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YA, nokdu, P1Harmony, Maisie Peters 외
만돌 : 하나의 아이돌 그룹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룹의 정체성이다. 그 정체성은 르세라핌, 에스파(데뷔 초)처럼 그들의 세계관이 될 수도, 뉴진스 그리고 엔믹스처럼 그룹이 지향하는 음악적 스타일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여자(아이들)처럼 독단적인 길을 걷는 전략 또한 있다. 그러한 정체성은 시대적 분위기를 타기도 한다. 최근 당당하게 “나”를 표현하는 앨범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이브의 ‘IAM’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실제 MZ세대가 숨기지 않고 진정한 “나”를 보여주는 트렌드를 따라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당당하게 자신들을 “잘 노는 십 대의 아이들”로 소개하는 그룹 ‘에이디야’가 지난 5월 성공적인 데뷔를 마쳤다.
‘모험’을 의미하는 ‘어드벤처(adventure)의 에이디(AD)’와 '출발'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야(YA)’의 합성어인 에이디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춤이라고 말한다. 실제 데뷔곡 ‘Per’에 안무를 직접 만들고 5명 모두 안무 창작이 가능한 그룹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신인의 패기로만 들린다. 퍼포먼스에만 집중한 노래의 진행은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졌다. 그렇다고 퍼포먼스가 “와 대박인데?” 이런 부분도 없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춤이라고 소개하는 만큼 더욱 많은 가능성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에이디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케팅이다. 당장 앨범 한 장을 팔기 위한 마케팅이 아닌 그룹을 알릴 필요가 있다. 과거 춤을 정체성으로 삼은 이달의 소녀의 안무 커버 영상이 큰 반응을 일으켜 대중성을 얻은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은 이미 소속사 오피셜 채널에서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Make It Rain” 그리고 “BILLIE EILISH.” 같은 힙합 사운드의 팝송에 맞춰 안무를 추는 영상이 가장 돋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많은 대학 축제, 지방 행사에서 그들을 증명해야 한다. 아직 아무런 반응이 오지 않더라도 이러한 단계적인 노력이 유일한 방법이다.
베실베실 : ‘머물러줘’나 ‘오늘 같은 밤’ 같은 곡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가수 nokdu의 이미지는 ‘시티팝’ 아티스트였을 것이다. 이와 동시에 nokdu라는 뮤지션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레트로 열풍이 불었던 19~20년 당시엔 ‘머물러줘’와 비슷한 음악을 선보인 가수들이 과장 조금 보태 한 트럭이었기 때문이다. 2020년 발매한 Ep [Mersey] 역시도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렇게 ‘적당한 히트곡 한두 개 이후 스무스하게 묻혀가는’ 여타 인디 가수와 다를 게 없을 줄 알았던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슈퍼밴드 2에 출연했던 21년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몇 개의 OST와 프로젝트 음원, 작곡가로 참여한 것 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던 (슈퍼밴드 이후의) 21년과 22년을 보낸 그가 23년 첫 정규 앨범 [Old Justice] 발매를 예고하며 선공개한 곡 ‘캐서린’은 본 앨범이 nokdu의 기존 음악과 전혀 다를 것임을 시사하는 곡이었고, 추후 공개된 ‘duet’과 ‘가슴 아픈 이별’ 역시 각각 다른 장르의 곡들이었다. 곡의 퀄리티를 떠나 이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나의 앨범에서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첫 번째 과제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 해답을 ‘레트로’로 찾은 듯하다. 앨범 제목 [Old Justice]와 소개 글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번 앨범의 곡들은 80~90년대 영국 음악의 오마쥬로 가득하다. ‘Wanna Be Loved’ 같은 곡은 전형적인 Brit Pop 작법에 신디사이저를 얹은 곡이고, ‘물 좀 주소’는 초기 Neo-Psychedelia 장르에 대한 본인만의 재해석일 것이다. ‘가만히’의 기타 톤은 Sheogaze에 가깝지 않은가. ‘가슴 아픈 이별’은 90년대 Contemporary R&B에 가깝게 들리지만 어찌 됐든 ‘레트로한’ 악기 운용으로 이질감을 다소 극복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장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던 이유는 nokdu의 감각적인 탑라인 메이킹, 그리고 그 당시 작법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레트로한 신디사이저의 활용을 통해 통일감을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은 그보다 더 큰 단점들이 산재한다. 가슴 아픈 이별’은 상술했듯 신디사이저의 활용으로 앨범의 유기성 문제는 극복했지만 곡의 완성도 측면에선 되려 마이너스적 요소가 됐다. 캐서린’에서의 급발진은 앨범의 흐름면에서도, 곡의 완성도 면에서도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전개였으며, 뜬금없는 슬로우 팝 넘버 ‘Down’이라거나 ‘600Km’ 같은 곡은 레트로랑 전혀 관련이 없는, 앨범 통일성을 해치기만 할 뿐인 곡들이다. 앨범 후반부 ‘Flesh & Bone’에서부터 ‘단독공연’까지는 순수하게 매력이 없어 손이 가지 않는 곡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시감이다. 이 앨범을 들으면 그가 의도했듯 80~90년 영국이 먼저 떠올라야 하는 게 올바른 감상일 테지만, 그보다 앞서 한국의 인디밴드들이 먼저 떠오르고 만다. 전반부 ‘Wanna Be Loved’나 ‘Old Justice’는 어떻게 들어도 검정치마의 1집이고, 후반부 ‘Oh Love?’나 ‘괴물’은 또 모든 작법이 잔나비와 유사하다. 검정치마와 잔나비 자체도 8090 락의 오마쥬 밴드임을 감안할 때, 결국 그는 오마쥬의 오마쥬에 그치게 될 뿐인 것이다. ‘시티팝’을 넘어 ‘레트로’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몇몇 곡은 듣기에는 꽤나 좋았다. 그렇지만 그는 이번에도 ‘오리지날리티’의 획득에 실패했다. 이는 결국 “재능의 차이” 문제로 귀결된다.
율 : 세상의 부조리함과 갑갑한 틀에 맞서 자유와 개성을 외치는 P1Harmony가 돌아왔다. 사실 앨범 아트가 마음에 들어 클릭했다가 컴백 소식을 발견했는데, 의미심장한 아트워크가 무언가 거창한 세계관이 있는 듯 기대하게 만들었다.
Harmony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인 이번 앨범은 생명의 근원 ‘물’을 오브제로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고 소개되었다. 물이 핵심 오브제라니. 케이팝 씬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생소한 소재에 이끌려 타이틀부터 차근히 들어보았다. 타이틀 ‘JUMP’는 힙합 베이스의 얼터너티브 팝 댄스 곡으로 고민 없이, 망설이지 말고 지금을 즐기자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 함께 본 MV에서도 그를 보여주듯 클럽 무대에서 춤추고 디제이 레코드판에서 노는 장면이 내내 등장하며 곡과 컨텐츠가 잘 어우러졌으나, 기대했던 물과 관련한 조화의 세계관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중간에 멤버들과 정체 모를 여성이 물방울에 갇혀 우주를 떠다니는 장면이 있긴 했다.) 어디선가 세계관을 풀어놓은 떡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 이 시리즈의 처음인 미니 4집부터 5집도 확인해 보았으나, 메인 키워드 Harmony와는 큰 연관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같지 않았다.
물에 솜사탕 씻은 너구리가 된 채 들은 수록곡들은 예상외로 모두 좋았다. 힙합을 메인으로 아프로비트, 신스, 피아노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와 악기들을 잘 사용해 듣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More Than Words’는 아프로비트에 신스 사운드가 적절히 어우러지며 만드는 기분 좋은 멜로디가 인상적이었다. 다른 곡들도 부족하다 느낀 곡은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트랙 간 유기성과 앨범의 전체적인 통일성이 부족해 이 앨범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수록곡들마다 하는 이야기가 다르고 색이 강해 앨범의 핵심 키워드와 연결이 부족하고 앨범의 정체성을 흐린다. 처음 설정한 세계관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금 더 깊이감 있는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졌다면, 팀의 차별적인 이미지 구축 전략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팀의 실력이나 색깔은 이해됐지만, 앨범 키워드로 세운 ‘Harmony’는 설득시키지 못 한 느낌. 이 팀은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 또 이번이 FNC 소속 내 커리어 하이라고 하니 성장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다음에는 더 조화로운 하모니를 보여주길.
베실베실 : 2022년 [Omnium Gatherum]이나 [Ice, Death, Planets, Lungs, Mushrooms and Lave], 그리고 [Change] 같은 앨범을 통해 Jazz, Soul, Hiphop 등으로 저변을 살짝씩 넓혀가던 King Gizzard의 이번 선택은 Metal 인가보다. 스펙트럼 하나 참 넓은 그들이지만 기존엔 19년 [Infest the Rats’ Nest] 이외엔 Metal을 앨범 단위로 시도한 적은 없었기에 살짝 의외처럼 들리긴 해도, 퀄리티 면에선 여전히 믿고 듣는 King Gizzard인 건 여전하겠다. ‘Gila Monster’는 조금 더 Thrash Metal 본연의 거친 질주감과 떼창에 충실하며, Dragon은 9분이라는 장대한 길이 속에 극한의 테크닉과 복잡한 구성 등을 통해 그들이 Progessive Rock 장르에도 일가견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최근 그들이 얼마나 허슬해왔는지를 아는 사람들에게 지난 반년의 공백은 참으로 길고 긴 시간이었지만, 그 기다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선공개 곡으로 이런 죽이는 곡들을 들고 나왔으니 6월 16일에 나올 [PetroDragonic Apocalypse; or, Dawn …] 앨범 역시 충분히 잔뜩 기대해 봄직하다. 그들은 우리의 기대를 한 번도 져버린 적이 없다.
만돌 :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누구나 한 번은 들었던 문구다. 당연시 여겼던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떠났을 때 공허함이 밀려오고 선택을 후회하면서 “내가 더 잘했으면 우린 달라졌을까?” 마음속 외침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번 ‘Maisie Peters’의 신곡 ‘Two Weeks Ago’는 이별 후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을 다시 상기시키는 노래다.
피터스는 이번 노래 역시 오랜 협력자인 Brad Ellis 그리고 Jez와 같이 작업을 했으며 본인의 장점인 부드럽고 연약한 목소리를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녹여냈다. 가장 큰 특징은 더 솔직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가사를 작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깊은 감성을 주기 위해 코러스 부분에 현악기를 추가하는 등 음악적 노력 또한 많이 보이는 곡이다. 오랫동안 같이 음악 작업을 한 프로듀서가 있기에 본인의 매력을 가장 잘 녹이는 곡으로 6월 23일 그녀의 새로운 앨범 “The Good Witch”의 시작을 알렸다.
이쁜 비주얼에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피터스이지만 그녀가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곡은 ‘Psycho’였다. 밝은 분위기에 빠른 템포와 대조를 이루는 도발적인 가사와 퇴폐적인 표정 연기가 리스너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곡에 비해서 이번 싱글은 정적이며 차분하다. “한 명의 아티스트가 이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을 보여 줄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치 상황에 따라 주변을 비추는 태양이 될 수도 또는 어둠 속 나 홀로 빛나는 달이 될 수도 있는 음악성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번 곡이 곧 발매될 앨범 중 가장 슬픈 트랙이 될 거라는 그녀의 인터뷰 내용과 앨범의 제목이 “착한 마녀”라는 점에서 아직 앨범 발매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 앨범을 통하여 다시 한번 어두운 면모의 피터스를 볼 수 있을 거라 예상한다. 그런 무드의 타이틀을 이번 앨범 같은 무드의 노래와 섞어 더욱 풍성한 앨범을 만들어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에 사랑을 받을 것이다.
율 : 대한 노르웨이인 페더 엘리아스가 이번에 말아준 이별 노래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코러스 멜로디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잔잔히 흐르는 강 같았다. 이런 잔잔하고 따뜻한 피아노 반주에 감미로운 보컬을 더하는 식은 그가 가장 잘하는 스타일이다.
코러스의 멜로디는 한국인이라면 자연히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이라는 가사가 떠오를 텐데, 원곡은 미국의 동요라고 한다. 단순하고 반복되는 구성에 익숙한 멜로디라 그런지 첫 소절을 듣자마자 빠져버렸다. 머리에 맴도는 중독성은 덤. 이제 같은 리듬을 떠올려도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보다 ‘row row row your boat’만 떠다닌다. 이지리스닝을 이렇게 중독성 있게 만드는 것도 재주일까. 무언가 새롭거나 폭발적인 요소가 없는데도 끌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자극적인 맛들 사이에 우직하게 아는 맛으로 승부 보는 동네 찐 맛집 우동집 같은 아티스트라고나 할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사골도 3번만 끓여야 맛있다고, 그의 우직함이 지루함으로 다가오게 될 때 취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다. 따스하고 감미로운 음색으로 이 이상의 새로운 매력을 뽑아낼 수 있을까? 슬슬 헤쳐나갈 수 있는 돌파구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오지 않을까 싶다. 담백한 맛에 감칠맛을 돋울 재료가 무엇이 될지 모르겠으나, 기대되는 건 확실하다. 신메뉴 기대하겠습니다 사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