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 Chris Patrick 외
Noey :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라고 하면 흔히 과거의 영광을 한데 모은 '회고록'이 되기 십상이지만, 강허달림의 이번 앨범은 철저히 '현재 진행형'이다. 단순히 과거의 발자취를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1집의 ‘기다림, 설레임’, 2집의 ‘꼭 안아 주세요’, 3집의 ‘그대는 내 사랑’처럼 음악 인생의 뿌리가 된 초기 정규 앨범의 정수들을 지금의 호흡으로 다시 불러내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곡들을 다시 꺼내어 부르며 선택한 변화는 편곡과 발성의 무게감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일렉 기타 사운드보다는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배치해 전체적인 구성을 부드럽게 다듬고, 그 위에 힘을 덜어낸 창법과 한층 여유로워진 호흡이 더해지며 노랫말은 이전보다 더 또렷하고 깊이 있게 전달된다. 여기에 더해진 4곡의 신곡과 선배 음악가들을 향한 헌정곡은 그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음을 증명한다.
흔히 강허달림을 수식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블루스'다. 국내에서 블루스 특유의 끈적하면서도 서글픈 결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체화한 보컬리스트가 드물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그는 특정 장르의 색보다는 시간이 겹겹이 쌓이며 만들어진 '말'과 '감정'의 밀도에 집중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곱씹어 들려주는 강허달림의 노래는 이제 가슴을 짠하게 하는 익숙함에 닿아 있다. 억지로 세련됨을 가장하거나 젊음을 흉내 내지 않고, 지금 이 나이의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노래들을 정직하게 골라 담은 것이다. 이는 마치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음악적 해답처럼 들리기도 한다. 대중에게는 거부감 없이 스며드는 보편성을 띄면서도, 한 사람의 커리어가 쌓아온 무게감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바로 이런 노래들을 한국형 어덜트 컨템퍼러리의 모범답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삶의 굴곡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음악, 동시에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정리할 줄 아는 연륜. 데뷔 20년 차의 강허달림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현재가 이 앨범에 담겨 있다.
엉얼 : AP Alchemy 컴필레이션 앨범에서 좋은 폼을 보여주며 존재감을 각인시킨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이하 김감전)의 주가가 나날로 우상향하고 있다. 손심바 디스곡 ‘Mufasa Talk’에서 사용된 추임새 '지예아'뿐만 아니라 그의 디스곡 가사 전체는, 현재 SNS상에서 힙합 씬의 대표적인 밈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힙합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캐릭터성은 신보의 시작에서부터 나타난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디럭스버전으로 공개하는가 하면, Outro와 Interlude를 앨범 중간에 배치한 구성은 김감전 특유의 유머러스한 감각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HARARI FLOW’ 中 <넌 hood를 행세하다가 후드러 맞고서 별세> 라인이 그의 캐릭터를 단번에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앨범을 관통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유려함>이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진행되며 유사한 흐름으로 앨범의 유기성을 맞춘다. 특히 Intro에서 시작하는 신스 중심 사운드로 시작해 ‘무한의 계단’으로 넘어가는 부분, ‘HARARAI FLOW’에서 ‘실리콘밸리’로 넘어가는 흐름이 텐션을 유지하며 트랙간 사운드의 흐름이 돋보이며 ‘Lessgo 2’에서의 강렬한 트랩리듬의 사운드와 ‘EPIC HIGH’ 트랙에서 하이햇을 강조하며 진행되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그리고 아프로비츠의 ‘황제펭귄', 디지코어의 ‘Invasion 2’, Jerk의 ‘KITON’과 같은 힙합 장르 안에서의 다양한 비트를 소화하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Nightingale’에서 스윙스의 피쳐링은 Swamp Izzo나 DJ Khaled와 같은 유사한 추임새 역할로 활용되며 웃음 포인트로 작용하였고, 염따, 키드밀리, 그냥노창, 양홍원 등 다양한 피쳐링 역시 적재적소로 배치하며 앨범의 구조적인 유려함을 완성한다.
대마초 흡연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잃을 것이 많았으나, 이번 신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시즌2를 맞이하며 본격적으로 볼린 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해온 김감전은 실제 결과물로 만들어내며 단순한 자신감에서 나온 게 아니란 걸 이번 앨범으로 증명했다. 또한 개인 작업물에서 대중에 눈에 띌만한 활약이 없어 역량을 의심하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이번 앨범으로 의심의 눈빛마저 잠재우며, 결과적으로 앨범의 음악적 완성도와 캐릭터 이미지 모두 챙기는 데 성공했고, 한국힙합의 넥스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엉얼 : 유튜브 On The Radar Radio에서 보여주었던 하드한 프리스타일로 최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Chris Patrick은 보컬과 랩 둘 다 수준급으로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아티스트이지만 이번 앨범에서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담아내려는 욕심이 오히려 물음표를 남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5번 트랙 ‘Doremi’를 기준으로 앨범의 결이 나뉜다. ‘Ausar's Prayer’부터 ‘The Mayor’까지는 사운드를 일렉기타, EP, 벨, 스트링 사운드로 구성되어 타이트한 랩의 깊이를 더해주는 센 흐름을 보여주었고, 반대로 ‘100x’부터 ‘Huncho's Prayer’까지는 피아노와 기타를 중심으로 비교적 여유로우며 가벼운 감성으로 팝랩, R&B가 가미된 트랙들로 구성했다. 이러한 구성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처럼 보였으나,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앨범으로 묶여지긴 다소 어려워 보인다. 특히 마지막 ‘Huncho's Prayer’는 곡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감성적인 무드와 하드한 무드로 나뉘면서 진행되는데, 차라리 전반부의 흐름으로만 앨범을 끝냈으면 앨범의 방향성을 조금 더 명확히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Pray 4 me]는 결론적으로 Chris Patrick의 보컬과 랩 모두를 소화할 수 있는 아티스트임을 보여주는 앨범이었지만, 전작 [THE CALM], [X-Files]에서도 유사한 구성과 흐름을 반복하며 앨범의 구성 측면에서 아쉬운 인상을 주었다. 마치 재료 하나하나는 맛있으나 이를 한데 섞는 과정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한 음식 같은 느낌이 드는 앨범이었다. 다재다능한 건 분명한 강점이지만, 이제는 둘 중 어떤 쪽을 자신의 중심축으로 삼을지 명확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점으로 보인다.
Noey : 전반적으로 보면,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나 확장 없이 21 Savage(이하 21 새비지)가 늘 해오던 것을 그대로 이어 붙인 앨범에 가깝다. 21 새비지는 트랩 씬에서 오랫동안 결과로 증명해 온 아티스트이고, Metro Boomin과 함께한 두 장의 앨범으로 그 입지를 이미 충분히 굳혀왔다. 전작인 [American Dream] 역시 같은 미학 안에서 더 정제된 완성도를 보여준 작업이었다. 이처럼 이전 앨범들은 늘 어떤 형태로든 발전을 보여주거나, 21 새비지의 강점을 살려주는 피처링과 구성으로 기대에 부응해 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전 작업들의 연장선에 머문 [WHAT HAPPENED TO THE STREETS?]가 더 아쉽게 다가온다.
앨범의 사운드 구성 역시 안전한 선택의 반복이다. 공포 영화 같은 익숙한 프로덕션이 깔리고, 그 위로 Young Nudy, Drake, Latto, 그리고 Metro Boomin까지 21 새비지표 트랩에 빼놓을 수 없는 익숙한 이름들이 피처링으로 참여해 그를 지원 사격한다. 하지만 이 강력한 지원군들조차 이미 예상 가능한 시너지 안에서만 움직일 뿐, 앨범의 단조로움을 깨는 변수로 작용하지 못한다. 기존에 강점이던 나긋한 플로우는 느릿한 비트 위에서 심심하게 흘러가고, 앨범 제목이 던지는 'What Happened to the Streets?'라는 거창한 질문이 무색하게 메시지적인 깊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총격과 허세 어린 관계 서사가 새로울 것 없이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한계는 곡 단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HA’는 Gucci Mane의 ‘Hit Another Lick’을 샘플링했지만 존재감이 약하고, 후렴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이어 ‘POP IT’이나 ‘DOG $HIT’ 같은 곡들도 반복적인 훅으로 틱톡이나 메인스트림을 노린 듯한 노골적인 구조를 띠는데, 그저 트랙리스트를 채우고 유명한 이름들을 얹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인상을 준다.
결국 앨범이 남기는 것은 방향성에 대한 의문이다. 브랜드로서의 21 새비지는 여전히 견고하고, 시장은 그의 익숙한 톤을 기꺼이 소비한다. 하지만 그 안정성이 곧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스케일의 확장이나 급진적인 변신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장르의 정점에서 누리는 여유가 자칫 나태함으로 비치기 시작한 지점이며, 상업적 성공이라는 방패 삼아 굳어진 관행을 한 번쯤 의심해 볼 시점은 분명히 지났다. [WHAT HAPPENED TO THE STREETS?]은 지금의 21 새비지가 무엇을 유지하려는지는 보여도, 그다음을 향한 방향은 잘 보이지 않는 앨범이다.
※ 'Noey', '엉얼'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