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플라부터 수스까지
SNS에서 음악 카테고리 하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커버(이 글에서는 기발표된 곡을 다른 사람이 가창하는 것으로 정의) 콘텐츠이다. 유튜브가 활성화되며 일반인들 사이에서 커버 콘텐츠를 통해 유명 크리에이터가 된 사례가 늘었고, 현역 아티스트 사이에서도 본인의 오리지널 곡 외에 유명곡 커버를 진행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커버곡을 향한 수요가 늘면서 아티스트의 신곡 발표 이후 커버 크리에이터들에게 피칭하는 식으로 마케팅 구좌로 활용되는 사례 또한 생겼다. 커버는 음악 딱지가 붙은 콘텐츠들 중 기획적인 고민이 적고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차원에서 가장 무난하고 가성비 좋은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커버 콘텐츠의 트래픽이 증가하면서 커버 전문 대형 크리에이터들이 등장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국내 유튜브 구독자 최상위권에 속하는 제이플라(J.Fla)다. 2023년 4월 초 기준 176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6년 전 발표한 Ed Sheeran의 ‘Shaep of You’ 커버 영상의 조회수는 무려 3.3억회에 달하고, 채널의 누적 조회수는 약 37억회다. 더불어 타 커버 크리에이터들에 비해 가장 글로벌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라온(Raon), 수스(xooos), 옐로(YELO), 블루디(Blue.D)와 같이 수십~수백만 규모의 구독자를 갖춘 크리에이터들이 여럿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채널이 성장하면서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오리지널 곡을 발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커버곡은 2차 저작물로서 광고를 따로 받지 않으면 수익이 나지 않기에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다). 옐로의 경우 커버 크리에이터로서 커리어가 잡힌 이후 모노트리의 프로듀싱과 함께 여러 곡을 발표했고, 수스는 올해 초 힙합 레이블인 웨이비에 입단하면서 ‘Naked’라는 오리지널 곡을 발매했다. 제이팝과 우타이테 계열인 라온은 22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 싱글을 내고 최근 유명 프로듀서 TAK과 Giga와 ‘♡Like Like♡’라는 한국어 싱글을 내놓은 사례가 있다. 요컨대 크리에이터로서의 두터운 인지도를 바탕으로 기성 음악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형 크리에이터들의 오리지널 곡은 커버 콘텐츠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아쉽게도 고정 팬층이 있다는 전제도 드라마틱한 전환율을 보여주진 못했다. 위 채널들에 업로드된 오리지널 곡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대체로 커버 영상의 평균 수준이고 광고를 태웠다는 것을 전제하면 많은 관심을 받진 못한 편이다. 스트리밍 쪽에서도 23년 4월 초 기준 수스 ‘Naked’의 멜론 누적 스트리밍 수는 약 25만 회, 라온의 ‘♡Like Like♡’는 5만 회에 불과하다. 더불어 음원 플랫폼 상에서의 인지도 면에서도 제이플라를 제외하면 위 채널들의 멜론 팬 수는 3천 명 아래이고, 약간의 인지도가 있는 인디 아티스트의 규모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인디 아티스트들이 유튜브 공간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것은 아니기에 분명 커버 크리에이터로서의 포지셔닝이 뚜렷한 이득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제이플라의 경우도 5만 명대의 멜론 팬 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인기곡이 커버한 곡을 리메이크 형태로 발매한 것들이라 오리지널 곡에 대한 크레딧은 팬 수에 비해 한참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위 크리에이터들은 유튜브 공간에서의 인지도가 뛰어나기 때문에 해외 쪽에서 더 반향이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스포티파이를 확인해 보자. 23년 4월 초 기준 제이플라의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는 14만 명, 라온은 28만 명, 수스는 22만 명, 옐로는 3만 7천 명 정도 된다. 가정대로 해외 쪽이 조금 더 수치적으로 나쁘지 않지만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제이플라와 옐로는 절대 수치 자체가 낮고, 라온은 발매된 커버곡에 감상이 쏠려 있다. 그나마 수스가 데뷔 싱글로서는 크게 선방한 상태다. 즉, 유튜브 상에서의 인기는 국내나 해외 모두 음원사이트의 전환율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커버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오리지널 곡에 대한 관심, 다시 말해 아티스트 그 자체에 향한 관심은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확한 시장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커버 크리에이터들의 인기에 대해 몇 가지 가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커버 크리에이터들에게 기대하는 건, 우리가 좋아하는 곡을 재해석하는 모습이지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음색이 좋고 비주얼이 뛰어난 것도 뮤지션으로서의 커리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유명 프로듀서를 끼거나 평소 커버하던 곡과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들고 나와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팝 커버 유튜버에서 힙합 레이블에 입단하고 장르 색깔이 묻어나온 데뷔 싱글을 낸 수스의 움직임이 고무적이다. 결국 뮤지션으로서 발돋움하려면 크리에이터의 신분을 이용하기보다는 그 시장에 맞춰 리브랜딩하는 수고가 추가로 필요한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헤게모니를 꽉 잡은 세상에서도 음원 플랫폼에서의 소비는 SNS와 동기화되어 있지 않으며, 더욱 심오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다.
by 최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