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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5월 5주)

HAAN/Chan, 세븐틴, 아이린/슬기, Jamie Turner 외

by 고멘트

"풀코스 반찬카세"


1. HAAN, Chan (찬) – [한찬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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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프로듀서 HAAN과 아티스트 Chan (찬)이 다시 만나 푸짐한 한 상을 차려왔다. 정규앨범이라는 틀에 걸맞게 꽉 찬 12개의 트랙은 유려한 전자음과 재즈풍의 건반, 탄력 있는 기타 라인 등 여러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이어진다. 빈틈을 촘촘히 채우는 이펙트와 유연한 리듬은 각 트랙을 더욱 입체적으로 감싸고, 보라미유, 미노이, Jword 등 각각의 맛을 돋우는 여러 피처링 보컬의 활약은 곡마다 다양한 개성을 부여하며 사운드적 밀도를 높였다.


자잘한 사운드를 다양하게 담아냈음에도 앨범 전체는 하나의 결을 따라 일관되게 흐른다. 그 흐름 덕분에 리스너는 안정적인 전개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트랙으로 이끌린다. 그러다 큰 무드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아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질 무렵, 과하지 않은 독특한 터치들의 가미는 전개력을 톡톡히 더한다. 특히 중후반부에 위치한 ‘No Lie’ 중반부의 급격한 사운드 전환 구간이나, ‘all I need is u’의 뒤로 감기를 누른 듯한 이펙트는 늘어지는 분위기를 환기하며 앨범의 흐름을 절묘하게 끌어당긴다.


비슷한 색깔의 현대 R&B 앨범은 사실 많다. 이 앨범도 큰 독특한 요소보단 익숙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한찬가게]의 진가는 그 익숙함을 얼마나 세심하게 다듬었는지에서 드러난다. 세밀한 사운드 배치, 미묘한 변주, 유기적인 레이어링으로 곡의 완성도를 높이고, 각 트랙 내부뿐만 아니라 12개의 트랙 간 설득력까지 불어넣었다. 특히 여러 번 들을수록 새롭게 들리는 디테일이 많다는 점은 이 앨범의 프로덕션이 얼마나 섬세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시사한다. 처음엔 발견하지 못했던 세밀한 이펙트들이 들리고, 스쳐 지나갔던 소리는 또렷하게 혹은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이런 섬세한 프로덕션이 빛나는 [한찬가게]는 단지 음악을 예쁘게 만드는 것을 넘어, 디테일이 어떻게 음악의 설득력으로 이어지는지 볼 수 있는 앨범이다.





"번개의 다른 표현은 방전이다."


2. 세븐틴 (SEVENTEEN) - [HAPPY BURST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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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 : 남그룹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자, 그룹의 생애에 분기점이 되는 군백기가 시작된 세븐틴이다. 청량의 선구자답게, 콘셉트와 단체 곡에서는 아직 청춘에 머물러 있는 청량한 신인 후배들에게 청사진을 제시한다. 거친 헤어와 강한 눈빛은 정열적인 에너지를 담아내어, 무게 잡지 않고도 청량 그룹의 날렵함을 통해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단 걸 증명하려 했다. 비주얼에서도 에너제틱함이 느껴지듯, Far East Movement의 ‘Like A G6’에 EDM 옷을 입힌 타이틀곡 ‘THUNDER‘도 Punky한 첫 곡 ‘HBD’의 속도감을 이어받아 ‘HOT’과는 다른 성숙하고도 더운 느낌을 담았다. 그런 면에서 ‘Bad Influence’에서는 왜 3곡밖에 안 되는 단체 곡 중 한 곡을 Pharrell Willams를 위해 할애했는지 의문이다. 물론 해당 곡에서 Pharrell Williams의 맛은 새우깡의 새우 함량보다도 적지만, Pharrell Williams의 음악은 애초에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Chill하고 쫄깃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완전체가 없는 동안 갖게 될 솔로 활동을 미리 보여주듯, 개성 강한 멤버들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개인별 수록 곡도 이번 앨범의 특징이다. ‘Shake It Off’라는 핫한 모습이 그려지는 테크 하우스 곡으로 민규의 강점과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승관은 드라마 OST 같은 곡을 통해 감성적인 보컬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 곡은 해당 멤버를 몰라도 곡으로 바로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잘 매칭했다. 하지만 앨범 구성 측면에서 보면, 정규 앨범의 3/4인 13곡이 앨범 테마와 따로 노는 필러로 채워져 정규 앨범으로서 밸류가 떨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앨범의 테마와 공명하지 않지만, 각 팀의 장점을 담기 위해 존재했던 유닛 곡을 넣던 이전 작에도 존재했던 아쉬움이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곡들이 앨범의 테마를 더 뚜렷하고 매력 있게 그려주는 데 쓰였다면 어땠을까?


그렇다고 앨범의 메시지가 메리트 있는 것도 아니다. 베스트 앨범 때도 그랬듯 제목 앨범부터 그들의 성과를 기념하기 위한 앨범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이렇게 잘했다!"라며 그저 이런 자체적인 이벤트만을 소재로 끌고 오는 것은 애프터 파티만 계속 이어지는 듯한 피로감이 든다. 새로움 없이 네임 밸류 높은 프로듀서로 과시하는 것 외엔 더 할 게 없나 싶기도 하다. 항상 신나고 밝은 에너지를 뿜어 내던 세븐틴은 이번 앨범에서 확실히 강렬한 에너지를 방출하긴 했다. 이제는 방전된 듯한 매너리즘을 탈출하기 위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돌아오길 바란다.




"간극에서 피어난 정교한 합"


3. 아이린&슬기 – [Ti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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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y : 으레 유닛이라 하면 서로의 공통분모를 극대화하며 케미나 시너지를 강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Tilt]는 오히려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동명의 타이틀곡 ‘Tilt’는 그 의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문을 열고, 이후에도 전반적인 구성은 팽팽하게 밀어붙인다. 이 안에서 아이린은 절제되고 단단한 톤으로, 슬기는 날카롭고 유연한 톤으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둘은 닮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균형을 만들어낸다. 기울어져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제목 그대로의 상태다. 이는 요즘처럼 미니멀하고 쉬운 챌린지형 음악이 범람하는 가운데서 정공법을 택하며 SM다운 완성도와 디테일을 다시 한번 체감하게 한다.


앨범 전반적으로는 레드벨벳의 클래식하고도 서늘한 벨벳 감성을 바탕에 두되, 슬기와 아이린 두 조합만의 기류를 분명히 만들어낸다. 레드벨벳 본진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음영감은 유지하면서도 두 사람의 개성과 온도차를 있는 그대로 활용해 새로운 그림을 그려낸 셈이다. 5년 만의 컴백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각자의 영역을 살려 조화를 이뤘고, 이를 흡입력 있는 전개와 완성도 높은 사운드로 풀어내며 신선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음악 자체와 이를 구현하는 아티스트의 역량이다. 그런 점에서 [Tilt]는 아이린과 슬기라는 조합이 여전히 새롭고 유효하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잘 어울리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잘 어울리는 이 유닛이 가진 가장 큰 무기를 정확히 짚어냈다.





"이 앨범을 듣고 악몽으로 갈 수도 있어"


4. Jamie Turner – [A Dream We Can't Le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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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Jamie Turner의 데뷔 앨범 [A Dream We Can’t Leave]는 떠나지 못하는 꿈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위를 가로지른다. 약 65분간 이어지는 9개의 트랙은 점차 현실 감각을 상실하는 듯한 무드로 이어지며, 꿈속을 걸어 다니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몽롱하게 스며드는 보컬과 기묘한 사운드의 조합은 멜로디나 가사보단 감정과 분위기에 집중하게 하고, 자연스레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공감각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끌어낸다.


독특한 루프 사운드의 사용은 앨범 전반을 관통한다. ‘desire’의 기계적인 사운드나 ‘the loss of movement’의 날카로운 바람 소리는 몰입을 유도하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과감한 리버브와 딜레이는 몽환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기괴한 질감을 형성한다. 특히 ‘confessional’과 ‘kelly song’의 후반부에서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뒤틀린 사운드가 겹치며 꿈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사랑과 고립,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모순된 정서를 은근히 드러내며, 무의식적 서사를 더 깊은 심연을 향해 극적으로 끌어당긴다. 마지막 트랙 ‘last days of disco’는 어쿠스틱함을 더해 따뜻한 마무리를 유도하는 듯하지만, 역시나 어딘가 남는 섬뜩한 여운으로 끝내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A Dream We Can’t Leave]는 시간과 공간을 유영하는 한 편의 느릿한 몽중극을 본 듯하다. 겹쳐지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점층적으로 빠져드는 구조는 현실 너머의 세계로 이끌며 독창적인 청각적 경험을 완성한다. 다만 긴 러닝타임동안 이어지는 일부 기이한 사운드는 피로하고, 모든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이상(理想)이 아닌 불안과 고립의 독백의 장소'라는 내러티브와 음악적 다양성을 고려하였을 때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다. 비록 대중성과는 거리가 다소 생겼더라도, 파격적인 사운드와 구조로 하나의 서사를 몰입감 높게 완결해 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음악적 가치는 남았다.





"관능적으로 밀어붙이는 묵직한 한 방"


5. Kyle Dion – [SO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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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y : Kyle Dion은 이전부터 네오 소울과 얼터너티브 R&B를 중심에 두었고, 이번 앨범 [SOULAR]에서도 그 중심을 유지하며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구축했다. 'SUGA ON THE RIM', 'Look Like That'과 같은 트랙에서는 펑키한 기타 리프와 촘촘한 베이스 위에 유려한 가성을 덧입히고, ‘Astro Afterglow’에선 레트로한 신스로 텍스처의 폭을 넓힌다. 반면 마지막 트랙 ‘Burn Out’은 어쿠스틱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구성된 미니멀한 편곡을 통해 여백 안에 감정을 밀도 있게 가둔다. Kyle Dion은 이와 같이 소리를 쌓는 것과 비우는 것을 넘나들며 균형 잡힌 완성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의 부드러운 가성 보컬을 중심으로 관능적인 무드를 일관되게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흔히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장르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티스트의 역량처럼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SOULAR]는 어떤 트랙이든 'Kyle Dion'이라는 아티스트의 소리를 또렷하게 새겨 넣고, 그 안에서 조금씩 다른 디테일로 청자를 밀고 당긴다. 전반적으로 절제된 구성과 밀도 있고 세련된 사운드가 앨범을 관통하며, 덕분에 '잘 빠졌다'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매끄럽다. 가볍게 들리면서도 허전하지 않고, 정돈돼 있지만 밋밋하지 않다. Kyle Dion이 굳이 튀지 않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50분짜리 하이라이트"


6. Miley Cyrus - [Something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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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 : ‘Flower’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직후 이런 앨범을 시도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전작과 달리, 또 Sabrina Carpenter 같은 여타 팝스타들과 달리, 레트로 트렌드에 올라타 상업적인 접근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활용해 묵직하고 농축된 앨범을 보여줬다. 80년대 음악 방송이 떠오르는 ‘End of the World’ 뮤직비디오가 심상치 않았던 것처럼 앨범의 테마 자체도 마치 과거의 여러 큰 무대들의 클라이맥스를 모아둔 것 같이 포스 있고 풍성하게 기획했다.


모든 곡들이 맥시멀함 일변도로 몰아치며 구성된다. ‘Something Beautiful’처럼 잔잔하고 재지하게 흘러다가 찢어지도록 강한 소리로 감정을 요동치게 하는 곡도 있고, ‘Easy Lover’와 ‘Reborn’과 같은 곡은 리드미컬한 베이스라인에도 불구하고 댄서블함이 아닌 압도되는 웅장함에 감상이 쏠린다. 또 과거의 자신처럼 여성들의 우상을 얘기하기 위해 Naomi Campbell을 데려온 ‘Every Girl You've Ever Loved’ 같은 곡에서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Miley Cyrus의 강한 의도가 보이는데, 이처럼 풍부함이 메시지와 사운드 양 측면에서 모든 곡에 무겁게 담겨있다. 쉬어 갈 만한 Prelude나 Interlude 또한 강하고, 또 몰려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또 풍성함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사실 앨범 자체가 굉장히 피로해, 듣는 동안 다른 걸 못하게 하지만, 그 원인은 각 곡의 강한 몰입감과 존재감에 있기에 화려한 감상을 위해 휴식 시간을 온전히 양도할 가치가 있다.


아무래도 점점 더 음악가, 혹은 아티스트로 변모해 온 Miley Cyrus의 서사를 생각해 볼 때 이번 앨범을 통해 빛나는 팝스타 이상의 반열에 들고자 하는 듯하다. 이 짙은 앨범으로 이제 Hannah Montana나 팝스타 Miley Cyrus는 흔적도 없이 지워졌고, 마치 작금의 레트로 스타일의 클래식이 된 대모들이 겹쳐 보이게 되었다. 다만 완급 조절과 트랙 배치 같은 디테일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구성을 보면 아직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과도기에 있는 듯하다. 모든 곡들이 버릴 것 없이 묵직하긴 하지만, 욕심이 조금 과한 듯하여 부담스럽기도 하다. Miley Cyrus의 의도 자체는 이해가 되고 또 바람직한 야망인 듯하여 감안은 하고 들었지만, 조금은 힘을 빼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 'Noey', '제트'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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