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서 양탕국 마신 날

나의 커피 히스토리

by Gomsk

흰 셔츠와 짙은 갈색 조끼 차림에 먹색 토시를 한 바리스타는 100년 전 그 자리에서 커피를 내려도 어울릴 것 같다. 청록색 지붕 아래 조선의 황제가 커피를 마셨던 덕수궁 정관헌에서 마침 커피 내리는 시연을 하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며 모인 사람들에게 연세 지긋한 바리스타는 '급한 분께는 맥심이 준비되어 있다'라고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커피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모금 공짜 커피를 마시려던 급한 마음을 가라앉히자 가비·가배라고 불렀던 커피 역사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던가


레쓰비 캔커피 말고 커피콩을 직접 갈아서 처음 커피를 마신 때가 언제였을까 일부러 떠올려 본다. 2000년대 중반 원두를 처음 사보았을까? 곁에 두고 쓰다가 버린 물건들 사이에서 핸드밀과 드립용 주전자는 2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설레게 하는 물건만을 남기라는 정리 정돈 원칙을 듣기 전에도 커피 용품은 내게 바짝 붙어 머물고 있다. 나를 둘러싼 공기 무게를 함께 감당해 주었던 고양이가 떠났을 때나 직장이 바뀌어 내가 앉는 자리가 달라질 때, 그리고 결혼해서 살림이 늘어났을 때도 물 끓이는 부엌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심혈을 기울여 커피빵 부풀리기


커피는 고상한 취향을 은근히 드러내기 좋은 수단이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핸드밀로 그때그때 커피콩을 갈아서 종이필터를 두 번 어긋난 방향으로 접어 드립퍼에 얹고 90도가량의 끓여서 몇 초 식힌 물로 조금씩 우러나게 한다... 꽤 집중력이 필요했고 잡생각이 끼어들면 평범한 솜씨에 쓴 맛이 더해지기도 했다. 로스팅한 지 일주일 정도된 커피, 팔팔 끓는 물도 아니 되고 타이밍을 놓쳐 살짝 식은 물도 곤란했다. 조금씩 흘려 넣는 가느다란 물줄기는 종이필터에 직접 닿지 않게 정성스레 살폈다. 그렇게 부풀어 오른다. 기분 좋게 부피가 둥글게 커지다가 일순 오븐 속 머핀처럼 열십자 모양으로 중앙이 쪼개진다. 이 과정을 즐겁게 지켜보다 한눈팔지 말고 두 번째 물줄기를 조심스레 추가한다. 한번 부풀어 오른 원두 반죽(?)을 꺼트리면 안 되었다.


그렇게 커피를 내려마시는 법을 조금씩 다듬던 커피 초보는 강릉 카페 보헤미안을 방문했을 때 그 선망이 절정에 이른다. 강릉 시내 말고 숲 속에 카페가 있을 때였다. 박이추 선생으로 보이는 분이 유리 드립포트 4개를 나란히 놓고 어깨를 숙인 각 잡힌 자세로 핸드 드립 중이었다. 드립 주전자를 쥐고 있는 손과 손목을 보고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멋있는 분이리라. 다만 그 이후로 커피 내리는 정석은 정해져 있다고 내 멋대로 결론 내렸다.


정해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안 순간


야근과 철야 작업에도 필요했고 겉멋을 유지하는 데도 일조하는 커피였기에 왕창 갈아서 무진장 진하게 내린 뜨거운 커피를 세련된 도시에 사는 현대인의 필수라고 여겼다. 물론 커피가 허영의 상징은 아니고 내가 그런 마음가짐으로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했던 생각이다. 그러다 종로의 오래된 다방에서 새로운 커피를 만난다. 이 다방은 믹스커피와 쌍화차 외에 옅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단정한 찻잔에 150ml 정도 소담한 양의 커피를 보고 '이 카페는 재료비가 덜 들겠구나' 섣부르게 실망한다. 보리차 맛이었다. 왜 이렇게 연하게 내린 커피가 있는지 연유를 알기 전에는 그저 과감한 판매 전략으로 속단했다. 그렇다. 다 이유가 있었다. 커피를 즐기는 문화는 다양했던 것이다. 연하게 내린 커피는 리필이 가능했고 예전에는 이렇게 여러 잔 마실 수 있게 농도를 조절한 커피를 즐기기도 했다는 글이 메뉴에 안내되어 있었다.


핸드 드립을 커피 내리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여겼던 게 지금은 신기하다. 좀 더 고급스러운 맛을 뽑아낸다는 융 드립, 콜드 브루 이런 방법은 따라 해 보기 귀찮아서 알고만 있었다. 그런데 진짜 생각이 전면 파쇄되는 강연을 이날 들은 것이다. 고종 황제의 카페에서.


커피도 김치처럼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다


고풍스러운 왕실 건물 안에서 '양탕국'을 내린다. 도구는 눈에 익은 것들이지만 놋쇠 재질 주전자와 각설탕이 담긴 찬합이 멋스럽다. 가비와 가배는 들어봤지만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는 처음이다. 국이라니. 이르는 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국은 맑게 끓이기도 하니까 맞아 들어가는 말이라 수긍하며 양탕국을 마신다. 김장하는 법이 지역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다르듯이 커피도 그러하다는 말씀이 나를 강타한다. 커피 가루를 장처럼 담근 그릇을 장독 열어 보이듯 할 때도 나는 드러나지 않게 동요했다. 핸드 드립이 정해져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 일본식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자리 잡은 것뿐이라니.


외골수로 세상을 바라보는 껍질을 깨고


김장하고 메주를 쑤어 장을 만드는 일련의 작업들은 여럿이 했던 일이고 시기도 중요했다. 전승되는 문화 안에서 사람들이 뭉쳐 살았다. 아니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디테일은 전수되었다. 지금은 AI가 빠르게 적합한 레시피를 알려줄 것 같지만, AI는 내가 영어를 해야 의미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고 한다. 세상이 급변하는 가운데, 이날 '양탕국 강연'은 연결고리가 끊긴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아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강박을 벗는다. 커피 장인처럼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커피맛을 내면 되는 것이다. 익숙한 주전자로 내가 좋아하는 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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