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5월 3주)

aespa, ENHYPEN, 식케이/김하온 외

by 고멘트

"에스파는 왜 현실로 돌아와야 했는가?"


1. aespa – [MY WORLD]

20563467.jpg

G.O : 지금까지의 에스파는 광야(메타버스) 세계관과 SF 성향이 극단적으로 짙은 컨셉을 나란히 일치시켰다. 그룹의 방향성은 일관적이었고, 그 참신함이 주요 시상식의 모든 신인상은 물론이거니와 대상 수상까지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리스크는 더 이상 짊어지기 어렵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가볍게 찍어 먹을 수는 없을 정도로 정교해진 세계관이 진입장벽을 드높게 쌓았고, 표현의 자유도를 낮추었다. 이에 피로도를 느꼈던 대중에겐 ‘쉽고 편안하며 비교적 직관 해석이 가능한 다른 그룹’이라는 대체재가 이미 등장했다. 결론은 수요가 적어진 공급을 내려놓고 타개책을 만들어낸 것이 [MY WORLD] 앨범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이로써 “에스파는 왜 현실로 돌아와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단편적으로는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에스파의 음악은 공감할 수 있도록 변모했고 전체적으로 편안해졌다. 진행되던 곡에서 갑자기 이탈하며 템포 변주를 보여주던 'Next level', 혹은 게임 같은 세계관에 절여진 'Black Mamba' 같은 곡을 기대했다면 실망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산한 가사와 음울한 곡의 무드, 타임루프 스토리텔링 등 참신함을 고루 갖춘 디테일한 수록곡(Track 5)까지 여러모로 알찬 앨범임을 말하고 싶다. 덧붙여 갑작스럽게 이세계에서 돌아온 에스파이기에 <하이틴>이라는 흔한 소재로도 새롭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도박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오며 성공을 끌어냈던 에스파이므로 이번 앨범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선택지였다. 독보적이었던 이미지를 전환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느껴질 수도 기존 방향성에 권태로움을 느꼈다면 확실한 만족감을 가져갈 수도 있을, 양극의 반응이 공존하는 앨범이기에.





"HYBE BLOOD"


2. ENHYPEN – [DARK BLOOD]

20567400.jpg

: 엔하이픈은 대중적인 인식이 약한 것에 비해 꽤 좋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번 미니앨범 역시 전체적으로 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트랙 간의 톤앤매너를 비슷하게 잘 유지하고 있다.


타이틀곡 ‘Bite Me’는 팬이 아니라면 다 읽어보기도 귀찮을 복잡한 세계관이 담긴 곡임에도 곡을 감상하기에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다.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분위기만 살짝 연출하고, 가사에서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장황한 세계관 구축이 허울로만 느껴지는 약점이 있다.) 동일한 멜로디를 맨 앞에 배치한 후 여러 번 반복되어 루즈한 감이 있지만 러닝타임을 짧게 끊어버리는 선택으로 곡을 가볍게 만든다. 장단점이 명확한 곡.


다만,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앨범을 듣다 보면 문득 HYBE의 다른 디스코그라피가 떠오른다. 1번 트랙의 내레이션은 르세라핌이, ‘Bills’ 등에선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기시감이 있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때도 느꼈지만, 아티스트의 영역보다 ‘HYBE’라는 거대한 지붕이 앞서있는 느낌이다. 감상을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앨범에선 조금이나마 타파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레플리카가 명품이 될 수 없는 이유"


3. 식케이 (Sik-K), 김하온 (HAON) – [ALBUM ON THE WAY!]

20566661.jpg

데이먼 : 2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돌아온 식케이와 그에 못지않은 휴식기를 가졌던 김하온이 오랜만에 신보를 들고 돌아왔다. 군 입대 전 마지막으로 발표했던 앨범 [HEADLINER (Deluxe)]과 하이어뮤직 컴필레이션 앨범을 통해 ‘힙합 문익점’이라는 오명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고, 나름의 스타일이 자리 잡혔다는 인상을 주고 갔기에 김하온과 함께 한 이번 앨범은 퀄리티를 따지기 이전에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 속에서 선공개 트랙 ‘SHAWTY WANNA WAIT’를 감상한 후 들었던 생각은 한 가지였다. “뭐야, 이번에는 카티야?”


첫 소절 ‘Preety cute shawty wanna wait’부터 러프하게 뱉는 랩스타일뿐만 아니라, ‘MAYBE I’M KCRAZY’ 등의 곡에 묻어있는 러프하고 다크한 신스사운드는 누가 봐도 Playboi Carti의 앨범 [Whole Lotta Red]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국내에서 레이지 장르를 전개하는 아티스트가 전무한 것도 아니고, 사운드 구성 또한 본토 특유의 로우한 튠도 아니지만, 차별점보다는 유사성이 더 두드러지는 앨범이라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덧붙여 이 앨범에서는 김하온의 강점이 전무하다. 김하온이라는 아티스트가 리스너들에게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위트가 있으면서도 특유의 철학적인 가사를 타이트한 랩으로 풀어내서인데, 레이지만큼 ‘폼’ 하나로만 듣는 장르에서는 그 아이덴티티가 좀처럼 섞이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피처링으로 참여한 샤이보이토비가 곡에서 더 돋보일 정도.


앨범에 대한 평과는 별개로, 국내 힙합 시장에서 식케이라는 아티스트는 필요한 포지션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어떤 아티스트가 나름의 서사 있는 텍스트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면, 식케이 같은 아티스트들은 현재 힙합 시장에서 트렌디하다 싶은 요소를 국내에 가져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 앨범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국내 리스너들이 이지하게 감상할 수 있는 레이지 앨범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를 단초로 캐시뱅이나 원디올 등 레이지 장르를 전개하는 신진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식케이 정도 되는 메이저 아티스트가 레이블을 설립하고 보여준 행보 치고는 다분히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기껏 벗어난 ‘카피캣’ 이미지를 스스로 뒤집어쓴 꼴이다 보니, 앞선 인터뷰에서 새로 설립한 레이블 KC가 ‘Korean Certified’라는 의미라고 이야기했던 모습과도 모순되는 행보이지 않았나 싶다. 나름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면 스타일 카피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패턴만 본뜬 레플리카는 명품이 될 수 없다.





"소문만 무성했던 잔치상"


4. Amine, Kaytranada – [KAYTRAMINÉ]

20566707.jpg

데이먼 : 지난 4월, 인스타에 올라온 한 장의 게시물에 많은 리스너들이 열광했었다. 바로 Amine와 프로듀서 Kaytranada의 합작 앨범인 [KAYTRAMINÉ]의 발매 소식. Amine는 지난 21년 발매한 정규 앨범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었고, Kaytranada 또한 간간이 싱글 단위의 앨범만 발매했기 때문에 첫 협업에 정규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은 리스너들의 반응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들의 만남은 이후 Pharrell Williams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선공개 트랙 ‘4EVA’의 발매와, 코첼라에서 드러낸 이들의 무대로 기대감은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19일 베일을 벗은 이 앨범은 생각보다는 ‘밍밍했다’.


보통 1MC 1PD 체제로 협업을 하게 되면 가장 기대가 되는 부분은 ‘프로듀서는 어떻게 아티스트를 자신의 음악적 방향성에 맞게 요리할 것인가’인데, Kaytranada가 주로 하우스 장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전곡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요소들이 앨범의 주된 방향성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이러한 프로듀싱이 주로 칠한 바이브를 지향하는 Amine의 음악적 색깔과도 잘 녹아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리스너들의 기대감 또한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이틀곡인 ‘Who He Iz’만 들어보아도 힙합의 색깔이 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 이 앨범에서는 프로듀서 Kaytranada의 모습보다는 Amine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던 듯하다. 그나마 선공개 트랙 ‘4EVA’나, ‘Sossaup’, Snoop Dogg이 참여한 ‘Eye’ 등에서만 조금이나마 ‘하우스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앨범은 그렇기에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 더욱 루즈하게 들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각 트랙을 별개로 놓고 들어보면 ‘Master P’에서의 타이트한 랩 디자인이나, 그루브함이 드러나는 ‘Rebuke’ 트랙처럼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부분들도 있기에 마냥 아쉬운 앨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기간을 두고 싱글 단위로 발매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1MC 1PD 체제로 점점 팝 성향이 짙어지고 있는 힙합 시장에서 나름의 개성이 뚜렷한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점은 앞서 이야기한 단점들을 충분히 커버할 만한, 이 앨범이 리스너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틱톡을 씹어 먹던 파란 혀의 반란"


5. Benson Boone – [PULSE]

31651326.jpg

G.O : 긍정이든 부정 섞인 반응이든, 이번 앨범에서 가장 귀에 익는 곡은 타이틀 ‘Sugar Sweet’이다. 기존 벤슨 분의 음악은 리버브가 많아 조금 어두운 듯한 피아노 선율이 주가 되어 전개된다.(In the stars, Ghost Town 등) 그 위로 절절한 가창이 더해지며 감정을 호소하던 것이 벤슨 분의 음악을 기억하게 만드는 강점이자 특징이었다. 다만, 그 익숙한 강점이 무색하게도 이번 타이틀곡은 여러모로 색다르다. 러프한 일렉기타와 스네어가 곡을 리드미컬하게 만들며 진행된다. 색다른 음악을 보여주고자 한 듯, 절절한 음악을 내려놓고 상대적으로 밝은 벌스와 훅이 미묘한 분위기를 생성했다. 글쎄, ‘찰리 분슨’ 같은 제2의 타이틀이 아티스트 본인에게만큼은 알을 찢고 나가야만 하는 중압감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즉흥 합주를 떠올릴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말하듯 ‘Look at what you did’를 읊조리는 음성을 포함하고, 브릿지에서는 ‘Look What you did to me baby’를 변형하여 반복하며 마치 즉흥과도 같은 애드리브를 늘어놓기도 한다. 여태 해 온 정제된 음악이 아닌, ‘날 것, 자유로움’이 한껏 날뛰고 있다. 이렇듯 기교에 집중하니, R&B 신예라고 불릴 만큼 가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던 벤슨 분의 음악에 설득력이 모자라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 코러스가 작게 깔려 함께 벌스 2를 부르는 연출만큼은 ‘사랑 노래’에 집중하고 있지 못하는 청자들에게 다시 사랑 노래임을 각인시켜 주는 듯도 했다.


다양한 시도는 반갑지만 벤슨 분만이 주는 감성이 툭 빠져 있는 듯하다. ‘음악’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하기엔 ‘Sugar sweet’은 제 역할을 다한다. 다만 ‘벤슨 분’이라는 아티스트와 함께 놓고 보자니 갑작스레 낯설고, 자유로운 싱어송라이터의 면을 세우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아 옛날이여"


6. Kesha – [Gag Order]

31699219.jpg

: 초기의 분위기는 거의 종적을 감췄고, 전작 [Rainbow]와 비교해 보아도 훨씬 우울하고 다크하다. 이지리스닝은 과감하게 버렸기 때문에 사운드나 전개 또한 캐치하기가 쉽지 않다. 수록된 곡들 전반이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가요’라는 장르를 고려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Only Love Can Save Us Now’ 정도가 약간이나마 팝스타의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쉽게 손이 갈 만한 앨범은 아니지만 결코 매력이 전무한 작품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곡들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도와 몰입감이 강하다. 어떤 사운드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이 음반의 가장 큰 재미라고 할 수 있다. 항상 그녀의 약점이라고 지적받아왔던 가창도 음악을 잘 이끌어가고 있다.


대형사고 이후 음악적인 변화는 정해진 결말이었다. 대중과 케샤가 서로를 외면했을 때 나온 앨범이란 걸 감안하면 아티스트 본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디스코그라피가 아니었을까 싶다. 팝스타 케샤를 (아마도)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건 아쉬운 마음이다.





※ '융', '데이먼', 'G.O' 블로그


keyword
고멘트 음악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팔로워 396
매거진의 이전글고지식한 놈들의 음악 트집잡기 (23년 5월 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