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박사의 제이크 설리 길들이기

청소년 육아 연작 : 영화 <아바타>

by Gomsk

판도라 행성 생태계를 연구하는 그레이스 박사는 오늘도 줄담배를 피우며 업무의 고단함을 견딘다. 학교를 짓고 영어를 가르쳐주고 본토 사람들과 교류에 힘쓰던 어느 날, 능구렁이 같고 통제불가한 아들이 생긴다. 물론 그는 친자가 아니고 다 자란 남자며 단련된 군인이다. 휠체어에 의지한 몸과 달리 눈빛은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생생하다. 박사는 자신에게 뚝 떨어진 낯설고 불편한 팀원과 인생을 건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한다.


제이크 설리는 퇴역한 해병이다. 과학자인 형을 대신하여 그레이스 박사의 팀원으로 합류한다. 그는 연구팀에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보았다. 쌍둥이 형의 주검을 바라보는 제이크의 시선이 심해로 무한히 가라앉는 것처럼 무겁다. 내가 나의 죽음을 바라볼 기회는 없다. 그리고 쌍둥이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모른다. 짐작컨대 하나의 영혼이 두 사람에게 나눠졌을 것 같다. 그렇다고 영혼이 절반씩 깃든 건 아닌 것 같다. 온전한 두 사람이 하나처럼 공명하지 않았을까? 나비족처럼 신경을 연결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제이크는 자신의 인간 아바타의 죽음을 본 것이다.


그는 판도라 행성에서 돈이 되는 물질을 채굴하는 회사에 소속되었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불구가 된 다리를 치료할 수 있다. 그것은 3D프린터로 만든 생체조직일까? 아주 비싼.. 그레이스 박사는 첫 대면에 제이크를 박대한다. 머리도 비었고 뭐든 총부터 쏘는 총잡이라고 독설을 코앞에서 퍼붓는다. 오 불쌍한 설리.. 란 연민은 느낄 새 없다. 외계 정글에서도 살아남는 제이크 설리는 맷집 있는 군인. 그는 낯설고 두려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영웅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낮은 곳에서 차곡차곡 서사를 쌓아 올라간다. 그렇게 관객의 마음 또한 서서히 예열된다.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에 닥친 주인공의 고난을 함께 겪는 것처럼 마침내 그 감정에 동화된다. 쌍둥이 형의 아바타로 깨어난 설리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처럼 흥분한다. 자신이 일어서서 걸을 수 있다는 희열! 부모는 제지하지만 아이는 주변을 물리치고 나아간다. 모퉁이를 돌아 걷는 것도 가능하다. 오르막을 오를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유모차에 눕거나 품에 싸매어져 이동하지 않아도 된다.. 기뻐 날뛰는 제이크 설리에게 안정제 주사를 놓으려는 연구원이 오싹하다. 도망쳐라, 제이크!! 주사 놓는 어른에게서 얼른 벗어나. 그 주사 놓는 어른이 바로 부모로서의 나다...


제이크를 아바타로 접속한 상태로 만나자 그레이스 박사는 과즙음료 아니 유기농 과일을 따서 던져 준다. 기저귀 찬 똥싸개인 줄 알았더니.. 너 좀 제법이구나 인정하는 눈빛. 그러나 아직 동료로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다. 판도라 정글에 함께 들어선 첫날, 박사는 이것저것 주의하라고 잔소리하지만 제이크 학생은 말을 듣지 않아요. 궁금한 것은 못 참습니다. 뿔 달린 공룡과 트럭 만한 흑표범?이 살고 있는 숲에서 제이크는 고립된다. 홀로 밤을 맞은 제이크가 나무를 깎아 무기를 만드는 장면이 정말 좋다! 그래픽이 아닌 숨 쉬는 사람이 느껴진 부분. 아아 이 고비를 어찌한다? 십 대 소년같은 제이크의 눈빛이 흔들린다. 버틴다. 그리고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192AA7284B2AB15912 아빠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제이크는 경계에 선 인물이다. 일단 그는 고용된 상태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이다. 파워풀한 쿼리치가 내린 과제 역시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인정받기 위한 통과의례는 목숨을 담보로 한다. 실패하면 절벽 아래로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이다. 내게 그같은 의식은 뭐였을까? 사회에서 정한 대로 입시다. 그것은 지옥문과 같았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생존했다면 남은 건 수능 뿐. 제이크는 대적해 오는 필연을 만나 사투를 벌인다. 두려움을 향해 총질하는 대신 그 너머에 있는 환희를 만끽한다. 마침내 이크란과 교감하여 날아오른다.


아바타와 연결되는 캡슐에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제이크는 여전히 아이 같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아이를 챙기듯 그레이스 박사는 제이크의 밥때를 챙기고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일기 숙제를 독려하며, 그의 마른 두 다리를 들어 올려 재운다.. 두 사람은 인물 구도가 모자 같다. 그레이스가 회사의 압박을 피해 캠프를 이동하는 대목에서 맹모삼천지교 맹자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녀는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자 참견 많은 외부를 원천 차단한다.. 요즘에 비유하자면 인터넷이 안 되는 외딴 곳으로. 그것도 안개에 휩싸인 공중에 뜬 섬


박사의 예상을 뛰어넘어 제이크 설리는 성장하고, 그녀가 더 이상 짚을 수 없는 세계로 분리된다. 독립은 불현듯 다가왔으며 아버지로 대표되는 기존 세상에 반하는 것으로 확실히 매듭짓는다. 상관 쿼리치를 부모 위치로 보니 아버지란 참으로 거역하기 어려운 존재다. 대령의 몽둥이 같은 팔근육처럼.


엄마 말을 들을까 아빠 말을 들어야 하나 혼란의 시기를 거쳐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 전사로 태어난다. 부모가 다 자란 자녀를 평생 아이처럼 본다 해도 그 아이는 외계 행성에서 사는 것과 같다. 마음이 감정이 실낱같이 뽑아진 인사동 타래엿처럼 서로 이어져 있다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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