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velvet – Irene & Seulgi – [TILT]
레드벨벳의 유닛 활동인 Redvelvet - Irene & Seulgi (이하 아슬)이 첫 번째 ep [Monster] 이후 5년 만에 [TILT]로 돌아왔다. [Monster] 때부터 [Tilt] 까지 ‘쌍둥이’ 혹은 ‘두 개의 자아’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레드벨벳의 ‘벨벳 컨셉’을 계승하는 컨셉을 활용 중인 아슬. 꽤 트래픽이 생기는 이름값에 더하여 하이엔드스러운 패션 등 퀄리티 높은 컨셉을 통해 K-pop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만, 이번 [TILT]에는 뭔가 다른 잡음들이 자꾸 들린다. 티저 사진이 내려가기도 하고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거센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과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었을까? 자세히 한번 알아보자.
아슬의 ‘TILT’에서 가장 큰 논란은 ‘퀴어베이팅’이다. 퀴어베이팅이 무엇인지, 그리고 [TILT]의 어떤 부분이 문제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 전에 K-pop과 퀴어 문화의 연관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K-pop은 지속해서 기존의 젠더 편견에서 벗어나는 ‘퀴어함’을 표현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K-pop 내 ‘퀴어함’은 대안적 남성성으로서 나타난다. 태민의 ‘Move’, ‘Pretty Boy’처럼 ‘마초성’ 제거에서 더 나아가 젠더리스한 안무와 패션을 더해 관능적임을 표현하는 방식이 있다. 남성의 경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지만 중성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던 엠버가 ‘Borders’에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메시지, 즉 ‘퀴어 문화’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활용하기도 했다.
아티스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퀴어함’은 팬들의 소비와 관련한 부분도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일명 비레퍼, 비게퍼로 불리는 ‘비즈니스 게이, 레즈 퍼포먼스’가 있다. 이는 그룹 멤버들이 의도적으로 성소수자의 분위기를 꾸며내는 것인데,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보겠다. 남자 아이돌 팬 미팅 자리에서 남자 멤버들끼리 스킨쉽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게 ‘비게퍼’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조금 결은 다를 수 있으나, K-pop 팬들이 ‘남-남, 여-여 커플링’을 활용하여 ‘팬픽’을 쓰는 2차 창작으로 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팬층의 소비 방식에도 ‘퀴어 문화’와 K-pop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럼, 이번 아슬의 경우도 알아보자. 아슬은 완전체인 레드벨벳 시절부터 퀴어 문화와 연관된 것들이 많았다. 가장 대표적으로 [Queendom]이 있다. ‘모두 다른 색깔로 완성한 Rainbow’라든지, ‘Cause we are Queens and Kings’라는 가사들은 ‘퀴어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동시에 퍼레이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악 자체도 퀴어퍼레이드를 연상시킨다. 또, 퀴어 영화 ‘상실의 시대’를 떠오르게 만드는 ‘Bad boy’ MV, 또 ‘세 가지 소원’ MV 등을 통해 퀴어 문화와의 연관성을 지속해서 유지해 왔다.
아슬의 전작인 [MONSTER]도 퀴어적인 요소들이 뮤직비디오에 가득 들어있다. 아이린과 슬기의 투 샷을 지속해서 보여주고, 무지개를 사용한다든지 교회에 총을 들고있는 모습 등등. 표현하고자 하는 모습은 ‘두 자아의 융합’을 말하고는 있지만, 많은 메타포적 표현으로 퀴어 문화를 읽을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럼, 이번 [TILT]에서는 어떤 부분들이 전작의 퀴어적 표현을 이어가고 있는지 알아보자.
이번 아슬의 [TILT]는 프로모션 때부터 퀴어적인 모습을 다수 보여주고 있다. 전작처럼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티저 및 MV 전반에 걸친 두 멤버의 밀착된 모습이 있는 투 샷이다.
여자 아이돌, 특히 듀오로 나오는 유닛 활동의 경우 이런 투 샷은 굉장히 흔하다. 특히 ‘아이린& 슬기’ 커플링은 레드벨벳 시절부터 가장 높은 인기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두 여성의 유대감을 뛰어넘는 레즈비언적 이미지는 팬들의 관심을 얻기엔 좋은 방식이었다. 단, 마케팅의 측면으로만 봤을 때 효과가 좋다는 것이다. 호텔 이미지, 두 손을 잡은 이미지 그리고 구두가 아이린을 밟고 있는 이미지 등 ‘두 개의 자아’와 관한 표현이라고만 단정 지어 생각하기에 직접적인 퀴어 이미지들이 즐비해 ‘퀴어함’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쉬운 점이다.
또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하이엔드 질감의 얼굴 표현은 대표적인 트랜스젠더 아티스트 Sophie를 떠올리게 한다. Sophie의 MV들을 보다 보면 비슷한 글리치한 얼굴 표현이 나타난다. 이는 Sophie의 정체성 혼란 혹은 사회에서 정해지는 정체성에 대한 불만으로 사용되는데, 아슬 ‘TILT’의 컨셉인 두 자아 간 대립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메타포였다. 표현적으로는 칭찬할 만하지만, ‘Monster’의 아이린 괴물 얼굴처럼 뜬금없이 튀어나온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무래도 하이엔드함을 표현하려다 보니 CG 느낌이 너무 강해 영상에 메인으로 나타나는 아이린, 슬기의 실제 모습과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시각적인 요소를 벗어나더라도 [TILT]의 퀴어함은 존재한다. 타이틀 곡 ‘TILT’의 가사를 예를 들어보면 ‘나쁜 호기심은 매번 그어둔 선을 넘어’, ‘옳고 그름 따윈 모두 내려놔도 돼’ 등으로 금기를 깨는 모습으로써 퀴어함을 표현했다. 코러스 파트의 가사도 퀴어적 표현으로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곡 소개에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승패의 경쟁이 아닌 우리만의 밸런스를 만들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를 표현한다’라고 적혀는 있다. 본 의미를 확실히 한 다음에 메타포적 표현들로 하여금 대중들이 해석하게 유도해야 ‘퀴어함’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여러 퀴어적 이미지가 이 노래를 ‘퀴어함’을 표현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게 유도한다. 프로모션, MV, 가사들이 각인되어 [TILT]가 퀴어적으로 먼저 해석되기에 실패한 기획이다.
어찌 됐든 수많은 프로모션과 MV 티저들로 ‘퀴어함’의 요소에 집중이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프로모션에 등장한 문제의 사진 한 장이 앞서 언급했던 ‘퀴어함’으로 의심되는 요소들에 낙인을 찍었다.
이 굴 사진이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이 사진은 ‘퀴어적 표현’의 실패라기 보단, 너무 노골적인 메타포를 가진 사진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이 불쾌함을 느끼기 쉬웠다. 그렇다고 이미지 자체가 쾌적하거나 미적으로 뛰어나지도 않았다. 퀴어적인 표현은 적당선을 유지해야 마케팅으로서 효과적인데 이는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지점을 넘어가 버렸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 하겠다.
이번 [TILT]의 가장 큰 논란은 위의 ‘굴사진’ 선정성 논란과 함께 터진 ‘퀴어베이팅’ 문제이다. 퀴어베이팅이란 엔터 산업에서 ‘퀴어’의 요소를 대중들에게 좀 더 편안하게 다가가기 위한 만들어진 방법론이다. 물론 좋게 말해야 그런 의미고, 사실상 수많은 엔터 및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퀴어베이팅은 퀴어적인 요소와 메타포를 보여주면서 정작 표현하는 주체는 퀴어에 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는 마케팅 기법으로 사용된다. [Monster]에서 나타난 퀴어 요소는 퀴어베이팅이 조금씩 의심되지만, 논란까지 자라나진 않았다. 그 이유는 ‘두 자아’와 관련된 표현이라고 주장하면 그런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TILT]는 단순히 이전의 방식으로 주장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인 표현으로 인해 퀴어베이팅 논란이 터진 것이다.
특히 ‘굴 사진’과 같은 노골적인 성적 메타포는 앞서 보여줬던 모든 주장들을 변명으로 만들어 버린다. 단순히 저돌적이며 솔직한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미감 자체도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했고 동시에 ‘커플링’이라는 퀴어문화로 소위 ‘어그로’를 끌고 있던 아슬에게 성적으로 노골적인 메타포는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퀴어베이팅은 ‘직접적인 표현’을 배제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노골적인 성적 메타포 때문에 지금까지 아슬이 만들어온 컨셉이 ‘퀴어 분위기를 풍기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냥 자극적이고 이목을 끌 수 있는’ 이미지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의도를 관철하고 싶었고 ‘솔직함’이 중요한 프로모션이었다면, 그런 논란이 생겼을 때 글을 내리는 악수는 두지 말아야 했다. ‘선정성’의 문제로 글을 내리는 것은 메타포로서 나타나는 ‘솔직한 표현’과 ‘의미’를 버리는 행위와 같은 의미다. 논란을 피하고자 사진을 내린 것은 그것이 메타포로서, 무언가 확실한 의미로써 사용되었다기보단 그저 마케팅을 위한 관심 폭탄에 그쳤다는 걸 스스로 보여준 꼴이다.
K-pop에서 ‘퀴어함’은 퀴어 문화를 대중에게 불편하지 않게 표현하는 투쟁적인 미학으로써 사용되어야 건강하고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아슬의 [TILT]에서는 오히려 퀴어베이팅의 위험한 모습인 극적인 효과를 위한 퀴어함의 피상적 고정관념으로 사용되었다. 퀴어 문화를 단순히 마케팅의 요소로만 사용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일들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마케팅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K-pop 산업에서 퀴어베이팅을 활용한 마케팅이 굉장히 효과적인 것은 맞다. 다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퀴어 팬덤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잘못된 퀴어베이팅 활용은 오히려 치명적인 역효과를 낼 수 있기에 더욱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아슬은 이번 논란 때문이더라도, 아니면 더 긍정적인 방향의 반응을 얻기 위해서라면 이런 방식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레드벨벳의 ‘세가지 소원’이나 ‘Queendom’의 방식처럼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퀴어함이 아닌 퀴어 문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더 올바르고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by. 르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