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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해외 상반기)

billy woods, caroline, Ichiko Aoba 외

by 고멘트

"저숭라라의 힙합 페스티벌"


1. billy woods - [GOLLIW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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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실베실 : 서늘하다. 귓속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첫 트랙 ‘Jumpscare’의 제목과 그 트랙에서 들려오는 공포 영화스러운 벨 소리를 시작으로 섬뜩한 신스, 피아노, 전화 연결음, 여자의 울음소리, 불길한 트럼펫 소리 등이 매 트랙마다 등장해 앨범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나아가 내로라하는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해 각자의 개성을 뽐내기까지 한다. The Alchemist가 프로듀싱한 ‘Counterclockwise’에서는 드럼리스 장르를 선보이고, El-P가 프로듀싱한 ‘Corinthians’에서는 특유의 익스페리멘탈한 온갖 사운드가 몰아치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앨범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유지되니, 어찌 보면 본작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올스타들이 모여 큐레이팅한 일종의 공포 힙합 단편선으로도 볼 수도 있겠다. 물론 이 화려한 라인업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앨범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billy woods의 역량 덕분이다. 이번에도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이 빛을 발해 흑인 사회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냈으며, 그만의 독특한 플로우는 이 스토리텔링을 누구보다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낸다. 작년 [#RICHAXXHAITIAN]을 다루며 "어쩌면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이제 하락세에 접어들 수도 있겠다"라고 했건만, 이는 오만한 예측이었나 보다. 그렇지만 billy woods가 아닌 그 누가 이런 음악을, 이런 주제를 다룰 수 있었겠는가. 이제 그는 언더그라운드의 켄드릭 라마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언더그라운드 내라면, 그 이상의 위상일 수도.





"이상하게 뒤섞여도 아름답고 서정적인 무언가"


2. caroline - [carolin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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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영 : 영국의 8인조 포스트 락 밴드가 방대한 악기로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실험적인 사운드는 마치 앰비언트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처럼 광활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첫 트랙 ‘Total Euphoria’에서 마지막 트랙 ‘Beautiful Ending’에 이르기까지, 어쿠스틱한 기타 연주 위에 다소 날카로운 스트링 사운드와 노이즈, 오토튠, 브라스 등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사운드가 차례차례 얹어지거나 한데 섞이면서, 포크 팝 멜로디와 합쳐져 '새로운 서정성'을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밴드 caroline이 가진 특유의 서정성이 극대화되는 지점은 선공개 싱글이자 타이틀곡 중 하나인 ‘Tell me I never knew that’이다. 미국의 아방가르드 팝 아티스트 Caroline Polachek의 신비로운 음색은 자칫하면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여러 사운드들을 접착제처럼 이어 주어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리듬감 있는 트랙을 탄생시킨다. 그 이후의 트랙에서도 즉흥 연주를 통해 겹겹이 쌓여가는 사운드는 따로 들으면 이질적이고 소음처럼 들리는 소리조차도 조화로운 협주곡의 일부처럼 들리게끔 한다. 불협인 듯하면서도 결국 '아름답다'고 평할 수밖에 없는 오묘한 사운드는 마치 들판으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도 보고자 하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도 같다. 기꺼이 더 듣고 싶다. 그 아름다움을 또다시 경험할 수만 있다면.





"예술은 기술로 만들어내는 착각의 연속."


3. Ichiko Aoba – [Luminescent Cr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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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망 : 대중음악은 표제에서 발생하는 극적인 감정을 청자들에게 체험시켜 준다. 보통의 가요는 '사랑'과 '이별'이라는 보편적인 표제 사이에서 감도를 달리하여 각각 존재한다. 다만, 세상 모든 것이 두 가지 표제에서 끝나지 않듯, 음악도 그렇지만은 않다. 대중들이 실제 경험하기 어려운, 미디어가 만들어낸 판타지 속에서만 존재하는 순간들을 사운드로 모작하여 경험시켜 주는 음악도 존재한다. Ichiko Aoba (이하 아오바)의 [Luminescent Creatures]는 그런 음반이다. 전작 [Windswept Adan]에서 만들어낸 Adan이란 해양 세계관에서 아오바가 목격하고 경험한 현상과 감정들을 사운드로 표현하는 음반. 해양을 떠오르게 하는 앨범 자켓을 먼저 마주한 후, 1번 트랙 ‘Coloratura’를 듣는 순간, 청자는 아오바가 만들어낸 해양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깊게 빠져버린 청자들은 그 후에 모든 트랙에서 등장하는 사운드들을 해양 속의 오브제로 착각하게 된다. 청자들은 3번 트랙 ‘manzamun’에서 나오는 첼레스타 소리와 이로 발생한 노이즈를 파도 소리로 느끼게 되며, 8번 트랙 ‘Luciferine’에서 나오는 현악기와 피아노, 드론 사운드를 바닷속에서 마주한 비현실적인 해양 생태계로 느끼게 된다. 이런 청각적 착각은 아오바가 앨범의 사운드를 완벽하게 통제하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각기 다르지만, 영화에서는 카메라를 통해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기에 느끼는 감정이 어느 정도 통제된다. 맞다. [Luminescent Creatures]는 영화 같은 음반이다. 비현실적인 해양 생태계를 아오바의 시선으로 그대로 옮겨놓아 거기서 느낀 애환, 그리고 바닷속에서 만난 비현실적인 발광생물을 만나 치유되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을 가사의 의미를 몰라도 아오바가 만들어낸 사운드 스케이프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Queen Never Die"


4. Lady Gaga - [MAYHEM]

유진 : 레이디가가가 돌아왔다. 그간 배우, 재즈 앨범, 사운드트랙 등으로 얼굴을 비추어 오긴 했으나 대중이 갈증을 느껴왔던 '그' 레이디가가는 아니었다. ‘Bad Romance’나 ‘Born This Way’ 같이 상식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컨셉과 온몸을 내던져 무대를 압도하던 레이디가가 말이다. 이번 [MAYHEM]은 오랜 갈증 끝에 도달한 해방감이 느껴지는 걸작이었다. 그녀의 음악 세계를 지탱해 온 '오페라'라는 미학적 토대가 앨범 전반을 관통하며, 다시 한번 그녀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증명했다. ‘Disease’는 그녀 특유의 과장된 창법과 극적인 구조가 인더스트리얼의 기계적인 사운드가 다크하게 맞물리며,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끄집어 내 시원하게 포효해 낸다. 레이디가가가 대체불가능한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오페라의 웅장한 에너지와 처절한 서사를 댄스 팝으로 승화시켜 영혼을 강타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강렬함 속에서 우리는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된다. 특히나 ‘Perfect Celebrity’의 메이저코드가 연속되는 진행은 비장하면서도 종지감을 주지 않아 희망적인 느낌을 자아내, 단연 레이기가가를 대변하는 사운드 그 자체였다. 의도된 것일까? 첫 트랙은 목숨을 위협하는 ‘Disease’로 시작해서 마지막 트랙은 아날로그의 낭만과 소울의 그루브를 더해 감동을 자아내는 ‘Die with Smile’로 종지부를 찍는다. 몇 차례의 죽음이 가까워져도 일어나고 다시 일어났던 그녀인데, 정작 혼돈의 세상 끝에서는 사랑하는 이와 웃으며 생을 마감하겠다는 낭만적인 엔딩이다. MAYHEM은 말 그대로 록, 펑크, 인더스트리얼, 디스코, 신스팝의 여러 감각들이 아수라장이 되어 뒤섞이고 재탄생되며 그녀의 음악 인생 전체를 집대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통과 환희, 삶과 죽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 안는 에너지. 레이디가가의 모든 것을 담아낸 수작이었다.





"내 욕망은 내가 골라"


5. Lola Young - ‘One Thing’

아인 : 사랑에 지치고, 스스로조차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마이크 앞에 섰던 Lola Young의 목소리는 날것의 감정이자 위로였다. ‘Messy’에서는 허스키한 보컬과 거친 밴드 사운드로 감정의 혼돈을 쏟아냈고, ‘Conceited’에선 냉소적인 시선으로 관계의 균열을 비틀었다. 그런 그녀가 신곡 ‘One Thing’에서 꺼내든 건, 쾌락과 주도권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 도입부부터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 미니멀한 리프, 툭 내던지는 보컬. 그녀는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그 흐름을 쥐고 흔든다. 가사는 직설적이지만 유혹이 아닌 선언에 가깝고, 그 안엔 쾌락을 통제하는 쿨한 거리감이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 변주가 아니라, 여성 아티스트가 욕망을 말하는 방식 자체를 재정의한 순간이다. 지금까지 여성의 욕망은 음악 안에서도 외적인 섹슈얼리티로만 소비되곤 했다. 감춰야 하거나,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욕망이 이제는, ‘One Thing’을 통해 당당히 제 목소리를 갖는다. 이 곡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말할지를 스스로 고른다. 쾌락은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의해 정의되지 않으며, 그 시선을 뒤집고 유머와 전략으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곡이 반갑다. 욕망을 노래하면서도 결코 휘둘리지 않는 뻔뻔함, 그 안에 깃든 확신. ‘One Thing’은 단지 한 곡의 싱글이 아니라, 여성 아티스트가 자기 언어로 욕망을 영리하게 설계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점이자, 욕망의 주체가 바뀌었음을 말해주는 지금 시대의 문장이다.





"Oklou가 피워낸 감정의 씨앗"


6. Oklou - [choke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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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 : 감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어떤 감정은 인식되기도 전에, 어딘가에서부터 서서히 스며든다. [choke enough]는 바로 그 흐름에 주목한 앨범이다. 감정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그것이 생겨나는 분위기와 공간을 사운드로 정교하게 빚는다. Oklou는 트랜스의 공간성과 베드룸팝의 내밀함 사이를 유영하며, 청자를 감정의 초입으로 천천히 데려간다. 이를테면 ‘thank you for recording’에서 여린 보컬을 하나의 악기처럼 다루며, 신스 플루트와 마치 이중주를 이루듯 부유시킨다. 이내 곧 차가운 전자음과 맞물리며 기술과 감성 사이 어긋난 공존이 암시되면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인털루드의 사이렌을 지나 ‘take me by the hand’에 이르면, bladee에게 건네는 '구해줘'라는 속삭임이 리버브에 잠식돼 수면 아래 퍼지는 메아리처럼 공간을 채운다. 슬픔일까, 구원일까, 혹은 그냥 공허함의 잔상일까. 감정은 끝내 특정되지 않은 채, 각자에게 다른 얼굴로 남아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이처럼 앨범은 말을 건넬 듯 맴돌다가 끝내 침묵하고, 청자는 그 여백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찾아가게 된다. [choke enough]의 특별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감정이 서서히 형태를 띠는 과정을 음악으로 그려냈다는 점. 이 측면에서, 이 앨범은 올해 가장 정교한 감정의 구조물이라 부를 만하다.





"독소 배출 러닝 메이트"


7. ONE OK ROCK - [Det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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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린트 : 강렬한 밴드 사운드는 러닝과도 같아서 듣는 이의 아드레날린을 끓게 하지만 너무 강하면 러너스 하이가 오기 전에 귀가 지쳐버리고, 또 밋밋하면 달아오르게 하지 못하는 밋밋한 팝이 되어버린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페이스 메이킹이 딱 적당한 앨범은 찾기 어렵다. 미국 진출 후 ONE OK POP이 되어 버렸던 원 오크 락이지만 이번 앨범에서의 페이스 메이킹은 딱 적당한 감도였다. 강하고 선명한 질감에도 완성도 높은 밸런스로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사운드와 멜로디는 감정을 격하게 끓게 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아 딱 달리기 좋은 텐션을 제공한다. 별 장치 없이도 시원한 타카의 보컬 또한 명불허전이라 상쾌한 맞바람이 되어준다. 달리는 동안 시시각각 바뀌는 풍경처럼 다양한 매력의 트랙이 그리는 감상도 재미있어 버릴 곡이 없었다. [DETOX]라는 앨범명처럼 뜨겁게 이글거리는 격렬한 곡으로 긴장을 준 후 파랗게 트인 하늘의 개방감을 가진 곡으로 해소해 주는 티키타카식 트랙 배치가 땀이 쏙 빠지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며 지치지 않고 달아오를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차분한 두 곡(‘Tiny Pieces’, ‘This Can't Be Us’)이 막을 구분한 후 다시 ‘+Matter’와 ‘C.U.R.I.O.S.I.T.Y.’로 달콤짭쪼름하게 달려가는 구간은 그러한 유기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앨범을 완주하면 알맞게 조절된 에너지 레벨로 록이 줄 수 있는 바삭한 열기를 즐기면서도, 장르 불문하고 앨범을 재밌게 해주는 구성으로 심장을 뛰게 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쾌감은 누가 언제 어디서 들어도 충분히 달아오르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장르의 틀 밖에서 찾은 황금비율"


8. Polo & Pan – [22:22]

Noey : 트렌드를 좇다 비슷비슷해져 버린 음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Polo & Pan의 [22:22]는 기대 이상의 신선함으로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전자음악에 뿌리를 두면서도 그 장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이 프렌치 듀오는 이번에도 프렌치 하우스, 디스코, 포크, 두왑까지 다양한 장르를 무심한 듯 휘젓고 다닌다. 말 그대로 디스코의 꿈결 속으로 이끄는 ‘Disco Nap’에 이어 Beth Ditto의 매혹적인 보컬이 돋보이는 ‘Petite Etolie’의 느긋하면서도 힘 있는 그루브를 지나면, 경쾌한 템포의 스릴을 선사하는 ‘The Mirror’와 어쿠스틱 기타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Bluetopia’가 극과 극의 매력을 보여준다. 마치 앨범의 숫자 '22:22'가 보여주는 좌우 대칭의 완벽한 균형처럼 트랙마다 색다른 장르와 사운드의 대비는 다양하되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보컬이 참여해 곡마다 캐릭터를 새겨 넣은 것도 큰 몫을 했는데, 덕분에 청자는 팝 앨범처럼 친근한 후렴을 흥얼거리게 된다. 단순히 분위기를 넘어 완성도라는 지점까지 도달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의 비율은 분명 1:1이었다. 그 어떤 것도 과함이나 모자람 없이 딱 맞아떨어졌으니까.





"심장 위로 스며드는 감정의 파편들"


9. Sam Fender – [People Watching]

광글 : 우리의 삶은 참으로 미묘하다. 심플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고, 경쾌하지만 언제나 밝기만 한 것도 아닌 느낌이랄까. 하트랜드 록의 대가인 Bruce Springsteen이 이러한 양가적인 순간들이 교차하는 삶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에 담아냈던 것처럼, Sam Fender (이하 샘 펜더) 역시 그 에너지를 이어받아 '같지만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풀어냈다. 먼저 어쿠스틱 기타 스트럼 사운드와 중후한 보컬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고스란히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색소폰과 하모니카를 더하며 클래식한 감성까지 놓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샘 펜더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노래하며 시제를 자연스럽게 과거에서 현재로 옮긴다. 터프한 기타 리프와 거친 보컬과 함께 무너져가는 사회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하트랜드 록이 지닌 사회적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또한 점점 스며드는 스트링 사운드와 몽환적인 신스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작은 촛불처럼 은은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앨범의 깊이를 더했다. 특히 성스러운 느낌을 선사하는 마지막 트랙의 오케스트라 편곡은 삶에 대한 의지를 더욱 견고하고 절실하게 전하며 앨범의 마침표를 찍는다. 시끄럽고 혼잡한 시대, 여러 장르가 혼합된 복잡한 음악이 유행하는 가운데도 단순하지만 묵직한 이 앨범은 오히려 뚝심 있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그 길을 걷는 샘 펜더의 발걸음은 마치 종이에 물방울이 떨어지듯 어느새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지친 이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지 않을까.





"악기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진가"


10. Sault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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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트 : 악기 사운드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직관적인 하모니를 한껏 맛볼 수 있는 앨범이다. 플루트, 색소폰, 트롬본, 트럼펫, 현악, 드럼, 피아노, 오르간, 신디사이저, 베이스, 호른, 기타까지 수많은 악기는 풍성하게 울려 퍼지며 10개의 트랙을 가득 채운다.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다채로운 사운드 속에서도 모든 소리의 질감이 또렷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스 기타와 여러 관악기, 보컬의 간드러진 조합이 인상적인 ‘R.L.’, 단순한 구성 속 에어리한 코러스와 한껏 응축된 보컬의 조화가 돋보이는 ‘L.U.’는 악기와 가창이 균형을 이루며 두 텍스처를 모두 명확히 드러낸다. 청아한 피아노와 리버비한 소울 보컬 사이 트롬본이 스며들며 풍부해지는 구성의 ‘S.I.T.L.’이나, 비교적 간결한 구성의 ‘H.T.T.R.’는 비워낸 공간마저 음악적 질감으로 작용하며 섬세한 몰입을 유도한다. 기술 중심의 현대 프로덕션 속 악기는 단편적인 요소로 소비되거나 대체되는 경우가 만연해진 현재, [10]은 이처럼 악기 본연의 미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현대적인 감각을 끌고 오되, 악기 자체 소리의 순도와 밀도, 그리고 적절한 정도라는 요소를 전부 잡았다. 세련됨과 80년대 알앤비의 향수가 공존하는 리듬, 두툼하게 얹힌 생생한 악기는 그 자체로 생동적인 전개를 이끌고, 그 위에 얹힌 감칠맛의 보컬과 다이내믹한 템포는 그 깊이를 배가한다. 단순히 많은 사운드를 담아낸 것을 넘어 수많은 소리가 각기 살아 숨 쉬고, 그 자체로 예술성과 완결성을 갖는 음악. 그것이 [10]이 가진 가치이다.





"고도로 발달한 재현은 모방과 구분할 수 없다"


11. Tate McRae - [So Close To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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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5 :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속 유행은 돌고 돌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유행을 누가 더 현시점에 맞게 재현하느냐는 능력의 문제인 것이고. 최근 대중음악 씬에서는 하이퍼 팝의 유행과 더불어 유사한 장르인 일렉트로닉 팝에도 이목이 갔으며, 어쩌면 당연하게도 00년대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푸시캣 돌스가 떠오르게 되었다. 이들을 고스란히 그려낸 [So Close To What]가 기시감을 넘어서 오히려 반갑고 정변 된 느낌을 줬다면 Tate McRae가 '00 to 25'의 재현을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공개된 ‘Sports Car’의 인트로에서 들리는 신스 사운드가 강렬하게 푸시캣 돌스의 ‘Button’을 바로 연상시키며 재현의 첫걸음을 보인다. 뒤이어 극적인 멜로디와 그 시절 특유의 벅차오르는 감정선의 ‘Purple lace bra’또한 00년대 복각에 완성도를 더했다. 하지만 이에 그쳤다면 성공적인 현대적 재현이 아니라 00년대의 모방품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So Close To What]를 성공으로 이끈 것은 ‘Revolving door’에 차용된 저지클럽 비트나 ‘bloodonmyhands’의 아탈란타 베이스 같은 비교적 최근 트렌드의 사운드들이다. 덕분에 20년 전, 00년대의 유행이 25년인 현재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지 않을까. 항상 지난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재에 불만을 갖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하면 최고의 향수를 선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지 않나 싶다.





베실베실 선정 <2025년 상반기 해외 앨범 Top 10>

betcover!! - [勇気]

billy woods - [GOLLIWOG]

BRUIT ≤ - [The Age of Ephemerality]

caroline - [caroline 2]

Deafheaven - [Lonely People With Power]

青葉市子 (Ichiko Aoba) - [Luminescent Creatures]

Kelela - [In the Blue Light]

McKinley Dixon - [Magic, Alive!]

MIKE - [Showbiz!]

YHWH Nailgun - [45 Pounds]





by 고멘트 <주간 신보 리뷰>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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