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EEZ, KISS OF LIFE, 염따, Better Love 외
제트 : [GOLDEN HOUR] 시리즈의 세 번째 장으로 에이티즈의 강렬한 그룹 색 위 여름의 청량한 계절감을 얹으려는 시도가 엿보이지만, 기존 음악에 약간의 변주만을 더한 안전한 선택에 그치고 말았다. 타이틀곡 ‘Lemon Drop’은 동일 시리즈의 앞선 챕터인 ‘WORK’, ‘Ice On My Teeth’와 유사한 리듬과 구조를 공유하며 기시감을 남긴다. 특유의 묵직한 래핑이 기존 에이티즈의 색을 환기하지만, 이는 가벼워진 소리 사이 얼핏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수록곡인 ‘Masterpiece’나 ‘Now this house ain’t a home’에서 시원한 보컬, 무거운 랩, 캐치한 구절이 자연스레 어우러져 습한 여름이 그려지는 듯하다. 더불어 사운드의 얕은 깊이나 단순한 반복은 다양한 톤의 가창을 평면적으로 희석하며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아이돌 그룹이 새로운 콘셉트나 장르를 시도할 때, 적어도 하나의 정체성이나 캐치 포인트는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에이티즈는 에너지 넘치는 음악과 돋보이는 가창 역량, 시리즈 시스템 속 뚜렷한 서사를 강점으로 한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이러한 장점과 고유한 에너지가 시원함을 겨냥한 무드 뒤 다소 흐릿해져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가장 짧지만 가장 다이내믹했던 아웃트로 ‘Bridge : The Edge of Reality’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는 것은, 타이틀곡을 포함한 전 트랙들이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보기 드물었던 '청량한 에이티즈'를 시도한 점은 분명히 반갑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세차장이나 주차장을 배경으로 하는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흔치 않았던 싱그러운 이미지를 선보이며 에이티즈라는 팀의 소화력과 콘셉트의 확장성을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표면적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에 부응하는 사운드적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조금 더 부지런한 사운드 설계는 멤버들의 탄탄한 실력을 날개 삼아 에이티즈만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깊고도 넓게 확장할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배게비누 : 지난 앨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을 꼽자면, 타이틀곡 ‘Get Loud’보다 더 큰 관심을 받은 수록곡 ‘Igloo’일 것이다. 곡의 컨셉이 분명하고 강렬한 ‘Igloo’가 타이틀보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앨범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이며, 타이틀 선정에 대한 아쉬운 평이 이어지고 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타이틀곡 ‘Lips Hips Kiss’는 2000년대 초반 힙합 소울 감성을 잘 살린 좋은 곡이지만, 여자 아이돌의 타이틀곡으로서는 다소 스무스한 느낌이다. 특히 부쩍 더워진 요즘 날씨를 생각하면, 아프로비츠와 하우스 장르 기반의 ‘Tell Me’처럼 좀 더 경쾌하고 시원한 트랙이 타이틀곡으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 전체의 퀄리티는 상당히 높다. 대부분 흑인 음악의 터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각 트랙은 개성을 유지하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휴양지의 노을 진 해변이 떠오르는 ‘Tell Me’, 한여름 해수욕장에서의 설렘이 느껴지는 ‘Painting’, 그리고 여름밤 도심 속 파티를 연상케 하는 ‘Slide’까지. 전형적인 썸머송은 아니지만, KISS OF LIFE만의 감성으로 여름의 다양한 장면을 그려냈다.
‘타이틀곡은 하늘이 점지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타이틀을 정하는 일이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이 팀의 앨범을 들어보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팀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간 반응이 좋았던 ‘Sugarcoat’, ‘Midas Touch’, ‘Sticky’, ‘Igloo’처럼 장르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K-POP 팬들에게 친숙한, 퍼포먼스가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의 댄스곡이 필요하다. 좋은 곡을 충분히 가져올 수 있는 팀이니만큼 하루빨리 대중성과 장르 사이의 접점을 찾길 바란다.
Noey : 성공 이후의 삶이 화려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전의 [살아숨셔] 시리즈가 성공을 향한 갈망과 성취감을 담았다면, 이번 [살아숨셔 4]는 염따가 겪었던 크고 작은 논란 속 후회, 슬픔, 성공의 이면에 있던 고통 등의 감정을 다룬다. 앨범 곳곳에서는 디스전에 휘말렸던 일로 인한 후회와 진심 어린 사과, 과거를 함께 했던 옛 동료의 이야기, 유명해질수록 오히려 더 커져버린 공허함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까지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메시지를 특유의 밝은 터치로 접근하며 부담 없이 풀어낸다. 타이틀곡 ‘더콰이엇’에서는 노골적으로 대상을 지칭하는가 하면, ‘Y-3’의 '진심핑', '럭키비키'와 같은 가사로 중간중간 피식하게 하는 유머도 놓치지 않았다. 물론 코요태의 ‘순정’을 샘플링한 ‘순정(純情)2025’과 같이 후반부 몇몇 트랙들은 전체적인 흐름과 살짝 동떨어진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25분의 러닝타임, 총 10개의 트랙은 시작과 끝을 부모에게 헌정하는 염따식 서사를 따른다. 짧지만 밀도 있는 구성이다. 첫 트랙 ‘갓생’에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시작하여 마지막 트랙 ‘마’에서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전하는 흐름은 염따의 인간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해 준다. 한때 'FLEX'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그가 이제는 진심을 앞세워 자신의 삶 자체를 음악적 소재로 삼는 건 반갑고도 의미 있는 변화다. 무엇보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를 꾸밈없이 담아낸 덕분에, 그의 음악은 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성공에만 취한 음악보다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는 태도가 더 가치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음악이 대중에게 깊숙이 와닿는 힘은 결국 아티스트의 진정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염따의 방식은 옳았다. [살아숨셔 4]는 음악적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앨범 전체를 가식 없이 써 내려간, 가장 염따다운 앨범이다.
제트 : 시카고 출신의 3인조 혼성 얼터너티브 팝 밴드 Better Love는 기타와 드럼이라는 익숙한 악기 구성을 바탕으로 간결한 곡 구조 안에서 낭만적인 멜로디를 담아낸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말처럼 어딘가 익숙한 사운드는 편안한 보컬, 유연한 흐름과 맞물려 부담 없이 들린다. 하지만 마냥 지루하지도 않다. ‘back to you’에는 예상치 못한 랩 파트로 다이내믹을, ‘get it right’에서는 화한 전자 악기 소리를 절묘하게 더해 단조로운 인상을 피한다. ‘whatever 4 now’에는 전 트랙과 대비되는 속도감 붙은 기타와 드럼으로 앨범 중반부에서 업비트한 분위기 환기도 놓치지 않았다.
트랙마다 보컬의 성별이 교차하는 구성은 이 앨범의 가장 큰 재미다. 간단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일차적인 사운드의 다이내믹을 형성하며 다음 트랙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곡별로 보컬을 분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show me’에서는 타이트한 보컬 레이어링을 통해 미묘하게 한 목소리로 들리는 깔끔한 사운드를, ‘june’에서는 화음을 강조해 풍성한 하모니를 연출하며 단출한 인원을 최대한 활용한 영리한 전략을 보였다. 더불어 두 보컬의 유사한 결은 이 방식들이 개별 곡 안에서도, 앨범의 전반적 흐름에서도 자연스레 작동하도록 이끈다. 이처럼 똑똑한 보컬 배치는 음악 간 통일성과 생동감을 더하며, 미니멀한 구성에도 충분히 풍성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즉, [a quiet place to go]는 혼성 밴드라는 구조적 이점과 보컬의 특색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앨범이다. 실험적인 편곡이나, 파격적인 보컬로 앨범의 밀도를 무리하게 높이지 않고, 사운드의 구성과 배치만으로 팀의 여건에서 최대한의 출력값을 뽑아낸 점은 단연 돋보인다.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Better Love라는 밴드의 음악적 접근 방식을 가장 잘 드러낸 앨범이자, 소규모 밴드의 이상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배게비누 : 이 앨범의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독특한 보컬과 일본어를 몰라도 전달되는 섬세한 감정 표현이다. 마치 허무와 슬픔에 몸부림치는 한 인물의 1인 극을 듣는 듯했다. 전반부에서는 재즈 사운드가 전면에 부각되며, 트랙이 넘어갈수록 점차 템포가 빨라지고 감정선이 고조된다. 그러다 ‘サマーランド’에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다. ‘野猿’부터는 읊조리는 듯한 보컬이 메인이 되는데 이때 음악은 대사를 위한 반주 같기도 하다. 이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곡은 'ステイウィズミー’로, 피아노 하나로만 연주되는 쓸쓸한 음악과 보컬이 다음에 나올 클라이맥스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마지막 트랙인 ‘銀河ゴールデンボーイ’에선 언어를 넘어서 점차 격양되는 감정 표현이 느껴지고, 끝내 절정에 달하는 서사로 앨범은 마무리된다.
[勇気]는 betcover!!가 그간 발표해 온 정규 앨범들과는 다르게 사이키델릭하거나 소음으로 들릴 수 있는 요소를 최소화했다. 거기에 1번부터 3번 트랙에서 들을 수 있듯이 '재즈'라는 장르에 특히 집중했다. 데뷔 초반 EP 앨범들에서 두드러졌던 팝적인 느낌과 재즈를 베이스로, 밴드 특유의 혼몽한 사운드를 절묘하게 조합한 이 작품은 진입장벽을 낮추며 아트록 앨범임에도 비교적 쉽게 청자에게 다가간다. 팝적으로 대중성을 노렸던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새로운 접근이자 betcover!!가 시도한 음악적 실험으로서 신선하고 재밌는 신보였다.
Noey : 앨범 제목부터 커버, 비주얼까지 중세 판타지라는 일관된 세계관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음악은 예상외로 은유적이고 감각적으로 접근한다. 첫 트랙 ‘Renaissance’ 속 나레이션과 웅장한 콰이어 사운드가 영화의 한 장면을 그려냈다면, 우쿠렐레의 담백한 도입부 위 예상치 못한 브레이크 비트와 삼바 퍼커션을 활용한 ‘Guts’는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는다. 이어지는 ‘Knight Shift’에서는 90년대 후반 - 00년대 초반 R&B와 힙합이 가진 향수를 소환하면서도 가사와 분위기 전반에서는 앨범의 중심 테마를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 트랙 ‘Thirteen’은 반대로 가벼운 어쿠스틱 사운드로 마무리하는데, 마치 동화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듯 가볍고 산뜻한 기분이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사운드는 분명 팝의 영역에서 움직이되, 그 구조과 전개는 전형적인 틀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세 판타지라는 설정은 자칫하면 유치하거나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리스크가 있었음에도 그녀는 특유의 재치와 균형감으로 이를 세련되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판타지 배경이 그녀의 음악을 제한하지 않고, 오히려 예상 밖의 다양한 사운드 실험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준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각의 트랙은 앨범 전체의 콘셉트와 조화를 이루며 청자에게 다채로운 감상을 선사한다. 이처럼 Ellie Dixon은 소재가 지닌 클리셰를 자연스럽게 지우면서도, 팝 음악 안에서의 자신만의 공간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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