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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순이 Aug 17. 2024

프롤로그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런데 나는 한동안 또 정답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까지 마음 잡기가 오래 걸렸다. 일 중독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소설을 쓰고 싶은데, 이놈에 결말이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었다. 정답에 가까운 생각은 일중독을 완벽하게 해결하고, 균형을 맞춰 행복하게 사는 주인공의 결말을 끌어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건 또 정답 같지 않았다. 좀 더 현실적인 정답으로 일중독을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우울증에도 빠져 그대로 좌절하며 사는 것이 더 세상사는 모습에 가깝지 않나 생각을 했다.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둘 사이 어디즈음에 자리 잡고 살고 있다. 내 소설도 내 모습과 가깝게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정답 없는 인생이듯, 소설도 정답이 있겠나. 더군다나 솔직하길 좋아하는 내가 말도 안 되는 공상에 빠져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초반부터 결론을 미리 스포하는 건 일종의 방어일 수 있겠다. 이 소설에는 특출난 해피엔딩은 없다.


에세이에 기반한 소설이라서 각색을 할 예정이다. 그것도 이유가 있다. 나의 일, 회사에 관한 이야기에는 보호해야할만한 분들이 있다. 현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고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에 조금은 쉴드를 쳐드리기로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내가 타이핑을 하는 이 손이 즐거울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을 참 좋아한다.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아예 시작도 안 하는 편이다. 글로 받은 상이라고는 어렸을 적 매일 쓴 양으로 승부한 일기상, 북한에 있는 친구에게 쓰는 편지라는 주제로 글을 써 받은 장려상 밖에 없다. 글로 인정받은 순간이 없는데 글은 계속 쓴다. 아니면 내가 글을 잘 쓴다 못쓴다 하는 얘기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지. 어쨌든 그게 신기하다. 어렸을 때 웅변학원을 잠깐 다녔는데, 웅변보다 글을 훨씬 많이 썼다. 아무래도 거기에서 만든, 의자에 길들여진 엉덩이가 지금도 글을 쓰게 해주는 것 같다.


최근에 큰 질병을 앓고 나서 이 소설을 꼭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일에 대한 얘기를 나만 알고 넘어가는 건 너무 아까웠다. 정말 치열했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내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를 모조리 삼킨 인생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만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분이라도, 내 글을 잘 읽지 않는 신랑이 됐든 누가 됐든 읽어준다면 나에게 더 큰 감흥이 있을 것 같다.


편집디자인이라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분야에는 예상을 넘어서는 큰 세계가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대기업은 아니다. 대단한 스타트업도 아닌 평범한 소기업을 다니는 개인이, 일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적인 이야기다.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디자인에 몸담고 계신 분들 또는, 디자인과 관계없는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께도 슬픔, 공감과 위로, 심심한 미소와 행복감을 안겨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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