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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멘트 Apr 02. 2023

숨.돋.명 ③ 쿤디판다, 김라마 [송정맨션]

송정 맨션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음울한 이야기

숨.돋.명은 ‘숨겨져 있던 소름 돋는 명반’의 약자로, 필자가 생각하기에 충분히 명반 혹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앨범들을 선정해 심층 리뷰하는 기획 시리즈입니다. 



2021년의 쿤디판다



 2021년의 쿤디판다는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 부지런했다. 2020년 ‘쇼미더머니 9’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그는 2021년 2월 크루 서리 (30)의 컴필레이션 앨범 [THE FROST ON YOUR KIDS]를 시작으로 청각적 쾌감에 집중한 EP [MODM : Original Saga], 담예, 누기, 비앙과 만든 밴드 Flatshop의 앨범 [Khundi Panda Vs Damye Vs Viann Vs Noogi], 딩고와 합작해 만든 데자부 레이블의 앨범 [Dingo X Dejavu Group ‘Wrote This Tomorrow], 싱어송라이터 김라마와 콜라보한 [송정맨션], 연말을 장식한 정규 앨범 [The Spoild Child : 균]까지. 1년에만 다양한 형식으로 6개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곡에서도 절대로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마치 주목받을 때를 기다렸기라도 한 듯 1년 동안 그 어떤 래퍼보다 노를 충실히 저었다. 2020년에 발매한 앨범 [가로사옥]은 2021년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받기도 했다.


 2021년은 쿤디판다의 해였다.



[송정맨션]


 그 수많은 앨범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앨범이라고 한다면 단연 [송정맨션] 일 것이다. 솔로 앨범 두 장을 제외한다면 다른 앨범들은 기존 쿤디판다의 예측 가능한 인맥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이 앨범은 쉽사리 예상 가능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렇지만 뿐만 아니라 이 앨범은 기존 한국 메인스트림 힙합에서 기존에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는 앨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2021년 쿤디판다의 앨범 중 이 앨범을 최고로 뽑기에 주저함이 없다.



송정 맨션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음울한 이야기


 이 앨범은 아티스트가 인정한 공식적인 해석이 존재하지 않는 앨범이다. 그렇기에 아직도 리뷰마다 각자 해석이 다르다. 과연 이 앨범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인가 혹은 단편집인가? 모든 이야기가 각자 분절돼 있는가? 모두의 의견이 다르기에 나 역시 이 앨범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만 했고 결국 나는 “두 곡씩 덩어리 진 5개의 주제 속 10편의 이야기가 담긴, 하나이면서 하나가 아닌 옴니버스 앨범”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평소 트랙과 가사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앨범에서만큼은 디테일하게 서사 분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트랙을 묶은 것은 창작자 김라마가 발매 1주년 작업 비화에서 밝혔듯이 앨범 전체가 두 곡씩 짝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앨범은 두 곡이 묶여 하나의 주제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01. 송정맨션 & 02. 복도


송정맨션 그곳은 어떤 곳일까 …?

 

 '송정 맨션'에서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지는 오래된 사이이다. 지금의 너는 받아쓰기보다 쉬우며 이젠 같이 있어도 서로의 시간을 뺏는 것만 같다. 늘 서로 욕을 퍼붓고 마음속으로는 몇십 번 이별을 했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시 들어와 결국 같은 방에 누울 것이다. 왜냐면 그들이 사는 곳은 ‘송정맨션’이니까.


 ‘복도’에서는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옆집의 연인들은 복도에서 늘 다투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받아쓰기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이며 위층에서는 밤마다 도둑이라도 든 양 늘 개가 짖어 댄다. 귀를 막고 음악을 틀어 놓아도 부실 공사라도 했는지 새어 나오는 소리를 막을 수가 없다. 나는 속으로 “소리를 죽이든지 개를 죽이든지 하라”라고 되뇐다. 결국 비극이 벌어진다. 윗집을 찾아가 홧김에 무언가를 죽여버리고 만다. 정황상 개를 죽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답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이를 개에 비유한 것일지도 모르고, 실제로 개가 아니라 사람을 죽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는 무언가를 죽였다. 


 가장 직관적이며 친절한 테마이다. 쿤디판다와 김라마는 1번 트랙 제목과 가사에서부터 직접적으로 현 상황을 묘사해 이것들이 ‘송정 맨션’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땀에 젖은 옷”,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모기장” 등의 워딩은 우리로 하여금 여름날 “털어 갈 것도 없는” 낡은 빌라의 꾀죄죄한 모습이 눈에 떠오르게 한다. “우리 사는 맨션은 저택이 아니니까”는 현대적인 집과 대비하기 위해 일부러 ‘맨션’이라는 소재를 차용했음을 알려주는 라인이다. ‘복도’ Verse 2에서 쿤디판다의 랩은 그 누구보다 탁월하다. 드럼과 베이스, EP 뿐인 미니멀한 비트에서 타이트하게 뱉어 대는 쿤디판다의 랩은 스토리텔링의 맛을 극대화한다. 하나의 라인을 4번 반복해서 가창하는 김라마의 보컬 역시 곡의 감칠맛을 더해준다.



03. 돼지손 & 04. 초록포션


원초적 욕망에 지배된 나


 ‘돼지손’에서 나는 값싼 술에 중독돼 도로 위에 퍽하고 엎질러진다. 그 상태로 나와 너는 서로를 탐한다. 길에서 하는 것도 기분 좋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보며 “너와 난 가축을 닮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술에 취한 채로 기어 다니는 꼴이 마치 “배고픈 돼지처럼 네발로 기어 다니는”, 손이 없는 동물과도 같은 꼴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어 다니는 게 술에 취해서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너와 나는 한 병 더, 그리고 한 번 더를 외쳐 된다. 그들의 행위는 사랑보다 식욕에 가까울 것이다.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징그럽다.” 술에 깨면 다시 마시고 이내 다시 취해 버린다. 그들은 취해야만 서로 이쁘게 보인다. 


 ‘초록포션’은 성욕보다는 음주 그 자체에 집중한다. 나는 알코올에 중독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지만 더 취하고 싶다. “맑은 정신은 저주”이다. 초록 포션. 즉 소주는 “허물을 벗겨주고” “용기를 부어주는 나의 영웅”이다. 그렇게 그는 내일 아침은 존재하지 않는 양 오늘도 술을 들이붓는다. “이게 도시의 피를 채우는 방식”이다.


 이 테마는 사건보다는 음주와 섹스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에 집중한 테마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현대인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며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워딩은 그 어느 트랙보다 서늘하다.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것을 “돼지”에 비유한 점이나, 소주를 초록 포션에 비유한 것은 역시 같은 의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변주가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된 테마이기도 하다. ‘돼지손’에서는 무언가를 치는 소리와 함께 “한번 더”를 외침과 동시에 비트가 변하며 쾌락뿐인 사랑에 대해 조금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고, ‘초록포션’에서는 곡 종반부 싸이키델릭한 연주 파트를 넣어 환각 상태를 표현한다. ‘돼지손’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웃음소리 역시 흥미롭다. 누가 누구를 비웃는 웃음소리일까?



05. 수호천사 & 06. 부동산


아침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새벽부터 이른 아침

 

 ‘수호천사’는 두 말할 필요 없이 스토커의 이야기다.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 인스타에 어떤 글을 올리는지, 누구를 팔로우하는지 정도는 모두 꿰고 있다. 통금이 없는 토요일에 상대방이 놀러 나가면, 나는 그 빈 집에 들어가 시간을 보낸다. 나는 너 없는 방안을 따듯하게 데워주는 너만의 수호천사다. 


 이내 사건이 벌어진다. Verse 2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빈 집에 들어간 나는 양말을 훔치고 집을 살펴보다가 담배곽을 발견한다. 너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친구들도 모두 비흡연자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담배곽인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그 발정난 개새끼에게 너를 뺏길 수 없다. 그는 고백만큼 용기를 내기로 결심한다. 문고리를 따고 들어와 몇 시간 동안 잠든 너 옆에 누워 있다가 한번 쓰다듬고 행동을 개시한다. 그리고 이내 노래에서는 누군가의 광기 서린 웃음소리와 누군가 질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부동산’은 ‘출생’과 관련된 트랙일 것이다. “반달처럼 부른 당신”, 즉 임신한 너와 가로등에서 입 맞추더니 이내 아이를 낳는다. 김라마는 출생을 “무단 투기”에 비유한다. 무단 투기하지 마라. “과태료가 부가된다.” 애를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책임 없이 애를 낳지 말라는 뜻일 테다. 제목 ‘부동산’은 아이를 생명으로 보지 않고 마치 투자하듯이 육아하는, 사람을 마치 하나의 재산으로 보는 일부 육아 행태를 비꼬는 제목일 것이다. 곡의 모티브인 “기쁘다 구주 오셨네”는 이 출생의 역설을 한번 더 아이러니하게 비꼬는 장치일 테고 말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수호천사’와 연관된 서사일 수도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새벽부터 이른 아침”이라는 라인을 한번 더 쓰고, 파출소와 CCTV를 언급한 것은 스토킹과 이어지는 범죄와 관련된 내용임을 시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무단 투기”하는 것은 ‘수호천사’에서 죽인 사람의 시체가 될 것이고 “과태료”는 단순한 벌금이 아닌 법적인 처벌, 혹은 하늘의 처벌을 의미한다.


 즉 ‘수호천사’와 ‘부동산’은 스토킹과 무책임한 출생이라는, 혹은 스토킹과 사체 유기라는 범죄 그 자체에 집중한 테마이다. ‘복도’에서처럼 명확한 이유도 없다. (‘복도’에서의 살해를 정당화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렇게 본 앨범은 비극의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07. 빚 - 인플레이션 & 08. 패밀리룸


가난한 자들의 비애


 내 어린 날은 칠흑 같이 어두운 바다였지만 너를 만난 순간 모든 것이 빛났고 그렇게 서로를 믿어 결혼했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 바닷속엔 너밖에 없다지만 너 하나만 있어 공허한 바다이고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형편이 영 좋지 않다. 가족이 되기 위해 많은 것을 빌려왔지만. 그 어느 것도 갚지 못했다. “하늘이 안 보이는 집”은 ‘송정 맨션’의 암울함을 비유적으로 암시한 장치일 것이다. '빚-인플레이션'에서 그들은 실망감으로 가득 차 서로를 미워한다. “아이가 깨지 않을 만큼만” 


 ‘패밀리룸’은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만 편의점이나 낡은 주점을 오다니며 불량한 짓을 하는 듯하다. 이내 전화 속에서 “야 시발놈아”라는 소리를 들으며 무언가를 명령받는다. 결국 어떤 죄를 뒤집어쓰고 경찰서에 출석한 그는 결국 감옥에 가고 만다. 그렇지만 감옥에 들어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그 친구들이 아니라 “가족 때문이다.” 어쨌든 그 감옥은 꽤나 살만한가 보다. 오히려 “그간 쌓인 피로감을 비우는 휴가”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9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한다. 출소 후 먹은 “참치 통조림과 라면”을 황제의 식사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때문에 ‘빚’에 등장한 아이의 미래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만약 ‘부동산’이 출생과 관련된 곡이라면) 전 트랙과 이어지는 테마이다. “과태료가 부가됨”에도 불구하고 “무단투기”를 한 결과는 찢어질 듯한 가난이고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불량 학생들과 어울리다가 이내 감옥에 가고 만다. ‘패밀리룸’의 가사가 꽤나 흥미로운데 처음 협박을 얘기할 때는 “우린 친구 따위가 아냐 가족이지”라며 조폭의 값싼 의리를 얘기하다가 바로 “날 배린 건 내 친구가 아냐 가족이지”라고 바로 가사를 이어받는다. 나의 현 상황을 비슷한 두 가사로 대치시킴으로써 효과적으로 잘 표현해 냈다. Verse 2의 쿤디판다, 김라마의 왜곡된 보컬이나 베이스가 부각된 비트 역시 인상 깊다.



09. 모험 & 10. 전승


비극적 선택


 “열심히 살아서 오는 보상이 뭘까”. 연예인의 인생 역전 스토리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귀가 얇으신 내 아버지”는 내 이름을 팔아서 투자했으나 대차게 망한 듯하다. 내가 살고 있는 ‘송정 맨션’의 단칸방에는 구물때와 곰팡이가 구석에 가득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은커녕 청산도 요원하다.


 그는 결국 “모험을 떠나고자”한다. 불 지필 도구를 찾고 창문에 해가 들어오지 않게 문틈을 다 막아버린다. 결국 장작에 불을 붙이고 방을 냄새로 가득 채우게 하고, 그는 “비로소 원했던 자유를 찾아 나서기 위해” 긴 모험을 떠난다. 모험의 과정을 얘기하는 Verse 2는 비트마저도 급박하다. 뒤에서는 무언가 테이프를 뜯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 듯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도 들린다. 이러한 장치들과 “모험”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비유했음은 명확하다.


 마지막 트랙이자 연주곡 ‘전승’은 여운으로 가득하다. 마치 ‘모험’을 떠난 내가 겪는 것 같기도 하고, 1번 트랙부터 9번 트랙까지 일어난 모든 상황을 급하게 수습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앨범의 엔딩 크레딧 역할을 하는 곡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인가


 상기했듯이 이 앨범의 이야기는 정답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앨범은 하나의 이야기인가 단편적인 이야기인가? 만약 단편집이라면 본 앨범은 송정 맨션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행한 이야기를 다섯 개의 테마로 나눠 이야기한 앨범일 것이다. 첫 테마는 ‘송정 맨션’의 환경 그 자체이고 두 번째 테마는 욕망에 지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세 번째 테마는 스토킹, 살인과 출생 (혹은 사체유기)라는 가장 극단적인 범죄에 대한 이야기이고, 네 번째 테마는 가난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애이다. 다섯 번째 테마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음에 대한 암시이다. 테마가 진행됨에 따라 상황이 (마치 기승전결을 따르듯이) 극으로 치닫지만, 정황상 화자가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각기 다른 곡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를 분절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 트랙마다 조금씩 상황은 다르고 화자도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기승전결에 짜 맞추면 “송정 맨션에 살아가는 불우한 나는 욕망에 지배돼 살아가는 도중에 스토킹, 살해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출소 후 송정 맨션에서 자살한다”라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라마도 말했듯이 이 앨범은 “창작자의 의중보다는 청자 개개인의 경험이 훨씬 중요한” 앨범이다.



탁월한 사운드


 그렇다고 이 앨범이 단순히 서사만 훌륭한 앨범은 아니다. 이 앨범의 비트들은 앨범 특유의 끈적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여과 없이 구현해 냈다. 그 어떤 곡에서도 하나의 테마로 단조롭게 흘러가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는다. 각 트랙별로, Verse별로 각기 다른 샘플과 악기를 사용해 곡에 딱 맞는 분위기를 형성해 준다.


 ‘수호천사’와 ‘모험’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행할 때 비트 역시 변주를 주어 상황의 급박함과 심각함을 표현했고 출생 혹은 사체 유기를 내포하는 ‘부동산’에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차용해 곡의 아이러니함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한다. 가장 스토리텔링 성향이 트랙 ‘복도’나 ‘패밀리룸’에서는 베이스 위주의 미니멀한 비트로 쿤디판다의 랩에만 오롯이 집중하게 해 준다. (그러면서도 패밀리룸은 곡이 진행될수록 여러 장치를 삽입해 긴장감을 더한다.) 테마별로 공통점을 설정한 것도 인상적인데 ‘송정맨션’과 ‘복도’는 “받아쓰기”라는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공통점을 설정했고 ‘초록포션’의 메인 루프는 ‘돼지손’ 후반부의 샘플링 활용이며 ‘수호천사’와 ‘부동산’은 “아침부터 밤까지 …”의 라인을 반복함으로써 공통점을 형성한다. 



김라마?


 사실 김라마는 이 앨범 전까지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외톨이갱을 기다리며]라는 EP가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앨범이며 그 외의 별도의 피처링, 활동도 딱히 없다. 발매되기 2년 전인 2019년부터 그는 이 앨범을 기획하고 다듬어 이 앨범을 완성시켰다. 모든 트랙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본인이 맡았다. 사운드적 요소는 앞서 실컷 언급했기에 넘어가고 보컬적인 요소를 살펴봐도 부족함을 찾을 수가 없다. Tabber가 연상되는 특유의 어두운 보컬은 곡의 비트와 훌륭하게 어우러지며 Hook 구성 방식 역시 참신하다. 단순히 Verse – Hook의 기계적 상호작용이 아니다. 그의 가사는 곡의 스토리텔링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진행시키는 역할을 해준다. 그를 위해 필요시는 조금 더 많은 마디를 할애하기도 하고 ‘부동산’에서는 아예 본인만 등장하기도 한다. 반대로 ‘빚 – 인플레이션’에서는 인트로 이후에는 쿤디판다에게 스토리텔링을 맡긴 채 등장하지 않는다. 곡의 진행을 위한 완벽한 계산과 배분이다.


 


2021년 최고의 앨범


 다소 도발적인 타이틀이지만, 나는 도저히 이 앨범에서 결점을 찾지 못했다. 쿤디판다의 랩은 참으로 트렌디하면서도 동시에 90년대 골든 에라 MC에 비견될 만큼 유려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정교한 라이밍을 동반한 랩 퍼포먼스에는 의심을 던질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김라마의 Hook은 스토리를 정리함과 동시에 특유의 캐치함으로 곡을 기억에 남게 해 준다. 대중들이 듣기에 난해한 요소가 있긴 하지만 해외의 Experimental Hiphop 앨범과 비교했을 때는 이지리스닝에 가까운 앨범이다. 곡 트랙수도 10곡으로 맞추고 러닝타임이 35분이 채 안되기에 지루하게 들리지도 않는다. 서사와 랩 퍼포먼스, 사운드까지 모든 것을 충족시킨 이 앨범은 ‘명반’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앨범을 감히 2021년 쿤디판다 최고의 앨범을 넘어서, 2021년 최고의 앨범이라고 말하고 싶다.



By 베실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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