 컨트리뿐만 아니라 포크 사운드와도 혼용한 ‘널 사랑하는 이유 하나’, 그리고 잔향 같은 플루트 소리가 인상적인 ‘죽어가는 영혼아(feat. 최성)’ 같은 트랙들 까지 이어진다. 이런 컨트리 기반의 사운드 구성을 듣고 난다면 앨범 커버의 초록색 또한 의도한 바로 보이며 이런 '자연친화적'임이 이번 앨범의 색채임을 느낄 수 있다.
[The Last Boy In The Class]라는 시리즈로 정규앨범을 이어오고 이번 앨범은 그 세 번째 이야기다. 같은 락 사운드지만, 만약 이 기반이 그저 '팝 락'이었다면 이번 [The Last Boy In The Class 3] 또한 1,2집과 다를 것 없이 유행에 편승하는 양산형의 일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팝 락이 아닌 컨트리와 포크에 기반을 둔다니..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물론 '기타 몇 번 튕긴 것뿐인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장 한국 대중음악에서 컨트리 사운드를 듣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또한 양산형이라는 프레임이 있던 제이씨 유카로서는 본인이 과거에 보인 싱잉을 버리지 않으며 사운드적인 부분에서 다른 길을 찾아간 것이기에 더 큰 의미를 가질 앨범이다.
다만, 앨범 커버에서 보이는 자연 속 스포츠카처럼 자연친화적인 이번 앨범이지만 곳곳에서 일전의 '양산형 제이씨 유카'가 보인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타이틀 ‘옥에 티’만 하더라도 2절 벌스에서 PTSD가 올듯한 자가복제 플로우를 보이며 ‘조약돌’이나 ‘가짜부자’ 같은 트랙들도 자연친화보다는 '제이씨 유카 공장'에서 만든 듯한 과거의 감성 싱잉 스타일이다. 하지만 본인이 쌓아온 과거니 어쩔 수 있나. 변화를 준 건 분명히 좋은 시도가 되었지만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덮기에는 역부족이었을 뿐이다. 우린 그저 컨트리와 함께 올 '뉴 네오 제이씨 유카'를 기대해 보자.
아인 : ‘CRYING’을 듣고 나면 남는 건 멜로디도, 메시지도 아니다. 귀는 멍해지고, 마음엔 감정의 파편 같은 것이 남는다. 이 곡은 감정을 설명하거나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날것의 사운드로, 어떤 맥락도 없이 감정을 밀어붙인다. 비트는 광폭하고, 보컬은 일그러졌으며, 전개는 무자비하다. 이수호의 치밀한 프로덕션 위에 Omega Sapien의 목소리는 신디사이저처럼 왜곡되고 해체된다. 노래라기보다는, 감정과 소리의 전자적 충돌에 가깝다. 애초에 위로나 서사 따위는 이 곡의 목적이 아니다.
기존 Mega Mongoliad의 트랙이 밈적 장난기와 실험적 스타일을 오가며 장르의 바깥을 탐색했다면, ‘CRYING’은 하드 테크노, 개버, 디스토션 등 사운드의 극단을 정면으로 밀어붙인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불편함이 이들이 말하는 감정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건, 이 모든 혼돈이 꽤 계산된 감각 위에 있다는 것이다. 순간마다 비워진 공백, 묘하게 처연한 신스 리프, 리듬에 엉키는 밈 사운드는 예상 밖의 쾌감을 만들어낸다. 다만 감정선이 너무 일직선으로 치달은 탓에, 곡의 후반부는 다소 납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번의 폭발 이후, 정서의 파장이 조금 더 다채롭게 이어졌다면 곡은 훨씬 입체적으로 남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이 팀의 구조다. Omega Sapien과 이수호는 서로를 따르기보다 파열시킴으로써 극한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팀이라는 이름 아래 감당해야 할 실험의 끝자락을 보여주는 셈이다. ‘CRYING’은 지금 이들이 가장 선명하게 말할 수 있는 언어다. 음악 신을 흔들어놓는 이런 존재는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 음악이 어떻게 들릴지는 결국 아티스트가 결정하는 법이다. 유명한 두 인물이 만났음에도 기대만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고민해 볼 지점이다. 이 음악을 어렵게 느끼는 청자를 탓하기보단, 보다 캐치한 포인트로 그들을 먼저 홀리는 일, 그것이 지금 이 팀이 해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실험 아닐까.
광글 : 시티 팝의 특징 중 하나는 큰 변화 없이 부드럽게 흐르는 감상에 있다. 그러나 ‘Stargazer’는 변주가 두드러지는 'K팝 문법'을 버리지 못해 곡의 흐름을 자주 끊는다. 대표적으로 코러스 이후 삽입된 어색한 랩 파트와 빌드 업을 위한 브릿지는 시티 팝의 흐름과는 멀게 느껴진다. 믹싱에서도 특정 구간에서 지나치게 강조된 보컬은 음악과 따로 노는 듯한 이질감을 남기며 시티 팝 특유의 몽환적이고 은은한 무드와 어우러지지 못한다. 이번 이세계아이돌(이하 이세돌)의 음악은 마치 '이세돌'이라는 퍼즐을 시티 팝이라는 판에 끼워 맞춘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이어지는 트랙 ‘ELEVATE’의 '준비 준비 all right, Rollin' rollin' all night'과 같은 반복적인 라임은 몇 년 전 K팝의 진부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일본 밴드 감성을 담은 ‘MEMORY’ 역시 과거 이세돌 곡들과의 유사성만을 드러낸다. 이런 특징이 과연 이번 앨범을 들어야 할 이유를 남겨줄까? 몽환적인 감성을 원한다면 ‘Stargazer’ 대신 정통 시티 팝을, 이세돌만의 감성을 듣고 싶다면 ‘MEMORY’보다는 서사가 담긴 데뷔곡 ‘RE : WIND’를 선택할 것이다. 변화를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한 이유와 방향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번 앨범은 오히려 '이렇게 하면 안 돼요~'같은 교본처럼 느껴진다.
아인 : 요즘 힙합 씬은 강한 훅과 과잉된 연출로 청각을 넘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이럴 가능성을 중심에 둔 구성, 피로감마저 경쟁처럼 소모되는 사운드 속에서, Amine의 [13 Months of Sunshine]은 뚜렷하게 반대 방향을 향한다. ‘Caroline’의 농담조 가사나 ‘Charmander’의 장르 실험처럼 즉각적인 쾌감과 개성을 내세우던 그는 이번엔 느긋하고 담백한 톤으로 자신의 삶과 뿌리를 정리하듯 노래한다. 에티오피아 달력에서 착안한 제목은 앨범의 자전적 성격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13번째 달의 햇살'이라는 은유 아래, Aminé는 이민자의 기억을 특정한 이야기 대신, 감정의 온도 자체로 사운드에 스며들게 한다.
사운드는 따뜻하고 유려하다. [KAYTRAMINÉ]에서 선보였던 하우스·디스코 기반의 댄서블한 감각은 여전히 살아 있고, ‘Familiar’, ‘Vacay’는 4/4 비트 위에 흥얼대듯 래핑을 얹는다. ‘Arc de Triomphe’는 셔플 리듬을 활용하고, ‘13MOS’는 아프로비트풍 리듬 위에 자기 고백을 실어낸다. 장르적 외연은 넓지만, 앨범의 결은 전반적으로 지루할 정도로 평탄하다. 거의 모든 트랙이 유사한 템포와 질감을 공유하고 있어, 초반의 산뜻한 흐름이 중반 이후에는 서서히 감정적 낙차 없이 흘러가버린다. 정서적 일관성이라는 장점은 감정적 클라이맥스의 실종이라는 단점으로 연결되고, 앨범 전체의 인상은 뭉개진다.
결국 [13 Months of Sunshine]은 한 권의 잘 쓰인 일기장 같다. 지독히 개인적인 서사는 처음엔 흥미롭지만, 임팩트가 없다면 금세 시시해지기 마련이다. Aminé의 일기가 음악이라는 형식 안에서 진정한 울림을 갖기 위해선, 단순한 진심의 고백을 넘어 감정의 조율과 형식의 세공이 필요하다. 자전적 앨범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까지 타인의 서사로 확장될 수 있느냐다. 이 앨범은 분명 Aminé에게는 필요한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듣는 이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는, 앨범이 끝난 후에도 뚜렷한 답 없이 남는다. 무사하게 흘러가는 감정선 속에서, 한 번쯤은 터져야 했을 감정이 끝내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글 : 포스트 하드코어의 강렬함과 팝 펑크의 경쾌함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마치 정해진 길을 걷다가 낯선 골목으로 접어든 순간처럼 독특한 기분이 든다. 또한 이모 장르 특유의 섬세한 감정 위에 벤조와 바이올린 같은 악기 더해질 때 익숙함과 신선함 사이에 '거리감'이 미묘한 긴장감을 주며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거리감'은 단순히 음악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로 확장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Fatal Flaw’와 ‘The Weight’는 각각 '달과 태양', '분자와 우주'라는 물리적인 '거리감'을 통해 혼란스럽고 복잡한 관계의 감정을 풀어낸다. 이러한 내면의 고뇌와 성장에 대한 메세지는 펑크의 친숙한 멜로디 속에 자연스레 넘나들고, 귀에 꽂히는 멜로디를 지나 내 안의 혼란을 떠올리게 하며 일상에 스며든다.
마지막 트랙 ‘Morning Person’은 어쿠스틱 기타와 담백한 보컬로 담담하게 시작하지만 점차 현란한 드럼과 거친 스크리밍이 더해지며 감정의 폭발로 치닫는다. 이 곡은 앨범 전체에 흐르는 '거리감'이라는 정서를 응축해 보여주면서도 서서히 고조되는 감정이 마치 화산이 터지듯 극적으로 분출되는 순간을 선사한다. 앨범을 끝까지 듣고 나면, 마음 한 켠에 입체적인 여운이 잔상처럼 남는다.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보컬과 강렬한 드럼이 내면의 에너지를 해방시켜 주는 동시에 여전히 남아있는 고민과 미완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감정들이 억지로 꾸며내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점이 펑크만 할 수 있는 ‘날 것의 맛’을 오랜만에 떠올리게 했다. 'Length'라는 이름을 단순한 키워드가 아니라 밴드만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완성하기까지 치열한 고민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635 :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이 중심이 되어 '반항'과 '비판'을 이야기하는 포스트 펑크 씬에서 Mhaol은 '여성 중심' 밴드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정체성인 '급진적 페미니즘'과 '퀴어 해방'을 일부분 보여줄 수 있다. 이번 [Something Soft]는 그들의 정체성적인 면에서 1집과 연속성을 가지지만 그 속의 디테일한 측면에서 변화가 있다. 여전히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있지만 이번엔 그것을 개인의 시선으로써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밤길에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말하는 ‘pursuit’는 간결한 스트링 사운드 위에 읊조리는 보컬로 시작된다. 하지만 곧이어 들어오는 드럼과 일렉 사운드는 후반부로 갈수록 거세지며 보컬을 잡아먹는듯한 연출로 상황이 고조됨을 표현했다. ‘Snare’ 또한 팀의 드러머이자 보컬인 Constance Keane이 어린 시절부터 드럼을 배우며 들은 '여자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부드러운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 같은 차별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분노와 혐오가 담긴듯한 세션 사이에서 노래보단 이야기처럼 풀어나갔다.
Mhaol과 [Something Soft]를 '가수'와 그의 '앨범'으로만 판단한다면 아쉬울 수 있는 작업물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트 펑크라고 하였을 때 떠오르는 질주감과 공격적인 사운드보다는 의미 전달을 위해 의도적으로 정제된 분위기와 보컬을 사용해서 음악으로써 포스트 펑크 본연의 맛은 감퇴되었다. 하지만 '포스트 펑크'라는 장르가 가지는 '반항정신'과 Mhaol의 정체성인 '급진적 페미니즘', '퀴어 해방'은 통일성을 가지게 되면서 설득력은 물론 진정성까지 가져갔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 차용을 넘어서, 장르의 정신을 정체성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결과인 것이다. 이로써 Mhaol의 음악, 그리고 [Something Soft]는 '맛없는 포스트 펑크'가 아니라 장르를 활용하는 '전략적으로 성공한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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