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밥> #15.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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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상으로 오늘은 분명히 '춘분'.
봄은 고사하고 다른 지역 어디 께는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고 난리통이라 한다.
서울 역시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해 우산을 들고 사무실을 나선다.
눈발을 뚫고 간 곳은 고양 시 끝자락에 있는 'ㅂ센터'.
1년 넘게 뵙지 못한 A 선생님을 만나 일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 이야기를 마치고 건물에 딸린 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를 했다.
아무리 꽃샘추위라지만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가늠할 수 조차 없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근간의 개인적인 일들로 몸도 마음도 뒤숭숭했다. 그런데 좋은 분과의 즐거운 식사시간을 통해 온기를 조금 나눠 받는다.
'심야식당'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 사이의 온기와 치유를 묘사한다. 원작인 만화도 1권부터 줄곧 사 왔고, 드라마도 거의 다 봤지만 내용은 그게 전부이고 시즌이 지나도 자기복제를 반복한다.
분명히 난 원작과 드라마의 팬임에도 이 드라마를 보며 그리 긍정적인 생각만 하지는 않았다. 일본식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와 극적이고 신파에 가까운 지극히 만화(혹은 동화)적인 내용과 표현 때문이다. 드라마로 옮기며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뤘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삶에서 '먹는다'라는 행위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편이라 음식으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발상이 그저 만화가 원작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와 궤를 같이 해 무수히 쏟아지는 음식 만화와 드라마에 큰 공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이를 먹은 탓인지 혼자 먹는 밥이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는 일이 참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식의 종류와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좋은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며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와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난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이 나오면 바로 날짜를 잡는다.
행여 그 날짜에 무슨 일이 생겨 만나지 못할지언정 일단 날짜를 잡으려 한다.
전에 누군가는 내가 바로 날짜를 잡으려 하니 곤란해하더라.
묘한 표정을 짓던 그 친구는 그저 어른의 사회적 인사법에 따라 한 말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런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없으면 그저 "언젠가 보자." 정도로 인사하면 될 것을...
누군가와 밥을 먹는 건 내 시간과 그의 시간을 나누고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다.
좋은 사람과 만나 좋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있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조만간 살 날보다 산 날이 많아질 텐데 그런 '인사치레'따위에 허투루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그런 의미에서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조금 아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난 앞으로도 인사치레로 하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거짓말이 싫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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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여전히 '심야식당' 만화와 드라마의 노예라는 다시 느꼈다.
반복되는 자가 복제임을 알면서도 다음 권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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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321 / 점심밥
[고독한 밥?] 어찌 됐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혼자 먹는 밥을 그리고, 그 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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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먹은 고독한 밥 : 학생식당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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