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답지 않은 태도’가 무엇인가요?
지난 6월 DMZ 페스티벌 무대에 선 밴드 BABO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공연 직후 김도헌 평론가가 SNS에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명시적으로 'BABO'라는 이름이 거론되진 않았지만, 업로드 시점과 "어젯밤 바보 같은 공연", "유명인의 취미 생활"이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BABO를 겨냥한 사실은 충분했다. 글의 논지는 BABO가 이찬혁의 명성을 등에 업고 특혜를 누린다는 것. 이에 많은 대중들 또한 평론가의 뜻을 지지하며 그가 인디 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큰 소리를 내었고, 심지어 한 누리꾼이 작성한 '인디 산업을 고려하지 않은 기만적인 행동'이라는 글은 약 1,000건의 공유를 기록하며, 대중들은 그의 밴드 활동에 부정적인 반응을 표했다.
그러나 해당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BABO를 비판했던 이유는 DMZ 페스티벌에서의 공연이 별로여서도 아니고, 그들의 앨범이 처참한 퀄리티여서도 아니다. 단지, "대기실을 혼자 써서", "좁은 홍대 클럽 골목길에 밴을 타고 들어와서"에 불과하다. 대중들의 의견 또한 "인디 씬을 어지럽혀서", "유명인의 낙하산" 정도이다. 그 어디에도 그들의 퍼포먼스나 음악에 관한 내용은 살펴볼 수 없었다. 따라서, 필자의 눈에는 그저 '인디 정신'이라 불리는 것들을 BABO가 계승하지 않은 점이 논란의 불을 지핀 것으로 보이며, 이들이 입 모아 지적하는 문제점들을 섣불리 동의하기 어려운 바를 밝힌다.
앞서, 인디밴드 팬들은 BABO를 향해 "관객과의 교감이라는 게 전혀 없다. 이찬혁인 내가 앞에서 공연할 테니 너희는 보기만 하라는 느낌"이라며, 인디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관객과 교감 없는 퍼포먼스’를 문제 삼은 것이다. 우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BABO는 슈게이즈와 노이즈를 주력으로 하는 팀이다. 언제부터 슈게이즈가 관객과 교감하는 장르였던가? 대표적인 슈게이즈 밴드 Slowdive도, 국내 슈게이즈 씬에서 주목받는 파란노을조차도 공연에서 관객과의 교감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자기 세계에 빠져 공연하는 포스트록 역시 관객과의 교감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페스티벌, 클럽에서 관객과 함께 즐기며 춤을 추는 edm과 달리 추상적이고 전위적인 idm에서도 아티스트보다는 소리 자체가 주인공으로 여겨진다. 장르명의 탄생부터가 신발만 응시하는데서 출발한 점, 장르 특성상 몰입과 감상 중심인 점, 때문에 '무대 위의 무심함'조차도 하나의 미학으로 받아들여지는 슈게이즈 공연에서 관객과의 교감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따라서, BABO의 퍼포먼스에 대한 지적은 이중잣대에 가까우며, 공연의 잘잘못 보다는 장르와 취향의 문제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건 '유명인의 취미생활로 인해 더럽혀지는 인디 씬'이라는 인식이다. 아무리 BABO가 가면을 쓴 채 신분 노출 하나 없이 활동하고 있지만, BABO의 프론트맨이 이찬혁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들을 소비하는 관객도, 그들을 섭외하는 공연 관계자도 '이찬혁'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마련이다. 때문에 제아무리 이찬혁이 자신의 영향력을 배제하려 노력해도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관객 모집력 같은 부분에서 말이다.
아마 많은 인디 밴드 팬들이 분노했던 지점은 유명인이 만든 신생 밴드가 갑자기 나타나 페스티벌의 황금 시간대를 꿰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개최된 DMZ 페스티벌에서 '메인 스테이지 저녁 9시'라는 황금 시간대는 BABO의 몫이었고, 이들은 아직 신생 밴드로 분류되는 팀이었다. 이전의 THE GLOW, 서울 파크 뮤직 페스티벌에서 1-2번째 순서로 배정된 바 있지만, 최근 공연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연차 대비 과분한 시간대를 배정받은 건 사실이다. 일례로 백예린이 결성한 'The Volunteers'의 경우 초반에는 공연의 앞 순서에 배정되는 등 개인 인기와 관계없이 활동하곤 했으며, BABO처럼 여느 인디 밴드와 비슷하게 클럽 씬에서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지극히 인디 팬의 관점에서 바라본 그들은 이찬혁 이름값으로 빚어낸 특혜는 전부 누리는 동시에 인디 밴드 방식을 표방하는 행보로 기만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생각할 문제다. 페스티벌의 주 수입은 티켓 구매이며, 해당 매출로 아티스트에게 개런티를 지급하는 구조이다. 쉽게 말해, 페스티벌은 '장사'이다. 그렇기에 화제성을 지닌 BABO로 일정 수준의 티켓 매출이 보장된다면, BABO로 끌어들인 관객을 오랜 시간 머무르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BABO가 황금 시간대에 배치될 이유는 충분하다.
정리하면, 결국 BABO가 비판받는 이유는 '인디 씬에 부적합한 팀'이 갑자기 나타나 '인디 씬을 망가뜨렸기 때문'인 것이다. 마치 그들이 지칭하는 인디에 객관적인 기준이라도 존재하는 양 각종 잣대를 들이대며 말이다. 그러나 애초에 인디 밴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존재했었던가? 신생 밴드라면 자신의 영향력이나 무대 규모에 관계없이 무조건 작은 공연을 고집해야만 하고, 대기실 단독 사용은 금지이며, 밴을 타고 다니는 것조차 인디답지 않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건지 되묻고 싶다. 마치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무일푼으로 공연을 전전하고, 바닥부터 올라와 고생해야만 진짜 인디 밴드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런 조건들은 인디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혹자는 가면을 쓰고 신비주의를 지향하는 BABO의 모습에 불편함과 벽을 느낀다고도 하지만, BABO처럼 실제 정체를 숨긴 채 익명으로 활동하는 파란노을이나 BABO처럼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 눈 감아주는 마미손만 봐도 이는 이중잣대에 불과하다.
거기다 인디의 기준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에겐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곧 인디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홍대 클럽 씬 안에서의 활동 자체가 중요할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음악적 독창성과 새로운 시도가 인디 정신이라 믿을 것이다. 결국 인디는 획일화된 규칙으로 나눌 수 없는 문화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디 씬을 어지럽힌다’고 비난하는 건 무리한 해석과 텃세일 뿐이다. 더 나아가 인디 씬은 애초부터 주류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실험하고, 경계를 확장해온 공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슈게이즈처럼 마이너한 장르가 메이저 씬으로 편입되는 현상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파란노을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음악이 대중적으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BABO를 통해 슈게이즈가 조금이라도 더 대중에게 소비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낯선 장르를 조명하고, 보다 대중적인 무대 위로 끌어냈다면,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BABO는 하나의 프로젝트이며, 하나의 실험이다. 만약 인디라는 문화가 자유, 다양성, 실험정신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면, 이들이 기존의 관행을 계승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했듯, 인디는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해진 경로 혹은 커리큘럼이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다. 그 복합적인 층위와 다양성을 간과한 채, ‘태도가 인디답지 않다’거나 ‘정당한 절차를 생략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시도를 무력화한다면, 인디 씬은 더 이상 실험과 확장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김도헌 평론가의 발언은 이러한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음악과 퍼포먼스 보다는 태도에 대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의견은 지나치게 모호하고 정서적인 기준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인디 씬을 오랫동안 지켜본 입장이라면,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기 보다는 문화 속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짚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찬혁 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티스트가 본인의 음악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해 팀 밖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성 팀을 구성하거나, ‘부캐’를 통해 활동을 이어간다. 이찬혁 역시 악동뮤지션으로 슈게이즈를 구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라 판단했기 때문에, BABO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배척이 아니라, 그 시도가 어떤 맥락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다. 인디는 결코 허구의 절차나 모호한 태도로만 정의될 수 없는, 훨씬 복합적인 문화적 맥락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by.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