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pleS (트리플에스) – [<ASSEMBLE25>]
“퇴색된 ASSEMBLE의 의의에 대하여”
tripleS (트리플에스) – [<ASSEMBLE25>]
2024년 여러 걸그룹이 출발을 선포했고, 그 중에서 임팩트를 남긴 그룹 하면 tripleS를 빼놓을 수 없다. 완전체로서의 데뷔를 알린 ‘Girls Never Die’가 tripleS라는 그룹의 개성을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남겼기 때문이다. ‘Girls Never Die’는 멜론 Top100 차트에 장기간 진입하는 등 곡 자체가 대중적으로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어두운 무드와 독특한 활동 형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룹의 정체성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제는 tripleS라는 그룹에 대해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멤버 수가 24명이나 된다는 전대미문의 규모, 그리고 팬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컴백. tripleS의 정체성과 활동은 분명 지금까지 없는 혁신적인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K팝 산업의 잔뼈 굵은 인사이트에서 나온 전략이 돋보이는 그룹이다. 팬들은 아티스트의 활동에 도움을 주고 싶어 하며, 그렇기에 스트리밍, 리트윗을 통한 화제성 발생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아티스트의 활동에 기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티스트와 팬덤 사이의 제4의 벽을 부순 적은 없었다. 팬덤이 직접 유닛을 꾸리고, 또 활동 곡을 선정하여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이 방식은 분명히 획기적이다. 팬심을 인질 삼아 맹목적인 소비 이유를 제시하기보단, 앞서 말한 아티스트에 대한 참여 욕구를 활용했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뿌듯한 “덕질”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자유분방하고 스포티하지만 어두운 청춘에 대해 다루고 있는 tripleS이다. 다른 그룹들이 밝고 발랄하게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낸다면, 폐건물로 MV 로케를 잡는 등 하이틴의 에너지를 방황과 혼란과 같은 독특한 맛으로 녹여낸다. 오히려 tripleS는 그렇기에 더더욱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듯한 공감을 자아내 특이한 구성의 tripleS의 입덕 장벽을 낮춰 주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tripleS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Girls Never Die’를 통해 제시한 세지 않은 독기를 이번 앨범에서도 이어받았다. “삶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걸까? 아니면 쓸데없는 희망 때문에 절망만 더 커져가는 것일까?” 라는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질문을 중심으로 풀어나간 이번 앨범의 콘셉트는 전작부터 형성한 무드를 계승하여 시니컬하면서도 희망찬 tripleS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그룹의 기본 정서와 정체성을 온전히 담은 이번 앨범 [<ASSEMBLE25>]은 그룹의 기조가 강렬하듯, 앨범의 기조 자체는 강렬하다. 앞서 언급했듯 메시지 또한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에 담아둘 수 있었다. 지난 앨범이 tripleS가 제시할 메시지의 방향성을 보여줬던 앨범이라면, 이번 앨범은 그 예시에 해당하는 듯, “희망고문”을 매개체로 직접적으로 현실을 조명한다. 타이틀 곡 아래로 짜인 다양한 구성의 수록곡 또한 주제를 강화하며 더욱 더 분명하게 해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확실하고 잡히지 않는 희망으로 인해 좌절하며, 수록곡은 그 좌절의 다양한 상황들을 테마로 잡았다. 모두가 희망을 찬미할 때, 오히려 희망의 본질과 삶에 닿는 의미를 한 번 더 깊게 파보며 현생에 맞닿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tripleS는 그들의 고민과 시련에 청자들을 초대하여 함께한다.
두 가지의 컨셉 포토의 대비 또한 인상적이다. “깨어”라는 의미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동면과 활성화라는 콘셉트의 대비. 깨어 난 후를 담은 밤의 서울 길거리를 담은 비주얼이 가장 “트리플에스다운” 스트릿한 느낌을 담고 있는 점. 이런 구성의 짜임새가 가장 눈에 띄는 앨범이었다. 말 그대로 “깨어”있으며, 무기력하게 눈을 감고 있기 보단 어두운 밤이어도 살아있는 그 자체를 강조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주제의식 하나만을 제시하기 보단 대비되는 모습을 같이 제시함으로써 더욱 더 강조된 이 의미는 궁금함을 유발함과 동시에 보다 선명하게 두각되어 표현되었다.
타이틀 곡 '깨어 (Are You Alive)' 또한 tripleS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의도라고 하면 정답을 도출해 낸 듯하다. “La La La” 라는 합창이 반복되는 코러스는 누가 들어도 tripleS의 곡이라는 점을 대중들에게 강하게 꽂아줄 수 있고, ‘Girls Never Die’처럼 세진 않지만 그루비하게 어둡다. 이번 활동에서 진행된 타이틀 곡 투표의 다른 곡들과 비교해 보면, 왜 팬들이 이 곡을 선정했는지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대중성을 의식한 트렌디하고 무난하게 팝스럽던 후보곡(B, E, F, H)은 개성 강한 tripleS에게 붙이기엔 무색무취였고, 나머지 곡들은 유닛의 정체성을 강화하기엔 좋았으나(C, D : VV에게 적합한 레트로하고 그루비한 곡) 완전체 tripleS의 정서를 담기에는 방향이 달랐다. 수록곡으로 선정된 G(‘Diablo’)를 보더라도, 이런 SPA 브랜드 매장 감성의 하우스 음악은 아무래도 tripleS를 대표할 곡으로는 아쉽다. tripleS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선 이 곡은 너무나도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음악은 수학이 아니다. 간결하게 도출되는 정답은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24인이나 되는 멤버 수가 무색하게, 타이틀 곡의 송폼을 보면 단체 파트인 합창 멜로디가 곡의 절반을 차지한다. 멜로디 자체는 중독성 있지만, 너무 많이 반복되는 구성에 La La La 말고는 남지 않고, 또 곡이 다소 급하게 들린다. 심지어 그 많은 멤버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보컬보다 베이스와 같은 악기의 존재감이 더 크다. 전작은 “끝까지 가볼래, 포기는 안 할래 난” 같은 앨범의 메시지가 분명 훅에 존재했는데, ‘깨어’는 그조차도 약해 기억에 남지 않는다. ‘깨어’는 앨범의 타이틀이 아니라, tripleS라는 그룹의 오프닝 주제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앨범과 멤버들이 묻히는 건 비단 타이틀 곡에서만이 아니다. 뮤직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대형으로 압도감을 주기 위해 통일되고 각 잡힌 군무를 넣든, 아니면 반대로 다양한 매력을 담을 수 있든 해야 하는데, 정작 이 많은 멤버들로 의미 없이 흘러가는 와이드 샷, 그리고 인서트가 메인이 되며 혼잡스럽게 컷 전환이 빠르게 이어진다. 집중할 거리도, 집중할 맥락도 나오지 않는 이 장면 배치는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곡 자체의 반복성 또한 문제가 되는데, 코러스에서의 입을 벌리는 포인트 안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하다. 코러스가 나올 때마다 클로즈 업이 되다 보니 결국 머릿속에 남는 것은 그 장면뿐이다. 물론 팬덤이나 관심이 깊은 사람들은 뮤직 비디오의 여러 장치들을 뜯어보며 메시지를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본연의 세계관과 연계하여 보아야 할 부분들이 많고, 현실의 청춘들에게 시련을 극복할 동질감을 주기에는 그 장치들이 너무 뒤에 숨겨져 있다. 그저 칙칙한 무드를 통해 추측해 볼 뿐이지, 맥락을 살펴보기엔 쉽지 않다.
지금까지의 완전체 활동에서 우려되었던 퍼포먼스에서의 약점 또한 드러난다. 세븐틴에서 볼 수 있듯 다인원 그룹의 퍼포먼스는 다인원이기에 할 수 있는 재미를 활용할 때 독보적인 강점이 된다. 그러나 오히려 tripleS의 퍼포먼스에 다인원이라는 특성은 독이 된다. 큰 대형 자체가 썩 괜찮은 감상을 주기 때문에 개개인의 퍼포먼스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다 보니 그냥 단체로 군무를 추며 배경이 되어줄 뿐 장점을 만들지 못한다. 노래에서 합창 파트로 능력치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처럼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그룹의 메리트를 활용하지 못하는 점, 그리고 그룹 내의 플레이어로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곡도 좋게 들었고, 컨셉 포토의 기획 의도도 명쾌해 보다 깊이 이해와 감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선보이는 플레이어로서 매력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이번 앨범에서 tripleS라는 “브랜드”를 지운 뒤 남는 게 없다. 이번 앨범은 앨범에 대한 커머셜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프로파간다일 뿐이었다. 앨범, 또는 멤버라는 개별 상품 또는 계열사에 대한 매력을 보여주기보단, “삼성”을 소개하는 듯했다. 사실 그건 저번 앨범에서 그쳐도 충분했다. 2024년에 맞춰 24명이란 의미가 강했던 첫 완전체라는 상징성도 그렇고. 멤버가 하나 늘거나 그룹이 리뉴얼이 된 것도 아닌 이상, 이번 앨범에선 ASSEMBLE의 의미가 퇴색된 듯하다.
이들이 모였을 때, 그 모여 있는 형태 말고 모인다는 의의가 무엇이었을까? 어떤 점에서 모였을 때 메리트를 가질까? 오히려 완전체로 모이며 개성이 배제되고 메리트를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이 많은 인원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래야 그룹의 특성이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번 앨범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의문을 남게 한다.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고 논리적으로 만들어졌다 했지만, 정작 꼭 이번 앨범에서, 1년에 한 번뿐인 ASSEMBLE을 통해서만 해야 하는 이유가 와닿게 다가오진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이는 팬 참여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갖는 패러독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틀 곡이 제시할 수 있는 앨범의 방향성이 팬덤의 “감”에 의존하는데, 제작자가 아닌 소비자로서 팬덤이라면 제공된 정보만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들이 어떤 걸 해야 할 지는 수많은 팬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고, 또 단순한 16강 토너먼트로는 그 방향에 관해 토론하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가 무난하게 생각할 수 있는 “트리플에스 주제가 만들기”로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트렌드에 맞지 않는 곡들을 배제한 점에서는 팬덤의 감이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쩌면 유독 해외 팬들의 수요가 높았던 C, D를 통해서는 이번 앨범으로 tripleS가 형성하는 공감대를 해외까지 넓혔을 수도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꽂히고 듣기 좋은 노래를 선별해 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이들에게 기획 의도의 설정까지 맡기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날카롭게 제시한 문제의식에 비해 표현의 날카로움은 무뎠던 앨범이다. 앨범의 출발점이 다르더라도 횡보 혹은 더딘 발걸음으로 느껴진 데에는, 앨범보다 그룹의 색이 과하게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ASSEMBLE이다. tripleS는 이번 모임 이후 내년 이맘때까지 모임을 갖지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 가뜩이나 긴 완전체 활동 간격인데, 한 번 모일 때 제대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 리스크가 너무나도 크다. 저번처럼 성공적인 ASSEMBLE을 통해 관심을 팬덤으로 흡수하여 유닛 활동 같은 그룹 고유의 활동 형태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해 내지 못하면 위험은 더욱 크다. 그러나 [<ASSEMBLE24>]는 첫 완전체였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고, 그 공식은 초항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이번처럼 모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1년간 tripleS는 오합지졸이 된다.
by. 플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