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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Lee Nov 26. 2015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 를 읽다.

박완서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엄마표 찌개처럼, 담백하고 구수하다.

작가지망생으로 습작을 하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글에 감정을 너무 싣게되는 것이었다.
멸치, 조갯살, 새우, 차돌박이, 우렁, 버섯.
맛있게 하려는 욕심으로 온갖 재료를 다 넣어 끓이다 보니 결국엔 짜고 비릿해진 된장찌개처럼, 종종욕심이 너무 과해 불편한 글이 되어버리곤 했다.

나의 것과 달리 그녀의 글은 균형이 있어서 좋았다. 멸치 8마리와 작은 다시마 한 조각으로 잘 우려낸 육수에, 된장 두 숟갈, 고춧가루 한 숟갈.

덤으로 차돌박이에 애호박과 양파 송송 썰어 보글보글 적당히 잘도 끓였다 싶다.

사실 지나치게 슬프거나 째지는 글보다도 잔잔한 여운이 도는 글을 만드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다. 이런 면에서 그녀는 참 좋은 소설을 써냈다.

주인공의 일기 같기도 한 이 소설은, 우리를 옆에 앉혀 놓고 능청스럽게 자기 동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명쯤 갖고 있을 법한 학창시절 단짝이라든지 피붙이처럼 가까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 특별한 관계 속에만 존재하는 뜨거운 정, 약간의 이기심, 애잔한 그리움 같은 묘한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녹아내고 있다.

도서관에서 그녀의 책을 찾아 읽던 중 그녀가 상당한 양의 단편소설들을 썼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는데,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책을 꽤 좋아했던 여고생이었는데도, 고등학교 1학년 문학교과서에 나오는 <그여자네 집>은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해 억지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십삼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그녀 소설의 진가를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기고 간 수많은 작품들을 보며 글쓰기의 비결 3요소 중 ‘다작’에 대해서도 깨닫는 바가 새롭다.

게으름과 열정 사이를 방황하는 나, 올해가 가기 전에 더 많이 자주 펜을 들어야겠다. 혹시 모른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쓰다 보면 나도 느즈막히 구수한 된장찌개 하나 끓여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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