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자손이 보내는 조그마한 선물
우주와 음악, 두 단어를 놓고 보면 보통 우주를 소재로 한 음악들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가까이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나, 멀게는 드뷔시의 ‘달빛’ 같은.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그 흐름을 살짝 뒤집어 어떠한 형태로든 우주로 먼 길을 떠난 음악들을 살펴볼까 한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이전, 인류가 왜 음악을 우주로 보내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법하다. 그리고 그 이유를 보이저 호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칼 세이건을 비롯한 관리자들이 남긴 저서 <지구의 속삭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제 보이저호에 실려 우주로 발송된 87분 30초 길이의 음악은 우리가 빚진 영감에 대한 약소한 대가이다."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인류의 모든 예술은 자연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맑고 청명한 오후의 하늘, 붉게 타오르는 노을과 차갑고 부드러운 은하수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인류에게 조용히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우주로 음악을 보내는 행위는 표면적으로 인류의 발자취를 남기려는 시도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빚진 영감에 대한 대가를 갚으려는 인류의 본능일 수도 있을 것이다.
1977년,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골든 레코드”라 불리는 12인치의 도금 레코드판이 실린 채 발사되었다. 레코드판에는 지구에 대한 정보, 인류가 이룩한 성과, 다양한 언어로 된 인사말 등과 함께 인류가 만들어 낸 음악들 중 일부가 수록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궁금증을 갖게 된다. 앞의 것들은 그렇다 쳐도, 그 많은 음악들 중 무엇을 어떤 기준에 따라 선정했을까? 담당자들은 <지구의 속삭임>에서 그 의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그 유산의 우아함에 필적하는 훌륭한 음악들을 보내고 싶었고,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다양성을 조금이나마 암시하도록 충분히 다채로운 음악들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우리는 두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우주 탐사선을 쏜 사회가 친숙하게 느끼는 음악만이 아니라 여러 문화들의 음악을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 둘째, 그저 의무감에서 무언가를 포함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그 기준조차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감내하고, 그들은 총 27개의 곡을 선정하여 레코드에 수록하였다. 그 리스트에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클래식 거장도 있고 척 베리, 루이 암스트롱과 같은 현대의 음악가도 있으며, 몇몇 국가의 이름 모를 민요들도 있다. 지구에서 각자의 위상은 다르더라도 레코드 속에서 그 곡들은 모두 지구를 대표하는 동일한 곡이다.
현재 보이저 1호와 2호는 모두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그리고 아래 영상은 누군가 레코드를 발견한다면 보게 될 이미지와 음성, 음악들이다. 우리가 그 누군가가 되었다고 상상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인류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음악은 21:48부터 시작.)
당시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당연히 실렸을 법한 비틀즈의 음악은 운이 없게도 보이저 호의 레코드에 실리지 못했다. 칼 세이건은 비틀즈의 ‘Here Comes The Sun’을 수록하고자 비틀즈 멤버들에게 허락까지 받았지만, 정작 판권이 멤버들에게 없어 실리지 못했다는 여담이 있다. 이후 보이저 호가 발사되고 30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비틀즈의 음악이 우주로 나가게 된다.
2008년은 NASA의 50주년이자, NASA의 심우주통신망의 40주년이며 비틀즈의 50주년이자, 비틀즈의 음악 ‘Across the Universe’의 40주년이기도 한 연도였다. 특히 재밌는 부분은 심우주통신망이 공개된 1968년 2월 4일에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가 녹음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40년이 지난 2008년 2월 4일 오후 7시, ‘Across the Universe’는 심우주통신망에서 발사된 전파에 실려 약 431광년이 떨어진 북극성으로 곡의 이름처럼 우주를 건너는 여행을 떠났다.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는 수백 년이 지나서야 북극성에 도착하게 된다. 그때까지 인류가 존속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지만, 누군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의 한 곡을 우연히라도 들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8년 2월 6일, 일론 머스크가 자가용으로 타던 테슬라 로드스터 1세대 차량이 팰컨 헤비 로켓의 초도 비행 화물로 실려 우주로 발사되었다. 위험 부담이 있기에 실제 위성을 실을 수 없고, 그렇다고 의미 없는 모형을 실기에는 기존의 틀을 따르고 싶지 않았던 일론 머스크의 결정이었다.
그 사실로도 흥미로운 일화이지만, 카 오디오에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와 ‘Life on Mars?’를 반복재생해 놓고 운전석에는 우주복을 입힌 Starman이라는 마네킹을 태운 것을 듣는다면 이 사실이 더욱 재밌게 다가온다. 이왕이면 마네킹의 이름이 톰 소령이나 지기 스타더스트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우주 공간 속 대답 없는 마네킹을 상상해보면 상황과 선곡이 상당히 잘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우주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기에 우주에서 정말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이 흘러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과 컨셉을 생각해본다면 곡이 재생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의 큰 의미가 될 법하다.
여전히 음악은 우주로 향하고 있고, 향할 계획이다. 가깝고 단적인 예로, 2022년 우리나라가 발사한 다누리 호에서 방탄소년단의 ‘Dynamite’ MV를 약 121만 km 떨어진 지구로 전송하기도 했으며, 방탄소년단의 ‘소우주’와 ‘134340’과 RM의 ‘moonchild’가 2024년에 예정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우주비행사들을 위한 플레이리스트에 수록되기도 했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모두 별의 자손이라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별의 폭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류가 계속 음악을 우주로 보내는 행동들은 어쩌면 별의 자손인 우리들이 우리의 고향에 보내는 조그마한 선물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By 동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