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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Dec 16. 2022

디깅, 비효율의 가치에 대하여

취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디깅(Digging)이란 단어를 아시는가. 사전적으로는 채굴, 발굴이란 뜻이며, 주로 흥미 있는 분야의 정보를 얻고자 이것저것 검색해보는 일을 의미한다. 나는 모든 취향은 디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언뜻 듣고 괜찮다 싶은 음악에 ‘좋아요’를 누르면, AI가 부리나케 달려와 '이것도 잡숴봐' 하며 비슷한 느낌의 곡을 귀에 쑤셔 넣어준다. 입만 벌리고 있어도 취향을 떠먹여 주는 시대가 됐고, 취향을 찾기 위해 요구되는 관심과 노력의 정도는 점점 작아져만 가는 듯하다.



    2. 최근 어떤 모임에 다녀왔다. 함께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고, 모임장 분은 재즈바의 음악 감독이자 플레이어로도 활동하시는 뮤지션이셨다. 누군가 그분께 재즈라는 장르가 너무 어려운데 어떻게 디깅 해야 할지 물었고, 그분의 대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전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어떤 곡을 듣다가 특정 연주자가 마음에 들면 그가 연주한 또 다른 곡을 찾고, 특정 곡이 마음에 들 땐(같은 곡도 버전이 다양한 재즈의 특성상) 여러 연주자 버전을 들어보다가 또 마음에 드는 연주자를 찾아 디깅 하면 된다. 요컨대 관심이 또 다른 관심으로 연결되고, 그렇게 이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취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3. 이쯤에서 나의 디깅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좋아하는 것을 미친 듯이 파고들던 시간. 한창 밴드를 좋아하던 시절, 라디오헤드에 빠져 그들의 모든 앨범뿐 아니라 매거진 인터뷰, 신디사이저 사운드 디자인 영상까지 찾아보던 때가 있었고, 너바나를 처음 접했을 땐 커트 코베인에게 반해서 그가 즐겨 입은 레드 스트라이프 니트를 사기 위해 온종일 옥션을 뒤지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이 음악 디깅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만큼의 관심이 있었기에 그 문화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온전한 내 취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추천 관련 채널도 제한적이다 보니, 스스로 파고들지 않으면 정보를 얻을 수 없는 환경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4.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내가 관심을 두기도 전에 무수히 많은 추천 음악들이 내 귀를 타고 지나간다. 나는 그중 괜찮은 음악들 몇 개에 하트를 누르고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그리고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게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트를 누른 그 음악들은 과연 나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플랫폼이 취향을 떠먹여 주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추천 가운데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무뎌지게 된다. 또한 나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부재하다 보니, 순간적인 호불호 외에는 음악에 대한 기억이 잘 남지 않는다. 떠먹여 주는 음식보다는 스스로 찾아간 맛집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듯, 취향에 대한 나의 만족의 크기도 점점 작아져만 간다. 이제 나는 예전만큼 그 음악이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를 잘 설명할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알지만, 동시에 잘 모르기도 하는 것이다.



    5. 혹자는 이것이 뉴 디깅(New Digging)의 방식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파고든다’는 의미의 디깅이 단순히 추천 플레이리스트 기능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 걸까?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가 베스트셀러에 빠지지 않는,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시대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효율성이 개입할 여지는 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관심을 갖고, 정보를 찾고, 그렇게 찾은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곧 취향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의 취향이 정말 당신의 것이 맞는지.



by f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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