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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sk Mar 01. 2021

말은 지식과 경험, 그로 인한 사상과 신념을 드러낸다.

적응기 "직장생활은 사회생활이 아니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 중 하나다.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단순히 의사소통을 넘어 연설이라는 행위로 사회를 이끌거나 사회를 설득시키는 도구로도 쓰인다. 그만큼 세치 혀를 통해 발산되는 말은 인간의 역사 곳곳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그 영향력은 당신의 주변에서 계속되고 있다. 특히나 아주 가까운 집과 회사에서.


"모 수석이 나한테 뭐라는 줄 알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뭐? 무슨 말을 했길래?"


1. 멀쩡한 사람이 결혼을 왜 안해? 가족이 없으니 목표도 책임감도 없는 거야.

2. 회사가 당신 기다려 주는 자선기관은 아니잖아.

3. 당신 담당업무가 뭐야? 당신 업무나 잘해. 다른 일 신경 쓰지 말고.

4. 그건 당신 사정이고. 내가 왜 도와줘야 해.

5. 이거 얘기 들으면 알아요? 그런 걸 왜 물어봐요?

6. 당신이 이 회사에 왔으니까 그나마 이런 것도 해보지. 어디 가서 해보겠어.

7. 임원이 그럴 수도 있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서 올라간 자린데.

8. 넌 좋겠다. 미혼이라서 돈 막 써도 괜찮잖아. 결혼해봐.

9. 난 항상 열심히 하잖아. 내가 너희들한테 안 해준 게 뭐야. 왜 나를 힘들게 해?

10. 어제 술 먹고 재미있게 놀았잖아. 그런데 오늘은 또 왜 그래? 취해서 기억이 안 나?


회사라는 동물의 왕국 안에서 흔히 듣는 말들이다. Sexual harassment, Power harassment에 해당하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 있다. 나름 진심을 담아 하는 말일 수도 있고 그저 오지랖이 습관이라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상대방을 고려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고 그것이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눈곱만큼도 없다. 남에게 상처를 주는 포악무도한 무지를 무지라 생각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선배라는 존재들은 어떤 과정을 겪었든 그 안에 있다는 것을 훈장삼는 경우가 많다. 그저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대단한 전투를 치르고 살아남은 것처럼 거룩한 말로 포장한 채로 말이다. 그 자기 위안은 격을 넘어 자랑이 되고 후에 망상으로 발전해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로 포장한다. 당연한 훈장인 듯. 그리고 그런 선배들은 회사 밖의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게다가 그 후배들이 나중에 나의 동기나 후배로 입사할 때 그 선배의 말을 전수받은 채 똑같은 입을 장착하고 들어온다.


들은 말을 해석해 다시 내뱉을 때 거르는 능력은 배움과 상관없다.


그래서 배려가 없다.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생활과 회사생활을 동일시하는 그들의 말은 적어도 60여 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들이다. 그 시절 회사는 모든 가족을 보호하는 우산같은 존재였고 정부이자 가족같은 것이었다. 회사생활을 은퇴하고 나면 그야말로 20여 년 남은 인생 마무리만 잘하면 됐으니까. 그래서 사회생활과 회사생활을 동일시하는 그 생각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아무리 우수한 두뇌로 좋은 학교를 나왔어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의 수준은 거의 쓰레기지만 그래도 엘리트로서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어느 회사를 가도 존재한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듣기 좋은 말은 온갖 자기계발서에서 수도 없이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낯이 뜨거울 정도의 교과서 같은 좋은 말들은 책에 넘쳐 난다. 왜 그럴까. 그런 말을 구사한다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의미다.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거의 없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구사하는 것은 왜 어려울까.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단순히 말을 구사하는 경험이 아니라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이해심과 통찰력을 배울만한 경험이 없었다는 의미다. 회사 안에서의 경험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안은 전쟁터지? 밖은 지옥이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을 하고 결론을 지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었다면 내용을 숙고하고 내 생각으로 흡수했다는 것이다. 뭔가 경험을 했다면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생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이 없다면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장소나 현상은 한정된다. 바로 회사다. 그런 사람들이 60년여 년 간 정답을 얻어온 그 장소다.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사람들, 한정된 현상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한계가 있다.


의지를 꺾는 말.

그 안에서만 통하는 말.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

폐쇄적인 생각.

언어폭력

밖에서 들을 수 없는 말.

당연히 들을 줄 알았던 말.

결국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들.

말은 결국 지식과 사고와 사상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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