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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Dec 11. 2022

형식의 문제일까 감성의 문제일까

2022년을 회고하며 정리한 가상 크리에이터 보고서

  1. 크리에이터 우왁굳이 기획한 ‘이세계 아이돌’의 데뷔곡 ‘RE : WIND’가 발매된 지 1년 남짓 지났다. 이 곡이 12월 초 기준 멜론에서 누적 1000만 스트리밍을 넘었고, 그간 ‘가상’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음원을 내놓은 아티스트 또한 우후죽순 생겨났으니 이 시장에 대한 가능성과 한계를 어느 정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됐다. MCN 단위에서의 기획뿐만 아니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또한 ‘소녀 리버스’라는 가상 걸그룹을 내세우며 블루오션처럼 보이는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최근 불거진 이슈 탓에 활동이 잠정 연기된 건 함정이지만). 그러나 IP 확장, 비인간이라는 가성비, 통제가능성 등의 거창한 명목으로 이 가상 시장에 진입할 이유가 정당화되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2. 먼저 실사 형태로 구현된 가상 크리에이터(아티스트)와 애니메이션 풍의 3D로 구현된 그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가상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기본으로 엔터테인먼트 다방면으로 활약한 로지(ROZY), 한유아 등이 대표적이고, 후자는 상기 문단에서 언급한 이세돌(이세계 아이돌)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같은 가상 씬에서 활동하고 있어도 이 둘은 감성이 매우 다르다. 로지는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대중 전반을 타깃으로 하지만, 이세돌은 서브컬쳐 시장을 정조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가상 크리에이터를 기획해야 한다면, 이중 하나의 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 또한 도출된다.



  3. 그러나 꽤나 자연스러움(?)을 위해 기술적으로 신경써야 하는 실사 가상 크리에이터에 비교하면, 서브컬쳐 쪽이 콘텐츠적으로도 자유롭고 타깃도 확실한 탓에 구미가 당기는 건 사실이다. 특히 이세돌의 압도적인 음원 성적은 그간 리스키한 아이돌 프로듀싱에 고전하던 엔터 기획자들에게 가성비에 대해 재고하게 만들었다. 소녀 리버스 또한 이런 흐름에 대한 팔로우쉽으로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1월 말 올해 MMA 무대에서 처음으로 직관했던 소녀 리버스의 데뷔곡 ‘약속해’는 썩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비주얼적인 부분만 그럴듯하고 곡에서는 서브컬쳐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프로듀스 101을 3D 애니화시켰다는 인상이 강했고, 개인적으로 익히 알고 있던 가상 아이돌만의 감성이 부족하게 다가왔다.



  4. 이는 결국 이세돌이 가상 아이돌이라는 윤곽만이 아니라 우왁굳의 기획력과 서브컬쳐의 시선이 잘 반영된 복잡한 콘텐츠임을 증명한다(물론 이세돌은 나름 대중지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쉽게 말해 이러한 기획에는 덕후들이 좋아하는 포인트에 대한 이해도가 필요하다. 만약 ‘버츄얼 아이돌’ 두 어절에서 어느 쪽에 힘을 줘야 한다면 당연 버츄얼(아니메, 서브컬쳐적 특성)이다. 이세돌 못지않게 인기를 쌓아온 남자 버츄얼 아이돌인 ‘레볼루션 하트’ 또한 비주얼 및 매력 포인트가 여성 덕후들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다(음악은 애매한 퀄리티의 케이팝 남자 아이돌 수준이라는 점은 의아하긴 하다. 여하튼 모에 포인트 하나는 비교 불가).



  5. 어쩌면 지금의 문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가상 크리에이터가 아뽀키(APOKI)인데, 디즈니풍 캐릭터와 웰메이드 음악을 통해 본인만의 포지션을 확보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뽀키는 로지가 가진 인플루언서로서의 극한의 활용성(모델부터 가수까지 소화 가능)과 이세돌의 팬덤 화력, 메타버스적 소통(고멤가요제) 가지지 못한 건 아쉽다. 결과적으로 과거 고릴라즈(Gorillaz)에서 기술적으로만 한 발자국 살짝 내딛은 정도에 그친 느낌이랄까. 그러나 거부감 없는 비주얼 및 넓은 타켓을 장점으로 취하면서 밸런스 면에서 균형 잡힌 IP이기도 하다.



  6. 그럼에도 가상 크리에이터의 카테고리가 정리되고 기획자들의 이해도 또한 높아진다면 이 글에서 생각지도 못한 포지셔닝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도 시간문제 아닐까 싶다. 물론 이세돌 이후 좀 더 분명해진 가이드라인은 있다. 콘텐츠는 결국 형식이 아니라 감성의 문제라는 것. 사람들은 ‘가상’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할지 몰라도 직접적인 소비로 이어지는 건 캐릭터의 매력과, 스토리텔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비인간에 살아 숨쉬는 매력을 부여해야 하는 과정이 전제되므로 콘텐츠 감성, 즉 인간이 문화적으로 무엇에 끌리는지에 대한 깊은 인문학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by 최크롬




<이미지 출처>

하나영, "'소녀리버스', 공개 잠정 연기…"일부 크리에이터와 협의 완료 못 해" (공식입장)", 조선비즈, 2022. 11. 28., https://bit.ly/3FgKg5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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