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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팡이꽃 Mar 27. 2017

지금 잠이 오냥?

<인생 그냥저냥> #02 잠실




#02. 지금 잠이 오냥?


그때 나는 커다란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걷고 있던 무난하고 평탄한 인생길에 곧 낡은 외줄 다리가 깜짝 이벤트처럼 튀어나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타성에 젖은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새로 선택할 길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엉킨 탓에 몇 날 며칠 밤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어지는 불면의 밤 덕택에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할 낮에도 대부분 몽롱한 상태였다.


그렇게 몽롱한 밤낮이 이어지던 뜨거운 여름날 오후. 잠실 모 처를 지나다 두 눈을 감고 좁은 담벼락 위에 몸을 한껏 늘어트린 턱시도 냥이를 만났다.


백주대낮에 저렇게 녹아내려 두 눈을 붙이고 쉴 수 있다니... 부러웠다. 

언제 사람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좌불안석 두 근 반 세 근 반 심장을 떨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평화로워 보였다. 이럴 때는 보통 "우연히 만난 고양이 덕에 마음이 정화돼 고민이 눈 녹듯 녹았다."라고 쓰는 게 정석일 테지만, 심사가 뒤틀린 상태였던 나는 이 턱시도 고양이 씨가 얄미웠다. 


내 속 마음은 이랬다.


'야! 지금 잠이 오냐?'



※덧붙임
결국 새로운 길을 만들어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사무실을 얻어 디자인 스튜디오를 꾸렸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다.


▶ 2012년 7월 / 잠실에서 만난 턱시도 고양이 씨

Q. <인생 그냥저냥>은?

A. 일상을 스치는 고양이 친구들을 그림과 한 줄의 글로 기록하는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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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매품-2 <하루 낙서 또 하러 왔어>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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