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이는 자라서 :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서른 살 지수(엄정화 분)는 피아노 학원을 차린다. 학원을 낼 아파트 상가 2층은 유리가 깨져있고 건반이 빠진 낡은 피아노는 먼지로 덮여 있다. 탐탁지 않지만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다. '비엔나 피아노' 학원을 열고 맞은 학생과 학부모 역시 피아노 전공자를 가르치고 싶은 그녀가 원하던 이들이 아니다. 속상한 마음에 "거지 같은 동네에 와서 정말."이라며 불평하는 그때, 진짜 거지 같은 아이가 그녀 앞에 나타난다. 아이는 자기만의 놀이터였던 공간이 변한 것을 보고 지수의 학원 살림을 흩트린다.
아이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형편이 좋지 않은 할머니는 고물을 주워 생계를 잇고 있다. 땟국물 흐르는 얼굴에 머리가 까치집인 아이 재민은 양철로 된 벽을 막대로 두드리며 걷는다. 막대를 손가락 삼아 굴곡을 긁어낸 소리는 재민의 외로운 마음을 드러낸다. 혼자 놀던 아이는 벽에 붙은 그랜드 피아노가 그려진 노란 전단지를 뜯는다. '비엔나 피아노' 광고다. 지수는 재민이 할머니를 찾아가 항의하지만 오히려 코가 꿰인다. 고단수 할머니가 지수에게 재민을 맡겨 버린 것. 미혼의 지수는 얼결에 재민이를 학원에 데리고 있게 된다.
두 사람은 그랜드 피아노 옆에서 밥을 먹는다. 바깥에는 여자 아이들의 고무줄 밟는 경쾌한 음이 들린다. 경민이는 그 소리를 그대로 피아노로 옮긴다. 건반이 내는 소리 위치를 모두 외고 있다. 지수는 점심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경민이를 가르쳐보기로 한다. 아이의 잠재돼있던 재능은 나비가 한꺼번에 날아올라 춤추듯 열리고 여물어 간다.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고 싶었던 지수는 재민을 키워보고 싶다. 천재 피아니스트를 발굴한 지도자로 스포트라이트 받는 꿈을 꾸던 그때, 1층 피자집 사장님이 낮잠 자던 지수를 깨운다.
빨간 모자 피자집 사장님 광호(박용우 분)는 지수가 이사 온 날부터 그녀를 도우면서 곁에 맴돈다. 결혼한 부부가 아니요, 재민이는 지수의 아들이 아니지만 세 사람은 가족 같다. 지수의 레슨은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방식이고 한 걸음 물러나 그들을 보살피는 광호는 아빠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재민이 악보에 100번 연습하라고 메모하고 마트에 비치된 피아노를 쳐보라고 재촉하는 등 이미 지수는 열성 엄마와 다를 바 없다. 엄마가 아닌데 엄마 같은 엄정화 씨의 연기는 정말 독보적이다. 그래서 피아노 선생님 지수가 재민이와 밥 먹고 같이 잠들어도 어색하지 않고, 빨래한 재민이 옷을 옥상에 널다가 함께 장난치는 모습은 진짜 엄마 같다. 피아노 콩쿠르를 준비했다가 재민이가 연주를 못하자 지수가 품에 안고 대회장을 빠져나올 때와 실망한 지수가 "나 너 포기했다."며 돌아설 때도.
지수는 자신도 유학 갔더라면 잘 풀렸을 거라고 가족에게 외친다. 그 말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지수의 오빠는 재민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너를 위한 도구로 삼지 말라고 한다. 아프지만 이 말도 맞는 말이다. 지수가 재민과 크리스마스 공연을 보고 온 날, 지수의 동창인 정은이 '하우스 콘서트'에 초대한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클래식 공연이라니. 피아니스트로 성공한 정은을 질투했던 지수지만 이 날의 경험은 그녀를 흔들어 놓았을 것 같다. 정은이 말한다. "이렇게 자주 모인다." 콘서트를 연 미국인 음악가는 재민에게 관심을 보인다. 능력 있는 자는 세상이 알아본다는 말처럼, 재민의 재능은 지수의 레슨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지수는 재민에게 '큰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한다.
어린아이는 언제까지나 부모를 귀찮게 할 것 같다. 물을 쏟고 더러운 손으로 물건을 만지고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보란 듯이 어깃장을 놓는다. 그랬던 그 아이가 훌쩍 자라 품을 떠난다. 그래서 엄마는 잊지 않아야 한다. 아이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것. 그 기회가 왔을 때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것. 미련 없이 보낼 수 있도록 아이가 곁에 있는 동안 충분히 사랑하는 것.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된 재민이를 지수는 계속 데리고 있고 싶지만 결국 외국으로 아이를 보내기로 한다. 재민은 지수를 엄마라고 부르며 보내지 말라고 한다. 보내지 않으면 안 될까? 언제까지나 품에 끼고 있으면 안 될까? 지수는 어렵게 아이를 보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오열한다. 재민에게 들려주었던 트로이메라이는 그녀의 울음에 묻힌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젊은 암탉 잎싹은 오리알을 품는다. 알에서 깨어난 아기는 잎싹을 엄마로 따른다. 아기 오리 초록이를 잎싹은 목숨 걸고 지킨다. 야생에서는 살아남아 본성대로 사는 것이 재능을 피우는 것과 같다. 초록이는 엄마를 두고 가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청둥오리 무리에 들어가고 기약 없이 잎싹을 떠난다. 지수는 머리가 희끗해질 만큼 시간이 흘러 재민과 재회한다. 재민은 지수가 이별할 때 건넨 반지를 새끼손가락에 끼고 있다. 작은 손에 윤슬이 흐르는 시냇물을 담던 아이가 자라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한다. 두 사람의 작은 꿈은 모두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