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제대로 연기한다는 것

본심을 알고 싶은 사람은 없다

by Gomsk

너는 가식적이야. 란 말을 듣고 속상해서 일 년을 앓았다. 나의 진정성과 솔직함을 증명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상대에게 말려들어갈 뿐이다. 그러다 깨달은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인생의 비밀, 모두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예외는 한 두 명뿐이며 진짜 상대의 속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어린아이 마음으로 연기하며 살아왔다. 연기하는 것은 생존과 관련 있다. 크게 유년기의 명랑한 나, 사회생활할 때 늘 예민한 나, 결혼 이후 가족관계 속 나로 나눈다.


아이는 부모의 기분을 살피며 자란다. 물론 눈칫밥 먹은 만큼 마음이 병든다. 마음이 병든다는 것은 순수한 머릿속에 불안을 감지하는 신경이 특화되는 것과 같다. 의학적 증거는 붙이지 못하지만, 나는 진실이라고 느낀다. 내 최초의 기억은 25살 젊은 너무나 젊은 엄마가 울고 있던 장면이며 아빠 역시 젊었다. 아빠는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던진 거친 말을 1살 아기였던 나는 모두 저장해 버렸다. 아마 아빠가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일과 무관한 엄마의 사소한 행동이 아빠의 비위를 거스른 것이리라. 아기는 그 상황에 '놓여' 있었을 뿐이지만 시간이 흘러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해석했다. 부모는 싸운다. 아빠는 밖에서 돈 벌어 오기 힘들구나. 가여운 엄마가 울고 있다. 울면서 비락우유에서 사은품으로 준 우유갑과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 저금통에 붙은 누런 테이프를 뜯고 있다. 두 사람은 서 있다. 나는 그 중간쯤 앉아 있는데 허리가 흔들리는 느낌이 아마 앉혀 놓으면 혼자 겨우 앉아 있을 때였나 보다. 나는 그때 바닥에 닿은 내 엉덩이 느낌을 기억한다. 천기저귀 채워진 아기의 엉덩이. 말간 눈으로 올려다본 소중한 두 사람.


나는 아빠를 몰래 증오하면서 아빠의 기분을 예민하게 살피며 자랐다. 책임감 강하고 섬세한 아빠는 화약을 꾹꾹 눌러놓듯이 감정을 모았다가 폭발시키는 사람이었다. 조금만 무던했더라면. 주변에 무심했더라면. 언젠가 홀어머니 슬하 둘째 아들이었던 아빠가 군대에 갔을 때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옛날에는 다 그랬지 정도로 그 얘기를 받았던 것 같다. 아빠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었을 것이다. 똑 부러지게 일처리하고 정이 많은 성격을. 내가 부모가 되었을 때에야 알았다. 아빠는 성격이 별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오래 앓았다는 것. 그건 신경증이며 나 또한 후천적으로 물려받았다는 것까지.


그렇게 내 연기력의 근원은 나의 생존과 직결된 대상의 기분을 파악하여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다만 연기가 완벽하지 않으므로 상대방의 지적이 따르면 필요 이상으로 반응했다. 일종의 악순환은 상대가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으면 하는 그릇된 욕망을 직시할 때까지 지겹게 계속되었다. 타인이 나를 괴롭힌다고 여겼더니 정말 내가 바라보는 대로 세상이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반평생을 내 인생에 내가 단역으로 출연하며 임시방편으로 인간관계를 끌어 왔다. 어디서 어디까지 진실했을까? 삶의 끝에서 편집하지 않을 최고의 순간은 어느 정도 분량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내가 있어서 부모는 정말 기뻤을까? 마흔 중반에 터져 나온 질문에 스스로 답해야 한다. 그러자면 인생 자체가 연기라는 늦된 깨달음으로 돌아간다. '내 원한을 내 욕심을 전면에 드러내지 않겠습니다. 나는 최선의 연기를 할 것입니다. 역할에 맞게 최적화된 연기는 오히려 살 맛나게 할 것 같아요.' 그건 가식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행복하고 싶은 인간이 필히 능숙해야 할, 삶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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