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치는 밤에

천둥번개 치는 날 사람은 변한다

by Gomsk

동화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 염소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비를 피한다. 어둠 속에서 사나운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던 그때 발굽을 끄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의 기척일까? 다가오는 낯선 이는 자신과 같은 종족일까 아니면 치명적인 적인 것일까. 천둥소리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일 때 정체가 드러나지만 둘다 깨닫지 못한 채 아침을 맞는다. 그들이 환한 낮에 알게 될 진실은 잔혹동화라기보다는 현실 그 자체다.


생명은 날씨에 따라 변하고 움직이면서 그에 맞게 살아간다. 폭풍이 칠 때 살아있는 모든 것은 그 격동적인 에너지에 반응하여 안쪽에 꽁꽁 감추었던 그 어떤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황무지에 폭우가 휘몰아칠 때 히스클리프의 광기 또한 폭발한다.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서로 밀어내던 남녀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발산한다. 분노의 모습을 한 열렬한 사랑을. 눌려 있던 감정이 끓어올라 끝장을 보는데 전기 에너지가 과열되어 충돌을 일으키면, 누전된다. 어둠뿐이다.


현진건 소설 <무영탑>에서는 석공 아사달을 사모하는 신라 귀족 아가씨 주만이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되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쓴다.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의 완공이 가까운 날 그들의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은 불국사에서 두 사람은 석가탑과 함께 어둠 속에 삼켜진다. 극한으로 압축된 주만의 감정은 고요를 몰아내며 들이닥친 폭우에 한꺼번에 폭발하는데,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아사녀를 그리며 이성을 잃지 않으려던 아사달 또한 휘몰아치는 그 밤 격정에 휩싸인다. 그 결과 누군가의 목숨을 대가로 치르게 되지만.


움직임에는 충돌이 따른다. 인간의 일정한 행동 패턴이 날씨에 따라 변화무쌍 해지는 것을 멀리서 주시하는 고차원 존재가 있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보일까? 인간은 살아있는 어떤 수준의 기계인 것일까. 지능은 하찮은 미물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은 그보다 의식이 높을 뿐 완벽하지 않다. 습관을 바꾸는 것 또한 생존에 위협을 받을 긴박한 경우가 아니면 어렵다. 인간은 살던 대로 살고 싶어 하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몰려오는 먹구름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단지 쏟아질 비를 염려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천둥처럼 불안하게 흔드는 스트레스와 번개처럼 스치는 영감은 인간을 넥스트 레벨로 이끈다. 찰나의 기회를 움켜 잡고 전진하는 소수의 사람만이 쟁취할 것이다. 그것은 꼭 원하는 상대의 마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몰랐던 레벨 업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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