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처럼 서늘한 공포

이토 준지의 소용돌이치는 마의 세계, <토미에>

by Gomsk

소용돌이는 쳐다보기만 해도 빠져든다. 그것이 수채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물이라면 안전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소용돌이와 마주쳤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읽어서는 안 되는, 집안에 두어서도 안 되는 호러의 주인공 토미에를 알게 되면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음침하게 고인 공간 어디든, 홀리는 눈웃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그녀. 종로 영풍문고에서 그녀를 구입하고 등장하는 시리즈를 모두 사모았으나 책등이 보이지 않게 꽂아두었다가 이사할 때 슬쩍 버렸다. 그녀가 나에게 복수하러 올까? 치명적인 실수는 모르는 척할 때 일어난다. 이토 준지는 인간이 플랑크톤일 때(?)부터 품었던 원초적인 공포를 읽어내는 작가다. 거만하고 의연한 척하는 인간의 우아한 껍질 아래에는 미토콘드리아가 탄생할 때처럼 상대에게 통째로 먹히는 공포가 웅크리고 있다. 간밤에 꾼 악몽이 바로 이거 아니니? 하고 대놓고 들이미는 것 같다.


토미에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유혹하는 존재다. 특히 남자들은 그녀를 성녀처럼 숭배하면서 동시에 그녀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토미에의 묘한 사랑스러움에 푹 빠졌다가 종국에는 감당하지 못하고 그녀를 살해한다. 마치 바퀴벌레를 제거하듯. 일본 드라마나 만화에 등장하는 수위 높은 범죄물과 구별되는 점은 토미에가 희생되는 미모의 여성 캐릭터 혹은 복수의 화신이 가지는 한계를 뚫는다는 것이다. 수백 개(!)로 분열하여 환생함으로써. 인간이 보지 못하는 틈 사이에 살고 있는 미물처럼 그녀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상을 덮어버리고, 기를 쓰고 그녀를 없애려던 사람들은 미쳐버린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그려내는 게 가능했을까?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보다 끈적하게 달라붙던 그녀는 결코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토미에는 극단적이며 비선형적이고 통제되지 않는다. 그녀는 땅 위에 집 짓고 도로 깔고 사는 인간의 목숨을 쥐고 있는 자연과 같다. 그녀가 눈썹 하나만 깜박여도 인류는 몰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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