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2년 연말결산 ②)

(여자)아이들, 지윤해, 이찬혁, 검정치마, Harry Styles 외

by 고멘트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의 현주소"


1. (여자)아이들 – ‘TOM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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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크롬 : 22년을 걸그룹 전성기라고 퉁치기엔 (여자)아이들은 그 성취와 의미가 남다르다. 신선한 매력의 신인도 아닐뿐더러 멤버 탈퇴 이슈로 인해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기 떄문이다. ‘TOMBOY’는 조금의 멈칫함도 없이 곡 하나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여자)아이들을 차트 최상위권에 안착시켰다. 전소연을 필두로 한 멤버들의 개성과 록 기반의 직관적이고 시원한 프로듀싱이 그간 진부하기 짝이 없었던 크러쉬 콘셉트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멋지게 비틀어 낸 셈이다.


이후 ‘Nxde’로 2연타를 날린 (여자)아이들의 행보는 여전히 프로듀서형 멤버가 팀의 브랜딩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이브에는 장원영이라는 시대의 아이콘 같은 멤버가, 그리고 뉴진스에는 그 아우라를 기획/컨트롤하는 민희진이 있듯이, (여자)아이들에는 전소연이 있어 그룹들의 매력, 가치에 믿음(혹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이러한 접근은 콘셉트와 연차로 그룹을 구분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인사이트를 던져준다. 가령 ‘LOVE DIVE’가 아이브가 아닌 다른 그룹이 부른다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도 ‘TOMBOY’는 (여자)아이들과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듯이.





"음악이 감정을 낳는 법"


2. 지윤해 – ‘Zenly (ft. da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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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 ‘젠리’는 1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위치 추적 어플이다. 처음엔 그 사실을 모른 채 곡을 들었고, ‘당신이 어디쯤 왔는지 나는 알 길이 없어요 / 내가 어디에 있는지 당신도 알 길이 없는데’라는 가사에서 나는 ‘이별과 부재’라는 키워드를 떠올렸다. 상대방이 내게 가까워지고 있는지 멀어지고 있는지, 그의 감정을 너무나도 알고 싶지만 곁에 없기에 알 수가 없는 상황. 그 생각이 곡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연결되며, 이 곡은 내게 슬픈 이별 노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감상과는 달리 이 곡의 소재는 위치추적 어플이었고, 가사도 그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아 떨어진다. 그 지점이 오히려 흥미로웠다. 특정 소재를 다룬 이야기가 전혀 다른, 어찌보면 뜬금없기까지 한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이 마치 시와 비슷하면서도, 음악은 멜로디의 힘도 더해지며 청자를 더 깊은 감정으로 밀어 넣는다는 것.


한번 듣고 잊게 되는 자극적인 음악들 사이에서, 이렇게 나의 감정까지 곱씹어볼 수 있게 만드는 곡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지윤해와 다정의 유니크한 보이스와 멜로디만으로도 훌륭한 곡이지만, 여러분도 감상을 넘어 감정에 집중하는 경험을 이 곡을 통해 한번 해보기를 바란다.





"가벼운 씬에서 탄생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앨범"


3. 이찬혁 –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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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크롬 : 국내 음악의 경우 메이저 씬으로 올라올수록 가사의 스토리텔링이 모호해지고 의미가 희석되는 경향이 크다. 물론 극대중의 예민함과 가창의 편리함을 위해 변화해 온 과정이지만, 소위 말하는 서사가 소수 힙합/인디 뮤지션의 전유물이 된 것은 아쉽다. 빌보드 시장만 가도 언어 표현의 범주가 무척이나 다양한데 말이다.


이찬혁은 메이저급 입지의 아티스트로 과거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집필하기도 하는 등 서사에 유난히 적극적인 사람 중 하나다. 신스팝으로 촘촘히 덧칠된 앨범의 사운드는 미덥지 못했지만 [ERROR]에 담긴 이야기는 그의 현실 속 기행(?)만큼이나 흥미롭다. 단순 시적인 접근을 벗어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상상해볼 법한 ‘죽음 체험’이라는 주제를 유쾌하지만 시니컬한 무드로 풀어나간다. 칸예 웨스트를 연상시키는 가스펠과 오토튠으로 앨범 마지막을 장식한 ‘장례희망’도 케이팝에서 찾기 힘든 재미있는 포인트 중 하나. 음악적 성취를 떠나 이찬혁이 음악이 그의 캐릭터만큼이나 심심하지 않은 건 무척이나 다행이다.





"지나온 것들에 대한 헌사"


4. 검정치마 - [Teen Trou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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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 [Teen Troubles]는 불친절한 앨범이다. 이전 2개의 앨범은 일관되게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며 다수의 리스너가 공감할 만한 화두를 던졌다면, 이 앨범은 조휴일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정돈된 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청자가 기존의 친절한 스토리텔링과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친절에도 이 앨범을 올해의 앨범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지나온 역사에 대한 멋진 헌사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여러 장르가 뒤섞여 있지만, 그 가운데 검정치마의 음악적 뿌리가 되었던 90년대의 향수가 짙게 배어있다. 강렬한 디스토션의 기타와 베이스에서는 Flaming Lips가 연상되고, ‘Flying Bobs’의 노이즈 가득 낀 로파이 사운드는 자연스럽게 Pavement를 떠올리게 된다. 과거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이 너무나도 조휴일스러운 접근법이라고 해야 할까.


동시에 이 앨범은 검정치마의 역사에 대한 헌사라고도 느껴진다. [Team Baby]와 [THIRSTY]를 거치며 펑키함이 많이 사라졌지만, 이번 앨범에는 마치 초창기의 검정치마를 보는 듯한 트랙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개인적으로 [201] 시절이 많이 연상됐는데, 이는 검정치마 오랜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쨌든 이 앨범은, 인간 조휴일과 아티스트 검정치마 모두에 대한 멋진 회상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앨범과 함께 릴리즈된 쇼트 필름을 첨부하니, 함께 즐겨보시길.





"스러져가는 레트로 속 빛나는 한줄기 빛"


5. Harry Styles – ‘As It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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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크롬 : 올해 빌보드는 이렇다 할 큰 조류가 없었고, 스티브 레이시를 위시한 바이브 계열 음악, 하이퍼팝이나 드릴 같은 군소한 장르가 눈길을 끌었던 탓에 쉽고 직관적인 곡들이 적은 편이었다. 대형 팝스타인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도 무거운 앨범을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그래서 다소 진부할지라도 ‘As It Was’처럼 편안하고 청량감 가득한 음악이 눈에 띄곤 했다. 어쩌면 위켄드의 ‘Blinding Lights’ 이후로 2-3년간 팝 시장을 풍미했던 레트로 팝 열풍의 종지부를 찍는 곡인지도 모른다. 차트 위상 치고는 케이팝에서도 올해 비슷한 모양새로 레퍼런스를 취한 곡이 적었고, 빌보드 자체에서도 레트로의 존재감이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As It Was’의 성공은 이례적이었다. 더불어 해리 스타일스의 커리어 하이(빌보드 15주 1위)를 장식한 곡이 되었으니 제 역할을 다한 셈.





"경계에 놓인 아름다움"


6. Mitski – ‘Stay So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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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 누군가 Mitski의 음악이 어떠냐고 물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유니크함’이다. 그녀의 음악은 딱히 마이너한 것도, 엄청나게 실험적인 것도 아니지만, 어떤 장르의 곡이든 양면성의 감정을 전달한다. 한껏 밝은 곡에도 우울함이 담겨있고, 고통을 노래하는 가운데 위로를 전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 특성은 일본계 미국인이라는 그녀의 정체성과 완벽히 무관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녀의 6번째 정규앨범인 <Laurel Hell>에도 비슷한 감성이 담겨있다. 80년대 팝과 디스코 장르를 중심으로 밝은 톤앤무드를 가져가지만, 동시에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도 공존한다. 그중에서도 3번 트랙인 ‘Stay Soft’는 이러한 앨범의 무드를 관통하는 트랙이다. 벌스의 경쾌했던 피아노 멜로디가 후렴에서는 묵직하게 내려찍는 사운드로 변화되는 부분은 어두움을 넘어 웅장함마저 느껴지고, 그 가운데 감정의 과잉 없이 담담히 노래하는 Mitski의 보컬에서는 한쪽의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 걷는 그녀의 발걸음이 위태로워 보이지만, 그럼에도 잃지 않는 꼿꼿한 삶의 태도가 아름답다고 느껴진다.





"2022년, 랩 하나로 정상 등반하기"


7. JID – [The Forever Story]

최크롬 : 힙합의 범람 이후, 랩 음악에게 기대하는 표준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하다. 상업성이든 캐릭터든, 아니면 작가주의든 인정받는 힙합 아티스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잘함’을 실천하고 있는데, JID는 테크닉과 스토리텔링에서 일관성을 지키면서도 킬링 트랙까지 균형잡힌 앨범을 내놓았다. 올해 켄드릭 라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흔히 평론가 차원의 완성도와 대중적인 매력은 대체로 트레이드오프의 관계이지만, JID는 랩 자체의 디테일과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Surround Sound’, ‘Dance Now’와 같은 걸출한 킬링 트랙을 선보였다. 그가 아티스트를 넘어 랩스타 반열에 오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물론 [The Forever Story]는 힙합 팬덤 외적으로 강한 소구력을 갖거나 사운드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앨범은 아니다. 랩의 유려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담백함을 즐기기 어렵다. 그럼에도 선배인 J. Cole에 준하는 상업적 성취는 놀랍기만 하다. 과거 인기 싱글 ‘Enemy’의 힘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가 가진 랩의 매력이다.





"결국에는 ‘음악’입니다"


8. SAULT – [Untitled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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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 SAULT는 베일에 싸인 밴드다. 201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멤버는 Adele의 프로듀서인 Inflo를 주축으로 보컬 Cleo Sol, 래퍼 Kid Sister뿐이다. 마케팅 활동은 고사하고 그 흔한 뮤직비디오 하나 없는, 콘텐츠 과포화 시대에 오직 음악으로 밀고 나가는 이색적인 행보를 보이는 팀이다.


그런 그들이 이번엔 5개의 앨범을 동시에 출시했다. 펑크, 가스펠,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는데, 지금 소개하는 [Untitled (God)] 앨범은 가스펠과 R&B가 혼합된 앨범이다. 각각의 장르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아프리칸 비트 음악을 시그니처로 하는 밴드의 특성이 잘 드러나며, 이는 마치 가스펠과 힙합을 적절히 믹스했던 Kanye West의 [JESUS IS KING]이 연상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너무도 훌륭한 앨범의 완성도이다. 21개나 되는 많은 트랙 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주되는 베이스 라인과 비트, 곳곳에 배치된 상이한 톤앤매너의 곡들이 끝까지 강한 흡입력으로 이끌어 간다. 게다가 하나의 킬링 트랙만을 뽑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토록 높은 퀄리티의 곡들을 전혀 겹치는 느낌 없이 만들었다는 점도 이 앨범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 혹시 지금 ‘듣는 즐거움’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찾는다면, 나는 가장 먼저 이 앨범을 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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