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풍 속으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1991년 작, <폭풍 속으로>
노련한 서퍼 버디(bodhi)는 여름을 즐기려고 은행을 터는 야생마 같은 사내입니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 해변에 앳된 청년 조니가 나타납니다. 버디의 애인이었던 타일러와 함께 서핑을 배우고 있죠. 타일러에게 다가가는 버디. 타일러는 버디가 거칠게 백허그하자 아는 사이라며 조니에게 눈빛으로 해명합니다. 발끈한 버디는 짐짓 여유로운 척 타일러에게 묻지요. "내 대용품인가?"
그들을 향해 풋볼이 날아오고 버디가 손을 뻗지만 잡은 건 조니였죠. 버디는 웃음을 띈 채 야수처럼 조니를 노려봅니다. 거친 파도와 한 몸인 양 서핑하는 버디는 도인이라 불릴 정도로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죠. 세 사람의 첫 만남은 미세한 감정 흐름으로 생긴 어떤 틈이 각자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임을 예감하게 합니다.
타일러를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소유하지 못했던 버디는 타일러와 좁힐 수 없는 간격을 둔 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로운 타일러를 완전히 흔드는 남자가 나타난 거예요. 자신처럼 포기를 모르며 면도날처럼 정확한 조니 유타 말이지요.
조니는 대학 풋볼팀 쿼터백 출신에 '변호사'라고 버디가 동료들에게 소개하죠. 운동선수였던 이력 덕분에 조니는 버디와 서핑을 함께하는 젊은이들과 금세 친숙해져요. 한 밤중의 서핑, 시각이 아닌 육감으로 파도와 하나가 되는 기막힌 경험을 공유하며 모닥불 앞에 모인 남자들은 한 마음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니는 버디와 가까워진 만큼 타일러와도 깊어지는데 아슬아슬한 우정과 사랑은 곧 균형이 깨지고 맙니다. 조니는 연방경찰로써 잠입 수사 중이었고 은행털이범으로 지목된 대상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하는 어떤 그룹이었기 때문이죠.
이른 아침, 총격이 일어난 곳에서 조니는 깨진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봅니다. 경찰 동료들과 함께 밀고 들어간 집은 은행털이범 아지트가 아니라 마약을 소지한 서퍼들의 집이었고, 마약 공급책을 장기 수사하던 다른 팀에게 질책을 당하고 말지요. 조니는 수면 위로 드러난 진실을 외면하고 싶지만 '그'를 쫓을 수밖에 없습니다.
범행을 예감하고 은행 앞에서 잠복하던 조니는 배고픈 선배 파파스의 요청으로 샌드위치를 사러 갑니다. 조니 등 뒤로 자주색 링컨에서 내린 한 무리의 강도들이 은행에 들어가는데 바로 고무 마스크를 쓴 버디 일행이죠. 조니가 샌드위치와 레모네이드를 사 오는 동안 일을 마친 버디 일행은 황급히 차에 올라탑니다.
은행을 털고 나오는 그들을 보자마자 총격하는 조니! 버디일행은 조니가 탄 차를 따돌리고 정비소에서 차량을 바꿔 타는데, 타고 온 차를 불태우며 주춤하는 버디를 보고 동료들은 불안해합니다. 균형을 잃는 순간 파도에 휩쓸리는 서핑처럼 버디가 평정심을 잃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죠. 이어지는 긴박한 추격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강도가 버디임을 알아본 조니는 부상을 입고 구르는 와중에 사격하려 합니다. 두 사내의 눈빛이 강렬하게 마주한 찰나, 조니는 포효하며 허공으로 연발사합니다.
시스템과 제도에 저항하는 정신으로 은행 금고는 건드리지 않았다는 버디는 조니의 신분을 알게 되자 그를 모종의 계획에 끌어들이려 합니다. 한편 조니의 지갑을 보고 그가 연방경찰임을 알게 된 타일러가 배신감에 떠난 새벽. 타일러에게 돌아와 달라고 메시지를 남기던 조니에게 버디가 찾아와요.
그들이 함께 한 아드레날린 100% 솟구치는 스카이 다이빙. 그들은 독수리처럼 날개를 펴고 다시 한번 환희의 순간을 함께 합니다. 섞일 수 없는 조니와 버디가 한 자리에 모인 순간. 곧 낙하를 준비해야 할 때가 옵니다.
또 다른 자아처럼 다가온 서로에게 몰입했으나 버디가 조니에게 속내를 털어놓자 조니는 차가운 분노에 휩싸입니다. 타일러가 염려한 대로 두 남자는 극한까지 서로 밀어붙이게 된 거지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작품을 이 영화로 입문했는데 감독은 배우의 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끌어낼 수 있는 분이군요. 패트릭 스웨이지의 불처럼 타오르는 카리스마와 키아누 리브스의 차분하고 잔잔해 보이지만 끓어오르기 직전의 깊숙한 느낌을 너무나 능숙하게 다루었어요. 캐릭터에 담긴 두 배우의 에너지는 결말을 향해 압축되면서 엔딩이 올라갈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합니다. 충돌한 순간 발화된 불꽃으로 끝장을 보는 이야기. 오금이 저린 액션 영화 <폭풍 속으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