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엔터사들이 팬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하는 이유

케이팝 산업에 필요한 데이터의 방향

by 고멘트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 직접 음반을 구매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스포티파이로 어디에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된 지금, 달라진 건 우리의 행동이 전부 기록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선 어떤 곡을 몇 초 듣고 넘겼는지, 어떤 영상 앞에서 손이 멈췄는지, 어느 순간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는 지와 같은 선택들까지도 기록으로 남는다. 이것을 우리는 '데이터'라고 부른다.


한 때 빅데이터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자주 언급되곤 했다. 이 데이터라는 단어가 다시 주목받게 된 배경에는 AI가 있다. AI는 학습할 데이터가 있어야 작동하는 기술이다. AI 기술 자체의 퀄리티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양과 질이다. 쌓여 있던 데이터들과 AI라는 기술이 결합되면서 모든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다. 이제 데이터는 돈이 된다. 이러한 흐름 아래, 위치 정보나 생체 정보와 같은 개인 정보까지 자원으로 쓰려는 기업들도 등장했다. 그들은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데이터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편, 케이팝 산업은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 여전히 초동 판매량, 음원 순위, 관객 수, 조회수와 같은 전통적인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고, 데이터 전문 인력을 뽑는 기업도 많지 않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보편화된 시점임에도, 여전히 많은 중요한 판단들을 '직관'과 '노하우'로 결정하고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변화한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데이터라는 자산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케이팝 산업의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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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케이팝이라는 산업이 매우 특수하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사람이 곧 상품인 구조다. 따라서 가격이나 품질과 같은 실용적 기준이 아니라, 감정적 동기가 소비를 이끄는 경우가 많다. 또 상품 자체가 입체적인 만큼 소비 동기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팬덤은 수많은 익명 커뮤니티에 흩어져 활동하고 있으며, 원하는 것을 늘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의견 수집 자체가 힘들고, 감정에 기반한 의견들을 수치로 변환하는 것도 어렵다.


또 하나 독특한 부분은, 결정권자들 중에 소비자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회사에 경영 전문 오너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시장과 팬덤을 잘 모른다. 실제로 작곡가, 아이돌 등 아티스트 출신 인물이 결정권자로 있는 기업들도 꽤 있다. 이는 케이팝이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놓여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조합한다고 해서 반드시 재밌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지나치게 계산된 기획은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은 오랫동안 사랑받기 어렵다. 감각과 직관의 영역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케이팝의 시장 규모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열리며 산업이 재편되었고, 종합 예술로 변모하면서 소비 패턴도 더욱 다층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로 접어들며 경쟁자들의 퀄리티는 점점 더 높아지고, 사람들의 집중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감에만 의존하기에는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진 환경이다. 하지만 소비 심리 파악이 어려운 산업이기 때문에 더더욱 정교한 분석이 필요하다. 단순히 창작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적 도구로 데이터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팬덤의 의견을 분석한 키워드를 기획과 제작에 반영하자는 말이 아니라, 팬덤을 '공부'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팬덤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작금의 케이팝은 단순한 음악 산업이 아니다. 히트곡의 유무가 아티스트의 성공을 가르던 시절과 매우 다르다. 유입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유입된 팬덤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저 불만이 많은 집단으로 일축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예시로, 케이팝 레이더에서는 멜론, 유튜브 등 주요 플랫폼에서의 팬덤 행동 데이터를 통해 분류한 팬덤 세그먼트를 제시하기도 했다. 팬을 코어 팬덤, 라이트 팬덤, 대중, 멀티 스탠 등으로 분류한 자료로, 실질적으로 팬덤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또 이들은 팬덤이 어떤 그룹에서 유입되었고, 어떤 그룹으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도 함께 제시했다. 추가적인 분류 기준이 생기면 파악이 더 쉬워질 것이다. 감과 직관으로 유추하던 것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 본다는 건 사소해 보이지만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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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자료들이 있다면, 팬덤의 이탈 여부를 확인하고 그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음반 판매량과 공연 관객 수를 기록한 두 아티스트라도 팬덤의 구성은 크게 다를 수 있다. 한쪽은 코어 팬덤 비율이 높고, 다른 한쪽은 일회성 소비자가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표만으로는 이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 관람객 수와 판매량이 비슷하더라도 팬덤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에 따라 아티스트의 지속 가능성은 다르다. 케이팝에 대한 소비 습관이 없는 일반 대중은 소속사에서 업로드되는 1시간짜리 라이브 영상을 보지 않는다. 팬들이 편집해 놓은 숏츠와 유튜브를 본다. 바이럴 마케팅 회사가 제작한 양산형 숏츠와 팬의 애정이 담긴 숏츠가 갖는 자본적 가치는 다르다. 그리고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주로 코어 팬덤이기에 그들이 이탈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큰 손실이다. 팬덤 구성 변화나 이탈 징후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면, 손실이 커지기 전에 전략을 수정할 여지가 생긴다. 콘셉트 변화를 해도 괜찮은 시점인지, 해외 시장에 진출할 경우 어떤 부분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지 등 전략적으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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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비슷한 수익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기업도 존재한다. 팬덤 플랫폼 ‘프롬’을 운영하는 회사로 알려진 노머스는 팬덤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투어와 콘텐츠, MD를 기획해 제작하고 있다. 공연 사업 역시 매출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해외 지역별 공연 수요를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맞춰 공연 규모와 장소를 결정한다. 이를 통해 과도한 비용 투입이나 좌석 미달과 같은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구조이다. 노머스는 24년 기준 매출 689억 원을 기록했으며, 매년 꾸준히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데이터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실패 확률을 낮추는 전략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물론 팬덤과 데이터의 중요성을 모르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적인 문제가 크다. 중소 기획사의 경우 예산과 인력의 한계가 존재하고, 팬이 많지 않은 아티스트의 경우 모집단 자체가 적어 자료를 신뢰하기 어렵다. 이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어떤 데이터를 수집해야 할까?


먼저 정성적인 데이터는 소수의 팬에게도 나올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감정적인 동기가 큰 산업인 만큼, 다른 산업보다 정성적인 데이터의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하이브에서 발매되는 모든 앨범에는 설문조사에 참여하면 200원을 지급하는 QR 코드가 들어있다. 해당 설문조사로는 연령대, 공식 가입 여부, 공연 참석 여부, 앨범 구매 채널, 앨범 구매 이유, 받고 싶은 특전, 입덕 시기, 가장 좋아하는 곡, 해당 곡을 좋아하는 이유, 만족스러운 앨범 구성품, 앨범의 만족도, 함께 좋아하는 아티스트, 콘텐츠 소비 패턴, 앨범에 대한 의견, 덕질 이유, 이용하는 플랫폼 등을 묻는다. 이들이 비용과 인력을 지불하면서도 설문조사를 지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정성 데이터는 관리가 어렵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패턴을 도출하지 못하면 단순한 의견 모음에 그칠 수 있다. 정량 데이터와 결합해야 비로소 신뢰할 수 있고 전략에 활용 가능한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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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량적인 데이터는 어떻게 수집해야 할까? 위버스 같은 팬덤 플랫폼이 단순히 팬들의 덕질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플랫폼은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유료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안에서 발생하는 이용자의 행동 데이터다. 이 데이터들은 전략을 수립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고, 알고리즘의 질을 높이는 데 쓰이기도 한다. X, 위버스, 버블 등 각기 다른 팬덤 플랫폼들이 이미 안정적으로 자리 잡혀 있는데도, 카카오의 ‘베리즈’, CJ의 ‘엠넷플러스’와 같은 후발주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도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서비스를 하나의 플랫폼에 통합해 운영하려는 것도 이용자의 앱 의존도를 높이는 동시에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중소 기획사들은 자체 플랫폼을 운영하기보단 대부분 이런 대형 플랫폼에 입점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에선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이 가장 많은 데이터를 확보한다. 중소 기획사들도 팬들의 데이터를 수집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시로 ‘비스테이지’는 입점한 기획사들이 자신의 팬덤 데이터를 직접 소유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플랫폼이다. 현실적으로 수집 가능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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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레이더와 같은 데이터 전문 기업과 협업하는 방법도 있다. 물론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실무자들의 눈에는 이러한 데이터 자료가 아직 충분히 정교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케이팝 레이더의 자료 대부분은 ‘블립’이라는 플랫폼의 이용자 데이터와 유튜브 조회수, 인스타그램의 팔로워와 같은 공개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어 낸 자료이기 때문에 100% 정답은 아니다. 또한 데이터는 해석하는 사람의 역량이 중요한데, 실무를 경험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해석이 다를 수도 있다. 팬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는 또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연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더 정교해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노머스 같은 사례를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팬의 행동 데이터는 스포티파이, 멜론, 유튜브, 오프라인 구매 등으로 흩어져 있고,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과 인력이 필요하다. 완벽한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니더라도 팬덤의 구조와 이동을 보려는 시도가 전략의 출발점이 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나와있는 데이터를 참고하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일 것이다. 케이팝 산업을 분석하는 데이터 전문 기관이 늘어날 필요도 있다.





케이팝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팬덤 덕분이다. 오늘날의 케이팝은 팬덤이 본질인 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케이팝 산업은 유독 다른 산업에 비해 소비자 분석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또 대형 기획사와 중소 기획사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대형 기획사들이 팬덤에게 훨씬 관심이 많다. 고질적인 문제는 소비자를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시장을 이해하려는 생각이 있더라도, 바쁜 실무자들이 전 세계에 있는 팬덤의 니즈를 감만으로 파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감과 직관만으로 파악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커졌고, 변수도 지나치게 많아졌다. 이때 현실적으로 유용한 것이 데이터이다. 데이터를 잘 해석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역량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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