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 사회를 상상하다

탐욕스럽게 읽고 쓰는 이유

by Gomsk

게리 올드만의 눈 뒤집히는 광기 어린 연기가 잊히지 않는,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 베토벤의 곡을 연주하는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있고 정장한 연주자와 초대받은 소수의 청중이 프라이빗한 응접실에서 베토벤의 신곡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라이브 연주에 심취한 귀족 혹은 부유층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밀을 줍는 아낙들의 굽은 등을 포착한 농촌을 그린 것처럼. 영화에 계급사회 한축이 무너지는 시대상이 비치기도 하지만, 고상한 문화를 누리는 계층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도 드러나지 않게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경험하는 범위가 다르지 않는가?


영화 <블랙머니>에도 프라이빗 파티가 나온다. 초대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는 그곳에 양민혁 검사(조진웅 분)는 선배 이름을 빌어 입장을 시도한다. 입구에 신원을 확인하는 보안 직원이 있었지만 마침 도착한 김나리 변호사(이하늬 분)와 동행하여 잠입에 성공. 파티장 안에서 양민혁은 자신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만날 수 없었던 고위 권력자들을 마주한다. 그의 신원은 오래지 않아 드러난다. 양민혁은 자기를 일부러 알리려던 목적을 달성하지만 빠르게 퇴장하고,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과 섞이지는 못한다. 요령이 부족해서 밀려난 것은 아닐 것이다.


계룡산에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신 동학사가 있다. 절이 있는 지점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에 스님 한 분을 마주쳤다. 연세가 있으신 편이었고, 내 곁에 있는 어린애에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셨다. 그분은 절 입구까지 경사진 좁은 산책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계속 걷고 계셨던 것 같다. 절을 구경하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도 뵈었으니까. 아마 명상 중이 아니셨을까? 동학사는 스님들이 공부하는 절이니까 걸으면서 경전을 외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그분처럼 공부에 깊게 침잠해 본 분들은 설명하려야 할 수 없을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는 공부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내게 직접 말씀하셨어도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그날 동학사 입구에는 '출가'를 권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어쩐지 공무원을 모집하는 듯한 밝은 느낌이라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출가했다면 그건 현실도피다. 눈앞의 과제를 두고 도망 오면 절에서도 받아주지 않았을 테니까. 출가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 다행(?)이다. 이후에도 나는 내가 있던 자리에서 공회전하듯 몸부림쳤다. 우쭐하게 내밀 성과 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성장은 요원해 보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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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일하는 머슴이 사랑채 서방님보다 똑똑하게 그려지는 경우를 본다. 드물게 뛰어난 개인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극적인 전개를 위한 설정이다. 계급사회에서 지배자는 글을 읽고 있다. 통풍이 잘 되는 높은 방에서. 비싼 기름을 태우고 촛불을 여러 개 밝히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밤낮없이 읽고 읽었다. 또 글 쓰는 능력은 얼마나 대단했는가? 조선시대만 떠올려봐도 위기 상황마다 빗발쳤을 수많은 문장들. 허점 없는 논리로 완성된 상소문을 쓴 선비가 전국에 있었고 임금과 신하는 매일 읽고 검토한 후 글 쓴 자를 벌할지 가까이 둘지 판단해야 했으니, 대단하다. 글이 곧 권력이요 상류 문화다.


그러므로 글을 읽고 쓰게 하는 책은 애벌레를 여왕으로 자라게 하는 로열젤리다. 다만 선별된 지식을 폐쇄적으로 이용하던 시대와 달리 지금은 모든 조건이 평등하게 열려있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 나만 해도 폐수 섞인 하류 즈음에서 '그래도 나는 중류에 속해있겠지' 착각하며 떠돌고 있다.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고 월급이 유지되면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배우자의 말은 무게가 실린다.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가장의 말이니까. 하지만 가정이란 안락한 울타리 안에 있어도 의문이 생긴다. 정말 사람은 아래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 분명 상류사회가 존재한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주제로 깊은 대화를 한다. 내가 황금을 짊어지고 접근한들 갑자기 교류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창덕궁 비원을 방문하면 효명세자가 공부한 집이 있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세자는 비원 곳곳을 잇는 오솔길을 호젓하게 걸었을 것이다. 산책할 때마다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번쩍이는 영감을 떠올리며. 과연 최고의 독학 환경이다. 조선시대 궁궐과 정원은 주인 없이 비어있지만 지금도 그와 같은 별세계가 있을 것이다. 내게 있어 그곳은 상류사회이다. 블랙홀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한 존재감을 느낀다. 책 읽고 생각을 기록하는 글쓰기는 그 세계로 진입하는 유일한 열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상류사회를 꿈꾸는가? 직장에 속한 새내기는 '시다' 단계를 거친다. 싫어하는 말이지만 도제식으로 작업하는 환경이라면 일을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 돌이켜보면 사회에 첫 발을 뗀 2년 여 동안 직장 선배와 상사로부터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그때 별 거 없는 자존심을 더 굽혔더라면 이후 얻는 기회의 폭이 넓었을 것이다. 가장 후회되는 점은 얇은 소설책만 읽으며 20대를 보낸 것. 그래서 스스로 공부하는 내공이 쌓인 사람이라면 요즘은 시다를 거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무한대의 선택지가 있고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래도 시야는 좁을 수 있다. 마치 심해의 초롱 아귀가 자기 주변만 밝히는 것처럼. 내가 시다일 때 답답했던 이유는 시야가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스네이프 교수를 맡은 영국 배우 알란 릭맨은 처음부터 작품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스네이프 교수의 내면을 표현하려면 연기자가 전체 스토리를 아는 것이 정말 필요했다. 그처럼 내가 하는 일의 전신이 드러난 지도를 보는 것은 중요하다. 느린 흐름의 하류에 살더라도 중류 지대를 여행하거나 급류를 거슬러 상류에 올라 세상 전체를 보고 싶다면, 허튼 정보와 헛바람을 경계하며 시야를 조금씩이라도 뚫어내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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