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 전기뱀장어, 전소미 외
광글 : 과거의 데카당은 몽롱해지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진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취한 듯한 블루스 보컬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무언가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듯한 그루브가 강조되었던 반면 이번 음악은 투박하고 단단하다. 귀를 사로잡는 날카로운 사운드는 직선적인 '소리'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며, 특히 강렬한 소리를 통해 야생적인 무드를 의도적으로 연출한 점이 눈에 띈다. ‘아고그’에서는 말하는 듯한 목소리에서 순식간에 소리를 지르는 보컬로 변화하는 대비를 통해 저돌적인 감성을 표현한다. 또한 묵직한 베이스 리프와 디스토션된 기타는 노이즈를 극대화하며 메탈 특유의 거친 바이브를 펼쳐 보인다.
다만 야생적인 분위기만 보여주려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전개가 예상 가능하다. 마치 실험적인 음악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전형적인 흐름 같달까. 아이러니하게도 실험이 실험답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고그’의 인트로와 아웃트로는 모두 비슷한 연주로 이어지고, 앞서 말한 대비 또한 역시 반복되면서 처음만큼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쿠션 넘버원’에서 늘어지는 플로우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싱글은 귀를 매료하는 데카당만의 방식이 조금 더 와일드하고 에너제틱한 방향으로 진화했음을 알리는 신호탄 정도에 그치는 것 같다.
아인 : 전기뱀장어의 신곡 ‘혁명의 연인들’은 그간 이들이 쌓아온 서정적인 감성 위에 전혀 다른 무게를 얹는다. 사랑과 일상의 단면을 경쾌하게 그려내던 ‘송곳니’나 ‘별똥별’과는 달리, 이번 곡은 거리의 함성과 집단적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묵직한 록 사운드와 펑크적인 추진력, 그 위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리듬감은 단순한 분위기 전환이 아니라, 음악적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서사를 품어내려는 의지로 읽힌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주제와 스타일을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꿰어낸 구성이다. 메시지에 휘둘리거나, 반대로 형식에 함몰되지 않고, 두 축을 단단히 껴안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이 태도 자체가 전기뱀장어의 가장 성숙한 진화처럼 느껴진다.
음악적으로도 ‘혁명의 연인들’은 목적이 분명한 곡이다. 마치 행진을 떠올리게 하는 드럼 라인과 두터운 밴드 사운드, 구호처럼 반복되는 후렴은 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증폭시킨다. 편곡은 기본 밴드 편성에 충실하지만, 급격히 변화하는 멜로디 라인을 통해 서사적 입체감을 만들어낸다. 기교 없이 뚝심 있게 나아가는 구성은 오히려 음악적 진정성과 성취를 더 크게 만든다. 사운드는 정제되기보단 살아 움직이며 곡의 정서와 함께 호흡하고, 황인경의 보컬 역시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폭발한다. 그것은 '멋있음'보다는 '믿음직함'에 가까운 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함께'라는 단어가 있다. 전기뱀장어는 "2등 시민"이라 불렸던 이들이 거리의 선봉에 섰던 장면을, 가장 다정한 언어인 '연인'으로 치환하며 저항의 풍경을 따뜻하게 감싼다. 이 곡은 투쟁과 연대를 단순한 구호로 외치기보다, 슬픔과 연민, 고마움이 뒤엉킨 풍경을 시적인 이미지로 그려낸다. "앞서간 친구를 찾아 난 가네", "숲이 움직이면 왕이 죽는다"는 문장들은 단단한 의지를 품고 있지만, 그 감정의 결은 분노보다 사랑에 가깝다. ‘혁명의 연인들’은 그렇게 정치적 사건을 정서적 기록으로 바꾸고, 구호를 서사로 치환하며, 한국 인디 록 안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감정의 밀도와 윤리를 만들어낸다. 저항의 감정조차 따뜻하게 품어내는 방식, 그것이 지금 전기뱀장어가 혁명을 노래하는 방식이다.
베실베실 : 노래 자체의 퀄리티는 무난하다. 벌스의 훵키한 기타 리프와 튀지 않는 누디스코 리듬, 코러스의 절제된 베이스 드랍은 새롭진 않아도 모난 부분은 없으며, 사브리나 카펜터가 떠오르는 비주얼 역시 곡의 컨셉과 잘 어우러진다. 문제는 "이 곡이 왜 지금 나왔냐"라는 것이다. 곡이 무난하다는 것은 반대로 어필할 만한 큰 무기가 없다는 뜻이다. ‘DUMB DUMB’, ‘XOXO’, ‘Fast Forward’ 등을 통해 적당한 온도의 클래식한 하이틴 팝스타 이미지를 잘 구축해 가던 전소미는 너무 지나치게 복고로 오버 쿡된 ‘Ice Cream’에서 제대로 고꾸라져 버린 상황. 지금은 어떻게 해야 반등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이런 지극히 무난한, 수록 곡 정도로나 적합했을 ‘Extra’로 반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마치 옷을 잘 입는 척하지만 막상 TPO를 신경 쓰지 못하는 친구를 보는 느낌이다. 옷을 데일리로 너무 캐주얼하게 차려입었다. 지금은 쉬어갈 때가 아니라 힘을 줘야 할 때인데 말이다.
베실베실 : 참으로 국밥 같은 든든함이다. 다른 알맞은 수식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1집 [Durand Jones & The Indications]에서부터 3집 [Private Space]까지 이어져 온 스무스 소울, 필리 소울 장르를 다시 한번 선보였으나 물리기보다는 검증된 프랜차이즈 맛집에 가깝다. 필리 소울 넘버 ‘I Need The Answer’는 참으로 로맨틱하며, ‘Flower moon’은 재지한 스무스 소울을 찾는다면 실로 좋은 선택이다. ‘Really Wanna Be With You’는 같은 필리 소울이지만 MFSB의 ‘TSOP’처럼 디스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그 작법을 잘 캐치하여, 본 앨범의 베스트로 뽑기에 손색이 없는 곡이다.
어차피 이 팀의 리스너들이 원하는 온도도 이런 익숙한 맛의 고전적인 소울일 터, 굳이 새로운 장르를 택하며 변화를 꾀할 필요도 딱히 없다. 즉, 이 팀은 TPO를 맞출 줄 아는 팀이라 할 수 있겠다. 다채로운 컬러 조합, 유행하는 아이템을 택하지 않지만 상황과 니즈에 맞게 잘 골라 입는다. "중간만 가도 성공한다"의 가장 좋은 예시가 아닐까.
아인 : Easykid의 [I'M PART]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앨범'이다. 그는 정제된 비트 위에 고립과 균열의 정서를 얹고, 그 안에 연대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내비친다. '컬트'라는 개념은 폐쇄적인 정서 공동체로 구현되며, Easykid는 그 안에서 자신이 한 조각(I'm part)임을 선언한다. 다만 이 앨범의 메시지는 구체적인 서사라기보다 모호하고 반복적인 감정의 인상에 가깝고, 그것이 때로는 거리감으로 작용한다. 결국 이 앨범은 소속을 원하면서도 끝내 닫힌 채로 남으려는 Easykid의 내면적 충돌이자, 자기 고백적인 사운드 자서전이다.
이러한 방향성은 대표곡 ‘Siempre Pienso En Tí’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시 그는 감성적인 멜로디와 정서적 여백을 통해 리스너와 깊이 교감했다. 반면 [I’M PART]는 그러한 개입의 통로를 차단하고, 어둡고 자기 폐쇄적인 사운드에 집중한다. 타이틀곡 ‘Airbag’은 미니멀한 리듬 위 삐걱대는 신스와 겹쳐진 보컬이 불안한 심리를 흘려보내고, ‘Fentanyl’은 왜곡된 베이스와 메마른 드럼으로 무기력한 기류를 만든다. ‘Bruce Wayne’에선 조여드는 트랩 사운드와 건조한 톤이 자기 고립의 감정을 밀도 높게 증폭시킨다. 즉, 감정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단절된 무드 속에 은닉된다. Easykid는 이제 감정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더 깊어졌지만 닿기 어려워졌고, 리스너는 이제 문을 두드리기보다 잠긴 방의 구조를 해독해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분주하다. 레게톤을 바탕으로 리퀴드 DnB, 네오페레오, 레이지 트랩 등 다양한 장르가 교차하며, Easykid는 마치 장르의 모둠 접시 위에 감정을 덜어내듯 다채로운 색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그 실험은 기대만큼 파격적이지 않다. 짧은 러닝타임과 반복되는 구조, 흐릿한 감정선이 이어지며 긴장감은 빠르게 흐려진다. 진지한 무드 속에서도 인상 깊은 순간은 드물고, 외부 청자에겐 의외로 가볍게 스쳐 지나간다. Easykid는 이제 더 이상 닿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감정 기후를 조성했고, 그 안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청자를 등진 채 혼자 남기를 택한 미학일지도 모른다.
광글 : 10년의 긴 터널을 지나 결국 홀로 남았다. 프로듀서 닥터 루크와의 갈등, 그리고 소속사와의 결별.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게 사라졌지만 Kesha는 오히려 덕분에 완전한 자유를 손에 쥐었다고 스스로 해석했다. 세간의 평가가 어찌 됐든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회귀'라는 선택지를 그녀는 택했다. 마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은 Lady Gaga의 [MAYHEM]처럼. 속도감 있는 비트와 중저음의 오토튠 보컬이 인상적인 ‘RED FLAG.’는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다시 붙잡으려는 의지가 또렷하다. 이와 더불어 ‘THE ONE.’에서는 과거 캐치한 일렉트로 팝의 힘찬 에너지가 클랩 사운드, 브라스와 함께 되살아난다.
5집에서 보여준 과도한 실험성은 한 발 물러섰다. 대신 최근 Brat 열풍에 힘입은 하이퍼 팝과 자신의 일렉트로 팝을 연결하며 새로운 시작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독립기념일에 맞춰 공개된 앨범의 첫 트랙 ‘FREEDOM.’은 그 자체로 완전한 자유와 새로운 2막을 상징하는 그녀 나름의 선언문이다. 오토튠이 이끄는 몽환적인 인트로, 펑키한 기타 리프, 가스펠의 코러스, 재즈 스타일의 피아노까지. 그녀가 걸어온 1막의 흔적들이 한 곡에 응축된다. 쉴 새 없이 전개되는 ‘BOY CRAZY.’는 변화의 정점을 찍으며 불규칙한 아코디언과 묵직한 베이스가 돋보이는 ‘JOYRIDE.’에서는 파격적인 과감함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트랙과 앨범 사이의 균형은 다소 아쉽다. 빠른 전자음이 주를 이루는 다른 곡들과 비교했을 때 컨트리 감성의 ‘YIPPIE-KI-YAY.’는 느린 템포와 어쿠스틱 악기 덕분에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힘을 과하게 준 나머지 모든 트랙이 맥시멀한 사운드로 가득 차 있어 앨범이 끝난 뒤에는 약간의 피로감도 남는다. 지나친 실험으로 인해 멀어진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장 사랑받았던 음악을 선보이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앨범은 그녀만의 생존 전략이다. 다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행위에 앞서 궁금한 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까 근본적인 의문이 있긴 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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