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ay Kids, Zion.T, Joey Bada$$ 외
JEN : 대규모 월드 투어 <dominATE>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발매된 정규 앨범인 만큼, 이곳저곳에서 거대한 스케일과 촘촘한 기획력이 돋보인다. 2081년 배경의 트레일러에서는 멤버들이 가상의 <Karma Sports> 토너먼트에서 타이틀을 위해 경쟁하는 챔피언으로 등장하고, 승리 후 마침내 팬들과 자축하는 순간을 그려내며 영화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설정을 넘어 앨범 전체에 깔린 승부와 세리머니라는 테마를 관통한다. 트랙 리스트 역시 승부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CREED’부터 승리를 자축하는 타이틀 곡 ‘CEREMONY’까지 이어지며, 하나의 토너먼트를 치른 듯한 서사로 앨범 전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러한 완성도 높은 기획에 비해 아쉬운 것은 타이틀 곡이다. 전반적으로는 이번에도 Stray Kids(이하 스키즈)의 타이틀 포뮬러는 비슷하다. 트랩 EDM에 Balie Funk 리듬을 더하며 마라맛 에너지를 발산, 필릭스의 매력적인 저음으로 킬링파트를 만들어냈고 'Jump up like a pop-up toaster lift'와 같은 가사로 언어유희적 요소를 넣었듯이 말이다. 새로운 변화로 볼 수 있는 건 과감하게 비워버린 후렴과 'Hip-hip (hooray!)'와 같은 추임새 정도인데, 이것이 주는 타격감이 터져야 하는 파트에서 그다지 효과적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오히려 필릭스의 폭발적인 마지막 후렴을 앞당겨 썼다거나, 비트에서 확실히 승부 볼만한 일종의 킥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앨범의 완성도를 높인 건 수록곡들이 아닐까 싶다. 멤버들이 타이틀 곡 후보였다고 밝혔던 ‘삐처리 BLEEP’은 그간 들어보지 못한 시네마틱한 분위기에 더해진 붐뱁 리듬이 매력적이며, 웅장하게 느껴지는 공간감은 앨범이 담아내는 대규모 스케일이 연상되어 인상 깊은 트랙으로 남았다. 또 다른 수록곡 ‘반전 (Half Time)’은 경기의 하프 타임. 즉 전환점을 뜻하는 만큼, 트랙 리스트 중 정확히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앨범 전반부의 긴장감 있던 텐션이 ‘반전 (Half Time)’ 이후 후반부의 트랙은 가벼운 리듬과 분위기로 환기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만큼 장르나 구성적으로 점차 발전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이는 자체 제작 그룹으로서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새로운 시도를 조금씩 앨범에 녹여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스키즈가 기존의 색을 유지하면서도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베실베실 : Zion.T (이하 자이언티)가 본인만의 '야마'를 잃은 게 언제쯤일까. 어림잡아 1집 [Red Light]와 EP [미러볼] 이후, 넉넉하게 봐도 ‘양화대교’와 ‘꺼내 먹어요’, ‘No Make Up’의 3연타석 홈런 이후라고 생각된다. 커리어 초기의 ‘도도해’ ‘Doop!’ ‘돌아버려’와 같은 곡에서 느낄 수 있는 자이언티만의 야마들. 그러니까 독특한 창법과 비주얼, 그와 어우러지는 어딘가 골 때리는 가사와 음악적 포인트 등을 이후의 자이언티 음악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주얼도 말끔해지면서 그냥 여심 저격 R&B로 변해버린 것이다. 보컬만 살짝 특이할 뿐, 모든 노래가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로 대체가 가능한 노래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앨범은 옛 자이언티의 음악을 그리워하는 팬들에게는 그나마 약간의 위안은 줄 수 있을 듯하다. 80년대의 Prince와 Rick James 등이 떠오르는, 통통 튀는 신스 사운드와 디스코 리듬이 결합된 신스 훵크 장르의 색이 짙은 ‘LOVE ME’ ~ ‘Suspicious’ 트랙은 확실히 [ZZZ]와 [Zip]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스타일이다. 신스 훵크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친숙한 사운드와 장르를 택해 보험을 들어 놓은 듯한 ‘물고기’와 ‘CLOSER’ 역시 그래도 템포가 쳐지지는 않아서, 앨범 전체적으로 균일한 톤 앤 매너를 띄고 있는 점 역시 칭찬할 만한 지점이다.
그렇지만 가수는 제목을 따라간다 했던가. '특정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외형만 흉내 낸다'라는 뜻을 가진 'Poser'답게 본 앨범은 어딘가 "흉내만 낸" 앨범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Prince의 과한 섹시함이나 다양한 사운드의 활용, Rick James의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리프와 같은, 여타 신스 훵크의 고수들만이 가지고 있는 본인만의 개성 포인트가 [Poser]에서는 부재해, 그냥 "음 신스 훵크군~" 하다 앨범이 끝나버린다. ‘LOVE ME’ ~ ‘Suspicious’ 3곡 전부를 모아도, ‘돌아버려’의 "우리 아빠! 디스코! 춤을! 추곤! 하셨지!"의 3초를 이길 인상 깊은 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물고기’는 수민이, ‘CLOSER’는 PinkPantheress가 너무나도 오버랩 되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예전의 자이언티라면 더 재밌게, 그리고 개성적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만 자꾸만 맴돈다. 집 나간 자이언티의 야마는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베실베실 : 2012년의 [1999]부터 시작해 올해 상반기 서부 랩퍼들과의 디스전에 이르기까지, 클래식한 붐뱁의 맛을 계속해서 고수해 오던 Joey Bada$$는 어디로 갔을까. 앨범의 포문을 여는 ‘DARK AURA’와 ‘SWANK WHITE’까지만 해도 ‘The Ruler's Back’과 ‘Sorry Not Sorry’와 같은 디스 곡에서 선보였던 (최근 유행하는) 느와르 풍 붐뱁의 연장선이었기에 반가움과 기쁨이 가득했지만 직후 갑작스럽게 50 Cent의 파티튠이 떠오르는 ‘SUPAFLEE’를 들으며 어딘가 잘못됐음을 감지한다. 이후에도 앨범은 넵튠즈 사운드, 라틴 팝, 보사노바 리듬, 싱잉 랩, Rick Ross 스타일의 서던 힙합 등 상업적이고 부드러운 성향의 음악들이 무분별하게 교차해 등장하며 Bada$$만의 붐뱁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순애를 무참히 짓밟는다. 상업적인 노래여도 [All-Amerikkkan Bada$$]만큼 캐치하게 잘 뽑혔더라면, 부드러운 스타일이라고 해도 [2000] 정도로라도 앨범의 톤 앤 매너가 지켜졌더라면 어땠을까. 구린 퀄리티와 장르적 난잡함이 섞이니 어찌할 방도가 없다. 명명백백한 Joey Bada$$의 커리어 로우.
JEN :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기존의 드림팝이나 슈게이즈에서 벗어나, Fleetwood Mac과 같은 밴드가 활동하던 1970년대 영향의 따스한 소프트록과 더불어 연극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Dirty Hit에서 RCA Records라는 메이저 레이블로 이적하고 발매한 첫 앨범이며, 그래미 수상 경력의 프로듀서 Greg Kurstin과 협업한 것이 Wolf Alice의 자유로운 음악 폭을 열어준 결정적 계기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2010년 데뷔 후 쌓아온 경력이 있는 만큼, 새로워진 사운드에 과감히 몰입하면서도 이전과는 또 다른 Wolf Alice를 선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악기 편성과 밴드 멤버 Ellie Rowsell의 보컬 표현에서 크게 드러난다. 기타의 사운드를 덜어내는 대신, 피아노나 풍성한 스트링이 전면에 나서 공간을 채우며 그들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무드를 형성해 내는 데 성공했다. ‘The Sofa’에서 부드러운 피아노로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장엄하게 부풀어 오르는 스트링 사운드로 마무리한 점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피아노와 섬세한 보컬의 ‘Play It Out’이 대표적인 트랙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Rowsell이 보컬을 다각적으로 활용하며 전반적으로 서사적 몰입력이 빛났는데, 이는 리드 싱글로 공개되었던 ‘Bloom Baby Bloom’에서 돋보였다. 단순한 피아노 라인 위 그의 보컬은 기쁨과 분노 사이를 오가며 독특한 속도감을 만들어낸다. 변덕스럽게 형태를 바꾸는 보컬은 단순한 사운드와 대비감을 형성하며 극적인 긴장감이 생성되고, 마치 예측 불가능한 한 편의 연극을 감상한 듯한 큰 임팩트가 느껴져 좋았다.
4년 전, 20대의 혼란과 성장통을 담아냈던 [Blue weekend]를 기대했다면 이번 앨범은 다소 의외로 느껴질 수 있다. Wolf Alice는 [The Clearing]에서 이전보다 탄탄해진 멜로디와 아름다운 하모니, 정교해진 편곡이 돋보이는 앨범으로 완성해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멤버 전원이 30대에 접어들며 가족, 삶 같은 주제를 솔직하게 다루기 시작했고, 어느덧 아레나 투어를 준비하는 밴드답게 이전보다 절제되고 진정성 있는 음악으로 자신들의 현재를 증명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The Clearing]은 지난 4년간의 내적 성장을 투영하는 동시에, Wolf Alice가 앞으로 어떤 음악 서사를 써 내려갈지 주목하게 만든 앨범이었다.
※ 'JEN', '베실베실'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