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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곰 Mar 01. 2019

배소고지 이야기 : '아시나요'

2018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2019.03.01-10 대학로 예술극장

기억을 부르는 노래, ‘아시나요’


아 흑갑사 댕기는 부른다

어서 와요 어서 와요

아시나요 열일곱 수줍은 댕기를


아 우물진 두 뺨은 웃는다

싱긋 생긋 생긋 싱긋

아시나요 열일곱 수줍은 두 뺨을


아 연분홍 순정은 부른다

울렁 울렁 울렁 울렁

아시나요 열일곱 수줍은 순정을


장세정 <아시나요>



저고리시스터즈. 왼쪽부터 이준희,김능자,이난영,장세정,서봉희.[사진 한국대중가요연구소][출처: 중앙일보]


배소고지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노래는 바로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의 ‘아시나요’(1937)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걸그룹으로 일컬어지는-비록 프로젝트성이었지만-‘저고리 시스터즈’ 중 한 명이었던 장세정(1921~2003)이 노래한 곡입니다. 1937년에 발표한 ‘연락선은 떠난다’가 히트를 치면서 데뷔한 가수죠. ‘평양이 낳은 가희’라는 별칭을 갖고 있으며,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군국 가요를 부르게 되면서 민족문제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음악 분야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아시나요」‧「처녀 야곡」‧「불망의 글자」‧「토라진 눈물」‧「항구의 무명초」‧「잘 있거라 단발령」‧「역마차」 등 800여 곡을 남겼지만, 월북 작사가와 함께 작업한 덕분에 다수의 곡들이 70년대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제가 삽입했던 노래들은 모두 전래동요였습니다. ‘동무 동무 어깨동무’와 ‘문지기 문지기 문 열어라’ 정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외에 다른 곡들은 박선희 연출의 제안으로 삽입되었습니다. 독립군가 등 여러 곡들이 포함되었지만, 가장 큰 의미를 갖는 곡은 역시 백소녀를 상징하는 노래 ‘아시나요’입니다. 극 중 설정상 노래를 가장 잘하는 것은 순희지만, 소녀를 상징하는 그 노래를 순희가 부르게 하자는 제안이었지요. 점차 이 곡은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여 순희, 입분, 소녀의 관계와 과거를 동시에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이 곡은 그 가사의 내용 때문에 선택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을 꿈꾸고, 순수했던, 가장 맑게 웃던 시절을 말해주면서도, 이들 모두가 가장 그리워하는 순간을 보여주는 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곡은 전쟁 발발 전, 소녀들이 함께 모여 노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며, 순희가 임신을 한 후 빨래터에서도, 소녀의 처형 순간에도, 그리고 입분이 기억의 조각들 속에서 헤맬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곡입니다.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어떤 사람, 시간, 공간을 함께 싣고 기억 속을 항상 돌아다니는 기차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노래가 들려올 때, 그 기차가 우리를 관통해서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그저 속수무책으로 멈춰 서서 그것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답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프고 못 견디게 여겨질 때가 있고, 한없이 그립고 그리워서 어딘가를 멍하니 바라보게만 될 때도 있습니다.

                                                                                                                                                                             ‘아시나요’를 부르는 과거의 소녀들과 현재의 여인들의 심정이 관극하시는 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곡과 가사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한번쯤 들어보고 가시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오늘부터 ‘배소고지 이야기’ 공연이 시작합니다. 극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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