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2월 1주)

blah, YENA, 구원찬, 태양, yaeji, Kali Uchis

by 고멘트

"우두커니 지난 기억만 더듬는 겨울, 마침 흘러나오는 음악"


1. blah –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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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9 : 프로듀서 밀릭이 이끄는 레이블 PAIX PER MIL (파익스퍼밀)에 합류한 블라의 첫 EP다. 힙합/알앤비 장르를 정체성으로 삼는 레이블에 입단했지만, 블라의 음악을 알앤비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 언뜻 듣다 보면 차라리 잔나비 앨범 타이틀곡 류의 팝 발라드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쁜 뜻으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편안하고 쉬운 멜로디나 흔한 발라드 가사로 치부될 수 있는 노랫말이 블라의 보컬을 만나 그만의 감성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또한, 프로듀서 EOH와 함께한 편곡은 편안하고 따뜻하면서도 나이브하지 않다. 앨범을 듣고 나면 현시점에서 블라라는 뮤지션의 정체성 혹은 포지션을 대체할 만한 아티스트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좋은 결과물이자 블라라는 뮤지션의 행보에 더 큰 기대를 가지게 되는 음악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겨울에 들은 음악 중 가장 겨울과 어울리는 음악으로 꼽고 싶을 정도로 포근했다.





"완벽한 홀로서기가 필요해"


2. YENA (최예나) – ‘Lov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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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봄 : 싱글 앨범에 굳이 인트로 트랙까지 삽입한 이유가 궁금하긴 했으나, 나온 결과물을 듣고 보니 나름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최예나는 데뷔곡 ‘SMILEY’의 성공에 힘입어 추후 싱글 역시 ‘SMILEY Ver.2’의 느낌으로 출격했으나 이렇다 할 반향을 얻지 못하였는데, 이번 싱글 ‘Love War’에서 선보인 변신은 꽤 주목할 만했다.


기존의 재기발랄한 이미지와 음악성을 뒤집어 놓은 성공적인 변신이라는 의견이지만, 개인적으로 피처링의 존재감이 크다고 느끼지도 않았고 또한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굳이 진행시킬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허스키한 음색이 주는 곡에 대한 몰입감을 바탕으로 오롯이 혼자 트랙을 이끌어가는 것도 좋았을 것 같다. 아직 솔로 가수로서의 무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아쉬운 점.





"구원찬이 포착한, 물성을 지닌 감정들"


3. 구원찬 – [O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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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9 : ‘Object’라는 앨범명처럼 구원찬의 이번 앨범 속 거의 모든 곡은 사물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앨범 커버 때문인지 모르지만 마치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두고 그 안에 사물들을 찬찬히 살피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러한 특징은 한 장의 ‘앨범’ 컨셉으로서 적절해 보인다. 이는 청자가 음악을 감상하면서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그가 ‘Object’를 앨범의 키워드로 삼은 이유는 가사의 구체성 때문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이전부터 구원찬의 음악은 감정을 섬세하게 탐구하는 가사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화자가 선택하는 화두와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성에도 불구하고, 관념어에서 벗어나지 않는 언어의 가사(대표적으로 ‘표현’) 때문에 말 그대로 표현의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 것이 바로 사물과 감정을 엮어내는 비유일 것이다.


비유를 통해 이번 앨범의 음악은 이전보다 더 구체적인 이미지와 디테일을 확보했다. 타이틀 곡 ‘흔들의자’와 ‘허수아비’는 그러한 가사적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는 인상적인 곡들이다. 그가 각각의 곡에서 사용한 비유를 통해 얻은 효과는 들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곡을 더 재밌고 신선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화자의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편 음악의 사운드면에서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자잘한 새로움이 있다. 재즈의 장치(‘번역기’)나 예상치 못한 섹슈얼한 슬로우잼(‘Incense’)을 시도한 점이 돋보인다. 비록 구원찬이라는 뮤지션이 앨범마다 장르나 이미지를 변신시키는 스타일의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일관된 방향을 추구해 나가는 와중에 조금씩 자기만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고무적이다.





"여러분~ 너무 보고 싶었어~"


4. 태양 – ‘V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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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봄 : 단순히 처음 감상하고 나서는 다소 무난한 곡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으나, 선공개곡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선공개곡임에도 꽤 퀄리티를 갖춘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쫀득함과 경쾌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에 다가올 앨범의 발매가 기다려지게 됐다. 너무 힘을 주지도 그렇다고 너무 힘을 빼지도 않은 딱 중도의 곡이라고 볼 수 있을까.


더해서 피처링을 한 방탄소년단의 지민과의 만남도 꽤 의미가 있다. K-POP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초석의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한 빅뱅과, 그 초석을 밟아 K-POP의 한계를 부수고 정상을 맛본 방탄소년단의 만남은 팬으로서 보기에 상당히 뿌듯한 모습이다. 보컬의 합도 상당히 잘 맞는 편이지만, 피처링 섭외에 이런 상징적인 의미도 없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공들인 모습이 여실히 보이는 곡인만큼 다음 앨범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몽환과 무아지경"


5. yaeji – ‘For Gra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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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봄 : 상당히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라 반가웠다. 처음 Yaeji의 음악을 들었을 때 신선한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그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몽환적인 보컬과 장난기 가득한 신스 사운드, 베이스가 곡의 분위기를 상당히 잘 형성하고 있는데, 덕분에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트랙이 상당히 꽉 차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더해서 후반부에 드럼 앤 베이스로 전환되는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욱이나 신선했다. 짧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곡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장미 필 시기는 아직 이르지만"


6. Kali Uchis – ‘I Wish you Roses’

준9 : 3월 초 발매 예정인 칼리 우치스의 세 번째 정규 선공개 싱글이다. 사실 이번 싱글의 몽환적이고 나른한 무드는 칼리 우치스에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데뷔 초 싱글 ‘Melting’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음악이 여전히 그녀의 매력을 드러내는 좋은 방식임은 분명한 것 같다. 시간이 지난 만큼 더 관능적이고 무르익은 칼리 우치스의 보컬과 음악은 결코 뻔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새 앨범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만든다.


특히 이번 싱글의 비주얼에 주목해야 한다. 장미와 붉은색을 테마로 한 독특한 뮤비는 쉽게 잊히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는 한국의 패션 포토그래퍼이자 비주얼 디렉터인 조기석의 작품으로 매 장면이 그만의 독창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담아내고 있다. 이전 앨범들에서 각각 차별된 이미지로 앨범의 특징을 부각시켜온 것처럼 이번 앨범 역시 멋진 비주얼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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