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2년 연말결산 ①)

LE SSERAFIM, NewJeans, 태연, A.TRAIN 외

by 고멘트

“걸그룹 포화 속에서 살아남기”


1. LE SSERAFIM (르세라핌) – ‘ANTIFRAG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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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옹 : ANTIFRAGILE. 말 그대로 충격으로 인해 더 단단해지는 걸그룹으로 거듭난 르세라핌이다. 멤버 과거 논란 이후 휘청 하나 싶었지만, 논란 멤버 탈퇴 이후 더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5인 체제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르세라핌은 그녀들의 서사가 고스란히 담긴 곡 ‘ANTIFRAGILE’을 통해 대중 앞에 나섰다. 발레를 포기하고 아이돌로 데뷔한 카즈하의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toe shoes”, 아이즈원이라는 성공적인 걸그룹 행보를 이어 르세라핌이 된 김채원과 사쿠라의 “무시 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 등. 그녀들의 데뷔 스토리를 담은 가사와 멤버 탈퇴를 통해 고난을 이겨낸 ‘ANTIFRAGILE’한 르세라핌. 걸그룹의 걸크러쉬 컨셉은 차고 넘치지만, 르세라핌의 ‘ANTIFRAGILE’ 안에는 거기에 더해 우아함, 세련됨, 강인함까지 느낄 수 있던 것도 이러한 이유들에서다. 독기 가득한 가사, 그녀들의 데뷔 전 과거, 역경을 이겨낸 서사 등 모든 것이 그녀들만의 색깔을 뒷받침하고 있다.


르세라핌의 두 번째 타이틀곡 ‘ANTIFRAGILE’은 단단해지고자 하는 포부를 담은 메시지와 어울리는 아프로-라틴 팝 장르의 곡이다. 빌보드, UK 등 해외 차트에서 라틴 혹은 레게톤 음악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장르에 있어서 영리한 선택이라 볼 수 있다. 해외 라틴팝 아티스트 로살리아의 향기가 짙게 나는 곡인 ‘ANTIFRAGILE’은 해외 리스너들에겐 익숙하면서도 트렌디한 사운드로 어필이 가능했다. 국내 리스너들에겐 신선한 리듬과 멜로디로 다가와 강한 중독성을 선사했다. 이에 따라 ‘ANTIFRAGILE’은 걸그룹 포화 상황에서 음악과 컨셉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르세라핌의 확실한 포지셔닝을 가능하게 한 곡이었다고 본다.





“잔뜩 긴장한 K-POP씬에 느슨함을 주는 것 같다.”


2. NewJeans - ‘Att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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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실베실 : 사실 이 곡에 대해선 이미 더 뛰어난 고수들이 충분히 많은 글을 써왔기에 설명을 줄이고 내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너무나도 많지만) 단 하나만 꼽아본다면 Hiphop Soul에 근간을 두면서도 절제된 세션 운용으로 그 점을 절묘하게 숨겼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히트곡 ‘HYPE BOY’나 ‘COOKIE’ 역시 충분히 좋은 곡들이지만 기존 K-POP의 범주에 속한, 예측 가능한 곡이었다는 인상이 강했다면 이 노래는 그런 면에서도 놀랍도록 새롭다. 진득한 R&B 음악을 K-POP 가장 최전선에서 시도한 레드벨벳마저도 ‘Automatic’을 메인 타이틀로 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이들은 시도했고, 결과로 증명해냈다.


7월 말에 민희진의 비호를 받아 혜성같이 등장한 이 그룹은 모든 면에서 파격이었다. (전술했듯이) 곡의 문법이나 곡을 공개하는 방식도 파격이었고 캐릭터 IP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의 그룹 브랜딩 방식도 파격이었으며 무엇보다 250과 FRNK라는, 장르 음악 씬에서 손꼽히는 플레이어를 K-POP의 영역에서 활용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파격이었다.


그렇게 등장한 이 명곡은 K-POP 씬의 새로운 뜨거운 감자가 되기에 충분했다. aespa와 ITZY로 시작해 IVE, LE SSERAFIM, N MIXX 등의 4세대 걸그룹이 자기애 가득한 가사와 (지나칠 정도로) 강렬하고 맥시멀한 사운드로 대중들을 공략하려 할 때 이 영리한 민희진과 250은 오히려 절제된 미니멀함으로 대중들을 비롯해 리스너들까지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올 한 해 하반기는 New Jeans의 해였다. 초일류는 기존의 방식을 밟는데 관심이 없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제시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한 순간이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15년차 아이돌”


3. 태연 (TAEYEON) – [INVU – The 3rd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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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옹 : 소녀시대 데뷔 15주년, 솔로 데뷔 7주년이 지난 태연은 아이돌이자 보컬리스트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아티스트이다. 그녀의 현 위치는 두 위치 사이 어디쯤이 아니라 둘 다이다. 그녀는 솔로 활동에 집중하던 지난 몇 년 동안 퍼포먼스보단 보컬 위주 음악을 대중에게 선보였다. 연차가 쌓임에 따라 노련미를 강조하던 그녀이다. 하지만 2021년부터 그 양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MZ세대 사이에서 핫한 예능인 <놀라운 토요일>에 고정이 되면서, 그녀는 기존 팬들 뿐만 아니라 어린 케이팝 팬들의 유입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는 통통 튀는 레트로곡 ‘Weekend’로 컴백하면서, 솔로 활동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퍼포먼스를 장착한 아이돌로 컴백했다. 화려한 아이돌 맞춤 스타일링으로 컴백한 ‘Weekend‘는 예능 놀토 고정 출연과 함께 시너지를 내면서 오랜 기간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렇게 태연이 아이돌로 가까워질 때쯤, 올해 초 정규 [INVU – The 3rd Album]을 발매했다. 한창 어린 후배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 비주얼을 선보이는 그녀지만, 그녀의 음악은 결코 그녀의 스타일링처럼 어리지 않다. 타이틀곡 ‘INVU’에서 태연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보컬은 몽환적인 음악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뤄낸다. 또한 퇴폐적인 매력을 담은 강렬한 사운드의 선공개곡 ‘Can’t Control Myself’과 그녀의 강점인 섬세한 표현력과 보컬이 드러난 ‘그런 밤 (Some Nights)’ 등 수록곡들도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정규 3집은 태연의 솔로 활동에 있어서 아이돌과 보컬리스트의 면모 두 가지 모두 극대화된 앨범으로 볼 수 있겠다.





“지속 가능한 스토리텔링”


4. A.TRAIN - [PRIVATE P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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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실베실 : 스트리밍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장르 씬의 명반까지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단순히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앨범들은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그런 지금 이 앨범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그 스토리가 일회성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점에 있다. 지독하게 우울한 가사와 사운드로 무장한 전작 [PAINGREEN]도 명반이었고, 그 이야기의 기조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PRIVATE PINK] 역시도 명반 반열에 들기에 충분한 앨범이겠다.


[PRIVATE PINK]는 [PAINGREEN]을 듣고 나면 느껴지는 ‘대체 무엇이 그를 고통스럽게 했나’에 대한 대답이면서 다짐이다. [PAINGREEN]이 앨범 제목 그대로 갖가지 초록색 고통에 대한 이야기라면 [PRIVATE PINK]는 지극히 개인적인 핑크색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이 서사를 뼈대삼아 그는 R&B를 비롯해 HipHop과 Swing Jazz, Art Pop 등의 다양한 장르를 대담하게 등장시킨다. 앨범 전반적으로 감싸주듯이 등장하는 첼로 연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매우 뛰어난 프로덕션, 사운드 유기성, 그리고 가창자의 보컬 역량 등이 아우러져 굳이 저번 앨범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그 자체적으로도 실로 뛰어난 앨범을 만들어냈다.


2022년 한국 음악은 요약하자면 개인적으로 ‘흑인 음악의 약진’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특정 플레이어가 유독 도드라진 Rock과 HipHop에 비해 R&B 장르는 많은 가수들이 수작 이상의 앨범을 일제히 쏟아낸 해였다. 하지만 단순히 나른하고 섹시한, 속칭 PB R&B만이 Alternative R&B 였던 2010년대는 지나갔고 우리는 이제 2020년대를 살고 있다. 단순한 사전적 약속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Alternative’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서사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이 정도의 과감한 시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 점이 내가 올해의 앨범으로 [PRIVATE PINK]를 선정한 이유이다. 그 시절에 종말을 고한다.


<그 외 가장 좋았던 한국 앨범 15>

Chan - [Look at Me !!!]

GongGongGoo009 - [ㅠㅠ]

JJK - [비공식적 기록 III]

NewJeans - [New Jeans]

OHIORABBIT - [덤]

곽진언 - [정릉]

검정치마 - [Teen Troubles]

김민성 - [사람 마음]

마콤마 - [Mind, Heart]

미역수염 - [Bombora]

세이수미 - [The Last Thing Left]

이현준 - [LOST IN TRANSLATION]

초승 - [당신의 바다가 될게요]

파란노을 - [White Ceiling / Black Dots Wandering Around]

황푸하 - [두 얼굴]





“솔로 아티스트 Steve Lacy는 이제부터”


5. Steve Lacy - ‘Bad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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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옹 : The Internet 기타리스트 Steve Lacy의 ‘Bad Habit’은 Sam Smith와 Harry Styles 등을 제치고 빌보드 핫100에서 1위를 하며 2022년을 휩쓸었던 곡이다. 다른 히트곡들이 그렇듯 틱톡 덕을 제대로 본 곡이기도 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귀에 박히는 무심한 기타 리프과 강한 드럼, 신스 사운드 등이 곡의 포문을 열어준다. 초반에 다소 지나친 반복이라 느껴질 수 있는 1분이 지난 후엔 가성 파트가 등장하면서 흐름을 환기시켜 준다. 이후에는 페이드 아웃과 함께 아카펠라 파트, 후반부 변주, 돌려감기를 표현한듯한 독특한 아웃트로 등 다양한 연출로 귀를 즐겁게 해준다. 스티브 레이시는 초창기에 음악을 만들 때 아이폰의 개러지 밴드를 이용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최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대중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 <Entertainment Nation>에서 지난 150년 간의 미국 대중문화 관련 물품이 전시되었는데, 거기에 스티브 레이시의 물품도 선정되었다. 프린스의 기타, 무하마드 알리의 로브 등과 함께 스티브 레이시의 아이폰이 전시되었다. 이는 최근 미국 음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스티브 레이시의 입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에 히트곡 ‘Bad Habit’의 덕을 빼놓을 수 없다.





“I am. All of Us - oklama”


6. Kendrick Lamar - ‘The Heart Part 5’

베실베실 : 변을 하자면 나도 상반기와 같은 곡을 선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black midi의 ‘Welcome to the Hell’이나 Alvvays의 ‘After The Earthquake’ 등에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 곡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Kendrick의 랩이나 Funk, Disco 등이 조화롭게 섞인 프로듀싱, 컨셔스한 가사 또한 그 선택의 무게를 더해준 요소이지만 가장 중요했던 이유는 ‘예측불가능’이다. 3분 15초부터 베이스 솔로 파트는 언제 들어도 나를 놀랍게 하며, 누구도 예상 못했던 딥페이크 기법을 활용한 뮤직비디오는 일부의 부적절한 활용 방식을 빌미로 기술 자체에 낙인을 찍으려는 일부 반대론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반박이 될 것이다. Music이 아닌 HipHop의 범주 내에선 현재 Kendrick Lamar는 그 누구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있다. Ye보다도, Tyler보다도 더.





“진켄드는 위짜다”


7. The Weeknd - [Dawn FM]

예옹 : The Weeknd는 [Dawn FM] 이전부터 ‘Save Your Tears’, ‘Blinding Lights’ 등 수많은 곡이 히트치며 안정적으로 좋은 성적을 내왔다. 하지만 거기서 안주하거나 양산형 히트곡을 뽑기 위해 다음 앨범을 발매하지 않는다. 한 가지 음악 장르를 고집하는 아티스트를 원한다면 위켄드의 음악은 취향에 맞지 않을 수 있겠다. 빌보드에서 가장 강력한 R&B 아티스트인 위켄드는 매번 일렉트로니카, 시티팝, 트랩 등 새로운 음악 장르와의 결합을 보여주며 리스너들에게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Dawn FM]은 위켄드의 이전 음악을 뛰어넘는 실험을 도모한 앨범이다. 죽음과 쾌락에 관한 고찰, 80년대를 연상시키는 신스 팝 그리고 라디오 컨셉까지. 마냥 레트로 음악 앨범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이전 트랙의 아웃트로와 다음 트랙의 인트로를 연결시키는 연출과 실제 라디오를 듣는 듯한 나레이션 또한, 앨범의 유기성과 통일감을 느끼게 하고 라디오를 듣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위켄드 음악이 한층 발전된 앨범인 [Dawn FM]을 통해, 그의 음악적 실험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참으로 낭만적인 마법”


8. Black Country, New Road - [Ants From Up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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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실베실 : Kendrick과 마찬가지로 상반기 최고의 앨범이었지만 동시에 올해 최고의 앨범이다. 물론 해외 음악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광대하기에 모든 좋은 음악을 다 들어봤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앨범을 더 듣는다 해도 올해는 이 앨범보다 뛰어난 앨범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실 이 앨범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은 지난 상반기 결산에서 (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2년 상반기 ②) (brunch.co.kr)) 다 말했기에 첨언 하나만 하고 끝내자면, ‘비록 사람의 시간은 유한하고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시대라지만 때로는 단 5분의 쾌감을 위해 그 5배가 넘는 시간을 투자하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이다. ‘The Place Where He Inserted the Blade’는 그 언제 들어도 나를 소름 돋게 만드는, 내 음악 인생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무척 아름답고 환상적인 대곡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으면 한다.


<그 외 가장 좋았던 해외 앨범 15>

Alvvays - [Blue Rev]

black midi - [Hellfire]

Cities Aviv - [Man Plays the Horn]

Conway the Machine - [God Don't Make Mistakes

Danger Mouse & Black Thought - [Cheat Codes]

Daniel Rossen - [You Belong There]

Denzel Curry - [Melt My Eyes See Your Future]

Eliza - [A Sky Without Stars]

Ginger Root - [Nisemono]

Jockstrap - [I Love You Jennifer B]

J.I.D - [The Forever Story]

Luna Li - [Duality]

Perfume Genius - [Ugly Season]

Pusha T - [It's Almost Dry]

Soccer Mommy - [Sometimes,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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