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lie, IVE, 원슈타인, Benny Sings 외
페페 : 미스틱 스토리에서 첫 제작한 걸그룹인 Billlie (이하 빌리)가 4번째 미니 앨범을 발매했다. 이전 앨범보다 전체적으로 멜로한 신스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앨범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앨범의 전곡을 듣고 난 후 첫 감상평은 ‘다 타이틀 감이네…’였다. Disco 장르의 베이스라인과 사운드가 기둥이 되면서 여러 멜로한 신스사운드와 패드가 얹히는 같은 어레인지이지만 곡마다의 캐릭터성,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이 중에 꼭 아쉬운 곡을 찾으라면 2번 트랙 lionheart와 타이틀인 3번 트랙 EUNOIA으로 뽑을 것 같다. 앨범 전체가 Disco 장르의 리듬과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지만 뭄바톤 장르의 lionheart가 앨범의 흐름을 끊고 있다. 이 곡이 오히려 타이틀이었다면 어떻게든 이해해 볼 수 있겠지만… ‘EUNOIA’의 경우는 반대로 타이틀로 하기에는 특색이 부족하다. 앨범의 수록곡들에 비해 지나치게 이지리스닝의 성향을 보인다. 물론 최근 많은 아티스트들이 Lo-fi, 이지리스닝, 배드룸 팝 등의 무드를 택하지만, 이것이 과연 대중이 원하는 것일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좋은 곡들이 수록되어 있어 미스틱의 곳간에는 얼마나 더 좋은 곡들이 많은지 궁금해지는 앨범이다.
융 : ‘LOVE DIVE’와 ‘ROYAL’은 얻어걸린 기회였던 걸까? 기획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건 아니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지만, 일단 음악 자체가 너무 노잼이다. 파트 간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우며 (특히 랩), OOTD, YOLO 등의 직접적인 가사가 메시지를 더욱 촌스럽게 만든다. 화려한 효과만 때려 넣은 뮤직비디오는 안 그래도 심심한 안무를 더욱 묻히게 만들고, 예쁘기로 소문난 멤버들의 비주얼도 매력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
안타까운 건 멤버들마저 이 곡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 과잉되어 있는 노래 때문에 억지로 키치함과 쿨함을 짜내고 있어 부자연스럽다. 불안한 보컬은 덤. 그룹 내에서 가장 안정적인 가창력을 갖고 있는 리즈는 스타쉽과 패싸움이라도 한 것인지 verse에 잠깐 등장하고는 이후 종적을 감춘다.
‘ELEVEN’, ‘LOVE DIVE’, ‘After LIKE’는 각각의 완성도를 떠나 아이브에게 꼭 필요한 디스코그라피였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 곡은 다르다. 아이브에게 어떠한 넥스트도 제시하지 못한다.
데이먼 : 그런 사람이 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대화 자리에서 정작 몇 마디 말을 아끼는 사람. 하지만 신중하게 고른 그 사람의 말에는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 지금의 시장에서는 원슈타인이 그런 예의 아티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PEEJAY와 함께 작업한 전작 ‘Cassie ($)’ 가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곡이었다면, 이번 ‘Single’ 은 한결 차분해진 모습으로 헤어진 상황에 대한 소회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곡의 상황에 보다 몰입할 수 있는 소개글부터, 친구에게 너의 자랑을 너무 많이 해서 쪽팔린다고 말하는 묘하게 구체적인 가사는 이 노래가 당신이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이야기라고 친절하게 운을 뗀다. 여기에 빈티지한 질감의 신스와 하이라이트 이후 깔리는 브라스 등, 여유로우면서도 적재적소에 구성을 촘촘하게 쌓은 사운드는 비교적 짧은 곡의 러닝타임을 무색하게 한다.
물론 이 곡 역시 봄이 되면 무수히 나오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들 중 하나이다. 하지만 으레 나올 법한 사소한 이야기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원슈타인은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랩을 멋지게 하는 기술자들은 차고 넘치지만, 그런 상황일수록 전달하고자 하는 텍스트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고심 끝에 꺼낸 한 마디가 앞으로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처럼, 아티스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싱글이다.
데이먼 : 따뜻한 계절이 되면 곧잘 플레이리스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아티스트 Benny Sings의 여덟 번째 정규 앨범이다. 이미 세 차례 발매된 싱글을 포함한 10 트랙을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는 데에는 3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러닝타임도 한몫 하지만, 무엇보다도 첫 트랙인 ‘Young Hearts’부터 마지막 트랙 ‘Take Your Time’까지 흐름을 방해하는 트랙 없이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곡의 대부분이 소프트 록 장르에 기반해 기본적으로는 피아노 멜로디가 두드러지지만, 최근 떠오르는 신인 아티스트인 Remi Wolf와의 곡 ‘Pyjamas’는 보사노바 리듬을, ‘Love Will Find A Way’에서는 특유의 리드미컬한 드럼 전개 없이 곡을 진행하는 작지만 여러 변주를 시도한 점이 보인다. 또한 이번 앨범에는 Gucci Mane, Denzel Curry, Vince Staples 등 주로 힙합 아티스트의 곡을 작업해 온 Kenny Beats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는데, 수록곡 ‘Movie Star’에서 중간중간 들리는 트랩 힙합 리듬과 ‘Let’s Go’ 도입부에 등장하는 묵직한 킥은 자칫 밋밋하게 들릴 수 있는 이 앨범에서 아티스트의 새로운 모습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비록 이런 류의 앨범들은 한철 장사 마냥 지금과 같은 계절에 우수수 쏟아지지만, 좋은 곡들은 계절이 지나도 플레이리스트 속에 들어가 그 수명을 유지한다. Benny Sings의 곡들이 그렇다.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듣다 보면 어느 순간 플레이리스트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준다. 원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이다.
융 : “신스가 매력적이다.” 말고는 남는 게 없다. 재생하자마자 귀를 찌르는 몽환적인 신스는 최근 몇 년 간 히트한 해외팝들에서 숱하게 들었던 것이고, verse의 정직한 쿵짝과 속도감 있는 후렴까지 다다르면 기시감이 느껴지다 못해 어떤 노래와 가장 비슷한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곡이 저스틴비버나 찰리푸스의 하위호환을 자처하다 보니, 1절이 끝나자마자 듣는 재미가 뚝 떨어진다. 아량이 넓어 2절과 브릿지까지 들어보았지만 아쉬움만 더 크게 느껴질 뿐이었다.
결코 곡의 완성도가 현저히 부족하다거나 보컬이 아쉬운 건 아니지만, “아무 해외 팝이나 재생해도 이 노래 정도는 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페페 : 2023년이 시작된 후 3달간 들은 앨범 중 가장 환상적인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2번의 선 공개 곡도 포함되었지만, 16곡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곡을 포함한 정규앨범을 가지고 왔다. 이 앨범은 반드시 스테레오 환경이 잘 되어있는 곳에서 듣기를 추천한다. 피아노와 스트링, Lana의 목소리만으로 진행되는 앨범 초반 곡들에서 스트링과 코러스들이 부드럽게 곡을 감싸고 있는 믹스를 꼭 들었으면 한다. 너무나도 성스러운 마치 서양에 있는 종교 건물에 들어간 듯한 1, 2, 3번 트랙이 지나가고 나면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인가 싶은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앞선 곡들과는 결이 다른 곡을 만나볼 수 있다. 이후 전체적으로 리듬감을 가져가면서 팝적인 곡들이 나오고 앨범의 하이라이트로 진행된다. 이 앨범의 묘미는 단연 마지막인 16번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올디한 힙합이 나온다. 50cent가 사용했을 법한 신스사운드와 D’Angelo같은 드럼 사운드 근데 곡에 거의 마지막에는 2010년도쯤 Rae Sremmurd가 사용했던 코러스 이펙팅도 나오는 이상한 곡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좋다 넘치는 것 없이, 부족한 것 없는 사운드가 이 곡뿐만 아니라 이 앨범의 장점이다. 앨범의 가사적인 서사와 사운드적인 서사까지 앨범이 아닌 한 곡을 들을 것만 같은 아주 잘 만든 앨범을 오래간만에 찾아들었다. 어쩌면 이번엔 진짜 그래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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