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을 만드는 사람들 ①
작곡가 디즈(Deez)를 아시는지? SM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최애 아티스트 앨범 크레딧에서 그 이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작곡가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디즈는 훌륭한 앨범을 낸 알앤비 가수이기도 하다. 김봉현 힙합저널리스트는 그의 앨범 디테일과 완성도를 두고 '방망이 깎는 디즈'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놀랍도록 멋진 곡들을 만들었고, 만들고 있는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디즈의 작곡가 데뷔는 2008년이다. 당시 첫 앨범을 준비중이던 그의 곡을 비의 당시 소속사 프로듀서가 우연히 듣게 되었고, 비 역시 디즈의 곡을 마음에 들어했다. 결국 정규 5집 앨범 [Rainism]엔 디즈 단독 프로듀싱 곡 ‘Only You’와 공동 작곡에 이름을 올린 ‘You’가 수록된다. 2000년대 메인스트림 알앤비 스타일의 ‘Only You’는 앨범의 후속곡으로 채택되어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인 2009년 3월, Deez의 데뷔 EP [Envy Me]가 발표된다. 앨범은 장르팬들과 평단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는다. 당시만 해도 알앤비 장르에 대한 한국 대중의 인식은 바이브, SG워너비 류의 기교 섞인 미디엄 템포 발라드에 그쳤는데, 이 앨범 속 ‘나의 빛’, ‘Devil’s Candy’의 사운드는 이전 한국 음악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본토 네오소울이었다. 이러한 탁월함을 인정받아 앨범은 이듬해 봄, 한국대중음악상 알앤비&소울 음반, 노래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데뷔 EP 발매 1년 2개월 후인 2010년 5월엔 정규 1집 [Get Real]이 발매된다. 정규앨범은 EP의 주요곡들을 포함해 더욱 본격적인 네오소울 음악을 보여주었다. Maxwell의 데뷔 앨범 [Maxwell’s Urban Hang Suite] 속 Intro 곡, ‘The Urban Theme’을 연상시키는 펑키하고 끈적거리는 인스트루멘탈 Intro 트랙은 앨범의 명확한 방향을 소개한다. 이어지는 트랙들 ‘Soul Tree’, ‘Makin Luv’, ‘Sugar’는 디즈의 스킬풀한 가성 보컬과 악기 못지 않게 공간을 채우는 환상적인 보컬 어레인지를 보여주며 음악의 주요한 포인트가 되었다. 정규 앨범 역시 2011년 봄에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알앤비&소울 음반, 노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그중 노래 부문에 ‘Sugar’가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렇듯 그가 얼마나 실력있는 알앤비 뮤지션인지는 이미 2010년에 검증되었다. 플레이어로서의 역량도 갖춘 그이기에 더더욱 알앤비 기반 케이팝 작곡가 포지션에서 디즈의 위치는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규앨범이 발매되기도 전 군에 입대한 그는 2012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작곡가 활동을 시작했다. 장우영 (‘2NITE’), 미쓰에이 (‘Ma Style’), 15& (‘Sugar’), 2am (‘Sunshine’)과 같은 JYP 소속 가수들의 수록곡과 당시 조PD의 회사 스타덤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탑독의 주요한 곡 제작을 통해 대중음악 업계 속 그의 존재감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는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들의 곡을 쓰기 시작한다. 그 초기 작업물이 바로 EXO의 ‘Love Love Love’, 태민의 ‘Ace’, 종현 ‘Neon’과 같은 곡들이다. 이 곡들은 비록 타이틀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 않게 팬들의 사랑을 받은 숨은 명곡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SM의 송캠프에서 국내외의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하며 꾸준히 곡을 만들어냈고, 그 곡들은 샤이니, 동방신기, 레드벨벳, NCT 등 SM 주요 가수들에게 제공되었다. 그중 NCT 127의 ‘Cherry Bomb’, ‘영웅’, 백현의 ‘Candy’, ‘Bambi’가 타이틀 곡으로 큰 사랑을 받으며 디즈는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더 단단히 다지게 된다.
작곡가로서의 디즈의 특징은 고급스러운 알앤비 화성과 보컬 어레인지에 있다. 개인 앨범에서도 보여주었던 화려하고 정교한 화음은 레드벨벳 ‘Kingdom Come’, NCT ‘TOUCH’, 더보이즈 ‘ROAR’, ‘Savior’ 등의 케이팝 아이돌 곡에서도 훌륭하게 구현되어 곡과 앨범 퀄리티, 더 나아가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준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가 트렌드를 뒤따르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디즈는 어느 인터뷰에서 음악 창작에 있어 자신의 확고한 고집을 밝힌 바 있다. 작곡가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만들어진 훌륭한 케이팝 곡이 이미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때문에, 그는 특색 없이 대세만을 따라가는 음악 제작 행위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다. 본인이 듣기에도 좋은 노래를 쓰는 것이 그가 가진 직업 윤리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쓴 곡들을 듣다보면 그 안에 정통적 알앤비의 DNA가 느껴진다. 그저 트렌드 흐름에 발 맞춘 익숙한 비트나 멜로디가 아닌, 뮤지션으로서의 욕심과 목표가 반영된 세련된 사운드가 그의 작품 안에 있다.
디즈는 SOULTRIII라는 프로덕션 팀을 이끌고 있다. 주요한 멤버로 트랙메이커 YUNSU와 탑라이너 SAAY가 있으며, 최근의 작업물들은 이들이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솔로 아티스트이기도 한 SAAY의 거의 모든 음악 제작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합이 작곡가로서의 매너리즘을 이겨내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또한, 디즈는 2022년 중순부터 AMPLIFIED라는 퍼블리싱 및 A&R 컨설팅 회사에 소속되어 VIVIZ, 더보이즈 등 SM 아티스트 이외의 가수들 곡도 쓰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를 보고 있으면 한국 1세대 알앤비 가수 겸 프로듀서 유영진이 떠오른다. (비록 그가 SM 아이돌 팬들에게 애증의 대상이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훌륭한 기량을 갖춘 알앤비 가수이자 동시에 능력있는 프로듀서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디즈의 앞으로 행보가 더 기대된다. 앞으로 더 새롭고 멋진 케이팝 곡들을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2017년 인터뷰에서부터 언급했던 솔로 앨범도 발매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다.
By 준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