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그녀 자신의 삶을 살다, 영화 <타이타닉>
1998년 종로에 있는 서울극장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보았다. "너 그 영화 봤어?" 하면 당연히 이 영화를 이를 정도로 인기였다. 커다란 스크린을 꽉 채우는 여객선이 두 동강 난 채 밤하늘로 치솟을 때 소름 돋았었다. 그때는, 케이트 윈슬렛이 얼마나 우아하고 예쁜지 몰랐다. 별빛 같은 디카프리오 외모에 집중했기 때문이고 지금에야 클래식이 된 영화 속 윈슬렛에게 제대로 반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강하며 스스로 구원한 자이다. 잭이 로즈를 구한 것으로 기억한 것은 당시 내가 나도 누군가 기댈 사람이 있었으면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윈슬렛은 천사처럼 아름다우면서 위험한 마녀 같으며 배우 고현정과 비슷한 아우라가 있다. 나는 특정 배우의 연기를 보다가 같은 느낌의 배우를 떠올린다. <타이타닉>에서 앳되면서도 성숙한 분위기의 그녀를 보자니 예전 MBC 주말연속극 <엄마의 바다>의 고현정이 불쑥 생각났고,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연인을 향해 뛰어가던 그녀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드라마 속 보라색 안감의 롱코트 같은 아름다운 드레스와 로즈가 입은 분홍 색끈이 길게 늘어뜨려진 하얀 드레스에서도 같은 질감의 분위기를 느낀다. 하지만 윈슬렛의 최대 매력은 잭을 구하기 위해 빨간 도끼를 들고 찬 바닷물이 차오르는 여객선 객실 안쪽으로 들어갈 때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어머니가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팔다시피 사랑 없는 결혼으로 내몰지만 로즈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희생될 것 같은 위태로움에서 벗어난다. 새침한 봉오리 같던 상처 많은 부잣집 아가씨는 스스로 불타오르듯 만개하고 자신의 사랑 앞에 대담하게 나섰기에.
잭과 함께 하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영화에 낮게 흐른 음악이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였다. 로즈가 듣던 음악이었을까? 이 부분이 몹시 뭉클했다. 모두에게 한 번뿐인 인생,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갛게 씻긴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을까? 로즈가 용기 내어 움켜잡는 스스로 책임지는 삶. 부모가 정해 준 약혼자와 살아갈 미래는 가면을 쓰고 버텨야 함이 분명하고, 벗어나지 못해 숨 막혀하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가로막는 모든 것에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안녕을 고한다. 블록버스터 영화라서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는 것 같았으나 다시 보니 영화 메시지가 다르게 읽힌다. 신은 그녀를 시험하였고 그녀는 통과했다. 진실한 사랑을 했고 목숨 걸고 연인을 지켰으며 연인의 유언 같은 '매 순간을 소중히 하라'를 새기며 풍성하게 살았다. 로즈가 스스로 일어섰을 때 세상이 그에 맞게 응답한 것이다. 하얀 머리 로즈의 생애 마지막 같은 밤, 그녀의 꿈같은 엔딩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