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 공기는 나를 긴장시킨다

감정노동에 대하여

by Gomsk

앞머리가 코끝에 닿을 만큼 어느새 길었거나, 정수리와 염색모가 얼룩지게 대비될 때 미용실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정말로 미용실로 가기 위해 앉은자리에서 튀기듯이 일어날 때는 기분 전환이 급할 때이다. '오늘따라 더 못생겨 보이네...' 쓸데없이 곤두박질하는 마음을 달래고 싶어 미루고 미루다 간다. 미용실로.


미용실 투명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에어컨 바람과 섞인 뜨거운 공기와 샴푸향이 끼쳐오며 묘하게 긴장된다. 안 감은 머리를 슬쩍 매만지되 허리는 곧게 편다. 일상을 벗어나 조금은 우아해 보이고 싶다. 미용실 방문은 예민하고 긴장되는 일이다. 절대 릴랙스 할 수 없다. 타인이 내 머리카락을 적시고 문지른다. 불편한데 없는지 띄엄띄엄 묻는다. 샴푸실 담요 아래 두 손을 꼭 쥔 채 있어도 없다고 대답한다. 오늘만큼 아니 미용실에 있는 동안 나는 좀 더 관대하고 마음 넓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가끔 미용실은 심리상담소처럼 보인다


미용실은 머리 모양만 바꾸는 곳이 아니다. 높은 수압으로 눌려있던 감정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왜 그럴까! 외모가 갑자기 번드레해지면서 마음까지 적란운처럼 수직으로 솟기 때문인가. 그래서 오늘은 차분하게 있기로 미리 마음먹었다. 가위를 든 분에게 말을 거는 건 특히 부담스럽다. 내 머리털이 잘 손질되려면 가만히 있는 게 좋겠다고 작정한다. 그런데 오늘은 나를 맡아주신 선생님이 뭔가 할 말이 있었다.


"아드님이 몇 살이죠? (나이 확인하는 짧은 대화가 오간다)."

요점은 남자아이들은 좀 컸다 싶으면 엄마 말을 안 듣지 않냐는 질문이다. 나는 자기주장이 확실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말 안 듣는 느낌은 아니라는 말은 삼켰다. 미용실 선생님이 꺼내고 싶었던 것은... 20대 남자 고객이 다녀간 후 고객의 어머니가 항의 전화를 했다는 얘기였다.


잠시 말없이 있다가 영화 봤던 얘기를 했다. 남매 중 아들이 (자신의 본성을 깨닫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엄마를 떠나는 장면이 슬픈데 좋았다고, 일본어 제목은 모르지만 한국말은 '늑대 아이'라고 운을 뗐다. 반갑게도 미용실 선생님도 좋아하는 영화였고 몇 번이나 보고 울었다고 한다. 감정의 교차점을 찾아 다행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오래 일한 일본인이다.


나는 자녀가 십 대 초입이라서 경험치를 벗어난 말이 조심스러웠지만 자랄 만큼(?) 자란 아들은 엄마가 머리 만지는 것도 싫어할 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싫은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지만, 엄마는 아들을 놔야 하는데 그게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했다. 미용실 선생님 혹은 그녀의 동료가 받은 전화는 미용실을 다녀온 아들을 살펴본 엄마 입장에서 연락한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이날 귀가해서 떠오른 생각은 이렇다. 미용실 선생님은 불만이 있었던 고객이 재방문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조금 마음을 앓다가 내게 그 불안을 털어놓은 게 아닐까?


타인의 불안을 읽는 것, 대화를 끌어내는 기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자리한 불안을 읽을 수 있다면, 상대방이 의도한 흐름을 타지 않고 깔끔하게 소통할 수 있다. 대화 초반 '내 새끼는 말 잘 들어요'라고 반발하는 마음을 내가 드러냈다면 서로 머쓱했을 것이다. 왜 갑자기 그 얘기를 하실까 싶었지만, 심리적인 템포를 늦춰서 다행이다. 영화 얘기를 꺼낸 건 적절했을까 돌이키면서, 내 얘기를 풀어내놓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이 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 되어 마음 고생하셨군요.'라는 반응이 베스트였다고 자체 평가 내린다.


미용실에 흐르는 긴장된 공기는 때로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수소 폭탄 같은 욕구를 건드린다. 평소에 떨지 않는 주접까지 노출되는 수다 말이다. 탈모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오히려 숱을 쳤다는 미용실 선생님의 진단에 마음이 또다시 붕 떠오르고 말았다. 풍선껌처럼 뽁! 하고 그 기분이 꺼트려졌을 때 잔잔하게 대화의 기운이 따라왔다. 감정 노동이란 무엇일까? 교류할 수 있다면 타인의 감정은 나를 해치지 않는다. 나는 얼마나 감정의 교류지점을 빠르게 짚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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