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MS, A.TRAIN, Huremic, khc, NMIXX 외
TEN : [Club Icarus]의 클럽은 화려한 유흥 공간이 아니라, 우울과 결핍을 공유하는 이들이 잠시 몸을 숨기고 서로를 확인하는 장소다. 에스파의 광야가 초현실적인 판타지였다면, 아르테미스(ARTMS)는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비밀스러운 클럽'이라는 현실적인 설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신화 속 인물을 연상케 하는 날개와 여신풍의 드레스룩, 14분에 달하는 시네마틱 뮤비로 세계관을 넓히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철저히 현실을 향해 있는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BURN’을 제외한 트랙들이 균일한 톤 앤 매너를 유지한다. 웅장한 브레이크 비트의 ‘Club for the Broken’부터 저지 클럽, 하우스, UK 개러지가 뒤섞인 ‘Verified Beauty’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스산한 밤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여러 장르를 나열하며 색깔을 흩트리는 방식 대신 전체 무드를 일관되게 밀어붙인 덕분에, 리스너는 흐름이 끊기지 않는 사운드 속에서 이들의 세계관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앨범이 돋보이는 지점은 자극적인 훅이나 휘발성 가사가 주류인 시장 속에서도 가슴에 남는 메시지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난해하고 낯선 용어로 거리감을 만드는 세계관 대신 누구나 겪어봤을 현실적인 상황을 중심에 두어 리스너가 가사 속 이야기에 곧바로 빠져들게 만든다. 타이틀곡 ‘Icarus’는 가사를 통해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인간적인 의지를 담아내고, 이어지는 ‘Obsessed’는 현대인의 강박을 본능적인 아름다움으로 긍정하며, 내 안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러한 위로가 유난히 진하게 남는 것은 이달의 소녀에서 아르테미스로 다시 날아오르기까지 이들이 묵묵히 견뎌온 실제 시간이 메시지에 자연스러운 무게를 더하기 때문 아닐까?
제트 : [POVIDONE ORANGE]는 환경과 사회라는 거대한 담론에서 출발해 그러한 문제 안에 포함된 '나'의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넘나 든다. ‘불기둥 (feat. Rani Bober)’에서는 파괴의 순간을 방관하는 냉소적인 집단 속 자신을, ‘UTOPIA’는 그러한 위기 앞에서 개인의 생존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현실적인 상황과 체념적인 태도를 솔직하게 그려냈다. 외부의 문제인 동시에 내면의 문제이기도 한 공유점을 짚어내는 전개로 추상적일 수 있는 메시지에 구체적인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연대와 위로라는 익숙한 결론 또한 개인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풀어내며 공허하게 흩어질 수 있는 외침에 명분을 덧입히고, 듣는 이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한층 확장된 전자음과 사운드 배치는 매끄럽고 풍부하다. 산뜻한 피아노의 ‘DISTOPIA’나 빠르게 몰아치는 퍼커션과 스트링의 ‘돈이 안 돼도 해 (feat. Ben T Kadar)’, 가스펠스러운 ‘SELL FISH’ 등, 각각의 트랙은 분명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앨범 단위에서 과하게 튀지 않으며 유기적인 역동성을 형성한다. 독특한 시각적인 표현 방식도 메시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상처의 인지와 직면, 치유를 담아낸 3부작의 마지막 앨범인 만큼 똑같이 천을 뒤집어쓴 모습은, 이전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함을 상기시키며 지난 과정을 겪으며 남은 흔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POVIDONE’의 뮤직비디오 속 메마른 주황빛 사막 속 기어코 초록을 틔워낸 자연, 정반대의 배경에 어울리는 스케이트화를 신고 모래 위를 가로지르는 행위는 의도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동시에 장엄하게 공명하는 음악과 만나 강한 흡입력을 만든다. 그렇게 이 앨범은 여러 방면에서 에이트레인이 던지는 질문과 경험을 접하는 이가 자연스럽게 이어받도록 열어둔다. 의문, 공감 혹은 그 외의 어떤 것이 되든,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입체적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은 이 앨범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베실베실 : 2025년의 인상 깊었던 한국 음악을 되짚어보면, 유독 숨은 락 명반들이 많았던 듯하다. 소음발광의 강동수를 주축으로 한 썬 타운 걸즈, 미역수염의 반재현이 만든 baan, 김반월키의 또 다른 자아 Mary Lily를 비롯해 저먼호핑댄스, Exhibit A, MurderMartyr 등, 모두 기존 한국 락에서 듣기 힘들었던 장르를 기반으로 본인의 색을 발전시킨 아티스트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Huremic, 아니 파란노을의 앨범을 다시금 짚지 않을 수 없다.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이미 상반기 결산에서 깊게 다룬 바가 있기에 이번에는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이 앨범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는 특유의 '자기혐오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로파이 슈게이즈' 음악으로 한국 락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수많은 파란노을 키즈를 양산했다. 하지만 그는 그 스타일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Huremic이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보컬을 줄이고 국악과 같은 새로운 요소를 접목해 마치 잠비나이와 Swans를 섞은 듯한, 전례 없던 청각적 경험을 만들어 냈다. 앞서 언급한 다른 아티스트들이 각자의 장르에서 본인의 색을 발전시켰다면, 파란노을은 아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버린 것이다. 끊임없이 본인만의 음악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위대한 아티스트이다. 2020년대의 한국 락은 파란노을로 시작해서 Huremic으로 끝난다 — 적어도 지금까지는.
르망 : 어떠한 의도 없이 과학적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한 힘, 즉 소리는 내 귀에 도달하고 뇌에 정보가 인식되는 순간까지 여러 열화 과정을 거친다. 그 열화 과정에는 많은 것들이 영향을 주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경험'과 '기억'일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본질이 전혀 다른 소리를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빗대어 특정한 소리로 인식한다. 글로켄슈필 소리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떠올리고, 노이즈가 울렁이는 소리에서 바람 소리를 느끼는 것처럼. Khc의 [아침놀]도 비슷한 경험을 만들어 준다. 각 트랙은 여러 악기와 인간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이곳저곳에 쌓이고, 그 쌓인 소리는 서로 엇나가기도, 나란히 가기도 하며 하나의 사진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뒤덮이는 글리치한 이펙트들은 그 풍경에 시간의 관념을 부여하며 현실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런 장면을 귀로 듣다 보면, 문득 내 기억과 경험에 뒤섞이며 한적한 시골의 하루를 떠올리게 된다. 분명, 시골과 관련된 언급이 없었음에도. 2번 트랙 ‘우리는 항상 거추장스러운 꿈을 꾸고’에서 소리의 뭉텅이가 점점 다급하게 상승하다 무너져 내리고, 그 소리가 다시 조밀하게 모였다가 사방으로 퍼진다. 이렇게 한 곡에서도 소리의 움직임과 템포의 변화로 인한 다이나믹이 강하지만, 앨범 전체적으로 트랙 간의 감정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앨범 전체적인 흐름에도 고저가 확실하다. khc는 이런 다이나믹의 차이로 무언가가 가지고 있는 양가적 특성을 계속해서 청자들에게 내비치며 말한다. '빛조차도 밝음과 어두움이 있는데, 사람의 삶에도 행복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라고.
JEN :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Fe3O4: FORWARD]에서 NMIXX(이하 엔믹스)는 스스로 규정해 왔던 '믹스팝'을 재정의한다. 'Change UP!'을 외치며 곡 단위 내에서 장르를 뒤섞는 것이 아니라, 서사에 맞는 음악적 요소들을 적절히 섞어내며 앨범을 완성시킨다. 이전의 과감함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절제된 완급 조절이 들려오고, 리듬과 멜로디는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함께 호흡한다. ‘High Horse’에서는 서정적인 피아노 위 보컬만 얹어 목소리에 집중시키고, 이후 넓은 공간감의 드럼이 몰려오는 구성은 곡이 지닌 공허한 정서를 극대화한다. ‘KNOW ABOUT ME’의 댄스 브레이크 역시 물에 잠긴 먹먹한 사운드에 거친 샤우팅 랩으로 긴장감을 형성한 뒤, 사운드가 돌아오는 순간 MV 속에서도 엔믹스의 배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리스너에게 강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연출은 이들이 사운드를 얼마나 섬세하게 다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들던 서사를 그려왔던 만큼, 그간 엔믹스의 음악은 흔들리는 항해처럼 급격한 전환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전환에 휘둘리지 않고, 믹스토피아로 향하는 배 'MMU'를 수리하고 불안정함을 떨쳐내며 보다 단단한 상태로 여정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눈에 띄게 튀거나 복잡하게 섞지 않아도, 오히려 그들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또렷해질 수 있다. — 이것이 바로 엔믹스가 택한 서사의 완벽한 마침표이다.
Noey : 한국 R&B 씬은 꾸준히 새로운 얼굴을 배출해 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 이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라쿠네라마(RAKUNELAMA)의 [LUCHADOR]는 오랜만에 씬의 공기를 바꿔놓은 앨범이다. 보사노바, 아프로비츠 등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을 R&B와 결합시킨 사운드와 과하게 들뜨지도, 지나치게 가라앉지도 않는 균형 잡힌 톤부터 인상적이다. 보사노바 리듬 위에 여름의 활기와 도시의 피로를 동시에 얹은 타이틀곡 ‘YARR’가 기준선을 잡아준다면, 브라질리언 펑크 리듬을 전면에 내세운 5번 트랙 ‘B’에서는 라쿠네라마의 방향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인트로의 "아싸라비야 콜롬비야"라는 구절은 2000년대를 지나온 한국인이라면 반사적으로 떠올릴 만한 기억을 건드리고, 이 선택은 음악 밖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열화된 푸티지 위에 레슬링 채널, 전대물, UCC 등 2000년대를 구성하던 이미지들을 병치한 프로모션 영상과 ‘B’의 뮤직비디오는 그 시절의 향수를 직접적으로 불러낸다. 하지만 라쿠네라마가 특별한 이유는 이러한 기호를 불러오면서도 당대의 사운드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다른 문화권의 리듬과 현재의 R&B 문법 안에서 새롭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LACHADOR] 속 라쿠네라마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라틴 아메리카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한국적인 맥락과 세대적인 감각 안에서 어떻게 다시 만들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한동안 눈에 띄는 흐름이 보이지 않던 한국 R&B 씬에 설득력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등장한 듯한 느낌이다.
플린트 : 현재 가장 굵직한 국내 음악 트렌드의 방향성은 하이퍼팝, 디지코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식" 하이퍼팝은 단순히 자극적인 사운드로 도파민에 치중하기보다는 Sion처럼 Porter Robinson에서 출발한 순진무구하고 아련한 감성을 더하기도 하며, 혹은 Effie처럼 K팝적 요소를 사용하며 00년대 말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SS-POP2]은 아련함과 오마주라는 하이퍼팝의 두 트렌드를 함께 보여줬다는 문법적 이유만으로 주목할 만한 게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련한 추억 회상"이라는 트렌드를 가장 적나라하게 살려낸 표현 방법이 이 앨범의 핵심이다. 첫 곡부터 너무나도 익숙한 테일즈 위버의 OST와 함께, 의미심장한 검정치마의 [TEEN TROUBLES] 샘플링은 그들의 의도처럼 청자가 회상에 집중하게 만든다. 해당 TTS 나레이션은 검정치마 본인의 성장배경을 그린 앨범 [TEEN TROUBLES]의 시작과 끝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앨범에 통일된 테마를 제공하는 장치로 쓰였는데, 동일한 구조로 동일한 역할을 하며 "한국에서의 성장배경"을 표현하고자 사용한 이 샘플 초이스는 익숙한 요소를 썼다는 샘플링의 의의를 넘어 영리함이 느껴진다. 또한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철없고 무모했던 10대 시절의 Trouble" 같은 앨범인 만큼, 문제 많은 이 앨범을 열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인 "무단 샘플링" 때문이다. 이젠 너무 익숙한 히트곡의 샘플링이지만, 이 "무단"이라는 주홍 글씨가 주는 길티 플레져는 괜시리 10대 시절 일탈 같은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가져온 게임, 드라마, 히트곡 등 사운드가 우리의 그 시절에 대해 가지는 상징성 덕분에 추억은 훨씬 더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사실 히트곡 샘플을 디지코어 트랙에 사용한다는 작법은 이미 4년 전 해외의 xaev가 선보였었으며, [SS-POP2]만의 독창적인 시도는 아니다. 이들의 범법 행위를 옹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아티스트의 이름처럼 현시점 서울의 시스템을 굴리는 사람들을 정확히 타겟하여 잊을 수 없는 이들의 흑역사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했으며, 필자 또한 이런 성장 배경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보다 더 강하게 남은 앨범을 찾기 어려웠다.
엉얼 : 동네 친한 형, 웃긴 아저씨 같은 이미지가 익숙한 염따는 굿즈 티셔츠 디자인 도용 논란, 쇼미더머니의 태도 논란, 마미손과의 소속 아티스트 간 공방 등 다양한 문제들로 잠적한 후, [살아숨셔4]를 들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앨범은 범죄나 잘못된 행동 이후에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이들과 달리, 염따가 자신의 태도를 인정하고 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앨범인 만큼 메시지가 중심에 놓이며, 사운드는 전면에 내세우기보단 감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예를 들어 ‘더콰이엇’에 나오는 브라스는 두근대는 감정을 표현하고, ‘그때 우리는’에서 나오는 피아노 선율은 회상하는 메시지의 무게를 더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다사다난한 인생을 대변하듯 ‘마’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기반의 포크, ‘sWing’에서는 재즈와 같은 힙합을 기반으로 한 여러 장르로 구성되어 있으며, ‘IE러니’에서 실리카겔 - T를, ‘순정(純情)2025’에서는 코요테 – 순정을 샘플링하며 힙합팬을 넘어 더 많은 청자에게 자신의 메세지를 알리려는 의도를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살아숨셔 4]는 음악들이 빠르게 소비되고 자극에 기댄 음악이 넘쳐났던 2025년 트렌드에 맞게 러닝타임을 짧게 유지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채워 넣었고,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과장하지 않고 오롯이 자기 자신을 담아내었다. 자전적 이야기와 진정성을 앨범 주제로 선택한 그는 음악에서 보여주는 태도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졌기에 올해의 앨범으로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샐리 : 자신이 가진 무기를 정확히 이해하고 다듬어낸 결과물이다. 드럼앤베이스와 아프로비츠, 곳곳에 등장하는 노이즈와 R&B 그루브를 한 데 묶어 냈음에도 산만하지 않다. 그 중심에는 윤다혜의 목소리가 있다. ‘귀 있는 자’처럼 신디사이저를 중심으로 천천히 퍼져나가는 사운드 위에서는 끈적하게 밀고 당기는 보컬로 매혹적인 느낌을 주다가도, ‘신 시티’나 ‘Funeral Freestyle’같이 가볍고 빠르게 뻗어나가는 비트에서는 리드미컬한 가창을 선보인다. 트랙의 특징에 맞춰 목소리를 운용할 줄 아는 역량 덕분에, 여러 장르가 뒤섞이는 과정 속에서도 이 음악이 '윤다혜의 것' 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만든다. 조사 한 글자로 차이를 준 ‘그녀는 손가락 금붕어’와 ‘그녀의 손가락 금붕어’ 트랙에서는 동일한 멜로디를 기반으로 하되, 대조되는 분위기로 풀어내며 구성적 재미까지 설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완벽히 새로운 음악을 만나기 어려운 지금, 음악에 대한 아티스트만의 해석이 더욱 중요해졌다. 윤다혜는 이 지점에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해 내는 데 성공했다. 단순히 장르를 앞세우기보다, 목소리를 변화시키며 사운드를 해석하는 접근법은 그녀가 앨범의 주인으로서 온전히 음악을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첫 정규 앨범이라는 게 놀라울 만큼,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증명해 나갈지 보여주는 명확한 출발점이다.
광글 : 몇 년간 이어진 이찬혁을 향한 비난 속에서 이 앨범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디병'이라는 조롱에서부터 '찬혁이 하고 싶은 거 그만해'라는 밈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AKMU와는 다른 변화를 시도한 그는 꾸준히 의심과 냉소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조롱과 비난의 빌드업 끝에 탄생한 이 앨범의 메시지는 하나의 인간승리에 가깝게 느껴진다. 이 앨범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깊은 철학적 질문을 대중적인 사운드 안에 자연스럽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ERROR]에서 이어진 레트로 신스 팝의 기조 위에 따뜻한 라이브 세션이 더해지고,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보컬의 빈자리는 찬송가를 연상시키는 가스펠 코러스로 채워진다. 여기에 적극적인 리버브 활용으로 완성된 따뜻하고 풍성한 사운드는 정직하게 사랑을 외치고자 하는 기독교적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사운드 위에서 이찬혁은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곧이어 '우리는 항상 사랑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며 살아가자'라고 답한다. 결핍이 오히려 사랑을 더 절실하게 만든다는 역설의 철학이다. 세상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도 주어진 길에 최선을 다하는 이 태도는 혐오의 시대 속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의 감정을 정확히 건드린다. [EROS]에서 이찬혁은 자신을 향해 쏟아진 의심과 냉소에 분노로 맞서기보다, 의도적으로 가장 밝고 따뜻한 소리를 선택한다. 비난에 대한 대응을 논리적인 '반박'이 아니라 태도로서의 '사랑'으로 전환한 것이다. 넓게 열어 둔 공간감과 여러 목소리가 겹쳐지는 코러스는 사랑을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함께 부르는 집단적인 울림으로 확장한다. 그래서 이 음악은 설득하거나 증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사랑을 부른다. 초역 부처의 말에서부터 쇼펜하우어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고전들이 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이유 역시 시간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보이지 않는 ERROR의 세계에서 사랑의 EROS를 외치는 이찬혁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여전히 사랑을 놓지 않으려는 메시지는 마치 오래된 고전처럼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는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태휘 : YG를 떠나 개인 회사를 설립하여 이후 아티스트 자신을 증명해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제니에게 이 선택은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숨을 크게 들이마실 수 있는 계기처럼 보인다. 걸그룹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온전한 하나의 브랜드로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펼칠 수 있는 판이 열린 셈이다. OA 설립 이후 발표된 [Ruby]는 이 흐름을 단번에 이해시키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ZEN’을 처음 들었을 때 느껴지는 광활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웅장한 엠비언트와 킥 사운드 사이 여백을 남긴 채 단단하게 서 있는 제니의 보컬은 듣는 이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조기석 감독과 함께 불교 사상의 '선'을 모티브로 한 MV 역시 3분이라는 시간이 체감되지 않을 만큼 몰입도가 상당하다. 또한 도이치, 차일디쉬 감비노, 칼리 우치스 등 모두를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화려한 라인업으로 구성된 이 앨범의 스포트라이트가 자칫하면 본인이 아닌 다른 인물이 될 수 있는 리스크가 있지만, ‘Like Jennie’의 자신감이 만들어낸 완성도는 그런 걱정을 가볍게 비켜가게 만든다. 땜핑감 있는 브라질리언 펑크 장르를 사용한 이 곡은, '제니'라는 이름을 통해 "어, 맞아. 나 제니야! 어쩔 건데?"라고 당차게 말하는 태도가 돋보이며, 단숨에 그녀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Love Hangover’는 R&B 안에서 달콤하면서도 섹슈얼한 결을, ‘twin’에선 담백한 팝 발라드로 그녀만의 감정선을 보다 깊이 느낄 수 있는 제니의 다채로운 면모가 드러난다. 다양한 장르, 다양한 퍼포, 다양한 이미지가 응집된 [Ruby]는 제니가 솔로 아티스트로서 지닌 폭넓은 역량을 입증하는 충분한 결과물이었다. 결국 이 앨범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니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본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고, 이는 우리에게 그녀의 자신감을 기어이 인정하게 만드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화인애플 : '컨셉츄얼'하다는 묘사를 두고 '과한', '강한', '무거운'이란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내 힙합에서는 저스디스의 1집이, 케이팝에서는 에스파의 데뷔 초반이 떠오르기도 한다. 반면 최엘비는 한결 가벼운 '찐따'라는 컨셉을 그의 음악 여정에 그대로 녹여냈다. 본 앨범 [her.]에서 새롭게 들인 캐릭터는 아니라지만, 본작에서 다시금 빛을 발한 것이다. [독립음악]이 가벼운 힙합 중심의 프로덕션에 통일감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컨셉을 전달했다면, [her.]에서는 가사는 물론, 장르적으로 보다 그의 '말랑함'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캐릭터, 사운드, 가사 등 모든 것이 '씹프피'를 향해 가는 여정이다. 과하지 않은, 귀여운 알앤비/재즈힙합 트랙이 주를 이루어 낮은 진입 장벽을 만들되 귀에 박히는 딕션으로 '씹프피'를 외치는 그에게선 상반된 매력이 느껴진다. 이 또한 어디서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찐따'의 특성을 녹여낸 것일까? 그가 빌드업해 온 캐릭터가 없었다면 '딕션이 좋네!'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인데. 청자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단단하기에 많은 요소에 보다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로파이 사운드나 스트링을 곳곳에 녹여낸 것, 9번 트랙 ‘her.’에서 피아노 라인을 독특하게 짠 것도 앨범 전체에 따뜻한 질감을 더했고 그의 '말랑한' 캐릭터를 한층 짙게 만드는 장치였다. 그럼 '씹프피'에서 나아가 그가 나아갈 방향이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최엘비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찐따통'을 자신의 음악을 통해 공감하도록 만들고 싶은 게 아닐까. '찐따같음'은 어느 순간 '최엘비스러움'이 되어가는 중이다.
루영 : 시간에 따른 감정의 증폭과 소강을 타임 랩스(Time Lapse)로 재생할 수 있다면, 이 앨범을 현상(現像)해서 보고 싶다. 슈게이즈와 노이즈, 앰비언스가 만들어내는 실험적인 사운드 아래, 관계의 시작과 끝에서 생겨난 감정들은 9개의 트랙을 거치면서 꽃이 피고 지듯 서서히 솟아오르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Shutter’에서 기타 노이즈와 함께 피어오른 상대에 대한 비관적인 미련은 ‘흰’과 ‘벽’에서 냉소 섞인 체념으로 식어간다. 그러다 ‘아래로’와 ‘눈’에서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날카로운 신스와 노이즈는 정성욱의 절규하는 듯한 보컬과 함께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억눌려 있던 분노와 원망이 뒤섞인 감정을 폭발시킨다. ‘등’과 ‘Anemone’에서 결국 단절을 받아들인 뒤 찾아온 슬픔과 절망은 ‘진 꽃 위로 피는 흰 벽’을 끝으로 서서히 소멸되고, 마음의 공간은 다시 비워진다. 차갑고 투명한 얼음 같은 성지연의 보컬과 뜨겁게 타오르는 불 같은 정성욱의 보컬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이러한 감정의 증폭과 소강을 청각적으로 극대화시킨다. 이현준의 익스페리멘탈 힙합 앨범 [번역 중 손실]의 프로듀서로 이미 실험적인 사운드의 진가를 증명한 프로듀싱 멤버 Syai는 색이 전혀 다른 두 보컬과 서늘하면서도 역동적인 사운드의 낯섦을 한 편의 조화로운 서사로 완성시켰다. 팀 이름은 '0%'이지만, 멤버 간의 시너지를 100% 이상으로 끌어내는 이 팀의 음악을 앞으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baan - [Neumann]
Exhibit A - [Demo #1]
Huremic - [Seeking Darkness]
Khc - [아침놀]
Mary Lily - [Glad You’re Doing Well]
MurderMartyr - [PoemforNothing]
NMIXX - [Fe3O4: FORWARD]
백현진 - [서울식]
사모 키요타 (SAMO KHIYOTA) - [고마워요, 아마드!]
썬 타운 걸즈 - [처음은 이제 없어요]
by 고멘트 <주간 신보 리뷰>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