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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5년 8월 3주)

pH-1, 조이, 주혜린, Amaarae, Conan Gray 외

by 고멘트

"Playlist | pH-1이 들려주는 Chill Vibe 노래 모음"


1. pH-1 – [WHAT HAVE WE 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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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게비누 :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chill한 무드를 지향하는 정규앨범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드 형성에 집중한 탓일까, 기억에 남는 킬링 트랙이나 귀에 확 꽂히는 포인트 없이 다소 밋밋하게 다가온다. 그 안에서도 잔잔하고 멜로디컬한 곡, 중간중간 힘 있는 힙합 트랙, 후반부의 감성적인 힙합/R&B 트랙들로 변주를 주며 다양한 배경의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시도했지만, 이런 요소들이 앨범의 재미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한 듯하다. 비슷한 톤과 온도의 범위 안에서 맴도는 느낌이라 차별성이 약하다. 앨범은 분명 어떤 감정선의 기승전결을 의도한 듯 보이지만, 지나치게 차분한 무드 탓에 그 변화를 청자에게 선명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구조적으로 구색은 갖췄으나 감정을 건드리는 울림은 약한 작품이다.


지금은 특정 무드를 즐기고 싶을 때 앨범보다 플레이리스트를 찾는 시대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pH-1이 자극적인 힙합 클리셰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분명 의미 있지만, 무엇이든 정도의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매끈하게 다듬다 보니 긴장감과 재미마저 잃어버린다면, 결국 음악이 가져야 할 본질적인 즐거움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김치찌개 맛집이 선보이는 김치찌개"


2. 조이 (JOY) - [From JOY, with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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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애플 : 리메이크 앨범이었던 스페셜 앨범을 제외하면, 11년 차 아이돌의 솔로 데뷔 앨범이다. ‘La Vie en Bleu’의 브릿지와, ‘Love Splash!’의 2절 프리코러스 등 트랙 곳곳에서 '레드벨벳 조이'의 파트였을 법한 부분이 눈에 띈다. 아티스트가 밝힌 제작 의도(나 원래 레드벨벳이잖아, 알지?)와 맞물리는 충분히 성공적인 전략이다. 타이틀을 필두로 팝 장르를 대다수로 담아냈으나, 3분여의 시간을 집중력 있게 이끌어가는 발라드 트랙 ‘Unwritten Page’가 앨범을 곱씹게 한다. 꽤 오랜 기간 활동을 중단했던 그 스스로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듯한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편지'가 진정성 있게 와닿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앨범에서 여러 가지의 의미에서의 사랑을 이야기했다고 칭했는데 - 친구에게, 현 연인과 전 연인에게 - 그 전달에도 성공한 듯하다. 여타의 Kpop 음반보다 많은 한국어 가사의 비중으로 국내 리스너에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려 한 의도로 읽힌다.


다만 ‘Get Up And dance’가 아닌 ‘Love Splash!’가 JOY의 정체성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했기에 타이틀로 결정되었다는 비하인드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리스너 또한 납득할지에는 의아함이 남는다. 챈트 구성 이외에는 기억에 남는 섹션이 없는 타이틀에 비해, 미성과 진성을 각 섹션마다 나눠 분배하며 다이내믹을 놓치지 않은 ‘Get Up And Dance’가 보다 적절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From JOY, with Love]는 솔로의 첫걸음이니 스스로의 정체성이자 '잘할 줄 아는' 장르로 채워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음반이었다. 특색 있는 고역의 보컬 톤은 앞으로의 음반 제작에 있어 수많은 선택지를 열어줄 수 있다. 지난 리메이크 앨범의 수록곡 ‘Je T'aime’와 같은 재지한 무드의 곡도 충분히 소화할 가능성이 있어, 적극적인 도전만이 남았다.





"익숙함이 먼저 떠오르는 새 이름"


3. 주혜린 – [Ster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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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y : 여전히 박준우, 구영준과 함께 '주혜린 팀'이란 안정적인 울타리 안에서 만들어졌지만, 이번에는 총괄 프로듀서 자리에 본인 이름을 올리며 훨씬 더 직접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덕분일까. 이번 앨범 [Stereo]에서는 전작보다 유연한 장르의 변화가 눈에 띈다. UK 개러지의 쿨한 질감, 하우스의 에너지, 보사노바의 여유까지 끌어오며 리듬의 폭을 넓혔다. 낯선 전자 사운드나 변칙적인 전개가 불쑥 등장해도 직관적인 가사와 빈틈없는 세션이 이를 단단히 지탱해 주고, 그 위에 주혜린의 톤은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는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어딘가 낯설지 않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직선적인 보컬 톤, 디테일하게 쌓아 올린 편곡, 세련된 한국형 컨템포러리 R&B의 질감은 곧바로 '수민'을 연상시킨다. 주혜린이 구축한 사운드가 준수한 완성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익숙하다"는 인상이 먼저 앞서는 것이다. 지금의 주혜린은 '제2의 수민'과 '제1의 주혜린'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듯하다. 결국 관건은 이 유사성을 얼마나 자기 언어로 바꿔낼 수 있느냐다. 만약 주혜린이 이 익숙함을 단순한 영향으로 넘어서지 못한다면, [Stereo]는 잘 만든 수민식 앨범으로 소비되고 끝날 것이다. 반대로 이를 토대로 자기만의 문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바로 이 순간이 주혜린이라는 이름이 확실히 새겨지는 분기점으로 남을 것이다.





"팝의 심장에 박힌 가나의 별"


4. Amaarae – [BLACK STAR]

Noey : Amaarae(이하 아마레이)의 [BLACK STAR]는 그녀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도 같다. 앨범명과 커버부터가 이미 상징적이다. 가나 국기의 검은 별을 가져오면서 흑인으로서 뿌리와 유산, 그리고 팝스타라는 위치까지 동시에 담아낸다.


사운드도 마찬가지다. [Fountain Baby]에서 가능성을 던졌다 하면, 이번에는 한층 더 몸을 흔들게 한다. 팝과 R&B, 하우스, 아프로비츠에 브라질 펑크, 저지 클럽까지 이어 붙이며, 대륙을 넘나드는 클럽 사운드를 만든다. 예를 들어 ‘S.M.O’는 가나 하이라이프 특유의 경쾌한 리듬 위에 디트로이트 클럽 베이스를 얹었고, 마지막 트랙 ‘Free The Youth’는 곡의 제목과 메시지 자체에서 가나 청년 스트리트 웨어 및 문화를 직접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사운드가 얽혀 있지만, 그 중심에는 늘 가나라는 출발점이 자리한다. 여기에 PinkPantheress, Bree Runway, Charlie Wilson 같은 흑인 아이콘들의 참여는 '지금'을 보여주는 동시에, 아마레이가 성장하며 몸으로 익혀온 흑인 일렉트로닉 댄스의 전통을 현재 언어로 잇는 장치로 작용한 듯하다.


물론 이러한 클럽 사운드 중심의 전개는 Charli XCX가 [BRAT]을 통해 일렉트로 팝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전례나, FKA twigs [Eusexua]의 펼쳐낸 실험적인 클럽 팝 사운드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지점이 흥미롭다. 아마레이는 서구의 언어를 가져오되, 가나라는 뿌리를 놓치지 않고 교차시키며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층위 속에서도 가장 또렷하게 남는 건 그녀의 정체성이다. [BLACK STAR]는 "가능성 있는 아티스트"라는 수식어를 넘어, 주류 무대의 중심에 서 있음을 증명했다.





"팝스타의 일기장 합법적으로 들어보기"


5. Conan Gray – [Wishbone]

배게비누 : 10대의 불안과 외로움을 토로하던 Gen Z의 대변인에서, 사랑과 고통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 Conan Gray가 마침내 자신과의 지난한 대화록을 공개했다. 이런 면에서 Olivia Rodrigo의 [GUTS]가 떠오르는데, 두 작품 모두 Gen Z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들에게 중요한 감정과 경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네 번째 정규 앨범 [Wishbone]은 제목이 암시하는 소원, 깨짐(이별), 운명을 키워드로 한 내밀한 자기 고백 앨범이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구성되어 마치 일기장 속 러브 스토리를 읽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며, 화자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도록 설계됐다. 진짜 경험에서 우러난 가사는 청자가 몰입하며 자신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가사 중심인 이 앨범은 이 점을 염두하여 진솔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스토리 즉,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가사를 강조하기 위해 음악은 90년대 팝, 얼터너티브 락, 어쿠스틱 사운드를 기반으로 담백하게 구성하면서도, 팝의 캐치함과 긍정, 은근한 발랄함이 담긴 Conan Gray 특유의 음악적 색채를 유지해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더 이상 앨범이 제공하는 것이 단순히 청각적 경험에 그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3부작 뮤직비디오(This Song, Vodka Cranberry, Caramel)로 시각적인 경험을 더해 몰입과 재미를 더했다. Wishbone은 내밀하면서도 균형 잡힌 감정 서사를 통해, 청자가 Conan Gray의 경험과 감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설계된 앨범이며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이 시대 청춘의 대변인으로서 Conan Gray가 보여준 성장과 역량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체 반복 플레이리스트"


6. Sunset Rollercoaster 落日飛車 - [QUIT QUIE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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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애플 : [AAA]와 [SOFT STORM]에서는 곳곳에 날것의 악기 질감과 풍성함이 있었다면, [QUIT QUIETLY]에서는 차분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앨범 전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렉 기타와 신디사이저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Tseng Kuo-Heng의 보컬을 얹어 차분함이라는 키워드를 가장 먼저 내세운다. 그러나 ‘Charon's Gone’와 ‘Falling out’의 중독적인 멜로디나, 제이콥 콜리어가 떠오르는 ‘Believe U’의 보컬처럼 곳곳의 집중을 이끄는 대목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위로하기도 하고, 네 곁에 눕고 싶다거나, 언젠가 사라지고 싶다거나 하는, 진부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의 파편들을 라이브 현장을 상상케 하는 연주와 함께 엮어낸다. 평상시의 일기와 같은 앨범이라 소개한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앨범이다.


앨범 중후반부 ‘Grow’부터 ‘Satellite’까지는 비교적 마이너한 감성을 전달하다, ‘Bluebird’가 마이너한 감성과 밝은 마무리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고 ‘Fading out’이 다시 첫 트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여운을 남긴다. 결국 하나의 플레이리스트와 같은 앨범이다. 트랙 간 분위기 변화나 귀를 이끄는 현장감 넘치는 세션 연주 등 집중을 이끄는 구간도 물론 존재하나, 전체적으로는 '차분함'이라는 키워드 아래 40여 분간의 시간을 훔쳐 간다. 일상의 파편을 엮어낸 앨범은, 일기처럼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함께하는 앨범이 되었다.





※ 'Noey', '배게비누', '화인애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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