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술보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했다

영화 <올빼미>: 인조의 병든 마음

by Gomsk

*스포일러 있어요*



인조의 뻣뻣한 피부는 긴장이 풀리지 않고 소용 조씨는 옆에서 표독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드라마 <삼총사>에 묘사된 인조(김명수 분)처럼 유해진이 연기한 인조 역시 강박 증세를 보인다. 그는 침전에서 기미상궁을 죽이고 어의의 손을 빌려 아들을 죽인다. 혈이 흘러나온 자식의 얼굴을 등으로 감싼 채 오열하는 모습은 속내를 감추려는 수작으로 보였다. 사지에 침을 맞아가며 왕의 자리에 있었으나, 가장 소중한 존재를 제거할 만큼 인조의 정신은 병들어 있다.


한명기 저 <최명길 평전>에 인조 개인사가 나온다. 젊은 시절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한다. 그의 말 그림에 힘찬 기세가 담겨있었을 것 같다. 그 그림을 보관한 집에 후일 영의정이 되는 김류가 다녀갔고, 김류는 임금이 되기 전 인조의 그 그림을 간직했다고 한다. 인조는 반정 당시에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그만의 비전이 있었다. 개인의 꿈이 허물어진 것은 안쓰럽다.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미간을 찧어가며 굴했던 과거는 마지막까지 임금의 숨을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8년 여만에 청나라 볼모로 불려 갔던 소현세자가 귀국한다. 장성하다 못해 아들은 이미 한 가정의 가장인 데다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온 외국인 같은 존재다. 용상 아래 꿇어앉은 인조를 어쩔 수 없이 내려다보며 소현세자는 청나라 황제가 보낸 서신을 통역한다. 쓰라리다. 부자 사이에 팽팽한 기운이 흐른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아버지, 아들은 아들이라 두 사람만 자리하게 되자 아들은 진심을 말한다. 변해야 산다고.. 하지만 인조는 아들이 변했다며 싸늘하게 밀어낸다.


<올빼미>에 수차례 왕궁 사람들에게 침을 놓는 장면이 나온다. 낮에는 소경과 다름없는 천경수(류준열 분)는 입궐하자마자 불리어 소용 조씨에게 침을 놓는다. 아랫배가 차고 소화가 안된다고.. 예민한 손끝 감각으로 혈을 찾아 침을 꽂을 때 미동 없는 그녀를 보고 약간 실소했다. 조씨는 그냥 심보가 아프구나. 마음에서 질병이 시작된다. 그래도 내장이 틀어질 정도로 병이 들어섰다면 몸통에 침이 꽂힐 때마다 사람은 허리를 뒤틀게 된다. 그냥 편의점 소화제를 드립시다. 반면에 세자의 단정한 얼굴에 꽂힌 열 개 남짓한 침은 매우 슬펐다. 머리에 안면에 꽂히는 침은 아프지 않다. 정수리에 맞으면 침이 꽂힌 동안 혈행이 개선되는지 시원할 정도.. 하지만 세자에게 꽂힌 침은 맹독이 묻었기 때문에 야심한 밤 한순간에 생명을 잃는다.


영화는 소현세자가 급사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다. 어둠 속에서만 눈을 뜨는 경수의 시야에 죽어가는 세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 장면이 안타깝고 애달픈 만큼, 진짜 그랬을 것만 같다. 그 당시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주인공 경수처럼 밤새 동분서주하며 어떻게든 진상을 알렸을까? 올빼미의 선명한 눈매를 보라. 이 생물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고개가 미끄러지듯 회전하며 밤의 어둠에 숨은 것들을 본다. 물론 올빼미는 심판자가 아니다. 타고난 본성 대로 밤에 생동할 뿐이다. 궁 안의 올빼미 같은 경수도 매 순간 솔직할 수 없었다. 그에게도 지켜야 할 혈육이 있기에 권력자의 부리가 자신을 향하면 빠져나갔다.


뇌신경이 파열될 것 같은 불안한 인조와 그 곁에서 양분을 받아내 자신의 아이를 키운 소용 조 씨는 궁 안 가장 내밀한 곳에서 바닥까지 내려간 부부 연기를 선보인다. 소용 조 씨(안은진 분)는 발톱을 감추지 않고 낮게 으르렁대다 타이밍이 맞아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상대를 요절낸다. 배우의 앙칼진 연기가 서늘하다. 싸늘한 두 인간은 고급 외제 승용차 트렁크에 갇힌 맹금류 같기도 하다. 분명 서로 의지하고 이득을 본 관계건만 마침내 서로 파멸시킨다.. 뜨악하고 참담한 느낌에 영화 <주홍글씨> 결말이 떠오른다.


침을 두 달 동안 맞았을 때 신체 기운을 재정비하는 것 같았다. 특정 혈을 찌르면 사람이 꼼짝 못 한다는 것도 전혀 과장이 아니라서 침 맞는 장면마다 몰입했다. 다만 침술은 증상을 덜어주는 치료법 같다. 병의 뿌리는 구겨진 마음이므로 영화 속 임금에게 내가 먹었던 정신과 약을 진상하고 싶다. 아들의 간언대로 변할 수 없다면, 자기 파괴적인 그 정신세계를 재위기간 동안 완전붕괴되지 않도록 상담하시고, 약을 드셔야 했다.




영화 주인공은 천경수 한 사람이다. 개봉 전 포스터를 보고 인조와 그에 대항하는 한 인간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구도를 예상했는데, 기대보다 유해진 씨에게 주어진 비중이 좁았다. 그러함에도 그는 입장이 점점 옥죄어오는 입지 좁은 왕의 말로를 세밀하고 깊게 표현했다. 그리고 원손에게 글씨를 써서 보여주는 짧은 장면에서 특유의 유머가 톡 튀어나온다. 완고하지만 손자를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좋았다.


천경수 역의 류준열은 별빛처럼 투명한 눈빛만으로 선명한 진실을 드러내는 연기를 보였다. 다만 평론가 박평식 선생의 평처럼.. 나는 경수는 끝내 희생되는 편이 매무새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진실을 차마 참수할 수 없어 내금위장이 그를 풀어주는 지점까지 수긍했지만, 경수가 인조에게 되돌아오는 결말은 봉합이 마무리된 옷에 옷감을 덧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경수가 지은 것은 그만큼 배우의 아우라가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경수가 왕의 침전에서 돌아나올 때 <독전>을 떠올렸다. 티없이 맑은 소년과 끝장을 보는 집념이 류준열, 이 사람에게 있다. 그래도 선하고 무고한 청년에 좀더 가까운 듯한데, 이 하얗고 말간 배우의 아우라를 접한 감독은 끝내 그를 정반대 지점에 놓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만화<몬스터>에 나오는 '요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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