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MS, siso, QWER, McKinley Dixon 외
광글 : ARTMS(이하 아르테미스)의 첫 미니앨범 [Club Icarus]는 '현대에 살아가는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비밀스러운 클럽"이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아르테미스는 시작부터 타이틀 ‘Club Icarus’까지 이어지는 클래식한 피아노와 스트링의 연주를 통해 자신들의 몽환적인 에스테틱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 함께 과감한 브레이크비트 그리고 묵직한 DnB와 리딤은 속도감을 더욱 끌어올리며 우리를 어두운 밤의 '클럽 이카루스'로 초대한다. 이어 소울풀한 R&B로 시작하는 ‘Obsessed’는 아틀란타 베이스의 808 사운드와 신스 루프를 통해 단숨에 분위기를 전환하고, DnB의 에너지와 저지 클럽의 리듬감이 두드러지는 ‘Goddess’는 속도감을 지속해서 이끌고 나간다. 마치 아르테미스는 자유로운 해방감을 표출했던 '레이브'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실험적인 음악을 통해 각자의 에너지를 주고받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듯하다.
특정 시대의 문화와 결합한 독특한 센스를 보여준 이들에게도 딱 하나 아쉬운 지점이 있다면 바로 마지막 트랙 ‘BURN’이다. 전신의 서사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트랙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전까지 보여준 빠른 흐름의 클럽 분위기와 다른 느린 템포와 누디스코 특유의 리듬감은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일정한 흐름을 가진 클럽 사운드와 다르게 다양한 전환을 보여주는 음악적 구조는 특유의 K팝스러움이 느껴지며 아르테미스만의 독특한 색채가 살짝 흐려졌다. 과거의 이야기보단 앨범의 완성도를 위해 차라리 UK garage의 속도감과 퓨처 하우스의 신비로운 무드를 보여준 ‘Verified Beauty’를 끝으로 클럽의 문을 닫았으면 어땠을까. 15분에 달하는 MV를 공개한 과감함이 음악의 흐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K팝이 밝은 무드의 이지리스닝 기조로 흘러가는 상황에서 아르테미스가 보여준 실험은 또 다른 출구를 보여준 것 같아 앞으로 이들이 만드는 새로운 공간을 응원하고 싶다.
635 : 따뜻한 분위기 속 애틋한 보컬의 ‘사랑이 아닌 단어로 사랑을 말해요’로 대중들이 siso(이하 시소)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어언 1-2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시소의 작업물에서 보이는 건 여전히 ‘조가비’나 ‘도피처’ 같은 음색 위주의 인디/발라드의 곡들 뿐이다. 시소를 포함하여 민수나 최유리와 같은 음색이 특색이고 아이덴티티인 아티스트들의 행보를 보아도 일관된 음악을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다. 그 말은 즉슨 이게 완전히 잘못된 방향성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고, 이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번 시소의 [__에게]에 대한 불만은, 너무 이른 '색깔 굳히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음색을 개성으로 삼는 유형의 아티스트들은 터닝포인트 혹은 특이점이 생기지 않는다면 변화를 주기 힘들다. 때문에 시기의 문제이지 시소 또한 대중들에게 목소리, 음색으로 기억될 것이 기정사실화 되는 중이라고 보인다. 더하여 이번 앨범에 수록된 그마저의 밴드 트랙들 마저도 원본이 있는 곡을 밴드 버전으로 편곡만 하거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뻔한 팝락 사운드이기에 이 트랙들이 시소가 하고 싶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유행에 편승한 결과물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대중들이 그녀의 행보에 관심이 클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인만의 음악관을 넓혀보는 게 어떨까 싶다.
아인 : 앨범 전체가 하나의 흐름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번 QWER은 다르다. 곡마다 감정의 결을 달리하며 하나의 서사를 쌓아간다. 사운드로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이 본격화됐고, 팀 고유의 색은 유지되면서도 음악적 스펙트럼은 훨씬 넓어졌다. ‘검색어는 QWER’의 유쾌한 자의식, ‘OVERDRIVE’의 밀어붙이는 에너지, ‘D-Day’와 ‘Yours Sincerely’의 긴장과 여운은 서로 다른 뉘앙스를 지닌 채 앨범을 밀도 있게 채운다. 팝 록을 기반으로 큐티 팝, 하드록, 발라드까지 장르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정서는 곡마다 미묘하게 전환된다. 다만 몇몇 곡은 여전히 익숙한 구조 안에 머물러 감정의 파열음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팬이라면 앨범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겠지만, 대중은 여전히 타이틀 중심으로 소비하기에 이 진화가 온전히 전달되진 못한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이러한 음악적 변화는 메시지의 방향성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QWER의 세 번째 미니앨범은 '위로'라는 키워드를 정공법으로 다루되, 그것을 직접적으로 던지기보다 하나의 이야기 구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전작 ‘고민중독’과 ‘내 이름 맑음’이 히트곡 중심의 소비와 자의식의 발화에 가까웠다면, 이번 앨범은 콘서트 당일의 흐름을 따라 감정의 고조와 완화를 설계하며, 앨범 단위의 감상을 유도한다. 특히 ‘눈물참기’는 보컬과 밴드 사운드 사이의 거리감이 핵심이다. 보컬이 앞에 설 때 악기들은 조용히 물러서고, 그 여백이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드럼과 기타는 흔들림 없는 리듬으로 무게 중심을 잡고, 보컬은 끝까지 절제된 톤으로 감정을 눌러 담는다.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그 직전에서 멈춰 선 채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이 앨범은 "이해받고 싶다"가 아닌 "네 편이 되겠다"는 메시지로, 감정의 방향을 자신에서 타인으로 옮기고 있으며, 팀의 표현 역시 한층 성숙해진 인상을 준다.
결국 이 앨범은 QWER이 아이돌 밴드라는 외피를 벗고, 창작자로서 스스로의 언어를 발견하고 있다는 증거다. 익숙한 키워드를 다루지만 그 표현 방식은 점점 QWER만의 것으로 번역되고 있지 않은가. 이로서 이번 행보는 'QWER라는 장르'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한다. 세상이 불협으로 가득한 날들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어긋나고, 내 편은커녕 내 말조차 닿지 않는 날. QWER은 그런 하루에 '난 네 편이야'라고 먼저 말을 건넨다. 프레임을 넘어 불협을 품어주는 작은 화음으로, 앨범 전체가 조용히 균열 속으로 들어가 사람을 감싼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조화 위에서 더 낯설고, 더 위험한 감정들을 얼마나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느냐일 것이다. QWER이 그 벼랑 끝으로 조금 더 걸어가 준다면, 누구든 주저 없이 그 끝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635 : 명반을 낸 아티스트의 다음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높은 잣대와 기준을 가지고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McKinely Dixon도 예외는 아니었다. 힙합이라는 장르로 가두기 아까울 정도로 큰 스케일과 재즈 사운드가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 [Beloved? Paradise? Jazz!?]라는 작업물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보적인 재즈 힙합 아티스트로 거듭난 McKinely Dixon이며 그런 그의 다음을 엄격한 시선으로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착한 것은 [Magic, Alive!]이라는 선물이었고 결론부터 말하면 '백투백 명반'이다.
백투백 명반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두 앨범의 연결성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적 서사를 주로 다룬 [Beloved? Paradise? Jazz!?]의 내용 중 친구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번 앨범을 풀어갔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무거울 수밖에 없는 주제에 맞게 지난 앨범의 풍부하고 웅장한 스타일보다는 비교적 진지한 프로덕션은. ‘Watch My Hands’가 첫 트랙으로 등장하며 중후한 분위기를 잡아주는 것부터 알 수 있다. 이후 일종의 분노와 결의에 찬 상태로 죽은 친구를 되살리고자 하는 ‘Sugar Water’와 비트체인지로 감정기복을 나타낸 ‘Recitatif’까지, 모두 과할 수 있지만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선 어쩌면 당연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의 터닝포인트 역할을 하는 ‘We're Outside, Rejoice!’다. 다소 컨셔스 했던 앞 트랙들을 정화하듯 말 그대로 기뻐하자고 말하는 깔끔한 코러스와 그에 상응하는 톤이 효과적이었다. 이렇게 완벽한 분위기 전환 이후 2분 41초라는 짧은 시간에 비트, 벌스, 스킬까지 Mckinley Dixon의 모든 걸 보여주는 앨범과 동명의 곡 ‘Magic, Alive!’로 완전히 치유된듯한 모습으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그 어떤 명반이라도 100% 완벽은 없듯이, 지난 [Beloved? Paradise? Jazz!?]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재즈 요소의 함유량이 너무 높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Magic, Alive!]는 초장부터 진한 래핑으로 지난번과의 차이를 보여주었고 분위기와 가사 모두 비교적 진지하고 컨셔스 하게 구성되었고 덕분에 유기성과 스토리텔링까지 완고해진 명반이 탄생한 것 아닐까. 지난 성공으로 엄격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명반을 만들어온 McKinley Dixon이다. 그런 그에게 '다음번에는 더 좋은 걸 가져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처럼 본인의 재즈 랩이라는 화법을 고수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리고 그게 McKinley Dixon이라면 명작은 또 나올 것 같다. 그게 Magic, Alive니까.
아인 : 사랑은 결국, 잘해주는 일일까. Olivia Dean의 ‘Nice To Each Other’는 그 단순한 질문을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되묻는다. ‘The Hardest Part’가 이별의 잔해 위에서 자립을 선언했고 ‘Messy’가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끌어안았다면, 이번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관계를 대하는 태도만 남는다. 더 이상 눈물도, 후회도, 거창한 맹세도 없다. 그저 오늘 하루, 서로에게 조금 더 나이스해지자는 다짐. 이상하게도, 가장 평범한 이 말이 가장 깊게 와닿는다.
사운드 역시 이러한 변화된 시선을 반영한다. 전작 [Messy]에서 이어지는 소울과 팝의 결은 유지하되, 이번에는 재즈풍 코드와 미니멀한 리듬,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이 된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보컬은 사운드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단, 한 걸음 물러서 균형을 잡는다. 문제는 그 거리다. 곡은 기승전결 없이 잔잔히 흘러가고, 그만큼 감정의 고조도 없다. 마치 완급 없는 대화처럼, 감정을 끌어들이기보단 멀리서 바라보게 만든다. 감정의 파열 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흐름은, 때로는 노래라기보다 하나의 기분처럼 남는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Olivia가 바란 방식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곡은 Olivia Dean의 성숙의 징후처럼 느껴진다. 과거엔 슬픔을 말하던 사람이, 이제는 조용히 친절을 선택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감정의 격정은 덜하지만, 이 담백한 어조야말로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사랑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Nice To Each Other’가 Olivia Dean의 예고된 전환점이길 바란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지나,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관계의 온도를 탐색하려는 지점이길. 친절은 뜨겁지도, 눈에 띄지도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 조용한 태도를 노래하는 Olivia Dean의 선택은, 지금 시대에 가장 용기 있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광글 : 농익은 보컬과 점진적으로 고조되어 합치되는 사운드의 균형이 전반적으로 눈에 띈다. 우선 ‘Spike Island’와 ‘Got to Have Love’는 전성기 시절 [Different Class]의 디스코 감성과 브릿팝의 절묘한 에너지를 다시 보여주며 쾌감을 일으킨다. 또한 경쾌한 리듬과 다 같이 호흡하기 좋은 코러스는 그 시절 Pulp의 공연장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24년의 '완숙'은 트랙의 스킬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풍부한 사운드는 에이징된 와인처럼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여운을 남긴다. ‘Farmers Market’의 섬세한 바이올린은 절대로 흐름을 깨트리는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로맨틱하고 성숙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다. 또한 ‘Background Noise’는 냉장고의 미세한 소리를 현악기의 조정으로 표현한다. 이를 통해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을 갑자기 느꼈을 때의 새로움을 비유한 점은 정말 인상적이다.
또한 과거의 향수를 맡게 하는 장치들을 발견하는 재미는 Pulp만의 유기성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My Sex’의 도발적인 메시지와 어우러진 후반부의 헐떡이는 소리는 과거 Pulp 특유의 과감함이 드러난다. 어쿠스틱한 기타와 오래된 현악기의 연주로 몰입감을 높여준 마지막 트랙 ‘A Sunset’은 과거 마지막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Sunrise’와의 대치를 이루며 지금까지의 여정을 하나로 이어준다. 과거의 모습을 기다린 팬들에겐 즐거움을, 성숙한 모습을 기대한 리스너에겐 OB만이 보여줄 수 있는 노련함을 보여줬다. 이러한 거장의 귀환은 많은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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